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책이라는 도끼로 금기를 깨부수다

<레드 콤플렉스> <우리 안의 파시즘> 등 한국 사회 도발한 출판사 ‘삼인’ 30년 이끌고 퇴임한 홍승권
등록 2024-07-06 04:45 수정 2024-07-11 04:23
30년 가까운 세월을 출판계에서 보낸 삼인 홍승권 부대표.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그림자 같은 사람이었지만 펴낸 책은 도발적이었다. 삼인이 낸 책들을 안고 자세를 잡아보라고 하자 먼 산을 바라봤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30년 가까운 세월을 출판계에서 보낸 삼인 홍승권 부대표.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그림자 같은 사람이었지만 펴낸 책은 도발적이었다. 삼인이 낸 책들을 안고 자세를 잡아보라고 하자 먼 산을 바라봤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1997년 6월 도서출판 삼인이 펴낸 <레드 콤플렉스>의 불온한 빨간색 표지는 옛 시대의 종언을 선포했다. 박홍, 이문열, 김영삼, 김대중, 리영희, 조정래, 윤이상, 서준식 등 인물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의 ‘레드 콤플렉스’를 비판한 책이었다. 신생 출판사의 도발은 대성공. 출간과 동시에 중쇄를 거듭했다.

‘삼인’은 고대 중국 은나라 말기에 있었던 어진 세 사람(미자, 기자, 비간)을 가리킨다. 세 사람은 은나라 마지막 임금 주왕의 폭정에 맞서 목숨을 걸고 충언했다. 삼인은 이처럼 난세를 헤쳐가며 곧은 이야기하기를 서슴지 말자는 뜻을 새겼다. 그 뒤로 한결같이 삼인은 한국 사회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고 집단 무의식의 그림자까지 건드렸다. 자본주의에 포섭된 한국의 대형교회를 신랄하게 비판했으며 영성가를 찾아 그들의 목소리를 담기도 했다.

지금까지 400여 권의 책을 출간해온 삼인의 홍승권(63) 부대표가 2024년 7월1일, 출판계를 떠난다고 했다. 1996년 9월 현암사 동료였던 이홍용(현 샨티출판사 공동대표) 대표와 함께 창립한 출판사를 1998년 주식회사로 전환하면서 부대표가 된 뒤 변함없이 출판계에서 일해온 그다. 삼인은 이제 출판계에서 잔뼈가 굵은 김경섭 대표가 두 번째 시즌을 이끌게 된다. 2011년 충북 괴산에 집을 지어서 서울을 오가던 홍 부대표는 퇴직 뒤 소농이 되어 ‘인생 이모작’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홍 부대표를 2024년 6월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약 30년간 펴낸 책만 400여 권
2002년 강원도 횡성 워크숍. 왼쪽부터 이춘호 당시 영업이사, 홍승권 부대표, 이홍용 현 샨티 대표. 홍승권 제공

2002년 강원도 횡성 워크숍. 왼쪽부터 이춘호 당시 영업이사, 홍승권 부대표, 이홍용 현 샨티 대표. 홍승권 제공


―출판일은 어떻게 시작했나. 
“보험회사에서 2년 정도 일하다가 1991년 현암사 영업자로 들어갔다. 이후 은행 대출을 받아 삼인을 창립했다.”

―어려서부터 텍스트에 대한 관심이 컸다고 들었다. 
“1970년대 고등학교 시절 누나가 ‘한국브리태니커’에 다녔다. 6살 터울인 누나가 가져다준 잡지 <뿌리깊은 나무>를 읽고 기자가 되고 싶었다. 그 잡지의 기사는 거의 모두 재미있었다. 편집도 뛰어나고, 최초의 한글 전용 가로쓰기를 시도한 잡지였다.”

홍 부대표의 누나는 1985년 최만수(1955~2017) 디자이너와 함께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인 ‘끄레 디자인 서비시스’(현 끄레어소시에이츠)를 만든 홍현숙(1955~2019) 대표다. 두 사람은 잡지 <뿌리깊은 나무> 아트디렉터를 지낸 이상철 대표가 창립한 디자인회사 ‘이가솜씨’에서 만났고 이후 세련되면서도 한국적 정체성을 살린 출판 디자인 혁명을 시도했다. 그들이 만든 독특한 디자인은 삼인이라는 출판 브랜드의 정체성을 만들었다.

