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관광레저산업노조의 고진수 세종호텔지부장이 2025년 2월13일 서울 중구 명동역 1번 출구 앞 도로 위에 설치된 10여m 높이 지하차도 진입 차단시설 위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류우종 기자
서울 명동의 낮은 북적인다. 직장인은 종종걸음으로 퇴근하고 관광객은 숙소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그때 벼락처럼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 “반갑습니다. 세종호텔지부장 고진수입니다. 투쟁!”
지나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두리번거린다. 눈앞엔 눈앞엔 퇴계로 지하차도 입구에 ‘추월금지’라고 쓰인 지하차도 진입차단 시설뿐이다. 집회 참가자들 시선을 따라가니 분홍 목도리 두른 사람이 10여m 높이의 차단 시설 위에 우뚝 서 있다. 그는 확성기를 메고 북을 둥둥 울린다. “모든 정리해고는 부당합니다. 세종호텔지부의 지난한 싸움, 결코 복직 없이 끝내지 않겠다는 각오로 고공을 선택했습니다. 200명의 정규직이 즐겁게 일했던 과거의 일터로 다시 만들어갈 발판을 세우고자 합니다. 그 희망, 반드시 이루고 싶습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관광레저산업노조의 고진수 세종호텔지부장이 2025년 2월13일 서울 중구 명동역 1번 출구 앞 도로 위에 설치된 10여m 높이 지하차도 진입 차단시설 위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류우종 기자
세종호텔 맞은편 도로 위에 사람이 산다. 민주노총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의 고진수 지부장이다. 폭 1m도 안 되는 좁은 통로에 스스로를 밀어넣었다. 20년 몸담은 직장에 복직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그가 오른 곳은 도로에 큰 차라도 지나가면 지진 난 듯 흔들리는 시설이다. 법원도 노동부도 등을 돌렸지만 광장의 시민들은 해고 노동자들을 품었다. 계엄 이후 터져나오는 시민 연대에 힘입어 그와 동료들은 ‘끝장’을 보기로 했다. 고 지부장의 고공농성이 2025년 2월13일 시작됐다.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나아가 비정규직 확대에 반대하며.
고 지부장의 하루는 아침 7시50분 출근 선전전(시민들에게 노동 투쟁을 알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의 동료들이 아래에서 구호를 외치면 고 지부장은 위에서 북을 울린다. 낮 12시 점심 선전전까지 하고 나면 한숨 돌린다. 휴대전화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각종 연락에 답하고 연설문을 고치다보면 어느새 오후 6시, 투쟁 문화제 시간이다. 퇴근하고 온 시민들과 노래 부르며 응원을 주고받으면 밤 9시. 하루 일과를 정리하고 잠들 시간이다.
고 지부장은 한때 세종호텔 일식 요리사였다. 장시간 공짜 노동을 문제 제기한 경험으로 노조 활동의 재미를 알았다. 그러나 회사의 탄압도 심했다. 호텔 경영진은 어용노조를 전폭 지원해 민주노총 노조를 약화시키는가 하면, 남은 조합원들을 생소한 직무로 전환 배치했다. 주차 등 직군은 아예 하청으로 외주화했다. 코로나19 때 노동 경시는 정점을 이뤘다. 경영진은 수차례 희망퇴직 공고를 내 수십 명을 내보냈다. 그러고도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나가지 않자 아예 ‘휴업 대상’으로 분류해 정리해고했다.

