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1066개 빈 집 중에 나를 받아줄 집이 없네

귀농인도 청년도 아닌 ‘애매한 중년’ 과 반려견 몽덕…2주간 고생하다 얻은 내가 깃들일 곳, 내 집
등록 2024-10-04 20:28 수정 2024-10-12 10:47
동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몽덕이. 김소민 제공

동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몽덕이. 김소민 제공


내 집은 어디에 있을까? 시골에 빈집이 널렸지만, 내 집은 아니다. 경남 남해에서도 땅끝 상주면, 내가 ‘인간 에이아이(AI)’라고 부를 지인의 5평짜리 원룸 방바닥에 개와 함께 앉아 남해군 누리집을 온종일 검색했다. 이 동네에 간판을 단 부동산중개사무소는 없다. 임대 정보는 당근마켓이나 군 누리집에 올라온다. 알짜는 알음알음으로 얻어야 한다. 그나마 인구 1600명 상주면엔 월세가 귀하다.

빈집도 많고 ‘귀농인의 집’도 있다는데

원래 들어가기로 한 집은 있었다. 1층은 내가 ‘신발달인’이라고 부르게 될 주인아주머니의 가게, 2층은 신발달인이 고양이와 함께 사는 집이고 거기서 가파르고 좁은 계단을 오르면 나타나는 3층 방 두 칸짜리다. 계약 기간이나 보증금이 없이 침대, 장롱, 가스레인지, 세탁기를 갖췄다. 남해로 이사 오기 한 달 전, 처음 그 집에 간 날, 신발달인은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아이고, 발가락에 힘이 너무 없네.” 탄탄해 보이는 60대 단발머리 여자의 이름을 알기도 전에 나는 발가락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떤 신발을 신어야 하는지 두 시간 동안 들었다. 나도 모르게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이 집 희뿌연 새시문엔 도어록이 없다. 불안하다. “누가 도어록을 달아. 다 문 열고 다니는데.” 남해살이 다섯 달째인 지금, 나는 그 말이 사실인 걸 안다. 그동안 나도 도어록은커녕 문을 잠근 적도 없다. 작은방 한쪽 구석이 눅눅해 보인다. 주인은 점검했으나 원인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지금은 벽지에 해안선처럼 꼬불거리는 노르스름한 경계를 보며 생각한다. ‘이게 무슨 누수야. 아트월이지.’ 그때는 현실을 몰랐다. 이사 한 주 전, 그 집에 들어가지 않고 ‘인간 AI’의 게스트룸에서 신세 지며 다른 집을 찾아보기로 했다.

1066동. 언론에 나온 남해군의 ‘1년 이상 미거주’ 빈집 숫자다. 1066개 중에 나를 받아주는 집은 없다. 시골 어르신들은 큰 우환이 없는 한 집을 내놓지 않는다. 물려받은 자식들도 마찬가지다. 내놓아도 외지인인 나는 그 정보를 알기 힘들다. 대개 집 안엔 쓰레기가 가득하다. 처리 비용이 만만치 않다. 폐가 주변엔 폐가가 모여 있다. 빈집투성이 마을에 덩그러니 혼자 살기는 겁난다. 군에서 리모델링해 싼 월세로 내놓은 ‘귀농인의 집’도 찾아봤다. 신청 기한을 맞춰야 하고 운 좋게 얻는다 해도 최대 1년까지만 살 수 있다. 나는 귀농인도 아니다. 청년은 군에서 월세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나는 애매한 중년이다.

월세 20만원에 나온 ‘주택’이 있다기에 짧은 다리 반려견 몽덕이를 데리고 달려갔다. 집 벽이 곧 울음을 터트릴 거 같다. 전에 창고였다고 하는데 지금도 그런 거 같다. 리모델링하면 되지만 내 소유도 아닌 집에 큰돈을 쓸 수 없다. 리모델링하고 2년 만에 쫓겨났다는 이주민 이야기도 들은 터다. 상주면에서 차로 20분까지 범위를 넓혀 찾아봤다. 산 중턱에 자리잡은 빌라의 이름은 ‘파라다이스’.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풍경은 파라다이스가 맞다. 건물이 세기말 풍경이다. 19가구 규모인데 두 가구만 산다. 나머지는 외지인들이 여름철 ‘세컨드 하우스’로 쓴단다. 비어 있다는 뜻이다. 그나마 주인은 월세론 주지 않겠다고 했다.

