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경기도지사 시절 ‘쌍방울그룹 대북송금’ 의혹과 관련한 혐의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재판에 넘기면서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 대표와 민주당은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면서 “검찰의 야당 탄압”이라고 맞서고 있다.
수원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서현욱)는 2024년 6월12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뇌물, 외국환거래법 위반,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등의 혐의로 이 대표를 불구속 기소했다.
이 대표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공모해 2019년 1~4월 경기도가 북한에 지급하기로 한 ‘황해도 스마트팜’ 지원 사업비 500만달러를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대신 내도록 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이 대표가 당시 대북제재 때문에 황해도 스마트팜 지원이 합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차기 대선 후보로서의 입지를 굳히는 등 정치적 이익을 위해 경기도의 자체적인 대북지원을 약속하고 김 전 회장에게 해당 비용을 대납하게 한 것으로 의심한다. 검찰은 또 이 대표가 2019년 7월부터 2020년 1월까지 이 대표의 방북 비용 300만달러를 김 전 회장에게 대신 내게 한 혐의도 적용했다.
2023년 9월18일 서울중앙지검은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검사 사칭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위증교사 의혹’ 혐의를 묶어 이 대표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유창훈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는 이 영장을 기각했다. 검찰은 백현동 개발 관련 혐의와 위증교사 혐의는 따로 떼어 불구속 기소했으나,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은 수원지검으로 돌려보냈다. 이 전 부지사의 재판 결과를 보고 난 뒤 기소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9개월이 흘러 2024년 6월7일 수원지법 형사11부(재판장 신진우)가 대북송금 관련 외국환거래법 위반,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뇌물, 정치자금법 위반, 증거인멸 교사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 전 부지사에게 징역 9년6개월에 벌금 2억5천만원을 선고하면서 검찰은 이 대표도 재판에 넘기기로 결정했다.
이 대표와 민주당은 ‘김성태 전 회장이 쌍방울 계열사의 주가를 띄우기 위해 대북사업에 뛰어들었다’는 내용이 담긴 국가정보원 보고서 등을 인용하면서 ‘김 전 회장의 대북송금은 경기도와 무관하며, 이 대표는 보고받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2018년 4월 쌍방울그룹 계열사인 나노스(현재 SBW생명과학)는 대북수혜주로 부상해 주가가 급등한 전례가 있었다.
하지만 이 전 부지사의 사건을 심리한 법원은 김 전 회장의 대북송금이 경기도 및 이 전 부지사와 무관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한겨레21>이 입수한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2018년 4월 주가상승을 경험한 김 전 회장이 그러한 이유(주가 띄우기 )로 대북사업을 추진하려 마음먹었다면 2018년 4월 가까운 시점에 관련 검토를 했어야 하는데 , 2018년 12월까지 그러한 정황이 없다 ”며 “김 전 회장이 2018년 10월 말께 이 전 부지사로부터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을 소개받아 알게 됐고 , 2018년 12월께 대북사업을 추진했다는 것은 이 전 부지사로부터 스마트팜 비용 대납 제안을 받고 대북사업을 추진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 ”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2018년 12월29일 김 전 회장이 중국 단둥에서 북한 사람들에게 교부한 사업제안서에 ‘협동농장 지원 ’ 내용이 담겼는데 쌍방울그룹이 협동농장 관련 기술이 없고, 추진하려는 사업이 아니었다는 점도 이 전 부지사의 부탁을 받아 경기도의 스마트팜 비용을 대납한 증거로 인용됐다.
이 전 부지사 쪽은 국정원이 안 회장 주변 인물의 (쌍방울) 주가조작 실행 가능성을 보고하며 안 회장과 ‘협조관계를 종료한 사실’과 2019년 9월 ‘친형 강제입원’ 관련 공직선거법 위반 항소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았던 이 대표가 ‘방북을 추진하긴 어려웠던 점’을 들어 관련성을 부인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국정원이 의혹 예방 차원에서 (안 회장과의) 협조를 중단한 것으로, 주가조작 가능성을 검증한 것은 아니”라며 “경기도에서 2019년 9월 이후에도 북한에 대표단 초청 요청 공문을 발송했고, 방북 관련 업무지시가 있었다”고 반박했다.
다만 법원은 김 전 회장이 경기도 스마트팜 비용과 이 대표의 방북 비용을 대납했다고 판결하면서도 이 대표가 해당 사실을 이 전 부지사로부터 보고받아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한겨레21>에 “재판부는 김 전 회장이 이 전 부지사로부터 ‘도지사(이 대표)에게 보고했다’고 들은 사실은 신빙성이 있고, 이에 따라 향후 이 대표가 자신을 도와줄 것으로 믿고 대북송금을 한 사실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실제로 이 대표에게 관련 내용의 보고가 이뤄졌고, 이 대표가 알고 있었는지는 재판의 쟁점이 아니어서 판단하지 않았다. 향후 이 대표의 재판에서 이 부분을 다투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 부지사는 2023년 6월 검찰 조사에서 “쌍방울이 방북 비용을 전부 처리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었고, 이재명 대표에게 보고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가 재판 과정에서 이 진술을 뒤집었다. 그는 2023년 9월, 옥중 자필 의견문에서 “검찰로부터 압박을 받아 허위 진술했다”고 밝혔고, 2024년 4월 재판 종결을 앞두고선 ‘검찰청 내에서 술판을 벌여 회유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이 전 부지사가 주장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쌍방울 특검법’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은 ‘쌍방울 특검법’을 통해 검찰을 압박하고 있지만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점점 부담스러워지는 상황이다. 수원지검의 기소로 이 대표가 받아야 하는 재판이 모두 네 개로 늘었기 때문이다.
현재 이 대표는 서울중앙지법에서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대장동·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과 성남 에프시(FC) 불법 후원금 의혹 사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 “잘 몰랐다” 발언 등) 사건의 재판을 번갈아가며 받고 있고, 한 달에 한 번 위증교사(2019년 경기도지사 시절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 관련) 재판도 받고 있다.
여기에 대북송금 의혹 재판까지 더해지면 이 대표는 일주일에 최소 세 차례 재판에 출석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대북송금 사건 재판이 수원지법에서 열릴 경우 이동 거리가 길어지는 부분도 이 대표에게 큰 부담이다.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과 위증교사 사건은 재판이 후반부에 접어들어 이르면 2024년 안에 1심 결과가 나올 전망인데, 하나라도 금고형 이상의 형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이 대표의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이 대표는 검찰과 사법부를 압박하면서 대여 투쟁을 이어갈 뜻을 밝혔다. 그는 검찰의 대북송금 사건 기소 이후 기자들과 만나 “이 사건이 얼마나 엉터리인지는 우리 국민들께서 조금만 살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검찰의 창작 수준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며 “이럴 힘이 있으면 어려운 민생을 챙기고 안보, 경제를 챙기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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