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600일간 고공농성을 이어갔던 박정혜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수석부지회장이 2025년 7월29일 경북 구미시 한국옵티컬하이테크 공장 옥상에서 농성을 마치고 땅으로 내려와 지인들과 포옹하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습관처럼 옥상을 올려다보곤 ‘저 위에 아무도 없네’ 해요. 몇 시까지 장 봐서 밥 올려야 한다, 밖이 더운데 구름은 언제 오나 살필 일도 더는 없고요. 고공농성하던 옥상도 한 번 올라가봤는데 확실히 덥고 좁더라고요. 다행이죠, 이제 더 이상 옥상에 사람이 없다는 게.”
불탄 공장 위로 노을이 졌다. 박정혜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이하 노조) 수석부지회장이 고공농성을 해제하고 옥상에서 내려온 뒤였다. 노조와 연대하는 시민 김민지(32)씨는 옥상을 바라봤다. 늘 삐쭉 솟아 있던 텐트가 없었다. 그제야 안도감이 찾아왔다.

박정혜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수석부지회장이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는 600일 고공농성을 마치고 내려온 2025년 8월29일, ‘닛토’라고 적힌 글자 뒤에 있던 농성장이 사라지고 없다. 김민지씨 제공.
600일. 한 노동자가 외국투자기업(이하 외투기업)의 고용 ‘먹튀’에 맞서 고공농성한 기간이다. 박 부지회장은 2025년 8월29일 오후 3시50분7초, 600일 만에 땅에 발을 내디뎠다(관련기사☞[현장] 600일 만에 땅 딛은 박정혜 “두 다리로 내려온 것, 연대 덕분”). 노조 조합원들이 ‘이제부터 꽃길만 걷자’며 신겨준 새 검정 신발로 내디딘 걸음이다.
옥상에서 두 번 여름과 겨울을 날 때까지 기업과 국가권력은 그를 방치했다. 화려한 ‘케이’(K) 수식어에 가려진 한국 노동자의 적나라한 현실이다. 거기에 부끄러움을 느낀 시민들이 힘을 합쳐 국가의 빈틈을 메웠다. 연대의 힘으로 노동자는 살아서 내려왔고, 노조는 ‘옵티칼 고용승계 태스크포스(TF)’와 ‘외투기업 먹튀방지법’을 정부·여당으로부터 약속받았다. 한 노조의 복직 투쟁이 ‘외투기업 노동자를 대변하는 투쟁’으로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솔직히 초반에는 고공 올라간 것만으로 해결되리라 생각했거든요. 우리 기준엔 엄청난 선택이어서 조금만 버티면 되겠지 했는데 아니더라고요. 300일, 400일 다가오는 게 반갑지가 않고 ‘이게 기념할 일인가’라는 생각에 너무 힘들었어요. 그때마다 마음을 다잡아준 게 고공 동료들이었죠. 고공에서는 하고 싶어도 더 할 수 없는 물리적 한계가 있는데, 땅에 있는 우리라도 할 수 있는 만큼 해야겠다고 다잡은 것 같아요.” 이희은 조합원이 말했다.
노동자들의 싸움은 회사의 구조조정에서 시작됐다. 일본 닛토덴코그룹이 2004년 경북 구미에 세운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50년 토지 무상 임대와 각종 세제 혜택을 받았다. 고용 창출을 위한 혜택이었으나 회사는 2019~2020년 직원 500명 중 400여 명을 구조조정했다. 급기야 2022년 10월 불이 나자 그해 12월 기업 청산을 결정한 뒤 생산 물량만 경기도 평택 공장 ‘한국니토옵티칼’로 옮기고 노동자들은 내버려뒀다.
노조가 ‘고용승계하라’며 버티자, 회사는 노조 사무실에 물 공급을 끊고 조합원들 집에 손해배상 가압류를 걸고 공장을 철거하려 한밤중에 급습했다(관련기사☞해고하고 전세보증금 가압류… ‘노란봉투법’ 있었으면? ). 2024년 1월8일, 박 부지회장과 소현숙 조직부장이 갑작스레 옥상에 오른 것도 철거반처럼 보이는 이들을 본 까닭이었다. 절박한 마음에 부랴부랴 올랐는데 그길로 1년이 훌쩍 흘렀다. 소 조직부장은 476일째 되는 2025년 4월27일 건강 악화로 먼저 땅을 밟았다.