―‘삼인’ 로고는 지금 봐도 개성 있고 고상하다. 
“최만수 대표가 한자 한자 집자해 만든 것이다. 시각적으로 아름다웠다. 끄레가 처음 광고기획 사무실로 시작해서 책 표지 디자인을 하게 되면서 출판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처음부터 출판계의 엄청난 러브콜이 있었다. 에릭 시걸의 <닥터스>(1990, 김영사) 표지 디자인이 유명했다.(이 책은 30년 가까이 표지 한번 바뀌지 않고 롱런했다.) 시드니 셀던의 <시간의 모래밭>(1988, 김영사)도 있다.”

―끄레가 출판사 등록도 했다. 
“누나가 출판을 하고 싶어 해서 호미 출판사를 등록했다. 삼인을 시작할 무렵이었다. 끄레는 삼인의 표지를 전적으로 맡고 인세를 갖고 가는 방식으로 계약했다. 당시 표지 디자인이 꽤 비싸서 처음엔 비용을 얼마 드리지 못했지만, 나중에 많이 팔린 책들로 밀린 빚을 갚을 수 있었다.”

―삼인의 책 가운데 어떤 책이 가장 많이 팔렸나. 
“<김대중 자서전>(2010, 전 2권)이 지금까지 9만 질 가까이 나갔다. 미국의 전략 전문가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21세기 미국의 세계전략과 유라시아 문제를 다룬 <거대한 체스판>(2000)이 6만 부 정도 팔렸고, 이철수 화백의 <나뭇잎 편지>(2005~2012) 시리즈가 지금까지 12만 부 정도 나간 것 같다.”

―‘자매사’가 여럿이다.
“2003년 자매 브랜드인 샨티를 만들었다. 생태환경문화잡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 편집장을 6년여 했던 박정은씨를 이레 출판사에서 '마이너스 스카웃'해 왔다. 연봉을 깎아서 모셔 온 것이다. 이홍용 대표와 호흡이 잘 맞아서 샨티는 독립해 나갔다.”

사회 비판한 <당대비평> 인수부터 휴간까지
삼인에서 나온 당대비평 5호. 홍승권 제공

삼인에서 나온 당대비평 5호. 홍승권 제공


삼인은 1997년 무렵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작가 조세희, 시인이자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으로 유명한 문부식 등이 주도해서 창간한 인문사회 비평지 <당대비평>을 1998년 인수했다. 이 잡지는 좌파 지식인들의 국가주의·민족주의 비판으로 참신한 의제를 선도했다. 특히 ‘우리 안의 파시즘’(임지현 등, 이후 삼인이 책으로도 발간했다)은 진보 진영 내부 비판을 시도해 큰 관심을 끌었고 이후 학계에서도 활발한 토론이 벌어졌다. 기자를 꿈꿨고 사회 비판적인 시선으로 출판 기획을 이어가던 홍 부대표에게 또 다른 도전이었다.

―<당대비평>을 인수할 때는 외환위기 무렵이었다. 어려웠을 텐데.
“1998년 가을·겨울호인 5호부터 2002년 가을호인 20호까지 발간했다. 당시 문부식 <당대비평> 편집주간이 여러 곳에 인수를 타진했지만 여의치 않아 삼인에 인수를 제의했고 4년 동안 발간했다. 이 잡지는 한때 수도권 및 일부 대학가 서점에서만 5천 부가 팔려나갔다. 현장에서 직접 확인한 수치다. 다른 계간지의 서점 판매량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팔렸다. 문 주간의 <조선일보> 인터뷰(2002년 7월12일치, 부산 동의대 사태 관련)를 계기로 잡지는 21호부터 ‘생각의나무’ 출판사로 발행처를 옮기게 됐다.”

<당대비평>은 2005년 신년특별호인 29호를 끝으로 더는 나오지 못했다. 줄어드는 독자 수를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좌우 ‘진영’과 무관하게 논쟁의 지평을 확장하고 급진적 기획으로 진보적 지식인 사회를 긴장시키며 담론의 물꼬를 바꾼 이 인문사회과학잡지는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삼인이 펴낸 첫 책인 <레드 콤플렉스>, 시대의 종언을 고하는 책이자 삼인의 출발을 선포한 책이었다.

삼인이 펴낸 첫 책인 <레드 콤플렉스>, 시대의 종언을 고하는 책이자 삼인의 출발을 선포한 책이었다.