고진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 지부장이 2025년 2월20일 서울 중구 명동역 1번 출구 앞 도로 위에 설치된 10여m 높이 지하차도 진입 차단시설 위에서 농성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소송을 제기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2024년 12월12일 대법원은 해고가 정당하다는 1·2심 판결을 유지했다. 호텔이 영업 손실을 입고도 2020년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하고 무급휴직을 하는 등 해고 회피 노력을 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만 보기 어려운 정황도 있다. 호텔은 정작 정리해고를 단행한 2021년엔 노조의 수차례 요구에도 고용지원금을 연장하지 않았다. 객실 부문은 정규직 노동자가 남아 있는데도 외주화를 밀어붙였다. 해고자를 정한다며 주방·객실 노동자에게 외국어시험을 치르게 했고, 노동자들이 절차도 몰랐던 인사평가에 가장 큰 배점을 줬다. 정리해고의 최종 목표가 비정규직 확대였다고 노조가 주장하는 이유다.
“처음엔 당연히 해결될 거라 생각했어요. (호텔) 경영진이 정부 지원금 받고도 그렇게 많은 사람을 내보냈는데, 더구나 우리가 임금 감액까지 받아들였는데도 정리해고하는 게 말이 되겠냐고요. 근데 1심 결과를 보고는 ‘사법부에서 쉽게 (부당해고) 인정 안 해주겠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해고 노동자들은 마음을 바꿨다. 법원에 기대는 대신 스스로 결과를 얻어내기로 했다. “쌍용자동차와 케이티엑스(KTX) 승무원 등 대법원 판결은 졌어도 어떤 식으로든 결과물(복직)을 만들었던 선례가 있습니다. 그걸 (조합원들과) 공유하면서 ‘이제 법원 판결과 관계없이 결과를 만들자’고 각오를 다졌습니다.”
다짐을 행동으로 옮기게 해준 건 광장의 젊은이들이다.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들은 12·3 계엄 이후 광장을 지키며 다양한 이들을 만났다. 만들고 싶은 미래를 명확하게 그려내는 젊은이들이 가슴을 흔들었다. 고 지부장은 그들을 ‘동지’라 불렀다.

2025년 2월19일 서울 중구 명동역 1번출구 앞 농성장에서 시민 ‘온화’(활동명)가 고진수 지부장을 바라보고 있다. 신다은 기자
“광장 발언이 되게 가슴에 와닿았어요. 사회 변화나 원하는 것들이 명확하구나, 이런 부분들을 굉장히 (많이) 느꼈고요. 그 동지들이 남태령과 한강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농성장에 득달같이 달려갔지요. 저희 세종호텔 투쟁 문화제에도 엄청나게 많이 결합되면서 헌법재판소로 행진하는 100명 넘는 대오가 만들어졌거든요. 그래서 ‘이 연대의 힘이라면 (농성을) 빠르게 결정할 수 있겠다’ ‘더 지체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조합원들이 몇몇 후보지를 고르는 동안 고 지부장은 지금의 농성장을 마음에 품었다. “아주 높지는 않지만 세종호텔 바로 앞이라 우리의 투쟁을 알리는 장소로 적합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폭은 좀 좁지만 경찰 진압이 쉽지 않겠다는 판단도 들었고요. 제가 좀 고집해서 여기로 하게 됐어요.”
사전 답사도 했다. 근처 야외주차장에 올라가 내부를 살펴보고 서울 시내 비슷한 구조물에 몰래 올라가보기도 했다. 이윽고 2월13일 새벽 4시30분, 그가 서울 명동 세종호텔 앞에 있는 퇴계로 지하차도 입구 진입차단 시설에 다가섰다. 혹여나 사람들 눈에 띌까 정신없이 사다리를 올랐다.
뻥 뚫린 구조물부터 막는 게 급선무였다. “물건이 아래로 안 떨어지게 (공간) 양옆과 바닥을 얇은 목재판으로 막는 게 제일 우선이었어요. 공간 폭이 90㎝밖에 안 되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밤새 거의 잠깐 한 2시간 정도 눈 붙이고 계속 작업했어요. ”
가져간 짐도 많았다. “상황에 따라 며칠 동안 아무것도 못 올라올 수도 있어서 처음에 짐을 좀 많이 올렸습니다. 현수막, 핫팩, 침낭 등등…. 안 그래도 좁은데 짐까지 많으니 정신없더라고요. 바닥 깔고 짐 올리고 현수막 게재하니까 그때야 약간 숨이 놓이더라고요.”
그는 차가운 철제 구조물을 순식간에 생활공간으로 만들었다. 줄을 걸어 치약과 생활용품을 걸고 가림막으로 천장도 만들었다. 침낭 2개를 가져와 침구처럼 깔고 덮었다.

고진수 지부장이 기거하고 있는 서울 중구 명동역 1번출구 앞 철제 구조물 내부 모습. 폭이 1m도 안 될 만큼 좁다. 본인 제공.
고 지부장의 고공농성 소식은 2월13일 아침 순식간에 기사로 퍼져나갔다. 노조 활동가와 시민들이 그를 돌보러 명동으로 모였다. 전국 각지에서 빵, 과자, 핫팩이 도착했고 ‘명동역 1번 출구 고공농성장 앞’이라 적힌 라면 상자가 쌓였다. 시민들은 직접 뜨개질한 목도리를 그에게 선물했고 밤마다 농성장 아래서 비닐 한 장 덮고 쪽잠을 청했다.
“우리 ‘말벌 동지’들이 계속 (농성장을) 사수해주고 연대도 이어지고 있어서 정말 너무너무 힘이 납니다. 이 추운 날에도 함께해주시는 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한편으론 이번에는 ‘끝을 보자’고 올라왔다보니 너무 업되지 말자고 스스로를 좀 내려앉히려는 마음도 있고요.”

