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더 많은 고양이가 필요하다

등록 2025-02-06 22:44 수정 2025-02-13 19:32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내란범이 법치를 운운하는 요즘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사실 우리는 3년 전에도 충분히 괴로웠다. 대체 누구를 찍어야 하나, 온 국민을 고문했던 게 제20대 대통령선거 아니었던가. 윤석열은 정말 아니라서, 이재명이 너무 싫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투표장에 갔건만 이대로라면 결국은 둘 다 대통령으로 보게 될 판이다. 역시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이 난리통에 국민의힘은 ‘그래도 이재명은 안 된다’며 떼를 쓰고, 그 궤변이 또 일부 먹힌다는 데서 부조리는 반복된다.

파시스트 vs 포퓰리스트

이재명과 ‘그의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 심판 혹은 탄핵을 부르짖은 건 내란 한참 전부터다. 대통령의 아집과 무능은 불법이 아니니 탄핵으로 이어질 아킬레스건은 오직 김건희 여사라고만 생각했던 것이 패인이다. 거대 야당의 힘은 그동안 오직 조기 정권 교체에만 집중돼왔다. 더불어민주당은 제22대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로 현 정부를 심판하자며 위성정당을 다시 만들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고수했다. 그러고는 비례대표로 출마하려는 임태훈 소장을 병역기피자이자 부적격 후보라며 내쳤다. 평생을 군 인권 제고에 헌신하다 채 상병 문제를 앞장서 해결하겠다고 나선 이를 말이다. 차별금지법을 향한 대중의 염원과 종교계의 표심을 저울질하고, 장애인 이동권 활동가에게 미움받을 짓 말라며 무시한 것 또한 민주당이다.

그런데도 윤석열도 싫고, 이재명도 싫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대안 없는 이재명 비토는 내란을 진영 갈등으로 호도하려는 극우 세력의 입장이라는 것이다. 이재명을 비판하는 순간 쏟아지는 개딸들의 악다구니는 공론장에 가해지는 테러 수준이다. 내란집단 척결이 최우선 과제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파시스트는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포퓰리스트는 민주주의를 타락시킨다. 사과는 했다지만 자신에게 투표하지 않은 국민들을 ‘2찍’이라 부르며 선 그었던 정치인은 두말할 것 없이 포퓰리스트다. 그가 말하는 국민은 자신의 집권에 민주성을 부여해줄 유권자 집단이다. 자신을 반대하는 이들은 그에게 진정한 국민이 아니다. 그러니 기본사회를 건설하겠다면서 종합부동산세 기준을 완화하고 금융투자소득세를 폐지하며 가상자산거래세까지 유예하는 모순적 행보가 가능한 것이다.

장외투쟁을 빌미로 당대표 지키기에 나선 민주당이 아무리 조직하려 해도 채워지지 않던 광장이 일순 응원봉으로 가득 찬 모습은 무척 고무적이었다. ‘니들은 역시 우리 없으면 민주주의도 못하는구나’라는 듯 거들먹거리던 86세대 정치에 종언을 고하는 것 같았다. 계엄을 계기로 가장 차별받던 이들이 광장에 섰다. 국회를 지키고, 남태령을 넘어, 대통령 관저를 둘러쌌다. 그리고 이제 앙시앵레짐(구체제)을 부수자고 외친다. 그 방식이 개헌일지, 정치체제 변혁일지, 또 다른 방식일지는 더 다양하고 풍성한 의견이 오가는 공론장의 숙의로 합의해갈 문제다.

양비론을 비판하지 말라

그러므로 양비론을 비판하지 말라.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잘 잡으면 되는 것은 성장이 아니라 양극화 해소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더 많은 고양이가 필요하다. 대안이 없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지금의 민주당이다. 거대 양당제, 제왕적 대통령제, 소선거구제 등 현 체제를 유지했을 때 가장 이득을 보는 자는 누구인가. 정국 안정을 핑계로 개헌 대신 조기 대선을 요구하는 자, 광장의 목소리를 탈취하는 자, 변화를 거부하는 자, 그들이 바로 보수다. 국민의힘의 수구화로 보수 자리가 비었다. 이재명의 민주당이 가야 할 자리가 바로 거기다.

신성아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 저자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