―출판인으로서 도발적이고 급진적인 기획을 많이 내놨다.
“처음 <레드 콤플렉스>를 낼 때 대학 시절 리영희 선생님이 <말>지와 했던 인터뷰에서 ‘레드 콤플렉스’라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이 책은 삼인이란 출판사의 등장을 선포하는 책이었다. 강준만 교수에게 기획안을 담은 팩스를 넣었고 무작정 찾아가 섭외했다. 애초 강 교수의 단독 저서로 기획했지만 이후에 공저로 방향이 바뀌었다. 강 교수를 만날 때 ‘출판도 사회적 발언’이라는 얘기를 나눴다. 삼인이 낸 ‘인물 비평 총서’가 대표적인 잡지적 기획이자 사회적 발언이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15년 가까이 9명 정도 직원이 있었지만 경영 상태가 방만해서 1인 출판사가 됐다. 1인 출판사가 되고는 잡지적 기획을 꼼꼼히 할 수 없었다.”

―기독교를 비판하고 이현주 목사 등 영성가들의 책을 내는 일도 ‘잡지적 기획’이긴 했다.
“한국 교회를 비판한 책을 이렇게 많이 낸 데는 없을 것이다. 다행히 무사했다.”(웃음)

시대에 도전한 ‘잡지적’ 기획
1998년 12월 <당대비평> 워크숍에서 손경목 문학평론가(오른쪽)와 함께. 홍승권 제공

1998년 12월 <당대비평> 워크숍에서 손경목 문학평론가(오른쪽)와 함께. 홍승권 제공


―보람 있었던 때는. 
“<당대비평>을 내면서 ‘우리 안의 파시즘’ 논의를 시작하고 책으로 펴냈을 때, 리영희·강만길·김종철 선생 등을 만나고 책을 펴낼 때 보람이 컸다. 삼인이 내는 책들은 독자들의 반향이 컸고, 일도 재미있었다.”

―페미니즘 서적을 2000년대 초에 냈다. 그때는 페미니즘 책을 읽는 독자가 이렇게 많지 않았을 텐데.
“김은실 이화여대 교수가 당시 <당대비평> 편집위원으로 참여했고 아이디어를 많이 냈다. 1998년 <한국에 페미니스트는 있는가>(유숙렬 등 지음)부터 젠더와 한국의 민족주의를 다룬 <위험한 여성>(최정무·일레인 김 지음, 박은미 옮김, 2001) <동맹 속의 섹스>(캐서린 문 지음, 이정주 옮김, 2002) <용감한 여성들, 늑대를 타고 달리는>(막달레나의집 엮음, 2002) 등을 냈다.”

―김종철 선생과의 인연이 괴산 귀농의 계기가 되었다고 들었다. 
“1999년 비평집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김종철)을 발간한 뒤 선생이 그해 대산문학상 평론 부문을 수상했다. 상금 3천만원 중 2천만원을 보내주셨는데 선생도 <녹색평론>을 내면서 힘들 때였다. 누구 마음 누가 안다고 그랬던 것 같다. 나중에 <김대중 자서전>을 내면서 여력이 생겨 2천만원짜리 수표를 들고 찾아뵈었더니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며 <프레시안>에 보내라고 해서 보냈다.”


―홍 부대표가 기획한 마지막 책은 영화감독 이송희일의 기후위기 책이다.
“이송희일 감독이 페이스북에서 기후문제를 포스팅한 것을 보고 <기후위기 시대에 춤을 추어라>를 기획했다. 어쩌면 그렇게 빨리 외신기자 뺨치게 다른 나라 기후위기의 정보를 포스팅할 수 있는지 놀랐다. 관심을 갖고 적극 움직일 뿐만 아니라 박식하고 똑똑한, 그러면서도 존경스러운 필자다.”

―이제 귀농하면 기후위기가 더 실감 나겠다. 괴산을 귀농처로 택한 이유는.
“나이 마흔 이후 귀촌 집을 물색했다. 정범구 박사가 괴산에서 출마했을 때 응원하러 갔다가 좋은 단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막내가 초등학교 졸업할 나이여서 걔만 데리고 갔다가 큰 아이들은 나중에 왔다. 미술 하는 큰아이는 괴산에서 꽤 ‘인싸’(인사이더)가 됐다. 나는 괴산에서 ‘(청년모임 오롯 대표) 홍남화의 아빠’로 불린다. 하하.”

마지막 기획 책은 기후위기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해줄 이야기가 있다면.
“그냥 고맙다는 말밖엔. 덕분에 잘 지내올 수 있었다. 86세대 독자들, 90년대 학번 독자들도. 많은 필자와 관계를 맺으면서 책을 낼 수 있어 행복하고 고마웠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