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면 1.
“증언을 거부하겠습니다.”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은 2024년 6월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채 상병 특검법’ 입법청문회 자리에 화상으로 출석해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에게 브이아이피(VIP)가 격노했단 말을 언급한 사실이 있느냐”란 질의에 이렇게 밝혔다.
채 상병 순직 사건 외압 의혹의 출발인 ‘VIP 격노설’은 2023년 7월31일 대통령실 안보 분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해병대 수사관의 조사 결과(임성근 1사단장 등이 혐의자로 포함)를 보고받고 격노한 윤석열 대통령이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하느냐’며 질책했다는 의혹이다. 박 대령은 이 내용을 김 사령관과 대면한 자리에서 직접 들었다고 주장해왔다. 이후 채 상병 수사자료는 경찰에 이첩됐지만, 국방부 검찰단이 회수했고 국방부 조사본부가 사건을 재검토한 뒤 경찰에 다시 넘겼을 때는 최종적으로 임성근 사단장이 혐의자에서 빠졌다.
‘대통령의 격노’로 사단장이 혐의자에서 제외됐다는, 채 상병 사건 외압 의혹의 첫 그림이 그려진 배경이다. 그사이 수사자료를 경찰에 이첩한 박 대령은 항명 혐의로 군사재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김 사령관은 2024년 2월 박 대령 항명 혐의 군사재판에 증인으로 나와서도 “그런 사실이 없다”며 VIP 격노설을 부인했고, 군 검찰 조사 때도 “(박 대령이) 지어낸 이야기”라며 해당 의혹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던 김 사령관이 ‘위증죄’를 받을 수 있는 국회 청문회 자리에선 아예 증언을 거부했다.
# 장면 2
“임기훈 (당시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비서관이 전화가 와서 경북경찰청에서 전화가 올 것이란 얘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 부재중 전화가 경북청일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청문회 자리에서 “(2023년 8월2일) 임기훈 비서관과 어떤 내용으로 통화했느냐”는 이건태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이렇게 답했다. 자신이 먼저 경북청에 연락한 것이 아니었고, 그 사실도 대통령실을 통해 알았다는 취지의 답변이다.
8월2일은 박 대령이 경북청에 수사자료를 이첩한 날이면서, 해병대 수사단의 이첩을 ‘불법’이라 규정한 국방부 검찰단이 수사자료를 경북청에서 다시 가져온 날이기도 하다. 이날 유 법무관리관은 경북청에 전화해 사건기록을 회수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유 법무관리관의 이 증언이 있기 전까지, 대통령실이 채 상병 사건 수사자료를 다시 가져오는 데 관심이 있었을 것이라는 건 추론에 불과했다. 유 법무관리관의 통화 내역을 보면, 8월2일 오후 1시42분께 임 비서관의 전화를 받아 2분12초간 통화한 유 법무관리관은 곧바로 경북청 수사팀 간부에게 전화를 걸어 3분13초 통화했다. ‘대통령실(임기훈)→국방부(유재은)→경북청’으로 이어지는 통화 기록은 확인됐지만, 실제 대통령실이 어떤 얘기를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아서다. 그런데 ‘경북청의 연락’을 대통령실에서 전달받았다는 유 법무관리관의 이 증언은 사실상 사건기록을 회수하는 데 대통령실이 관여했음을 보여준다.
채 상병 특검법 입법청문회에서 드러난 이 두 장면은 채 상병 사건의 외압 의혹을 좀더 선명하게 드러냈다. 특히 이번 청문회가 채 상병 사건이 불거진 2023년 7월 말부터 8월 초의 윤 대통령과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의 통화 기록 등이 공개된 이후 열렸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 밖에도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과 임 비서관이 국방부 관계자(박진희 전 군사보좌관, 유 법무관리관)와 수차례 연락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들 통화는 채 상병 사건에서 ‘윗선’이 실제로 개입했는지를 판단할 중요한 정황이다.
이전에 국회에서 거짓 답변을 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임 비서관은 2023년 8월 국회 운영위원회에 나와 대통령 격노가 있었다고 알려진 7월31일 김 사령관과의 통화 여부를 묻자 “없다”고 답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공개된 임 비서관의 통화 기록에서 그는 이날 김 사령관과 두 차례 통화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임 비서관은 청문회에선 “날짜를 착각했다”고 말을 바꿨다.
위증을 고려해서였을까. 핵심 증인들은 청문회 자리에 나와 줄줄이 증언을 거부했다. “만일 진술에 거짓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선서한 김 사령관은 다른 질문에는 막힘없이 대답하다가 “7월31일 대통령이 주최한 회의에서 격노 사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정훈 수사단장에게 전달한 것 아니냐”(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는 질문에는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피의자로 지금 되어 있어 답변드릴 수 없음을 양해 바랍니다”라고 답변했다. 다른 위원의 유사한 질의에도 “형사소송법 148조에 의거 답변드릴 수 없음을 위원장님께서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박 대령이 “저는 해병대 사령관으로부터 분명하게 대통령 격노설에 대해 들었습니다”라고 증언한 것과 대조적이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도 마찬가지였다. 이 전 장관은 채 상병 사건기록을 회수한 8월2일 낮 12시7분부터 세 차례나 윤 대통령과 통화한 바 있다. 이건태 의원이 “대통령으로부터 어떤 전화를 받았나”라고 묻자, 이 전 장관은 “국방부 장관과 대통령의 통화를 밝히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말하며 증언을 거부했다. 이 전 장관은 경찰에서 회수한 사건기록을 국방부 조사본부가 재검토하기로 결정한 8월8일에도 윤 대통령과 아침 일찍 통화했다.
이번 입법청문회에선 ‘증언 거부’뿐 아니라 ‘선서 거부’도 눈길을 끌었다. 이 전 장관,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은 청문회가 시작되자 증인 선서를 거부했다. ‘형사소추나 공소제기를 당하거나 유죄 염려가 있을 경우 증언을 거부할 수 있다’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제148조를 근거로 들었다. 선서를 거부한 이 전 장관이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은 적극적으로 소명하거나 답변하려고 하자,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선서할 배짱도 없으면서 뭔 그리 말이 많으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윗선의 관여 정황은 유 법무관리관의 증언 말고도, 신범철 전 차관이 얼결에 통화 사실을 인정하는 듯한 대답에서도 나왔다. 신 전 차관은 “차관도 지금 (대통령과) 통화한 게 나오고 있다”는 장경태 민주당 의원 질의에 “그것은 회수에 관련된 것”이라고 답했다가, 장 의원이 다시 “대통령이 뭐라고 하셨나. 수사 결과 다시 회수해 오라는 것이었냐”고 묻자, “밝히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답변드리지 않도록 하겠다”며 답을 피했다.
채 상병 입법청문회는 야당인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위원들만 참석한 채 열렸다. 법사위는 입법청문회가 끝난 뒤 연 전체회의에서 특검법을 가결 처리했다. 2024년 5월 초 본회의 문턱을 넘은 채 상병 특검법은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국회가 재표결에 나섰으나 부결됐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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