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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재산분할’ 발목 잡은 ‘비자금’

‘노 관장에 1조3800억원 재산분할’ 2심 판결 파기
등록 2025-10-16 21:16 수정 2025-10-17 16:29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왼쪽)과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 연합뉴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왼쪽)과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 연합뉴스


비자금의 불법성이 1조원대 재산분할을 붙잡았다. 대법원이 8년3개월 동안 이어진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에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1조3800억원을 재산분할하라’는 2심 판결을 2025년 10월16일 파기했다.

대법원은 ‘노태우 비자금 300억원’이 SK그룹 성장에 실질적인 종잣돈 구실을 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불법 뇌물로 조성된 자금인 만큼 재산분할 기여도는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앞서 서울고법은 노태우 비자금이 SK그룹 성장에 기여했음을 인정하며 최 회장의 총재산 4조원 가운데 35%에 해당하는 1조3800억원을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금으로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노 전 대통령이 재직 중 수령한 뇌물을 제공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선량한 풍속과 사회질서에 반하는 불법 자금”이라며 “해당 자금이 SK의 재산 형성과 가치 증가에 기여했다고 하더라도, 민법상 재산분할의 기여 요소로 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민법 제746조는 ‘불법적인 자금은 재산분할에서 제외한다’고 규정한다.

또한 대법원은 혼인이 사실상 파탄 난 2017년 이전에 증여 또는 처분한 재산 역시 사실심 종결일에는 이미 존재하지 않게 된 재산이므로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혼인 파탄 책임으로 최 회장이 지급하도록 한 위자료 20억원만 그대로 인정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불법 자금의 경우 경제적 기여가 인정되더라도 출처의 위법성 때문에 재산분할 등 법적 판단에선 배제돼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사례다. 노 관장 입장에서는 아버지의 돈이 SK그룹 성장 과정에 분명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인정받았으면서도, 출처의 오점으로 인해 유리한 판단을 받지 못한 게 된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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