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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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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북일고 에이스 학폭 피해자 “학교가 범죄자 취급해 숨고 싶었다”

야구부 학폭 의혹 보도 뒤 끝없는 에이스 감싸기
교장은 변명 급급·코치는 피해자 불러 기사수정 지시
등록 2025-09-05 16:45 수정 2025-10-16 13:32
천안 북일고등학교 강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독자 제공.

천안 북일고등학교 강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독자 제공.


한겨레21이 ‘천안 북일고 야구부 에이스 ㄱ군의 학교폭력 및 괴롭힘 의혹’ 보도(제1577호 표지이야기)와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의 이 사건 부실 조사 정황을 담은 후속 보도를 내보낸 뒤, 충남 천안 북일고가 피해 학생에게 ‘전방위적인 2차 가해’를 벌인 것으로 확인됐다. 교장은 피해자를 포함한 전교생이 모인 자리에서 학생회를 통해 이번 사안과 관련한 자신의 일방적 입장을 발표했고, 야구부 코치는 피해자를 수차례 불러 ‘기사 수정’을 지시했다.

피해자 있는 자리에서 전교생에게 교장 입장 대독

2025년 8월25일 아침 8시40분께 학교 강당에 모인 북일고 전교생은 학생자율조례 시간에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새 학기를 앞두고 학교의 주요 조정·변경 사항을 공유하는 자리였는데, 학생회의 향후 활동 계획 및 현황을 소개하는 순서에서 갑자기 ‘ㄱ군의 학교폭력 및 괴롭힘’ 의혹과 관련한 김옥선 교장의 입장이 발표된 것이다. 학생회 소속 1학년 학생들은 강당에 ‘교장선생님의 말씀’이라는 문구를 띄운 뒤 이를 대독했다. 김 교장은 이날 강당에 학생들과 함께 자리했고, 피해자 정현수(18·가명)군도 학생들과 함께 있었다.

강당에 모였던 학생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학생회는 ‘이 사안은 천안교육지원청에 자동 학폭 접수돼 학폭위 심의 결과 학폭 아님 결정이 내려졌고, 학교는 중립적 입장에서 사실관계 확인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교장의 입장을 발표했다. 한겨레21의 후속 보도로 학폭위가 학교폭력 조사 과정에서 야구부 지도자 등 핵심 관계자를 조사하지 않은 것에 더해 핵심 서류조차 확보하지 않고 졸속으로 ‘증거 불충분으로 인한 학폭 아님’ 처분을 내린 정황도 드러났지만, ‘교장선생님의 말씀’에서 이와 관련된 내용은 언급되지 않았다. 김 교장은 이날 발표된 입장과 유사한 내용의 가정통신문을 전교생과 학부모가 볼 수 있도록 교육 플랫폼인 리로스쿨 앱과 사이트에 게시한 바 있다.

한겨레21 보도 이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스포츠윤리센터와 경찰이 ㄱ군의 학교폭력 사건을 조사하는 상황에서 학생회가 교장의 입장문을 기습적으로 대독하자, 현장에 있던 학생들은 당혹감을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 북일고 3학년 ㄷ군은 “학생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학교 쪽이 공식적으로 ‘학폭 아님’이라고 말하는 느낌”이었다며 “이런 사안에 대해 (학생회가) 대독하는 경우는 처음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ㄷ군은 이어 “모든 사실 정황과 관계가 다 파악된 상태로 발표하는 것도 아니었다”며 “학교 입장에서 ‘아직 정확히 밝혀진 게 없다. 자세한 내용은 파악 중이다. 이런 일을 최대한 발생시키지 않겠다’ 정도의 말을 굳이 이 시기에 하는 게 오히려 혼란을 더 가중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3학년 ㄹ군 역시 “교장선생님이 직접 말하지 않고 학생들이 대독으로 해명한 게 당황스러웠다”고 돌이켰다.

특히 피해 학생인 정군은 이날 현장에서 학생회 발표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번 사안이 터진 뒤 일상을 기록으로 남겨온 정군은 “얘기가 나왔을 때 많이 억울하고 창피하고 두려웠다. 일반 학생 친구들 보기에도 수치스러워 어딘가로 숨고 싶었다”며 “학교 쪽 입장과 가해자 입장만 발표하고 피해자는 완전 범죄자 취급하는 느낌이 들었다. 교장과 교감선생님은 이제 인사를 해도 눈도 마주치지 않고 지나가신다”고 털어놓았다.

