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1월6일 지혜복 교사가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재판부의 공정한 판결을 촉구하고 있다. A학교 성폭력사안·교과운영 부조리 공익제보교사 부당전보철회 공대위 제공
“재판장님, 호소드립니다. 제가 A학교로 돌아가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2023년 신고했던 피해 학생들이 지금은 고등학교로 진학했지만, 이 일을 언급조차 하기 어려울 만큼 두려움과 무기력에 여전히 시달리고 있습니다. 제가 A학교로 돌아간다면, (학생들이) 자신들의 행동이 옳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앞으로는 성폭력에 저항하는 용기를 잃지 않으며 두려움 없이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또한 앞으로는 성폭력 해결에 나서는 교사들이 저와 같은 고통스러운 상황을 겪지 않고 온전히 보호받기를 바랍니다.”
2025년 11월13일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지하 2층 B219호. 원고석에 앉은 지혜복 교사가 편지를 또박또박 읽었다. 말하는 도중 울음이 섞였지만 한 글자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이날 지 교사는 ‘부당전보 취소 청구’ 소송의 결심공판에서 최후진술을 했다. 그를 응원하는 시민들이 법정 안을 가득 메웠다. 재판이 끝나자 그들 중 한 사람이 중얼거렸다. “지혜복이 옳다.” 그러자 다른 이들이 큰 소리로 맞받았다. “지혜복이 옳다! 지혜복을 A학교로!”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공론화를 꺼리는 이유로 사건 처리 과정의 2차 가해를 든다. 공동체를 믿고 용기 내어 말을 꺼냈다가 도리어 2차 피해를 당하고 조력자까지 피해를 입는다. A학교도 마찬가지였다. 학교의 독단적 조사 과정에서 피해 학생의 신원이 노출됐고 이를 돕던 지 교사도 가해 학생들에게 괴롭힘 당한 뒤 강제 전보됐다. 그러나 적대적이었던 학교로 지 교사는 돌아가려 한다. 그 길이 자신과 학생들의 성폭력 고발이 옳았음을 입증하는 길이라 생각해서다.
2023년 5월, A학교 상담부장교사로 일한 지 교사는 여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다 운동부 학생들의 성폭력 사실을 알게 됐다. 남학교에서 남녀공학으로 바뀐 A학교는 남녀 학생 비율이 8 대 2였다. 여학생 수가 적다보니 “남녀 의견이 다르면 남학생 의견이 주로 받아들여지곤 했다”.(서울시교육청 인권보호관 이행점검 결과보고) 그런 상황에서 성폭력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여학생들에게 ‘못생겼으니 얼굴을 가리라’ ‘(귀에 대고) 섹스하고 싶다’며 성희롱하거나 뒤에서 껴안는 강제추행이 만연했다. 익명 설문조사를 했더니 여학생 3분의 2가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구체적 피해를 호소한 학생 6명이 가해자 8명을 서울시교육청에 신고했다.
A학교는 직접 조사하겠다고 나섰다. 지 교사가 ‘2차 가해가 우려되니 시교육청에 조사를 맡기라’고 설득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 신원이 노출됐다. 생활인성지도부장을 맡은 교사가 피해 학생들의 반으로 직접 찾아가고 교무실로도 불렀다. 가해 학생들은 ‘인성지도부장한테서 네 이름을 들었다’며 피해자들을 위협했다.
학교의 대처는 2차가해의 신호탄과 같았다. “학교가 ‘너희는 별로 잘못한 게 없는데 피해 학생들이 예민하다'는 뉘앙스를 가해 학생들에게 줘 대립이 극단으로 치달았습니다. 남학생들은 잠재적 가해자 취급을 받은 듯 상처를 받았고, 집단으로 행동했습니다. 일부는 커터칼을 드르륵대며 ‘내 얘기 한 사람 누구냐’고 추궁했고 한 학생은 전교생 앞에서 지혜복 선생님을 향해 ‘네가 선생이야’라고 소리 지르기도 했습니다.”(2025년 2월26일 학부모 기자회견)
가해 학생들은 피해자들을 저격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을 올리거나 몰려다니며 의자를 발로 찼다. 해결될 기미가 없자 2023년 6월, 지 교사가 시교육청에 학생인권침해 구제신청을 했다. 교내에 2차 가해가 만연하니 조처해달라는 요구였다. 사안을 조사한 시교육청 인권옹호관 은 2023년 12월 ‘신고 학생들이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결론 내렸다. 시교육청 권고문엔 △학교의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 신원을 유출한 개연성이 있고 △피해자들에게 ‘직접 경험한 사실만 쓰라’며 진술서를 다시 쓰게 했으며 △그중 5명의 진술을 최초 신고에서 제외했다고 적혀 있 다. A학교는 성폭력 사안의 은폐·축소로 2024년 6월 기관경고 처분도 받았다.
