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4월28일 전북 부안군 부안읍 부안독립신문사 앞에 선 김종철 편집국장. 김양진 기자
2025년 3월18일 전북 부안군청 홍보팀장이 부안독립신문(주간지)을 찾아왔다. “앞으로 (신문에) 광고를 하지 않겠다”고 밝히기 위해서다. 한국전력공사가 변산반도 북쪽에서 신정읍변전소(정읍시 용계동)까지 부안군을 관통하는 송전선로 설치 공사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부안독립신문은 2024년 11월부터 부안군청의 △소극적인 주민 의견수렴 △주민 갈등에 대한 방치 △불투명한 정보공개 등의 문제점을 지속해서 보도하고 있다. 2025년 2월14일치 1면에는 ‘권(익현 부안) 군수의 책임 회피, 도 넘어’라는 제목의 기사도 냈다. 그로부터 사흘 뒤 권 군수는 김종철 편집국장에게 전화했다. “똑바로 알고 쓰라”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광고 중단은 그 뒤로 이어진 부안군의 조처다.

2025년 4월28일 전북 부안군 부안읍 부안독립신문 뉴스룸에서 김종철 편집국장이 신문철에서 기사를 찾아보고 있다. 김양진 기자
‘부안군청은 부안독립신문이 그동안 보도한 비판적 기사에 대해 공정성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광고를 끊었습니다. 이에 독자와 군민들께 한 줄 광고를 후원받고자 합니다.’
2025년 3월28일치, 평소 광고가 실리던 부안독립신문 1면 하단에 ‘백지 광고란을 채워주세요’라는 안내문이 게재됐다. “지역 언론들이 광고 중단이나 광고를 매개로 한 압박에 노출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알음알음 해결하려고 하지 이렇게 백지광고를 실으면서까지 공개적으로 최대 광고주인 지방자치단체에 맞서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손주화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이 말했다. 이 사연을 상세히 짚어보기 위해 4월28일 부안읍에 있는 부안독립신문 뉴스룸을 찾았다. 다섯 명이 일할 수 있는 이 뉴스룸에 지금은 김종철 편집국장 홀로 일하고 있었다.
“부안군청은 2024년에도 4월부터 10월까지 7개월간 광고를 중단했어요. (군이) 석연찮게 주차장 사업을 추진한다고 비판했던 것이 계기였어요.” 김종철 편집국장이 말했다. 시·군 단위 언론에 지자체는 최대 광고주다. 부안독립신문 사례를 보면, 부안군청이 이 신문사에 집행하는 홍보비 예산은 한 달에 100만원이다. 구독자 약 800명(유료독자 약 600명), 광고비 포함 월수입 약 800만원인 재정 규모에 견줘 적지 않은 금액이다. 게다가 군이 광고를 쥐락펴락하면 인허가권을 쥔 군청의 영향권에 있는 다른 광고주들까지 눈치를 살핀다. 전임 편집국장은 이 일로 괴로워하다 사직했다. 김재성 부안독립신문 대표는 “경영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비판 정신이 뚜렷한 기자 한 명을 뽑는 일이 쉽지 않아 이사회에서 폐간까지 거론됐다”며 “다행히 김종철 기자가 편집국장을 맡아주기로 결심해서 폐간을 막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2018년부터 5년간 부안독립신문에서 일하다 신문사 경영 사정 등으로 잠시 신문사를 떠났던 김종철 편집국장이 돌아온 건 2024년 11월이다. 그때부터 부안군청은 다시 광고를 하기 시작했다. 관계 개선 제스처였다. “(부안군청이) 홍보비를 가지고 언론사를 길들이려 한다는 건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이번에 백지광고를 시작하고도 (군청 쪽에서) 화해하자며 찾아온 적이 있어요. 광고비만 끊는 것도 아니에요. 공무원들이 어느 순간부터 전화를 안 받고 구독을 끊기도 해요. 그런데 이렇게 길들다보면 누가 바른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요. 군청 입맛에 따라 광고 끊는 일은 더욱 굳어지겠죠. ‘너희 행정(부안군청)이 틀린 거야, 세금(홍보비)은 쌈짓돈이 아니야’라고 누군가는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김종철 편집국장이 말했다.
