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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세대가 해결하라는 건 공평하지 않다”

헌법소원 제기 4년 만에 열린 ‘기후소송’ 공개변론 방청기
정부의 미흡한 기후대응 계획으로 기본권 침해 여부 쟁점
등록 2024-06-07 19:22 수정 2024-06-18 10:08
2024년 4월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소송을 제기한 환경단체 활동가, 공동 대리인단이 기자회견을 열어 소송의 취지와 쟁점을 설명하며 빠른 판결을 촉구하고 있다. 김정효 한겨레 기자 hyopd@hani.co.kr

2024년 4월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소송을 제기한 환경단체 활동가, 공동 대리인단이 기자회견을 열어 소송의 취지와 쟁점을 설명하며 빠른 판결을 촉구하고 있다. 김정효 한겨레 기자 hyopd@hani.co.kr


2024년 4월23일, 헌법재판소에서 국내 최초이자 아시아 최초로 기후소송에 대한 첫 공개변론이 열렸다. 이미 전세계 각국 법정에서 정부와 기업의 부족한 기후위기 대응에 책임을 묻는 소송이 진행됐고, 이를 인정하는 판결이 잇따른다. 한국과 세계의 기후소송에 대한 이야기를 2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주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이 물었다. “우리나라의 탄소 배출 목표치가 산업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청구인과 피청구인 쪽 주장이 다릅니다.”

넥타이를 매면 체온이 올라 평소에 넥타이를 매지 않는다며 재판정에서 인사말을 꺼낸 박덕영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말했다. “어느 방향 어느 시각이냐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당장에는 비용 부담이 늘겠지만 정부가 나서서 감축률을 높이면 산업계도 기술혁신을 촉진하고 탄소 배출을 적게 하는 제품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변하면 우리 산업에는 또 다른 기회입니다.”

방청 경쟁 치열했던 공개변론 

앞서 청구인 쪽 참고인으로 나선 박 교수는 한국 정부의 책임을 지적했다. “그동안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너무나 수동적, 소극적으로 설정해왔습니다. 국제사회 압력으로 2021년에야 2030년 감축 목표를 상향했지만 한국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는 부족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2024년 5월21일 2차 변론일 대심판정에 들어갈 수 있는 방청권. 한겨레 최우리 기자

2024년 5월21일 2차 변론일 대심판정에 들어갈 수 있는 방청권. 한겨레 최우리 기자


2024년 5월21일 기후소송(공식 사건명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사건’)의 2차 공개변론일이었다.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정문 앞 민원실에서 온라인으로 미리 참관을 신청한 뒤 추첨 끝에 당첨된 사람들만 대심판정에서 직접 변론을 방청할 수 있는 비표를 나눠줬다. 대심판정 밖에는 대기하는 이들이 방청에 성공한 이들만큼 많았다. 기자도 4월23일 1차 공개변론일 추첨에서는 낙방해 영상으로 지켜봤다.

내게 왜 이 사건이 중요한지 묻는다면, 내일의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이다.

헌법소원이란 공권력에 의해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된 경우, 그 침해된 기본권의 구제를 청구하는 제도다. 이번 헌재 기후소송에 병합된 사건은 모두 네 건이다. 한국 정부를 상대로 기후위기 대응이 미진해 권리침해를 호소하고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한 게 네 차례여서다. 2020년 3월(청소년 19명), 2021년 10월(농민·노동자 등 123명), 2022년 10월(아기 등 62명), 2023년 7월(환경단체 회원 등 51명) 각각의 사건으로 따로 접수됐지만 같은 쟁점을 받아들고 있다. 기후위기 문제가 심화한 뒤 삶의 순간들이 바뀌고 예측 불가능한 불안과 절망에 닿아 있게 된다면, 이를 보호하고 예방하는 것이 정부 책임이라는 게 청구 취지였다. 미래세대인 아기들과 청소년, 농어민과 노동자 등 기후위기로 직접 삶의 변곡점을 맞이한 이들이 청구인이고, 대한민국 정부는 피청구인이다.

1차 변론은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2018년 배출량 대비 2030년까지 40% 감축)가 어느 수준의 기후위기를 야기하는지를, 2차 변론은 감축 목표가 한국의 국제적 책임에 부합하는지를 논했다. 기후대응의 시급함을 촉구하는 청구인과 법적 책임을 지울 만큼 대응을 잘 못하지 않았다는 피청구인(정부)의 논리는 지금 현재 한국 사회에서 대립한 여러 목소리를 대변한다.

