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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성소수자 장학사업 ‘크리스 킴 스칼라십’에서 만난 하늘·은돌·마루의 생존과 꿈
등록 2026-06-13 09:38 수정 2026-06-15 14:42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이 2026년 5월30일 서울 은평구 인권재단 사람에서 연 ‘크리스 킴 스칼라십’ 장학증서 수여식에서 한 장학생이 증서를 받고 있다. 띵동 제공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이 2026년 5월30일 서울 은평구 인권재단 사람에서 연 ‘크리스 킴 스칼라십’ 장학증서 수여식에서 한 장학생이 증서를 받고 있다. 띵동 제공


‘위 사람은 스스로 자립의 길을 걸으며 꿈을 향한 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시간 속에서 만난 심리상담을 통해 자기 자신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공간의 의미를 깨닫고, 성소수자 청소년 곁에 서는 심리상담사를 꿈꾸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응원과 지지의 마음을 담아 장학증서와 장학금을 전합니다.’

하늘(19)에게 이 장학금은 특별했다. 신청서에 속이야기를 써도 안전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낼 수 있었다. 세상이 기대하는 정체성을 연기할 필요가 없었다.

“다른 장학금 수여식은 수상 소감을 따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고 여태까지 제가 살아온 삶을 묻지 않았어요. 그런데 여기 오니까 제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퀴어 한분 한분의 수상 소감을 들을 수 있었어요. ‘장학생’이 아니라 ‘사람’으로 우리를 존중하고, 우리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신다는 느낌을 받아서 특히 좋았던 것 같아요.”

“상처받은 이들의 버팀목 될래요”

2026년 5월30일 서울 은평구 인권재단 사람에서 뜻깊은 시상식이 열렸다.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이 마련한 자리다. 벽에 걸린 하늘색 펼침막에는 ‘크리스 킴 스칼라십' 글자가 적혀 있었다. 2024년 시작해 2026년으로 3회째를 맞는 청소년 성소수자 장학지원사업이다. 청소년 성소수자가 학업을 이어가거나 진로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성별정체성, 성적지향 때문에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면 하는 기부자 김아무개씨의 바람에서 싹텄다.(제1570호 참조)

장학생은 물론 띵동 활동가, 심사위원, 그리고 장학생을 축하하러 온 친구 또는 연인들이 수여식 객석을 가득 채웠다. 하늘이 단상에 올라 장학증서와 꽃다발을 품에 안을 때 객석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하늘은 바닥에 내려놓은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미리 준비한 소감문을 읽어 내려갔다.

“9년 전 이맘때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 다 놓아버리고 싶던 날이 그 하루만은 아니었습니다. 수없이 반복되는 폭언 속에서 보낸 매일이, 중학교 때 친구에게 커밍아웃했다가 사이버폭력에 시달리며 불안을 가득 안고 살던 매일이 꼭 그런 날이었습니다.”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이 2026년 5월30일 서울 은평구 인권재단 사람에서 연 ‘크리스 킴 스칼라십’ 장학증서 수여식에서 한 장학생이 증서와 꽃다발을 받고 있다. 띵동 제공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이 2026년 5월30일 서울 은평구 인권재단 사람에서 연 ‘크리스 킴 스칼라십’ 장학증서 수여식에서 한 장학생이 증서와 꽃다발을 받고 있다. 띵동 제공


어릴 적 하늘에겐 마음 편할 곳이 없었다. 하늘이 10살 때 시작된 보호자의 폭언과 폭행 등 학대는 갈수록 심해졌다. 친했던 중학교 친구는 하늘이 믿고 털어놓은 이야기를 소셜미디어에 퍼뜨렸다. 사이버폭력은 학교에서의 괴롭힘으로 이어졌다. 양성애자라는 사실이 퍼지면서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비난을 들었다.

“학교에서 내내 싸늘한 눈초리를 받고, (학생들이) 저를 보며 수군거리고, 모둠 활동을 할 때 저를 끼우기 싫어하고 그랬어요.”

행복보다 불행이 많았던 그때, 닫혀 있던 하늘의 미래를 열어준 사람이 있었다. “중학교 때 처음 만난 심리상담 선생님이 한 분 계세요. 안전하지 않은 집에서 늘 불안에 떨던 저를, 미래에 대한 계획도 전혀 없던 저를 열심히 상담해주신 분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제가 어떤 걸 할 때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제가 무엇을 하면 행복할 수 있는지를 계속 물으며 제가 자신을 긍정할 수 있게 도와주셨어요. 제 정체성도 포용해주셨고요. 저한테 엄청 좋은 영향을 주신 분이에요.”