천안 북일고등학교 정문에 놓인 교훈석. 북일고의 교훈인 신념, 용기, 봉사가 한자로 새겨져 있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천안 북일고등학교 정문에 놓인 교훈석. 북일고의 교훈인 신념, 용기, 봉사가 한자로 새겨져 있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기자랑 얘기해서 코치님 그런 적 없다 해라”

복수의 피해자들이 피해를 호소하면서 ㄱ군의 학교폭력 정황을 인지했던 북일고 야구부의 차일목 코치는 한겨레21 보도가 나간 뒤 피해자 정군을 수차례 코치실로 불러 ‘기사 수정’을 지시했다. 앞서 정군은 “화해 안 하면 시합에 내보내지 않겠다”는 차 코치의 경고 때문에 가해자 ㄱ군과 강제로 화해해야만 했다고 주장했는데, 차 코치는 “정군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한겨레21에 해명했다. 이 해명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번에는 피해자 정군을 부르고 정군 아버지에게도 연락해 ‘기사 수정’을 지시한 것이다. 교장 역시 앞서 배포한 가정통신문에서 ‘당시 정현수군은 2학년 초라 출전 기회가 없었으며, 출전은 감독이 결정하는 사안으로 코치는 그럴 말을 한 적도 없고 그런 위치에 있지 않다’는 차 코치의 주장만을 실었다.

정군은 당시 상황에 대해 “(차 코치가) 코치실에 부른 뒤 ‘기자랑 얘기 한번 해서 코치님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해라. 아니면 언론중재위원회에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며 “(기사 수정이 안 되면) 너랑도 싸워야 하는데, 그렇게 하고 싶진 않으니 (기사를) 내려달라고 하셨다. 저는 이 발언이 협박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김 교장은 학생회의 발표가 ‘대독’이 아닌 자율적 결정에 따른 조처였다고 해명했다. 김 교장은 “야구부 기사와 관련해 학교장은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이를 숨기거나 왜곡하지 않으며 그러한 경우 학교장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대화를 학생회와 나눈 적이 있는데, 그 내용을 토대로 (학생회가) 언급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며 “학생회 자율 조례이기 때문에 진행과 발언 내용은 학생회 자율에 맡겨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어차피 가정통신문에도 동일한 내용이 게시돼 있고 많은 학생이 읽어서 굳이 (학생회가) 언급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김옥선 교장 “학생회가 자율적으로 읽은 것”

학폭위의 ‘학폭 아님’ 결론에 대한 행정소송과 고소에 나선 정군 쪽은 이러한 학생회와 학교의 대응이 2차 가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정군의 대리인 김민재 변호사(법무법인 태광)는 “ㄱ군과 정군 모두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학폭위가 열렸기에 (학교의) 조처도 동일해야 하는 게 정상인데, 교장이 하는 행동은 정군에게 ‘학교를 더는 다니지 말라’는 얘기와 같다”며 “학교 전체가 합심해서 (정군에게) 2차 가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군의 아버지는 학폭위의 ‘학폭 아님’ 처분을 놓고 행정심판을 준비하고 있다. 이연우 변호사(법무법인 태광)는 “행정심판에서는 학폭위의 부실하고 편향된 조사 및 심의 과정을 꼬집을 예정”이라며 “학폭위가 핵심 증거와 관계자 조사를 누락했고 경기 배제 의혹 등 중대한 사안을 간과한 사실오인을 바로잡아 정군의 억울함을 해소하고, 가해 학생에게 적법한 조처가 수반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반론보도문 

본 신문 지난 9월5일자 사회면 ‘‘북일고 에이스 학폭 의혹’ 피해자 “학교가 범죄자 취급”’ 제하의 기사로 보도한 것과 관련해, 북일고등학교 및 김옥선 교장이 아래와 같이 반론을 보내왔습니다.

본지 보도에 대해 북일고 및 김 교장은 “사태 해결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고, 가정통신문은 중립적 입장에서 보낸 것으로 2차 가해의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밝혀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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