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폐가 앞에 쇠줄로 묶여 있었다. 원래는 흰색이었을 듯한 진돗개다. 아무도 쓰다듬어준 적이 없는지 여기저기 털이 뭉쳤다. 먹은 자리에서 똥을 쌀 수밖에 없다. 주변에 똥이 지층처럼 차곡차곡 쌓여 굳었다. 밥그릇엔 음식물 쓰레기가 담겼다. 쉰내가 풍긴다. 골목길에서 쑥 들어간 곳에 그가 유령처럼 앉아 있다. 묶여 있는 그는 자신을 방어할 수 없다. 쳐다봐주는 사람도 없지만, 누군가 다가오면 그는 꼬리를 말고 짖는다.
2024년 4월 말, 경남 남해 상주에 온 첫날부터 그가 가슴에 박혔다. 다가가긴 두려웠다. 멀리서 간식을 던져줬다. 그는 불안한지 꼬리를 다리 사이로 넣고 뱅글뱅글 돌더니 간식을 먹는다. 하루에 한 걸음씩, 쪼그려 앉아 그에게 다가갔다. 3일이 지나니 내 손에서 간식을 받아먹었다. 손끝에 그의 입술이 잠깐 닿았다. 분홍색 코 위 까만 반점이 몇 개, 까만 동공을 둘러싼 오로라 빛깔 눈동자를 보았다. 주홍, 초록, 검은색이 햇살에 따라 여러 색깔로 뒤섞였다. 그는 내 반려견 몽덕이의 꼬랑지 냄새를 맡았고 내가 머리를 쓰다듬도록 허락했다.
그에겐 이름이 없었다. 마을 청년의 증언에 따르면, 폐가 근처 이층집에 사는 ‘주인’은 있는데 그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아기 때부터 쭉 10년은 묶여 있었고 한 번 탈출한 적이 있는데 멀리 가진 못하고 다시 붙들렸다고 한다. 나는 똥 더미 지층을 발뒤꿈치로 깨고 빗자루로 쓸었다. 밥그릇에 사료를, 물그릇에 새 물을 담았다. 그는 내 곁을 맴돌았다.
2024년 5월28일 오전 10시, 나는 그와 내 머리 위로 쏟아졌던 햇살과 그의 흰 털을 흔들던 바람을 기억한다. 첫 산책을 한 날이다. ‘주인’이 다른 사람을 통해 산책시켜도 좋다고 허락했다. 쇠줄에서 목줄을 풀 때 망설였다. 나를 따라갈까? 그는 그 망각의 구멍 같은 구석에서 나와 함께 걸어 나왔다. 천천히. 직진은 잘하지 못했다. 뱅글뱅글 돌았다. 해변까지 가는 길 내내 그는 단 한 번의 기회인 것처럼 모든 나무 둥치의 냄새를 맡고 자기 흔적을 남겼다. 내가 가자는 대로 따라왔고 순순히 다시 묶였다. 나와 그는 종이 달랐지만, 어쩐지 나는 그의 표정을, 그는 나의 표정을 읽을 수 있는 거 같았다. 내가 그의 오로라빛 눈동자를 바라보며 “순둥아”라고 부르자, 그의 눈꼬리가 부드럽게 풀리는 거 같았다. 그는 자신을 평생 묶어두고 시시티브이(CCTV)나 음식물쓰레기처리기 정도로 취급한 ‘주인’을 보면 반가워 펄쩍펄쩍 뛴다. 인간에게 앙심을 품긴커녕 상처받은 적 없는 것처럼 다시 한번 기꺼이 아이보리빛 머리를 내맡긴다. 그를 보면 경이롭다. 너는 어떻게 그럴 수 있니, 너는 어떻게 그토록 고통을 준 인간들에게 여전히 다정하니. 그는 다정한 생존자, ‘순둥이’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 개과학연구소 연구원인 클라이브 윈은 궁금했다. 개는 대체 왜, 어떻게 인간을 사랑할까? 뇌 스캔, 유전자 분석 등 오만 연구와 실험을 거쳐 다다른 결론은 이렇다. “개의 본질은 사랑이다.” 뇌 구조, 호르몬, 유전자까지 애착 관계를 맺도록 준비하고 있단다. 개의 뇌는 음식만큼 애정을 갈망하도록 프로그래밍돼 있다. 윌리엄스-뷰렌 증후군이 있는 사람은 극도로 사교적인데, 늑대와 개의 유전자를 비교 분석해보니 윌리엄스-뷰렌 증후군의 발현과 연관된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개에게서 발견됐다. 개에겐 사랑의 역량이 있다.(책 ‘개는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는가’) 자기 서식지를 파괴하는 걸 보면 이성이 인간의 역량인지 의심스럽지만, 그렇다고 쳐도 그 이성이 개, 닭, 돼지, 돌고래, 참새의 역량보다 더 높이 평가받아야 할 근거는 없다.