친할머니도 삶의 버팀목이었다. “가족 중에 저를 사랑으로 보듬은 분은 할머니뿐이에요. 저를 온전히 인정하고 받아들여주셨어요. ‘네가 여자도 사랑한다는 이유로 핍박받는다면 그게 하나님이 좋아하실 일이겠냐. 내가 널 사랑하는 만큼 하나님도 너를 사랑하신다’고 늘 말씀하셨어요.”

하늘은 고교 때 학대 가정에서 탈출해 현재 자립하고 있다. 그 덕분에 나빴던 정신건강은 많이 개선됐다. 대학 심리학과에 진학하기 위해 수능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어린 날 저처럼 안정적 지지 없이 홀로 그 많은 차별과 부정을 견뎌내고 있을 친구들에게, 스스로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게 돕는 심리상담사가 되고 싶습니다.” 하늘이 전한 수상 소감이다.

못 탄 놀이기구가 있으니까

심리상담사, 의료인(의사·간호사), 데이터 분석 전문가, 교수, 반도체 분야 인재, 자동차 디자이너…. 장학생 9명의 꿈과 목표는 다채로웠다. 트랜스남성인 은돌(23)은 공익변호사가 되고 싶다.

‘위 사람은 청소년 시절 직접 마주한 위기 속에서 성소수자 청소년의 곁에 서는 공익변호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습니다. 청소년,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 등 복합적인 차별과 폭력에 노출된 이들을 위해 스스로 법의 공백을 채우는 전문가가 되겠다는 다짐을 밝혀준 은돌님께, 응원과 지지의 마음을 담아 장학증서와 장학금을 전합니다.’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이 2026년 5월30일 서울 은평구 인권재단 사람에서 연 ‘크리스 킴 스칼라십’ 장학증서 수여식에서 증서와 꽃다발을 받은 장학생이 다른 장학생의 수상 소감을 듣고 있다. 띵동 제공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이 2026년 5월30일 서울 은평구 인권재단 사람에서 연 ‘크리스 킴 스칼라십’ 장학증서 수여식에서 증서와 꽃다발을 받은 장학생이 다른 장학생의 수상 소감을 듣고 있다. 띵동 제공


은돌에게 청소년기는 공포 그 자체였다. 하늘처럼 초등학생 때부터 가정폭력에 시달렸다. 중학교 때는 같은 반 동급생한테 불법촬영과 촬영물을 이용한 협박 피해를 입었다. 디스포리아(출생시 지정성별과 스스로 정체화한 성별의 불일치로 트랜스젠더 당사자가 겪는 불쾌감, 위화감, 또는 그로 인한 고통)까지 겹쳐 은돌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몸에 상처가 하나씩 늘어갔다.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다고 힘겹게 털어놨을 때 중3 담임교사가 한 폭언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나가 죽어. 못 죽을 것 같으면 말도 꺼내지 마. 자꾸 미친 짓 하면 내 반에 안 둘 거야.”

그런 은돌에게 탈학교와 탈가정은 불가피했다. “기댈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의지하고 믿을 수 있는 어른도 없고. (그런) 선생님도 없고, 부모도 없고, 친구도 없고…. 고등학생 때 부모한테 말했어요. ‘여기서 더 못 살겠다. 학교도 못 다니겠다’고. 그러고 자퇴했어요. 제 정체성을 눈치채고 있던 부모님은 저한테 ‘(우리 집엔) 지옥 가는 딸 못 둔다’고 하시면서 ‘짐 싸서 나가’라고 했어요. 그렇게 집에서 쫓겨났죠.”

모아놓은 돈도 없고, 갈 곳도 없었다. 먹고살기 위해 식당에서 일했다. 음식물 쓰레기에서 일반쓰레기를 맨손으로 분류하는 작업을 했다. 손이 성할 날이 없었다. 그런데도 임금은 한 푼도 못 받았다. 지인의 보증으로 머물 수 있었던 독서실에서는 몸을 ‘ㄴ’자로 굽혀서 자야 했다. 매일 바퀴벌레가 나왔다. 바깥세상도 똑같이 절망스러웠다. “그냥 ‘죽을래’ 이렇게 (생각)했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못 죽겠더라고요.” 은돌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게 너무 수치스러웠어요, 배고픈 게.”

