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집결지는 닫혔지만, 삶은 끝나지 않았다

60년 만에 폐쇄된 성매매 집결지, 흩어진 여성들에게 남은 생계·건강·낙인
등록 2026-07-09 17:03 수정 2026-07-12 06:19
google구글 선호 매체 등록
‘미아리 집결지’가 있던 서울 성북구 길음역 인근 모습. 한겨레 조해영 기자

‘미아리 집결지’가 있던 서울 성북구 길음역 인근 모습. 한겨레 조해영 기자


*부정확한 지명이지만 주민들 표현을 살려 하월곡동 성매매 집결지를 ‘미아리’로 줄여 적는다.

 

서울 지하철 4호선 길음역 10번 출구 인근. 하얀 공사장 가림막으로 둘러싸인 곳 안쪽에서 조은희(50대·이하 모두 가명)씨는 2025년 8월까지 일했고 살았다. 행정구역명인 하월곡동보다 ‘미아리 텍사스’라는 이름으로 더 자주 불렸던 성매매 집결지다. “잘 없어진 곳” 그리고 “가슴 아픈 곳”. 이곳을 지날 때마다 조씨는 두 생각 사이를 오간다.

2026년 3월26일, 미아리 텍사스가 완전히 폐쇄됐다. 1960년대 후반 형성된 지 약 60년 만이다. 집결지 완전 폐쇄를 기념해 ‘미성년자 출입금지 구역’이라고 적힌 가림막을 떼어내며 성북구청은 “상업·문화 인프라를 확충하고 주거환경 개선을 완성해갈 계획”이라고 했다. 업소와 사람이 빠져나간 자리는 재개발된다.

한겨레21은 2025년 1월 미아리 텍사스 주민들의 이주를 앞둔 불안과 고민(제1552호 참조)을 들었다. 집결지가 사라진 뒤 찾아올 생활고, 탈성매매 지원책에 대한 회의감이 전해졌다. 이주가 완료되고 일터이자 생활공간이었던 동네마저 사라진 2026년 7월, 미아리 여성들은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수십 년간 함부로 지나갈 수도 없었던 공간이 매끈한 새출발을 준비하는 사이, 미아리 사람들도 새로운 삶으로 향해야 했다. 한겨레는 신월곡1구역 이주대책위원회 활동가들이 꾸린 미아리 구술 아카이브팀과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전국연대)의 도움을 받아 이들에게 ‘미아리 이후’를 물었다. 흩어진 사람들 저마다의 삶은 미아리의 ‘반복’이기도, ‘변주’를 향한 몸부림이기도 했다.

 

미아리, 일터이자 삶터

 

조씨는 20대 초반부터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업소를 경험했다. 직업소개소를 통해 미아리에 온 것은 2019년. 첫인상은 나빴다. 조씨는 “처음 왔을 때 나온 첫마디가 ‘어머, 여기 병 걸리겠다’였다. 다른 곳은 (집결지 안에서도) 바깥 사람 다니는 길이 보였는데 미아리는 막혀 있고 통행도 안 되는 데라 ‘건강에 안 좋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고 했다. 감금·폭력과 관련한 악명도 높았다. 2010년대 초 미아리로 온 박송주(40대)씨도 “미아리는 무서워서 다른 지역 먼저 경험했다”고 말했다.

미아리가 집결지로서 모습을 갖춘 것은 1960년대 후반으로 알려졌다. 1968년 종로3가 일대 성매매 집결지가 철거되면서 미아리로 풍선효과가 나타났다. 조씨 인상처럼 미아리는 오래된 무허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은 구조로 안전에 취약했다. 지하철 출구 앞이라 청소년 보호 등을 이유로 밖에서 안을 볼 수 없게 가려져 있었다. 2005년 한 업소에서 불이 나 여성 5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쳤다. 당시에도 합판으로 막힌 창문, 쇠창살이 달린 미닫이문 등이 피해를 키웠다.

