배달 라이더도 ‘근로자’…최저임금제·최소보수제 도입될까

2025년 4월29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개최한 ‘안전운임제 쟁취! 배민쿠팡 투쟁 선포! 라이더-화물노동자 대행진’에 참여한 배달라이더들이 오토바이를 탄 채 줄지어 늘어서 있다. 민주노총 제공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는 계약의 형식보다 근로 제공 관계의 실질(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원고가 앱(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해 근무하는 동안 보수를 목적으로 피고 회사의 지휘·감독을 받아 종속적인 관계에서 노무를 제공했다고 판단되는 이상, 원고 역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고 보아야 한다.”
법원이 배달라이더의 근로기준법(근기법)상 노동자성을 인정한 첫 판결을 내놓으면서, 그간 개인사업자로 취급됐던 플랫폼 기반 노동자들이 법의 보호를 받을 길이 열릴지 주목된다. 노동계는 무엇보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2026년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에서 무산된 도급제 노동자의 최저임금 적용과 건당 최소수입을 보장하는 최소보수제(적정보수제) 도입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2026년 7월3일 서울고등법원 제38-1 민사부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 조합원인 ㄱ씨가 배달대행 플랫폼 ㄴ사를 상대로 제기한 ‘해고 무효 및 임금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근로자 지위를 부정한 원심을 취소하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배달라이더가 독립 사업자로 고객을 직접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사의 앱을 통해서만 주문·배달을 수행할 수 있는 구조인 점, 보수의 산정 기준과 지급 방식을 모두 회사가 사전에 정한 기준에 따른 점, 배차·동선 등에서 라이더가 재량권을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근거로 해당 라이더가 회사의 지휘·명령을 받아 종속적 관계에서 노무를 제공한 노동자임을 인정했다.
더불어 재판부는 시대 흐름에 따라 근로기준법을 탄력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원고와 같은 플랫폼 노동자의 노무 제공 관계에 더 부합하는 별도의 입법이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도 “입법이 이뤄질 때까지 만연히 근로자성을 부인하는 것보다는 근로자성이 인정되는 개별 사안에서 근로기준법의 탄력적 해석을 통해 근로관계를 실질에 맞게 규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시했다.
배달앱 업계 관계자들은 “개별 노동자에 해당하는 판결일 뿐”이라고 애써 그 의미를 축소하지만, 노동계는 이번 판결이 플랫폼 기반 노동자에게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본다. 구교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 위원장은 “배민·쿠팡이츠 등 대부분의 라이더는 배달앱 사 쪽의 지휘·감독과 관리·통제를 받는 만큼, 해당 판결의 하청 소속 노동자와 매우 유사하다”며 “알고리즘에 종속된 형태로 일하는 배달노동자들의 최저임금, 사회보험, 퇴직금, 휴가 보장 등 제도 개선에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2025년 5월1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민주노총 특수고용·플랫폼노동특별위원회가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요구안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노동계에서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최저임금제 적용 가능성이다. 배달라이더 등 도급제 노동자의 최저임금 적용은 사용자 쪽의 거센 반발로 2026년 최임위에서 표결 끝에 11 대 15로 부결됐다. 최임위에 노동자 쪽 위원으로 참여하는 박정훈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최임위에서 근로자성 인정 여부가 확실치 않다는 이유로 논의가 무산됐는데 이번 판결로 명분을 얻은 것이 사실”이라며 “최임위가 끝나면 이의제기도 가능한 만큼 8월5일께 이의제기를 통해 재논의에 불을 붙일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노동계는 최소보수제 도입부터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저임금제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국가가 정한 법정 임금 최저선이지만, 최소보수제는 특수고용직·플랫폼 노동자처럼 법적으로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한 이들에게도 시간당(혹은 건당) 최소수입을 보장하는 제도다. 최소보수제는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도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최소보수제 도입 추진 계획을 밝혔다.
현재 구체적인 제도 설계까지 완료된 것은 아니지만, 노동계는 국제적 기준과 흐름에 따라 시간당 보수와 건당 보수를 함께 고려하는 방식을 가장 적절한 방안으로 꼽고 있다. 여기에 대기 시간의 노동시간 포함 여부, 유류비·보험료·감가상각 등 노동자 부담 비용 반영 여부, 여러 플랫폼에서 동시에 콜을 받는 멀티호밍 고려 방식 등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26년 6월 국회에서 열린 ‘배달플랫폼노동자 소득보장 방안’ 토론회에서 서비스연맹 정책연구원과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발표한 최소수수료 산정 모델에 따르면, 배달노동자의 최소수수료는 건당 4067~4183원은 돼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배달노동자의 건당 수수료(비수도권 기준)는 1900~2200원에 불과하다. 송관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최소수수료 산정 모델만으로는 실질적인 소득 보장을 충분히 담보하기 어렵다. 다만 현실적·과도기적 보호장치로서 의미를 가진다”며 “플랫폼 기업의 정보 제공 의무, 데이터 그러제출 의무, 알고리즘 투명성 확보, 비용 전가 방지 장치, 사회보험 및 안전보호 등을 함께 포괄하는 제도적 설계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국외에선 이미 비슷한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미국 뉴욕시는 2023년부터 배달노동자에게 최소보수를 보장하는데, 2025년 기준 시간당 22.13달러(약 3만3천원) 정도를 적용하고 있다. 시애틀의 경우 노동시간과 이동거리를 반영한 산식을 통해 최소지급 조례를 시행하고 있는데, 2026년 기준 건당 5.34달러(약 7900원) 정도다.

2025년 4월29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개최한 ‘안전운임제 쟁취! 배민쿠팡 투쟁 선포! 라이더-화물노동자 대행진’에 참여한 배달라이더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민주노총 제공
노동계는 노동자가 기본적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들여 스스로 노동자성을 입증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요구한다. 현재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과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안’(일명 근로자 추정제)이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돼 있지만, 내용이 미비해 실효성은 다소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는 “일하는사람법은 기본법이라는 외피를 갖추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특고노동자에 대한 선언적 수준의 특별법’에 그칠 가능성이 크며, 오히려 근기법상 근로자 범위 확대라는 본질적 과제를 회피·우회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추정제 법안 역시 근로자 개념의 실질적 확대 없이 절차적 개선에 머무르고 있어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의견서를 낸 바 있다.
박정훈 부위원장은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근기법 제2조의 근로자 정의 부분을 확대해 개정하는 것이다. 현재 발의된 여러 법안은 노동자 추정제가 아니다. ‘분쟁 해결시’를 전제로 하여 사실상 민사소송에서 노동자성 여부를 다툴 때나 적용이 가능하다”며 “최소한 정혜경 진보당 의원 안처럼 ‘타인에게 노무를 제공하는 점’을 증명하면 근로자로 추정하고, 이를 부정하기 위해서는 증명 책임을 사용자에게 지우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과 동시에 사용자 역시 ‘근로자의 근로조건 결정에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로 명확하게 못박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계는 6월12일 국제노동기구 총회에서 채택된 ‘플랫폼 경제에서 양질의 노동에 관한 협약’(제193호)부터 우선 비준할 것을 요구한다. 정양현 공공운수노조 정책국장은 “이 협약은 플랫폼 노동자의 고용상 지위와 관계없이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에 의한 노동 통제에 관한 노동자 권리를 명문화했다”며 “디지털 플랫폼 노동자에 대해서도 ‘고용상 지위와 관계없이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보수나 대가를 받고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정의했기 때문에 이 협약을 따르는 게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2025년 7월16일 열린 배달라이더 대행진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오토바이 운행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민주노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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