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2월21일 서울 중구 명동역 1번 출구 앞 농성장에서 한 시민이 해고 노동자들에게 줄 뜨개 현수막을 뜨고 있다. 신다은 기자
정리해고 철회 및 복직을 외치며 10m 높이 구조물에 오른 고진수 세종호텔지부장은 투쟁의 원동력 ‘말벌 동지’(관련기사: 세종호텔 앞 도로 10m위에 요리사가 삽니다)를 꼽았다. 이들은 누굴까.
‘말벌 아저씨’는 2013년 10월9일 방송된 엠비엔(MBN)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온 출연자의 별명이었다. 양봉업자인 출연자가 일벌 죽이는 말벌에 너무 신경을 곤두세운 나머지 방송 중에도 쏜살같이 뛰어가 말벌을 잡는 모습으로 유명해졌다. 누리꾼들은 그 후 어떤 현장이든 쏜살같이 찾아와 타인을 돕는 사람을 ‘말벌 아저씨’라 불렀다. 탄핵 집회 이후 광장에 나온 2030 여성들도 남태령 농민 시위와 장애인 이동권 시위, 조선소 하청 노동자 시위 등에 힘을 보태면서 스스로를 ‘말벌 아저씨’로 칭했다. 거리에서 권익을 외치는 ‘꿀벌’ 노동자들을 지키려 동분서주한다는 의미다.
한겨레21이 2025년 2월19~20일 이틀에 걸쳐 찾은 세종호텔 농성장에도 2030 여성들이 여럿 있었다. 이들은 서로를 알아보고 컵라면을 건네며 용기를 북돋웠다. 문구용품을 사와 즉석 손팻말을 만드는가 하면 농성장 한쪽에서 뜨개질하는 이도 있었다.
직장인 고진씨도 영하의 날씨에 농성장에서 뜨개질을 시작했다. 해고 노동자들에게 줄 뜨개용 현수막을 만드는 중이라고 했다. “뜨개실을 주문하던 날 고진수 지부장님이 고공농성 올라갔어요. 현수막을 잘 완성해서 주고 싶은 마음과 그 전에 지부장님이 내려오셨으면 하는 마음이 함께 있어요.”
고진씨 역시 정리해고의 경험이 있다고 했다. “그때 저는 한 번도 못 싸워봤고 싸울 생각을 못했어요. 그런 굴욕을 가지고 살았는데 그걸 이기고 싸우는 분들이 있잖아요. 그때의 기억으로 여기 오는 것 같아요.”
고등학생 이민경씨는 ‘노동 의제의 중요성’을 거리에서 배웠다고 했다. “탄핵 집회를 자주 나가다보니 우리나라 노동권이 많이 취약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저도 미래의 노동자인데 힘을 좀 보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민경씨와 함께 컵라면을 먹던 권수아씨는 ‘부채감’을 말했다. “전직 공무원이에요. (현직일 때) 시민들 뵐 일이 많았고 도와드리고 싶은 부분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법과 조례의 제약 때문에 권한을 벗어나기가 어렵더라고요. 퇴사한 뒤 조금이라도 시민들 돕고픈 마음에 나오게 됐어요. 제가 원래 사람들과 어울려서 누군가를 돕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요.”

2025년 2월19일 시민 온화(활동명)가 고진수 세종호텔지부장을 바라보며 손피켓을 들고 있다. 신다은 기자
과거 세종호텔 노동자들에게 받은 연대를 되돌려준 사람도 있다. ‘온화’라는 활동명을 쓰는 한 여성 시민은 2023~2024년 퀴어 퍼레이드 때 세종호텔 노동자들을 처음 만났다고 했다. “그때 행진하면서 혐오 세력들만 보다가 우릴 환대해주는 사람을 만난 게 (감동이) 되게 컸어요. 이후 내란사태로 광장에 나오면서 다시 마주쳤죠. 그동안 이분들을 제가 잊고 지낸 게 너무 죄송스러웠어요. 그 죄책감 때문에 더 (농성장에) 나오는 것 같아요.”
그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퇴근길에 종종 들러 연대 발언을 한다. 2월19일 점심 선전전에서 온화는 이렇게 말했다. “고진수 동지가 저 위에 올라가신 건 제가 헤아릴 수 없겠지만 책임감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전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요. 알바를 하면서 그 자리를 뛰쳐나올 수 없는 것도 책임감이겠죠. 그 알량한 것도 책임감인데 왜 정작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책임지지 않는 걸까요? 그 답을 우리가 찾아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밑에서 응원하고 있습니다. 투쟁. 감사합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관련기사 바로보기 링크 : 세종호텔 앞 도로 10m 위에 요리사가 삽니다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691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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