그래도 영업은 활황이었다. 2000년 전후 미아리 집결지에는 업소만 300여 개, 여성은 3천 명 넘게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90년대 초 미아리에서 ‘마담’으로 일을 시작한 채옥자(70대)씨는 “그야말로 손님이 바글바글했다”고 했다. ‘아가씨’들은 오후 4~5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저녁 6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꼬박 12시간 일했다. 눈을 뜨면 직장이었고, 씻고 누우면 집이었다. 조씨는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생활이었다고 기억했다.

 

서울 성북구 신월곡1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 구역의 2023년 모습. 성북구청 제공

서울 성북구 신월곡1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 구역의 2023년 모습. 성북구청 제공


반복, 다시 업소로 향하는 발길

 

서울 노원, 경기 의정부, 강원 원주와 속초…. 미아리 여성들은 이웃들이 어디로 떠났는지 줄줄 읊었다. 드물게 집결지가 남아 있거나 다방 등 형태로 성매매가 이뤄지는 업소들이 모인 지역이다. 미아리 철거 전에도 여성들은 이미 성매매 집결지를 떠나고 돌아오길 반복했다. 박씨도 한때 일을 그만뒀지만 생활비 부담과 아버지 병원비 때문에 돈을 벌어야 해 미아리로 돌아왔다. 조씨는 코로나19 감염 이후 건강이 나빠져 2년간 미아리를 떠났다가 돌아온 경험이 있다. 채씨도 지난 30여 년간 들고나길 반복했다. 1990년대 초 미아리에 들어온 채씨는 2010년께 인근 집결지 ‘청량리 588’로 넘어갔다. 청량리 집결지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2018년께 다시 미아리로 왔다. 미아리가 철거된 뒤로도 ‘업소’를 떠나지 못했다. 채씨는 미아리에서 데리고 있던 아가씨가 차린 업소가 있는 수유동으로 출근한다.

이들이 떠난 발길을 되돌려 같은 일을 반복하는 배경에는 당장의 생계와 한정적인 사회 경험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정도희(50대)씨는 1990년대 중반부터 미아리에서 일했다. 재개발이 본격화되자 “퇴직금이 있는 것도 아닌” 생활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미아리를 나와 식당 일을 ‘시도’했다. 정씨는 “바깥일을 시도했으나 키오스크 같은 새로운 노동 방식이 낯설고 버거웠다”고 했다. 집결지 안에서 긴 세월을 보낸 그에게는 하다못해 “교통수단에 적응하는 것도 큰 장벽”이었다.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로 건강을 잃어 노동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목과 허리에 디스크가 있어 병원 주사를 맞아야 한다. 체력이 받쳐주지 않아 원래도 출근이 어려웠고 다른 일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막막하다”(강성미·40대), “다리가 아파서 육체노동은 어렵다”(유수정·50대). 이들의 이야기를 채록한 구술 아카이브팀의 용기 활동가는 “심지어 미아리가 폐쇄된 뒤 이를 다 뽑아서 말을 하지 못하는 분도 있다”고 전했다.

건강 문제는 신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청량리에서 알게 된 ‘언니’의 집에 얹혀산다는 채씨는 “아파트에서 밖을 내려다보면 순간적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며 “내가 밖을 못 내려다보게 하려고 집주인 언니가 커튼을 항상 쳐놓는다”고 말했다.

 

2026년 3월26일 서울 성북구 신월곡1구역 철거현장 점검 및 사업설명회에서 이승로 성북구청장과 주민대표들이 ‘미성년자 출입금지 구역’ 가림막을 내리고 있다. 성북구청 제공

2026년 3월26일 서울 성북구 신월곡1구역 철거현장 점검 및 사업설명회에서 이승로 성북구청장과 주민대표들이 ‘미성년자 출입금지 구역’ 가림막을 내리고 있다. 성북구청 제공


변주, 낙인 속에서 배우는 삶

 