지 교사는 감춰질 뻔했던 교내 성폭력을 드러내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곧 학교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다. A학교가 학생 수 감소로 교사 2명을 감축해야 한다며 지 교사를 지목한 것이다. 당시 A학교는 인원 감축 때 ‘희망자 없을 시 발령일자 순(선입선출)’으로 한다는 기준을 2023년 12월 만들었는데, 그 기준에 지 교사가 부합한다는 거였다.
공립학교 교사들은 5년에 한 번씩 학교를 옮기는 ‘정기전보’를 한다. 그런데 최근 교육부의 교사 감축으로 ‘비정기전보’가 크게 늘었다. 5년을 채우지 않은 교사들도 학교가 인원 감축을 이유로 내보내는 것이다. 학교마다 비정기전보 선정 기준이 다 다르거나 아예 없어, 눈치싸움 끝에 수업 시수가 적은 교사가 울며 겨자 먹기로 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 교사처럼 교내에서 문제 제기한 사람도 감축 대상에 오르곤 했다.
지 교사가 ‘선입선출’ 원칙에 반대하자 A학교는 회의를 열었다. 회의는 사실상 정해진 결론처럼 흘러갔다고 한다.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처음에는 받아들이려고도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내가 왜 쫓겨나야 하나’ 싶더라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성폭력 문제 제기밖에는 이유가 없어요. 내가 먼저 학생을 떠나는 것처럼 되는 건 안 되겠다, 이렇게 교사를 ‘퍼내는’ 방식의 전보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했죠.”
A학교와 시교육청은 교사들과 숙의 끝에 기준을 만들고 대상을 정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그 기준에 반대하는 지 교사의 의사는 끝내 반영되지 않았다. 지 교사는 정년이 2년 남아 시교육청 인사원칙상 본인이 원하면 마지막 학교에 잔류할 수 있었다. 지 교사는 전보 반대 의사를 교내 메신저로 밝히고 전보 서류 작성도 거부했다. 자신이 떠나면 A학교 역사과 교사는 3명으로 유지되는 반면 사회과 교사는 2명에서 1명으로 줄어 과목 간 불균형이 더 커진다고도 주장했다. 그러나 A학교 쪽은 비어 있는 서류에 지 교사 이름을 써서 제출했다.
눈에 띄는 것은 시교육청의 대처다. 2023년 12월 교육청 소속 학교인권옹호관은 조사를 거쳐 지 교사의 문제 제기를 인정했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교육청 하급 행정기관인 중부교육지원청은 지 교사를 다른 학교로 전보 보냈다. 성폭력 문제 제기는 인정하면서 문제 제기의 당사자를 보호하는 덴 무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시교육청은 “학교폭력을 인지한 교사가 이를 신고하는 것은 법상 당연한 의무”라고 밝혔다. 법상 당연한 의무니까 따로 보호할 가치가 없다는 취지다. 중부교육청 관계자는 “인권옹호관 조사 결과는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다만 성폭력 문제 제기와 전보 인사는 별개로 진행했다”고 밝혔다.