박정혜 부지부장과 소현숙 조직부장이 경북 구미의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옥상에서 발언하는 모습. 금속노조 제공
“버스 타고 내려오는데 600일이라는 숫자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더라고요. 저도 고공농성을 했지만 600일은 감히 상상이 안 가요. 세상에 좋은 걸 상상할 일도 많은데 이런 것들을 상상해야 하나. 이런 세상을 볼 때 오는 허망함, 비참함 이런 것들 때문에 굉장히 마음이 힘들더라고요.”
박 부지회장의 ‘고공 동료’였던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이 말했다. 그는 2025년 3월15일 원-하청 임금 교섭을 내걸고 서울 중구 한화오션 앞 폐회로텔레비전(CCTV) 관제탑 위에 올라 97일 동안 고공농성을 했다. 마침 같은 시기에 고진수 민주노총 세종호텔지부장과 박 부지회장도 해고자 복직 요구 고공농성을 하고 있어 셋이서 영상통화를 자주 했다. 그때 서로를 통해 본 한국 노동자의 현실이 두고두고 가슴에 남았다.
“사실 고공이 좋을 일이 없거든요. 제가 일부러 (영상통화를 걸어서) 농담도 하고 ‘뭐 했냐’ 묻기도 했지만, 고공의 일상은 ‘오늘로 며칠 됐다’의 반복이거든요. 그래서 영상통화를 하면 좋기도 했지만 힘들기도 했어요. 인간은 타인을 통해서 자신을 보잖아요. 그러니까 통화 말미에는 늘 ‘빨리 내려갑시다’, 이렇게 되는 거지.”

박정혜 부지회장이 600일 만에 고공농성을 해제한 2025년 8월29일, 김형수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고성·통영 조선하청 지회장(가운데)과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의 허지희 사무장(왼쪽 두번째)이 박 부지회장을 기다리고 있다. 김형수 지회장은 2025년 3월15일부터 서울 중구 한화오션 본사 앞 철탑에서 97일 동안 고공 농성을 했고, 허 사무장이 소속된 세종호텔지부의 고진수 지부장은 2025년 2월13일부터 현재까지 서울 중구 세종호텔 맞은편 지하차도 진입 차단시설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신다은 기자

김형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이 함께 고공농성할 당시 박정혜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수석부지회장 및 고진수 세종호텔지부장과 영상통화로 이야기 나누고 있다. 김형수 지회장 페이스북 갈무리
김 지회장은 2025년 6월19일 하청 노사 임금 타결로 먼저 땅을 밟았다. 그러나 박 부지회장은 600일이 되어서야 내려왔고 고 지부장은 현재도 고공농성 중이다. 그런 현실을 볼 때마다 김 지회장은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세상이 무자비하다고 생각하죠. 우리나라가 세계 몇 위권이니 국민소득이 높니 하지만 이런 걸 보면 그게 다 무슨 의미고 누구의 기여로 이룬 건가 싶어요. 구성원들이 사회적 신뢰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하면 굉장히 부정적이죠.”
‘무자비한’ 시간이었지만 굽이굽이 연대하는 손길도 만났다. 닛토덴코그룹이 노조 사무실 수도를 끊어버린 날, 조창수 민주노총 구미지부장이 지인의 허락을 받아 차로 40분 거리인 참외밭에서 농수를 끌어왔다. 마시는 물도 여러 시민단체의 후원으로 순식간에 채워졌다. 생수를 가득 실은 1.5t 트럭이 몇 번이고 사무실을 드나들었다.
‘노조 선배’들도 물심양면 도왔다. 노조 활동으로 탄압당한 경험이 있는 구미 케이이씨(KEC)지회와 아사히글라스지회 노동자들이 옵티칼 노조 사무실에 상주하며 밥을 해 먹이고 조합원들을 북돋웠다. 경남 통영에서 식당 하는 ‘우리밥연대’ 김주휘씨가 반찬을, 충북 청주의 약사들이 약을 보내왔다. 대구의 예술가들이 고공을 응원하는 그림을 보내왔고, 종교인들의 기도회도 이어졌다. 서울과 평택, 일본 등 곳곳에서 시민들이 소식을 듣고 찾아와 힘을 보탰다.
2024년 12월 탄핵 광장이 열린 뒤부턴 이른바 ‘말벌 동지’라는 2030 여성 연대 시민들도 농성장을 찾았다. 휴일마다 기차 타고 와 식사·숙직 당번을 서고 명절이면 농성장에 올려보낼 만두를 빚었다. 2025년 1월, 영하 11도의 혹한에도 농성자를 응원한다며 찾아온 500명 연대 시민의 ‘희망텐트’가 공장을 가득 메웠다.