‘부안독립신문이 부안의 민주와 생명·평화를 향한 염원이 낳은 결실이란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문구를 담은 ‘부안독립신문 윤리강령’이 담긴 액자가 뉴스룸 한쪽 벽에 세워져 있었다. 부안독립신문은 2003년 7월11일 김종규 당시 부안군수가 일방적으로 핵폐기장 유치를 발표하면서 일어난 부안 핵폐기장 반대 투쟁의 산물이다. 당시 부안군민의 여론은 부글부글 끓었지만, 서울과 전주에 있는 언론사들은 ‘핵폐기장 전북 부안 사실상 확정’(동아일보 2003년 7월14일치) 등의 보도로 민심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보도했다. 그리고 8일 뒤인 2003년 7월22일 핵폐기장에 반대하는 부안 주민 1만 명(당시 부안군 인구는 7만 명)이 부안읍 수협 앞 사거리를 가득 메웠다. 지역 목소리를 성의 있게 담아내는 언론에 목말라하던 주민들이 십시일반 부안독립신문 창간 자금을 보탰고, 주주가 됐다. 2004년 9월22일 창간호는 1만5천 부 인쇄됐고, 1면 머리 기사는 핵폐기장 백지화 소식을 담은 ‘부안의 주민이 해냈다’ 기사였다.

부안군 고압송전철탑 반대대책위는 2025년 4월30일 부안군 부안읍 부안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북 서남권 해상풍력 민관협의회’가 양륙점(해상에서 생산된 전기가 육지에 연결되는 지점) 결정 과정에 송전선로 대상 지역 주민들의 참여를 배제했다”고 밝혔다. 부안독립신문 제공
“주민 모르게 일방적으로 결정한 일 때문에 (2003년) 핵폐기장 반대 투쟁이 벌어졌잖아요. 왜 반전 평화 운동으로 이어지지 못했을까 등 당시에 대한 다양한 반성이 나오지만, 행정이 어떤 결정을 할 때 내려먹이기 식으로 해선 안 된다는 건 명백한 교훈이에요.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세요. 부안군청은 (송전선로 추진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제대로 응대하지도,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도 않아요. 부안군수와 군청의 입장이 뭔지, 어떻게 주민 의견을 수렴할 건지 계획도 밝히지 않고 있어요. 현 부안군수의 태도가 22년 전과 다르다고 할 수 있나요.” 허태혁 ‘부안군 고압송전선로 철탑 반대대책위’ 공동위원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백지광고 사태의 발단이 된 송전선로 건설 반대 여론이 높아지기 시작한 건 2025년 1월10일 백산면사무소에서 열린 ‘345㎸ 송전선로 건설사업 설명회’를 거치면서다. 주민설명회였지만 펼침막이나 마을 방송 같은 제대로 된 안내도 없었다. 각 마을 이장들만 참석했다. 부안·고창 앞바다의 ‘서남권 해상풍력단지’에서 생산된 전기를 신정읍변전소까지 30㎞를 끌어가기 위해 송전탑 수백 기를 세우는 사업이다. 송전탑이 부안군 읍·면 대부분을 통과하고 그로 인한 전자파·소음 노출, 보상을 둘러싼 주민 간 갈등 등 부안군 주민 생활에 영향을 미치지만 주민들은 논의 과정에서 소외됐다. “당시 주민들은 ‘부안엔 발전소도 없는데 왜 송전탑이 들어와?’라는 반응이었어요.” 김종철 편집국장의 말이다.