기후대응이 법정으로 갈 수밖에 없던 이유

“우리나라는 처음에는 (배출량을) 천천히 줄이다가 뒷부분(2030년 이후)에 가서 많이 줄이는 걸로 돼 있습니다. 성적이 안 좋은 학생이 매일같이 조금씩 공부하면 10점 올리는 건 쉽습니다. 그렇지만 90점이 된 다음 하루를 다 투자해도 1~2점 올리기 어렵습니다.”(1차 변론일, 청구인 쪽 참고인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

법의 심판이 필요했다.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개인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공공의 역할과 책임이 달라질 때 더 큰 변화가 쉬이 찾아온다. 기후대응은 거대한 체제 변화를 요구한다. 그 변화를 이끌어내기까지 많은 이해관계자의 갈등과 대립, 타협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기 때문에 기후대응 과제는 이미 거대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사회의 갈등을 해소하고 합리적 대안을 찾기 위해 존재하는 법의 판단을 묻게 됐다고 볼 수 있다.

“청구인은 연도별 온실가스를 어떻게 줄일지 연도별 대책이 없고, 연도별 단축 목표를 실패했을 경우 단축 계획을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 그런 것들이 없다 등의 이야기를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이제 어떻게 효율화하는 것이 맞는 건가요.”(1차 변론, 김형두 재판관 질문 중)

재판관들의 관심이 반가웠다. 수차례의 대규모 기후시위에도 사회의 응답은 미흡했다. 어려운 용어, 복잡한 계산식, 기술 개발과 국내외 가변적 상황과 미래 계획을 따져야 하는 기후위기 문제는 오늘의 안녕도 기대하기 어려운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재판관들은 재판관들끼리의 평의에서 풀지 못한 의문을 공개변론을 통해 쏟아냈다. 외롭게 거리에서 기후와 인권을 외치던 이들에게 재판관들의 관심은 긍정적 변화로 느껴지기에 충분했다.

이날 대심판정에서 만난 한 환경단체 활동가는 “여기까지 오는 데 4년이나 걸렸다. 모두 고생했다”며 웃었다.

2024년 4월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기후소송 1차 변론 시작 전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자리에 앉아 있다. 김정효 한겨레 기자 hyopd@hani.co.kr

2024년 4월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기후소송 1차 변론 시작 전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자리에 앉아 있다. 김정효 한겨레 기자 hyopd@hani.co.kr


한국 사회에서 터져나온 ‘녹색 목소리들’이 공개변론을 이끌어냈다. 헌법소원뿐 아니라 국가인권위원회나 법원에서 기후위기와 관련한 권리 투쟁은 꾸준히 늘고 있었다. 문재인 정부가 2050탄소중립을 선언한 해인 2020년, 그해 12월 시민사회단체의 연합단체였던 ‘기후위기비상행동’은 기후위기 피해자 40명의 인권침해 대응을 요구하는 진정을 인권위에 제기했고, 2021년 7월 인권위가 첫 실태조사에 나선 뒤 2022년 12월 “기후위기는 인권 문제”라고 선언했다. 2023년 1월 국가에 “기후위기 속 인권 보호는 국가의 의무”라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기업과 정부의 책임을 묻는 기후시위를 둘러싼 민·형사상 책임을 판단하는 여러 소송도 법원으로 향했다.

2021년 1월 <한겨레>도 신년기획 ‘기후위기와 인권’ 시리즈를 보도하며 기후위기로 삶의 위기에 봉착했던 여러 시민의 증언을 기록하려 노력했다.

현행법은 기후위기를 대응하기에 충분한가

한국 기후위기 헌법소원의 쟁점은 명확하다. 옛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등 2009년 이명박 정부 이후 한국 사회에서 세워 올린 기후위기 대응 관련 성문법의 한계를 심판하는 사건(위헌 확인 등)이다. 법이 규정한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포함해 연도별 감축 목표를 더 상향 조정하지 않으면 생명권, 행복추구권, 환경권 등의 기본권이 침해받는다는 것이 청구인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법률을 심판하는 것 이면에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기후위기가 바꿔놓을 미래와 기후위기를 의심하는 현재, 인권과 경제성장이라는 대립하는 가치 중 2024년 한국 사회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묻는 심판이다.