2025년 1월10일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 앞에서 연대 시민들이 텐트를 치고 노숙하며 복직 투쟁을 응원하고 있다. 금속노조 제공
시민들과 노동운동이 연결되는 건 서로에게 귀한 경험이었다.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농성장에서 연대 시민들과 영화를 보고 토론하던 시간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 ‘미싱 타는 여자들’ 영화를 함께 보면서 ‘고공농성은 어느 날 갑자기 올라간 게 아니라 이런 부당한 일들의 축적’이라는 얘길 나눴어요. 한진중공업 투쟁을 다룬 ‘버스를 타라’도 같이 보고요. 말벌 동지들을 볼 때 비로소 ‘나의 다음을 책임질 세대가 있구나’ 싶어 안심됐어요. 그분들이 옵티칼 투쟁의 큰 성과라는 생각이 들어요.”
연대 시민 김민지씨도 노조와 연대하며 노동운동의 가치를 알게 됐다. 그는 탄핵 집회에서 “수감 생활과 고공농성 둘 다 해봤지만 다시 고르라면 감옥 가겠다”던 김 지도위원의 발언을 듣고 충격받았다. 고공농성이 뭔지, 왜 하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민주노총이 강성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내심 ‘나랑은 다른 사람들’이라는 거리감을 느꼈어요. 그런데 노동운동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구나, 노동자가 자기 권리를 지키려고 맞서면서 노동운동이 시작된다는 걸 알았죠.”
민지씨는 농성장에서 깨달은 게 많다. 예를 들면 “노동운동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사람의 존엄을 위해서 싸우는 일”이다. “사실 돈 벌려면 다른 일을 찾으면 되죠. 하지만 아무 잘못도 없는 노동자를 사람 취급도 않고 쫓아내니까 존엄이 훼손당하는 거고요. 그 억울한 일을 해소하지 않다가 그게 쌓여서 ‘나는 존엄이 훼손된 사람’ ‘그때 아무 말도 못한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에 얼마나 힘들까 하면 그 억울함을 풀고 가는 게 제일이잖아요. 그걸 하는 사람들을 보며 저와 타인의 존엄도 생각해보게 됐고요.”