‘신발달인’의 집 앞에 앉아 있는 길고양이. 김소민 제공

‘신발달인’의 집 앞에 앉아 있는 길고양이. 김소민 제공


‘좋다’ 싶으면 한 달살이용… 지친다 지쳐

그때까지 나는 자연이 내 마음에 평화를 가져오는 줄 알았다. 아니다. 편의점이 안식처였다. 도시 불빛 속에서만 잠들었던 내게 까만 밤은 각성제다. 해변 근처 단독주택에 딸린 원룸엔 밤에 들어가다가 논두렁에 처박힐 거 같다. 큰맘 먹고 월세를 60만원으로 올려 찾아봤다. 잡풀이 잠식하긴 했지만 아늑한 정원이 있는 집이다. 6개월만 거주 가능하단다. ‘좋다’ 싶으면 한 달살이용, 월세가 100만원 이상이다. 반려견은 안 된다 하니 돈 있어도 못 들어간다.

지쳤다. 빗방울이 떨어졌다. 몽덕이와 둑길을 터덜터덜 걷는데 신발달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한테 집을 구해주려고 신발달인은 인맥을 동원했다. “여기 골목 펜션 주인이 2층을 리모델링 중이야. 거기 가보자~.” 펜션 아저씨는 4월에 이미 반바지 차림이다. 여러 방향으로 창을 냈다. 벽은 청색, 문틀은 짙은 갈색이다. 아직 싱크대는 없지만 그 집에서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는 개와 내가 그려진다. 반바지 아저씨는 혼자 쉬엄쉬엄 고치는 중이라고 했다. “세월아 네월아가 최고지.”(반바지 아저씨) 신발달인이 아저씨를 몰아붙였다. “월세를 내줘~.” 갑자기 쳐들어온 두 여자의 생떼에 아저씨는 당황했다. “월세 줄지는 아직 결정 못했는데.” “내줘, 내줘~.” 그 집을 나오며 신발달인은 내게 당부했다. “이 집 앞을 몽덕이랑 매일 왔다 갔다 해. 월세 달라고.” 결국 나는 그 ‘드림하우스’에 들어가지 못했다. 반바지 아저씨는 완벽주의 예술가, 남해의 가우디다. 다섯 달째 리모델링 중이다.

5월 햇살 아래 자포자기 심정으로 핫도그를 먹으며 텐트를 사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다들 몽덕이(반려견)를 받아주지 않는다니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요. 누추한 우리 집이라도 들어오고 싶으면 와요.”(신발달인) 정이 많은 그는 길거리 고양이 셋을 구조해 키운다. 이름이 ‘카오스’를 줄여 ‘칼’인 검은 고양이, 회색 날쌘돌이 ‘재리’, 투실투실 인물 좋은 ‘미나’다. 이 밖에도 신발달인의 가게 앞엔 동네 길고양이들이 한 줄로 서 있다. 두 주 동안 생고생을 하고 나니, 이 집이 펜트하우스 같다. 게다가 바로 앞에 내 마음의 성전인 편의점이 있다.

몽덕아 집에 가자

이사 온 다음날, 온종일 비가 왔다. 배가 고팠다. 밥할 기운이 없다. 집 옆 식당에 냄비를 들고 가 생선구이와 된장찌개 세트를 시켰다. “돈 때문에 파는 거 아닌지 알지?” 식당 아주머니는 냄비 가득 된장찌개를 담고 생선 두 마리를 구워줬다. 그 된장찌개를 일주일 먹었다. 이튿날 아침엔 신발달인이 김치볶음밥과 들깨로 끓인 미역국을 줬다.

된장찌개를 일주일 내리 먹고 물려 한동안 못 간 식당을 지나, 몽덕이가 고양이들과 한판 기싸움을 벌이는 1층을 지나, 희뿌연 새시문 너머 책상 앞에서 집중하고 있는 신발달인의 옆모습이 보이는 2층을 지난다. 닭을 튀겨 아들을 홀로 키워내고 오만 고양이들을 챙기는 이 여자는 몸의 균형을 바로잡는 ‘스본스도’를 파고들고 있다. 하도 읽어 가장자리가 닳아버린 그의 ‘스본스도’ 책과 색색깔 필기 노트를 보고 난 뒤엔 나는 그의 발가락 강연을 허투루 듣지 않는다. 신발달인은 영어도 공부 중이다. “세계여행을 하고 싶거든.” 그는 옥상에서 키우는 깻잎, 상추, 고추를 따다주고, 내 빨래를 걷어주고, 생선을 나눴다. 간식을 얻어먹을까 싶어 2층 대문 틈에 코를 들이박는 몽덕이를 끌고 3층으로 올라간다. 나는 비로소 집에 도착한 거 같다.

글·사진 김소민 은모래마을책방 지기/희망제작소 연구위원

* ‘인간관계 신생아’인 중년 여성과 간식 말곤 관심 없는 개의 도시 탈출 합동 도전기. 경남 남해에서도 남쪽 끝 작은 마을 상주에서 동네책방으로 망하지 않고 연결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4주에 한 번 연재합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