시교육청은 사태 초반부터 ‘성폭력 문제 제기와 전보는 별개’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교원소청심사위원회도 시교육청 입장을 받아들여 지 교사의 전보 취소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두 조처를 별개로 보지 않았다. 2024년 3월 인권옹호관과 만난 학생 몇몇은 “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가신 것은 좀 아닌 것 같다” “다른 선생님이 아니라 도와주신 선생님이 가시게 되었다. 아쉽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시교육청은 A학교 입장도 그대로 인용했다. ‘A학교가 교육청 권고를 다 이행했다’거나 ‘2차 가해가 확인되지 않았고 피해 학생들이 문제없이 잘 다닌다’고 2024년 4월 보도자료에 적었다. 그러나 당시 A학교의 이행 내용은 권고 취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피해 학생들 회복 프로그램 실시’는 ‘피해 학생들이 희망하지 않음’으로 답했고 ‘학교 관리자의 사과 및 재발 방지 입장 표명’ 권고는 ‘피해 학생 및 학부모 소통 실시’로 갈음했다. 그 결과 피해자 부모들이 2024년 4월 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아직도 교내 성폭력 피해가 만연하다”고 비판했다.

A학교 성폭력을 문제 제기한 지혜복(맨 오른쪽) 교사가 2025년 11월13일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결심공판을 마치고 연대 시민들과 이야기 나누고 있다. 스승의 날에 삭발한 머리는 다시 자랐지만 복직은 여전히 멀다. 신다은 기자
2024년 2월 지 교사는 출근을 거부하고 피켓 시위를 시작했다. 지 교사와 연대하는 시민단체도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를 꾸렸다. 그러자 시교육청은 방어에 나섰다. ‘지 교사의 민원에 신원 유출의 구체적 증거가 없었으므로 지 교사는 공익신고자가 아니다’라고 답변한 것이다. 시교육청은 지 교사의 출근 거부를 무단결근으로 규정하고 2024년 9월 해임 처분했다.
공익신고자보호법을 보면 증거를 제출해야만 공익신고자로 인정된다는 규정은 없다. 지 교사를 대리하는 류하경 변호사는 “공익신고는 법상 공익침해행위가 발생할 ‘우려’가 있으면 하는 것”이라며 “교육청 논리대로면 수사기관 외에는 공익신고를 할 수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지 교사와 연대하는 변호사 77명도 교육청 논리에 반박하는 법률 의견서에 이름을 올렸다.
공대위는 시교육청의 강경 노선이 조희연 전 교육감의 재판과 관련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조 전 교육감이 해직교사 5명을 특별채용한 행위(직권남용)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었는데, 지 교사 건이 재판에 부담이 되리라고 우려했다는 얘기다. “지 교사를 공익신고자로 인정하면 교육감이 중부교육청의 인사를 부정하는 셈이니까 재판에 불리해진다는 판단이 있었죠. 시교육청이 처음엔 ‘공익신고자가 맞는지 외부에 법리검토를 받겠다'고 약속했는데 나중에 그 약속을 뒤집었거든요. 이유를 물으니 시교육청 관계자가 ‘교육감님 지켜드리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백종성 공동집행위원장이 말했다. 이에 대해 시교육청 쪽은 “교육행정의 타당성을 외부에 자문 받는 것은 맞지 않다고 봐 철회한 것”이라고 밝혔다.
양쪽의 공방은 2026년 1월29일 법원의 첫 판단을 받는다. 그러나 이미 600일 넘게 사태를 끌고 온 것 자체가 폭력이라고 김정덕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지적했다. “학생 인권을 보호하려 한 교사를 이렇게 내치는 걸 보는 학생과 교사들 마음이 어떻겠어요? 이제는 피해 학생들이 말하는 것조차 힘들어하는데, 앞으로 누가 이런 상황을 해결하려 하겠어요?”
지 교사의 싸움은 성폭력 피해자와 조력자의 보호받을 권리가 끊임없이 부정당하는 현실을 드러냈다. “함께 연대하는 분 중에 학교 내 성폭력 경험이 없는 분이 드물 정도로 학생 인권은 일상적으로 침해되고 있어요. 그런 점에서 지혜복 선생님은 아동·청소년의 입을 막지 않고 어떻게든 말하도록 애쓴 사람이죠. 그래서 이분이 거리 투쟁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간다는 건 ‘학생들이 옳다’고, ‘네가 말한 건 잘한 일이었다’고 말해주는 거예요.” 김정덕 활동가가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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