박정혜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수석부지회장이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는 600일 고공농성을 해제한 2025년 8월29일 연대 시민들이 옥상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신유아 문화활동가 제공
하지만 길어도 너무 길었다. 농성을 시작할 때만 해도 목표는 ‘옵티칼 투쟁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부의 무관심 속에 400일, 500일이 흐르자 ‘사람부터 살리는 것’으로 목표가 바뀌었다. “갈수록 정혜 동지 표정이 달라지는 게 느껴지는 거예요. 원래 되게 쿨하고 밝은 사람인데 500일이 지나면서부턴 계속 울었어요. 저도 ‘힘내라’거나 ‘얼마나 더웠냐’는 얘기를 더는 할 수가 없고. 이대로 놔두면 큰일 나겠다 싶었죠. 그때 말벌 동지들이 따뜻하게 연대하며 끈을 놓지 않았던 게 컸던 것 같아요.” 김 지도위원이 말했다(관련기사☞박정혜 500일 농성 1박2일 동행취재 “숨막히는 여름 전에 끝나야 한다”) .
김 지도위원은 고공농성이 “연대가 있으면 살아 돌아오고 연대가 없으면 죽는” 일이라 표현했다. 그는 한진중공업 노조 간부 김주익·최강서씨가 회사의 탄압을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래서 박 부지회장 눈빛에 생기가 없어졌을 때 더럭 겁이 났다.
“제가 (고공농성으로) 크레인에 있을 때는 ‘살아서 내려오라’는 말이 되게 듣기 싫었어요. 마치 ‘목숨만 부지하고 내려오라’는 말처럼 들려서요. 그런데 그 말을 왜 했는지 이제 알겠더라고요. 사람 하나가 살려면 이렇게 많은 마음과 손들이 받쳐줘야 하는구나. 그래서 저는 정혜 동지가 살아서 내려온 게 너무너무 다행이에요.”
박 부지회장 이전에도 수많은 외투기업이 사업을 일방적으로 축소·청산하며 대규모 해고 사태를 야기했다. 2009년 중국 상하이자동차 철수로 시작된 쌍용차 정리해고 투쟁부터 한국지엠, 하이디스, 다이셀, 한국와이퍼 등 셀 수 없이 많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의 외투기업은 2020년부터 5년간 연평균 614개씩 폐업했다.
그 부당함을 옵티칼 노동자들이 전국에 알렸다. 불탄 구미 공장을 지키면서 평택 니토옵티칼 공장과 국회, 대통령실, 일본 오사카 본사까지 찾아가 억울함을 알렸다. 한국과 일본에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연락사무소(NCP)에 진정을 넣고, 일본 노동청에 단체교섭 해태 부당노동행위 구제 신청도 넣었다.

박정혜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수석부지회장이 600일 고공농성을 마치고 내려온 2025년 8월29일, 조합원들이 옥상의 농성장을 정리하고 있다. 신유아 문화활동가 제공.
남은 과제는 국회와 정부 몫이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배원 닛토옵티칼 대표이사와 옵티칼 고용승계를 논의하는 당·정·노 TF’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김주영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는 ‘먹튀방지법’이라 불리는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로 약속했다.
과거에도 외투기업이 고용안정을 저해하면 투자를 제한하고 정부 시정 조처도 내리도록 하는 법안(류호정 전 정의당 의원 대표 발의)이 발의됐지만 개정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당시 류 전 의원 등은 기업 정리해고 시 ‘과반 노조와의 합의’를 의무화하고 기업 의사결정에 대응할 노조 권한도 담은 ‘외투기업 규제를 위한 패키지법안’(근로기준법·상법·채무자회생및파산에관한법 개정안)도 함께 냈다.
이제 개개인의 해고자 복직으론 충분치 않다. “공장으로 돌아가도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공허감은 너무 클 것”이고 “그 당연한 권리를 되찾느라 진흙탕을 건넌 흔적도 영원히 지울 수 없다”. 그렇기에 ‘닛토방지법’, 즉 외국자본의 일방적 해고를 방지하는 법 개정까지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고 최현환 옵티칼하이테크 지회장은 강조한다.
“600일 투쟁의 가장 큰 성과는 저희 같은 사람이 더는 생기지 않게 먹튀방지법과 옵티칼 문제 해결 TF를 구성하겠다는 당 차원의 약속이에요. 저희가 평택, 서울, 일본 등 참 많은 거점을 다니면서 싸움을 알려왔는데 이제 그 결실을 거둬들이는 시기라 생각합니다.” 최 지회장이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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