2025년 말 온라인에서는 자신을 성매매 여성으로 소개하며, 구청으로부터 한 달에 500만~600만원의 성매매 피해자 지원금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게시글이 확산했다. 이를 두고 곧장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마땅한’ 성매매 여성에게 ‘막대한 세금을 퍼주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논란이 커지자 전국연대는 “지원금은 모든 성매매 여성에게 보편적으로 지급되는 제도가 아니라 집결지 폐쇄 과정에서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특별 지원”이라며 “전국적으로 보더라도 월 100만원을 초과하는 지원금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해당 글이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성북구청은 2025년 10월부터 자체 예산을 투입해 ‘자활 의지가 있는 집결지 여성’에게 직업훈련비와 자활지원비를 지급하고 있다. 7월2일 기준 구청 지원을 받는 여성은 모두 16명(신청 19명, 대상 부적합 1명, 자진포기 2명)이다. 서울 종암경찰서가 2025년 10월 마지막으로 추정한 집결지 규모(업소 50곳·여성 58명)에 견주면 많지 않다. 익숙한 밥벌이 수단을 내려놓고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결심을 증명하는 일이 간단치 않다고 여성들은 입을 모은다. “당장 일을 그만두고 교육을 받으라는 식이 아니라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는 실질적 지원이 필요하다”(박송주), “다른 일을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고 주변도 모두 비슷한 일과 연결돼 있어 ‘제자리걸음’이었다”(강성미).

조씨는 드물게 새로운 가능성을 시도하는 사람이다. 그 역시 2025년 8월 일을 그만둔 뒤 3~4개월은 홀로 은둔하다시피 했다. 집 안에 틀어박혀 우울감에 빠져들던 조씨를 마지막에 근무했던 업소 동료가 ‘자활센터에 나와보라’고 설득했다. 결심은 쉽지 않았다. 조씨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대화는 어떻게 하는지 그런 것도 모르니까 겁이 났다. 엄두가 안 났다”고 말했다. 먹고살 걱정도 컸다. 조씨는 “일단 무조건 절약해야 한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자활센터에서 반년을 보내고, 조씨는 홀로서기를 꿈꾸고 있다. “여기서 자격증 따서 간호조무사가 되신 분들도 있어요. 그걸 눈으로 보니까 ‘나도 할 수 있겠다’고 마음이 정해지더라고요.”

 

기억, 여기에도 사람이 살았다

 

조씨에게 미아리의 의미는 다층적이다. 이곳을 지날 때면 “솔직한 말로 잘 없어졌다고 생각”하지만, 곱씹어보면 “한때는 내 생활공간이었던 곳, 어떻게 보면 가슴 아픈 곳”이다. 조씨는 “미아리를 생각하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게 있다. 그런 취급을 받아가면서 일하고 못 벗어난다는 자체가 참…. 사람들은 ‘원해서 한 거잖아’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며 “나쁜 기억만 있는 곳이지만 가슴 아픈 곳, 그리고 잘 없어진 곳이 미아리”라고 말했다.

집결지 폐쇄를 앞두고 이주대책위에 소속돼 주거대책 마련과 이주보상금 지급을 요구하며 농성했던 이들에게 미아리는 투쟁 현장의 기억으로도 남았다.(제1552호 참조) 성매매 여성에게 따라붙는 손가락질과 꼬리표를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거리로 나온 그들을 따뜻한 모습으로 맞아준 사람들이 있었다. 정씨는 “벌레 보듯 여겨질 줄 알았는데 함께 서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성매매 여성도) 사람으로 동등하게 대우받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재개발이 끝난 뒤 미아리에는 최고 46층 높이의 아파트 2200여 가구와 상업시설, 주차장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구술 아카이브팀 활동가들은 “이런 곳이 있었다. 여기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유수정)는 사실을 사회가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용기 활동가는 “성매매를 지나온 삶도 사회의 일부였고, 그 삶들이 불편하고 복잡하더라도 사회가 이를 외면하거나 지워도 되는 건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안해성 활동가는 “집결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밀려난 이들이 모였던 곳”이라며 “이곳에 이런 사람들이 있었음을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겨레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

한겨레 저널리즘
응원으로 지켜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