“2030년 이전에 탄소예산(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 인류에게 허용되는 온실가스 배출 총량)이 소진되고 ○도시의 경우 2035년에는 더욱 소진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기본권 보호 의무를 전혀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고, 감축 목표 역시 지역별로 나누어볼 때 ○의 평등권을 침해하고 있습니다.”(1차 변론, 청구인 쪽 대리인 이병주 변호사)

“이 사건 심판 청구 대상은 현재세대와 미래세대 모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정부의 역할을 규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정부가 취하는 각종 조치는 결국 그 효과가 전 국민에게 미치는 것이고 그 효과와 영향이 연령별, 세대별로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1차 변론, 정부 쪽 대리인 정부법무공단 ○변호사)

어려운 법리 용어를 걷어내고 나면 결국 질문은 쉬워진다. 기성세대가 미래세대의 권리를 침해했는가, 오늘의 성장에 부담되는 기후위기 대응 숙제를 언제부터 시작할 것인가 등이 숨은 질문이다.

당신의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
한국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이 헌법에 합치하는지를 묻는 기후소송 두 번째 공개 변론이 열린 2024년 5월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아기기후소송 최종 진술자로 나선 한제아양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백소아 한겨레 기자 thanks@hani.co.kr

한국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이 헌법에 합치하는지를 묻는 기후소송 두 번째 공개 변론이 열린 2024년 5월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아기기후소송 최종 진술자로 나선 한제아양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백소아 한겨레 기자 thanks@hani.co.kr


“한제아양 생년월일 말씀하세요.”(이종석 헌법재판소장)

“2012년 4월○○일생입니다.”

“안 떨려요?”(이 재판소장)

“2012년 4월○○일생입니다.”

2차 변론의 막바지, 청구인과 피청구인의 주장이 대립할수록 고민에 고민이 더해져 저마다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은 심판정에서 한양 덕분에 가벼운 웃음이 터져나왔다. 청구인 대표 3명 자격으로, 길었던 공개변론의 막바지 최종변론에 나선 12살 한제아양의 작은 실수였다.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당당하게 답했지만, 한양이 이 자리를 얼마나 무겁게 느끼고 떨고 있는지를 모두에게 공유해준 순간이었다.

청구 당시 청소년이었지만 지금은 23살 성인이 된 김서경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10년 넘게 전국 환경 현장에서 생명을 지키기 위해 고민해온 황인철 녹색연합·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위원장도 한양과 함께 최종변론에 나섰다. 황 위원장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이 나라 주권자들”임을 강조했고, 한양은 “우리에게 이 문제를 해결하라는 건 공평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들의 최후변론이 ‘당신의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로 들렸다. 빈곤하거나 어리거나 나이 든 사회적 약자부터 쓰러뜨리는 기후위기라는 파도에 맞서 정부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고 물었다.

아기기후소송 최종 진술자로 나선 한제아양이 2024년 5월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기후위기 헌법소원 2차 변론이 시작되기 전 자신이 진술할 장소를 확인하고 있다. 백소아 한겨레 기자 thanks@hani.co.kr

아기기후소송 최종 진술자로 나선 한제아양이 2024년 5월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기후위기 헌법소원 2차 변론이 시작되기 전 자신이 진술할 장소를 확인하고 있다. 백소아 한겨레 기자 thanks@hani.co.kr


헌재의 결정은 당연히 법리적 해석에 기반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1·2차 공개변론 내내 정부의 논리는 이를 겨냥했다. 한국 정부는 현재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고,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수립하는 행위는 국가의 광범위한 재량이 인정돼야 하며, 이 때문에 기본권 보호의무에 대한 과소보호금지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미래 vs 현재, 인권 vs 성장… 당신의 선택은?

한양의 최종변론이 끝나자, 헌법재판관 9명을 대표해 이 소장은 “잘 들었습니다”라는 말을 따로 남겼다. 현재 성장 속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가, 미래세대와 인권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 더 바람직한가. 헌법재판소는 2024년 가을로 임기가 끝나는 재판관이 다수이기 때문에 2024년 9월 이전 답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기후소송은 헌재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 어떤 답을 써내려갈 것인지 묻고 있다. 당신의 답은 무엇인가.

최우리 <한겨레> 기자, <지구를 쓰다가> 저자 ecowoori@hani.co.kr

*‘세계 법원들은 기후 소송 중’(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639.html) 기사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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