2025년 2월19일 서울 중구 명동역 1번출구 앞 고공농성장에 고진수 지부장을 응원하는 시민들의 연대 물품이 가득 쌓여있다. 신다은 기자

2025년 2월19일 서울 중구 명동역 1번출구 앞 고공농성장에 고진수 지부장을 응원하는 시민들의 연대 물품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 신다은 기자
그가 말하는 ‘말벌 동지’는 계엄사태 이후 광장에 나온 2030 여성들이다.
(관련 기사 : 고진수 도운 ‘말벌 동지’? “‘꿀벌’ 노동자 지키려 분투하는 사람들”)
이들은 윤석열 탄핵 집회에 그치지 않고 조선소 하청 노동자와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 적극 참여했다. 최근엔 부당 해임된 교사 지혜복씨와 고 지부장의 농성장도 꾸준히 찾았다. 2월15일에도 1만 명 넘는 시민이 그를 보러 명동사거리를 찾았다. 차도를 가득 메운 응원봉 물결을 보고 세종호텔 노동자들은 그만 울고 말았다.
“저희가 너무 오래 싸우기도 했고요. 2017년 박근혜 퇴진 때도 노동에 대한 발언 기회가 쉬이 주어지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이번 연대가)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습니다. 이 많은 분들한테 우리 세종호텔의 문제를 어떻게든 발언하고 응원받는 과정이 정말 평생 이런 기회가 다시 있을까 싶을 정도의 느낌이었습니다.”

2025년2월15일 서울 중구 명동 사거리 일대를 가득 메운 시민들의 모습. 고진수 지부장 페이스북 갈무리
코로나19를 거치며 호텔서비스업 일자리 사정은 크게 나빠졌다. 정규직이던 객실, 주차 등의 업무가 점차 비정규직화됐다. 세종호텔도 한때 200명 넘는 정규직이 있었으나 지금은 20여 명 정규직과 40여 명 비정규직만 있다. 노동자 수가 크게 줄었고 접객을 제외한 대부분의 직군이 하청으로 외주화됐다.
“자본가의 최종 목표는 외주화입니다. 정규직을 해고하고 노동조합까지 들어낼 수 있는 수단으로 코로나19를 삼은 거죠. 그러니까 굳이 무리하게 인원도 얼마 안 남은 상황에서 밀어붙인 거고요. (팬데믹이) 끝나면 다시 관광 수요가 폭발할 거라고 예측할 수 있었는데 이들은 끝내 코로나 핑계가 정리해고 요건이 되겠다고 판단했던 것 같아요.”
고 지부장은 재난이 닥쳤다는 이유로 정리해고 당하는 노동자가 더는 없기를 바란다. “우리가 광장에 나와서 윤석열 정권 퇴진을 외치지만 그다음에 만날 세계가 그냥 정권 교체로만 끝나는 거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더 많이 외치자, 그렇게 해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노동 악법들을 화두로 올리고 끝장내자는 겁니다.”

2025년 2월19일 서울 명동역 1번출구 앞 고공농성장에서 시민들이 피켓을 들고 고진수 지부장을 응원하고 있다. 신다은 기자
현행 근로기준법은 “정당한 이유 없이 근로자를 해고할 수 없다”면서도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있어야 한다”는 단서(근로기준법 제24조)를 달아 정리해고 가능성을 폭넓게 열어뒀다. 기업은 이를 지렛대 삼아 정규직을 자르고 비정규직을 늘렸다. 쌍용차와 흥국생명,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그렇게 정리해고됐다. 노동계는 정리해고 요건을 법으로 엄격히 제한할 것을 요구한다.
그는 세종호텔 투쟁이 ‘고용 안정을 말하는 구심점’이 되기를 바란다. “악법이 살아 있으면 앞으로도 재난과 경제 위기마다 노동자 고용을 불안하게 하고 비정규직이 확장될 겁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노동 악법을 철폐하자는 화두를 세게 올려 다음 정권이 이런 의제를 무시 못하게 하자, 거기에 세종호텔 정리해고 투쟁도 하나의 구심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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