“너 자꾸 그러면 ‘안’순둥으로 이름 바꾼다!” 산책 다섯 달째, 순둥이는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앞다리가 약해 풀썩 주저앉곤 하던 순둥이는 이제 달린다. 인적이 드문 산길, 잠깐 리드줄을 놓았더니 순둥이가 덤불 속으로 풀쩍 들어간다. 순둥이를 잃을까 겁이 났다. “순둥아!” 그가 코, 귀, 어깨에 온통 나뭇잎을 달고 내게 온다. 나는 순둥이의 표정을 환한 미소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그는 매일 걷는 동네의 풀꽃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잎맥 하나하나 코끝으로 훑으며 탐닉한다. 살아 있음의 환희를 빨아들이는 것처럼.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순둥이가 묶여 있는 폐가 안을 들여다봤다. 먼지 낀 유리창 너머로 언젠가 분홍빛이었을 이불이 갈변해간다. 액자엔 바랜 사진이 몇 장 붙어 있다. 차곡차곡 쌓인 회색빛 시간 아래 물건들이 사그라진다.
우리 집 주인이자 동네 고양이를 돌보는 ‘신발달인’(제1533호 참고) 집 앞에는 배식을 기다리는 고양이들이 줄 서 있다. 그중 하나는 한쪽 눈이 안 보이는 점박이다. 척추뼈가 고스란히 드러난 고양이는 14살이라고 했다. 보이지 않는 눈엔 진물이 굳었다. 그 고양이 곁에 노란색 아기 고양이가 붙어 다녔다. 신발달인이 이 두 고양이 사연을 들려줬다. “늙은 고양이 이름은 똘이야. 내가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어. 노란 고양이는 혼자였어. 아직 한 살도 안 된 아기인데. 그 아기 고양이가 똘이한테 의지해서 컸어. 똘이는 참 착해. 자기 먹을 걸 양보하고 아기 고양이가 기대오면 다 받아줬지.”
어느 날, 출근길에 보니 똘이가 바닥에 누워 있었다. 부피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앙상한 갈빗대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조금 부풀었다가 꺼질 뿐이다. 내가 다가가니 노란 고양이가 똘이를 감싸안은 듯 앉은 채 앞다리를 똘이에게 올려두고 나를 노려봤다. “하악, 하악.” 앙상한 똘이의 배 위에 올려둔 노란 고양이의 발은 하얀색이다. 그날 저녁, 퇴근하는 길에 보니 똘이가 없다. 똘이는 죽었다. 다음 편에 등장할 모텔 태양장 사장님이 똘이를 묻어줬다고 했다. 노란 고양이는 사라져 다시 볼 수 없었다. 늙은 고양이 똘이가 마지막 숨을 내쉬던 나날들, 순둥이와 몽덕이는 저마다 탄성을 지르는 세상의 냄새를 맡았다.
똘이가 숨지고 난 뒤 어느 날 저녁, 신발달인은 고양이들에게 사료를, 허기진 내게 회덮밥을 나눠줬다. “만날 저는 얻어먹기만 해서 어떻게 해요.” “뭘 나도 옆집 식당 언니한테 만날 얻어먹는데.” 똘이는 노란 고양이를 먹이고, 식당 언니는 신발달인을 먹이고, 신발달인은 날 먹이고, 나는 순둥이와 몽덕이를 먹이고, 순둥이와 몽덕이는 사랑으로 나를 먹인다. 순둥이를 처음 만난 날, 나는 순둥이에게서 나를 봤는지도 모르겠다. 순둥이를 도와 나는 나를 돕는다.
글·사진 김소민 은모래마을책방 지기/희망제작소 연구위원
* ‘인간관계 신생아’인 중년 여성과 간식 말곤 관심 없는 개의 도시 탈출 합동 도전기. 경남 남해에서도 남쪽 끝 작은 마을 상주에서 동네책방으로 망하지 않고 연결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4주에 한 번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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