그런 은돌이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손을 내민 어른이 나타났다.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상담사였다. 사귀는 여자친구가 있다는 은돌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고, 바리스타 교육 등 여러 교육 기회를 제공해 은돌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을 실어줬다. 놀이공원에도 데려갔다. “나중에 여기 또 와서 오늘 못 탄 놀이기구를 마저 타려면 살아야겠지?” 선생님의 이 말은 은돌의 가슴을 울렸다.

지금 은돌은 혼자가 아니다. 상담사 선생님뿐만 아니라, 요리하는 법부터 꿈을 가질 수 있다는 것까지 알려준 친누나, 정체성에 자긍심을 갖도록 해준 대학 동아리 친구들, 매달 안부를 묻고 곁을 지킨 띵동 활동가들까지. “이제 돌아보면 ‘삶’이라고 부를 만한 시간들로 채워진 것 같아요.”

아우팅의 공포

은돌 다음에 장학증서를 받은 사람은 마루(22)다.

‘위 사람은 학교 안에서 홀로 감내해야 했던 불편함과 불안함을 기억하며 성소수자 후배들 곁에 서는 교수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습니다. 목소리에 대한 불안함이 꿈을 가로막지 않도록 트레이닝을 계획하며 강단을 향한 걸음을 내딛고 있는 마루님께, 응원과 지지의 마음을 담아 장학증서와 장학금을 전합니다.’

다음은 마루가 수상 소감에서 한 말이다.

“돌아보면 저는 지금처럼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도 못했던 미성년자 청소년 시절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 성별정정을 하지 못한 상태임에도 지금처럼 대학 학우와 교수들 사이에서 남성으로 대우받고 생활하는 삶을 살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땐 마루가 다양한 정체성을 인정하는 포용적인 학교에 다닌다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기자 “수상 소감 때 하셨던 말씀이 학우들과 교수들이 마루님의 정체성을 존중하고 있다는 뜻인가요, 아니면 마루님이 옷차림에 주의하거나 목소리, 태도를 조절하는 등의 ‘패싱’(어떤 사람을 특정 집단 구성원으로 여기게끔 외양과 행동을 위장) 노력으로 학우와 교수 사이에서 남성으로 대우받고 생활한다는 뜻인가요?”

마루 “‘패싱’이라고 보면 돼요. 솔직히 전자는, 한국 사회에서 거의 불가능하죠.”

트랜스 남성 마루에게 지금 다니는 대학은 살얼음판이다. 아우팅(타인에 의해 성별정체성 또는 성적지향이 강제로 알려지는 일)은 그에게 학업 중단의 위기이자 ‘사회적 죽음’이다. 현재 그의 꿈을 학우들과 교수들이 응원하지만,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사회 안에서 그들의 지지가 언제 철회될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마루는 꿈을 손에서 놓지 않기로 했다. 공부도 공부지만, 어릴 적에 남성처럼 낮고 굵은 목소리를 내려고 후두(목 중앙부에 있는 기관)를 계속 눌렀던 습관 때문에 장시간 발화하면 목이 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26년 5월30일 서울 은평구 인권재단 사람에 ‘크리스 킴 스칼라십’ 장학증서 수여식 펼침막이 걸려 있다.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 제공

2026년 5월30일 서울 은평구 인권재단 사람에 ‘크리스 킴 스칼라십’ 장학증서 수여식 펼침막이 걸려 있다.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 제공


사회의 한 퍼즐로

그런 마루에게 다른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를 물었다.

“중고교 때까지만 해도 ‘내가 과연 어른이 될 수 있을까?’ 확신을 갖지 못했어요. 하지만 저는 그 과정을 어찌어찌 통과해서, 지금 불완전하게나마 사회를 구성하는 한 퍼즐로서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해요. 디스포리아라는 고통이 매우 크겠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부디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비록 지금 제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긴 하지만, 제가 살아갈 수 있는 여러 경우의 수 중에 그래도 최선에 가까운 경우의 수를 살고 있지 않나 싶어요. 원하는 공부를 하고 있고, 남성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오늘도 퀴어는 꿈을 꾼다. 당신 곁에서.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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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꿈을 응원합니다”…청소년 성소수자에게 전달된 ‘씨앗’>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7577.html
<꿈은 평등하다, 정체성이 어떻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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