2025년 4월28일 전북 부안군 부안읍 부안독립신문 뉴스룸에서 허태혁 ‘부안군 고압송전선로 철탑 반대대책위’ 공동위원장을 만났다. 뒤로 윤리강령과 편집규약 액자가 보인다. 김양진 기자
2019년부터 전북도에서 민관협의회를 꾸려서 양륙점(洋陸點·해상에서 생산된 전기가 육지에 연결되는 지점) 입지 선정 논의를 진행해왔고, 2024년 3월에는 양륙점 위치가 부안군(변산면 대항리)으로 결정됐다. 이 과정에서 양륙점에 반대 입장이었던 고창군은 송전탑 건설 예정 육지 주민들까지 폭넓게 민간협의위원으로 위촉했지만, 부안군은 양륙점 찬성 여론이 많은 어촌 지역 주민들로만 위원들을 구성했다. 2024년 6월, 그제야 송전탑 입지선정위원회가 따로 꾸려졌다. 이미 양륙점이 결정된 상황이라 주민 선택지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김종철 편집국장은 “양륙점과 송전선로는 실과 바늘, 동전의 양면과 같이 붙어 다닌다”며 “양륙점이 어디인지가 송전선로 위치를 결정하는데, 양륙점 결정 과정에서 송전선로 대상 지역 주민들이 배제됐다는 점 때문에 주민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른바 쪼개기 사업이죠. 서남해 바다에서 생산된 전기를 수도권까지 끌어간다는 건데, 전체를 놓고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는 게 아니라 갑자기 툭툭 던져서 설명회는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대표성이 부족한 사람들을 (선정위원으로) 추천해서 주민 설득 과정을 사업자 편의에 맞게만 진행하는 거죠.”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대표의 지적이다. 부안독립신문 고정 필진인 하승수 변호사(공익법률센터 농본)는 “부안군수의 독단적 결정 때문에 핵폐기장 반대 투쟁 때 갈등이 격화됐는데, 지금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비판 언론의 광고를 중단하는 건 민주주의 국가에선 있어선 안 될 일이다. (계엄령으로 언론자유를 제한한) 윤석열과 뭐가 다른가.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에서 이를 방관하고 있다면 이 역시 문제”라고 꼬집었다.

2003년 7월25일 오후 부안터미널 앞 네거리에서 열린 군민결의대회. 33.5도까지 치솟은 수은주만큼이나 주민들의 핵폐기장 반대 열기도 달아올랐다. 박승화 기자

2003년 9월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강 둔치에서 열린 핵폐기장 건설 중단 기원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등교를 거부하고 서울에 온 전북 부안군 내 초등학생들이 핵폐기장 건설 반대의 뜻을 담은 종이배를 한강에 띄우기 위해 접고 있다. 한겨레 자료
‘광고 끊는 것이 언론 탄압이 아니면 무엇인가?’(상서면 김진원) ‘부안독립신문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부안읍 고성윤)
언론이 바로 서려는 몸부림에 대한 응원이 몰려들었다. 불과 한 달 만에 90여 명의 주민이 지지 메시지와 함께 성금 약 500만원을 부안독립신문에 보내왔다. 재정 상태가 외려 개선됐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 신문사 내부 문제 때문에, 나날이 줄어들던 구독자 수도 이번 백지광고 사태 이후 늘었다. 2021년 고향으로 돌아온 귀촌 청년 유수정(33·디자이너) 부안청년건강모임 대표가 말했다. “부안군청의 광고 중단은 주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비민주적이고 폭력적인 언론 탄압이라고 생각해요. (부안군청이) ‘공정성 훼손’이라고 하는 것도 부안군청이 주민들의 의견을 고루 수렴하려는 게 아니라 찬성 쪽 주민들 입장에서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때문에 나온 말 같아요. 부안독립신문을 응원하고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부모님 세대가 핵폐기장 반대 투쟁을 했듯 이제 저희 세대가 지역 문제를 논의하고 방법을 찾아야 할 때잖아요.”
기반이 약한 지역 언론이 건전한 비판 기능을 하도록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민 전북민언련 공동대표는 “지자체 홍보비를 다른 예산 집행과 마찬가지로 도달률·신뢰도 등을 통해 객관적인 기준을 세우고, 이를 관리·감독할 독립적이고 공정한 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그래야 단체장 입맛에 맞는 언론에 주거나 나눠주기식으로 쓰는 홍보예산이 건강한 언론에 집중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국 지자체 중 홍보비 집행 조례가 만들어진 지자체는 6곳(인천, 경기 시흥, 전북 익산, 경기 수원, 충남 천안, 경기 용인)에 그친다. 박 공동대표는 이어 “지자체 홍보비 집행 방식에 따라 지역 언론사가 흔들리지 않도록 중앙정부의 다양한 공적지원도 필요하다. 지역이 제대로 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건전한 기반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미디어·시민단체의 비판 기능이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박 공동대표는 “미국에선 지역 언론이 없는 곳을 ‘뉴스 사막’이라고 하는데, 우리의 경우 언론사는 많아도 지자체 홍보나 개발 위주로 보도하고 비판적인 뉴스가 없는 것이 ‘한국식 뉴스 사막’”이라며 “언론들이 제대로 점검하고 비판 기능을 다 했다면, 나무 한 그루 없는 허허벌판에서 치러진 (2023년)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파행이 벌어졌을까. 뉴스 사막화로 벌어진 일”이라고 꼬집었다.
“지자체를 감시·비판·견제하는 풀뿌리 지역신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주민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요. 서울 일간지에는 진안군(전북) 소식을 찾기 어렵잖아요. 가뜩이나 농촌 지역의 고령화, 인구 감소로 독자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광고를 무기로 언론을 탄압하는 건 주민들이 말할 수 있는 공간을 없애는 시도거든요.” 진안신문 류영우 편집국장이 말했다. 진안신문은 2006년 인터넷 뉴스 유료화를 시작해 안착시켰고, 2015~2019년 마이산 케이블카 추진 비판 등으로 인해 진안군 광고를 한 푼도 못 받지만, 현재 약 2500명의 탄탄한 구독자를 기반으로 광고 중단 사태를 이겨냈다. 진안신문과 부안독립신문은 김제시민의신문·주간해피데이·열린순창·무주신문·완주신문 등과 함께 기획·발굴기사 비중을 높이고 감시·견제 역할을 충실히 하기 위해 전북민언련의 제안으로 꾸려진 전북풀뿌리언론운동연대 구성원이기도 하다. 건강한 언론들이 모여 경험과 고민을 나누고, 선거 등 공동의제가 있을 땐 함께 기획해 기사 취재도 하고 있다.
이번 백지광고 사태는 어떻게 전개될까. 김종철 편집국장이 강조했다. “(부안군이) 홍보비 집행 기준을 세우거나 이를 위한 논의를 시작한다면 모를까, 그냥 광고를 준다고 나와도 안 받을 겁니다. 기준이 없다면 부안군청이 임의대로 쓰고 있는 쌈짓돈일 뿐이잖아요. 송전탑 문제에 대해서도 계기만 주어진다면 22년 전처럼 똘똘 뭉쳐서 이 사안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실제로 그런 움직임도 보이고요.”
이에 대해 김병태 부안군 기획감사담당관은 “주민 의견 수렴이 부족하다고 비평하는 건 언론의 당연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부안독립신문 기사가 한쪽에 치우쳤다고 판단해 광고를 끊었다”며 “(홍보비 집행) 세부 기준은 없는 상황인데, 이번 일이 있고 나서 그 기준을 마련할지 심도 있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안독립신문 창간 때 문규현 당시 편집인은 ‘비겁한 어떤 삶도 거부하고, 생활도 마음도 자유롭고 독립된, 당당한 군민의 올곧은 신문이 되겠다’(‘창간사’)고 다짐했다. 모든 언론의 사표가 될 만한 다짐이다.
글·사진 부안(전북)=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부안독립신문 4월4일치 1면 하단. 부안군청의 홍보비 집행 중단으로 광고 대신 ‘백지광고’ 알림이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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