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연평균 100억 넘게 들인 의료용 대마 특구, 3년간 허송세월?

경북바이오산업연구원 김남수 박사 “그간 연구 성과 묻지 않을 수 없어”
특허 ‘0건’에 수억 장비 들이고도 이용할 연구자 없어 활용률은 낮아
등록 2023-12-09 11:30 수정 2023-12-12 09:17
경북 안동시 경북바이오산업연구원 모습. 류석우 기자

경북 안동시 경북바이오산업연구원 모습. 류석우 기자

‘의료용 대마, 헴프(HEMP).’ 국내에서는 생소하지만 이미 세계에서는 활발하게 연구하는 분야다. 헴프 성분 중 진정 효과가 있는 칸나비디올(CBD)만 해도 국외 시장 규모가 2028년 15조원까지 성장하리라는 예측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국내에선 그림의 떡이다. 법으로 금지된 성분이기 때문이다.

의료용 대마가 한 귀퉁이나마 합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온 건 2019년이다. 법이 개정돼 뇌전증 등 희귀·난치 환자를 위해 네 종류의 대마 성분이 있는 의약품을 수입할 길이 열렸다. 2020년엔 우리도 제조나 수출 등을 할 수 있게 규제를 풀어보자는 취지에서 ‘경북산업용헴프 규제자유특구’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났다.

포털 사이트에 ‘의료용 대마’를 검색해보면 희망적인 제목이 넘쳐난다. ‘규제 해제를 앞둔 의료용 대마’ ‘의료용 대마, 국내 개발 첫 성과’ 등등. 그동안 특구는 2022년 우수특구로 지정됐고, 기존 2024년 7월에서 11월로 기간도 연장됐다. 2024년까지 들어가는 예산은 464억원이다. 1년 남았다. 한국도 의료용 대마 규제를 풀고 세계시장에 당당히 합류할 수 있을까. 기술력은 있을까. 규제를 풀면 부작용은 없을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경북바이오산업연구원(이하 연구원)을 찾았다. 연구원은 특구 사업에 참여하는 사업자이자, 총괄하는 기관이다.

2023년 6월22일 오후 4시쯤 찾은 연구원의 분위기는 기대와는 달랐다. 쉼 없이 돌아가는 장비들과 실험가운을 입고 열심히 연구에 매진하고 있을 연구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김남수 박사를 만난 건 불이 꺼진 어두운 복도에서였다. 그는 헴프 성분 분석과 관련해선 국내 최고 권위자다. 연구원에 초빙돼, 2023년 초부터 헴프 성분 분석을 연구했다. 그가 안내한 연구실은 적막했다. 기계가 가득 들어선 실험실에서 활발하게 장비 설명을 마친 그가 문득 이런 말을 꺼냈다. “특구는 개선돼야 합니다.” 그날의 이야기는 도입부였다. 그리고 5개월이 지난 11월17일, 서울에서 김 박사를 다시 만났다. <한겨레21>은 김 박사와의 두 차례 인터뷰, 그가 쓴 책, 연구원에서 받은 자료, 연구원 관계자 인터뷰 등을 통해 경북 헴프 특구 사업의 문제점과 국내 의료용 대마 연구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특구’가 ‘특권’이 된 사업

5개월 만에 다시 만난 김 박사는 <대마이야기2-과학의 선택>이란 제목의 책부터 내밀었다. 첫 소제목이 ‘특구가 특권이 된 대마산업’이었다.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i>“특구라는 이름으로 다른 지역의 손발을 묶고, 많은 연구자들이 참여조차 할 수 없도록 벽을 쌓아 그 안에서만 소수의 사람들이 연구를 할 수 있게 해준 3년 동안의 선공 기회는 끝나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얼마나 많은 연구와 경험이 축적되었고, 그 산물인 지적재산과 논문, 그리고 대마 시장을 확보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규제만 푼다면 세계와 당당하게 겨룰 수 있는 기술과 시장을 확보한 것일까?”</i>

김 박사는 지금껏 연구원이 3년 넘게 연구하면서 연구원이 ‘출원인’으로 특허를 내거나 논문을 등록한 사례가 한 건도 없다고 지적했다. 연구원에는 특허출원 47건, 특허등록 11건, 소프트웨어(SW)등록 6건, 디자인등록 7건이 있지만 모두 기업이 ‘출원인’이었다. 연구원 관계자는 “연구원 자체는 특구를 전체적으로 관리하고 신규 특허 사업을 모집하는 것이라, 출원인으로 된 논문이나 특허는 없다”고 설명했다.

김 박사는 각 기업 특허의 문제를 이렇게 설명했다. “특구의 목적인 실증으로 규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아요.” 기업의 목적과 특구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기업은 냉정하잖아요. 돈이 안 되면 나가요. 정부에서 돈 받아 개인들이 특허를 출원하고, 이를 주관기관인 연구원과 기술 보유나 이전, 전용실시권 등을 의논하지 않고 가지고 나가는 거예요. 그리고 더는 특구 발전에 공헌하지 않는 게 큰 문제라고 봐요. 처음 함께 시작했던 업체들도 많이 사라졌어요.”

2021년 처음 사업에 참여한 22개 기업과 기관 중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 기관은 14개다. 3년 동안 사업자는 계속 변경됐고, 지금은 처음보다 16곳이 늘어 모두 30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연구원도 관리하지 않지만, 참여 기업으로서도 이점이 없다. 연구원 사정을 잘 아는 A씨는 “참여 기업들의 만족도가 전반적으로 낮다”며 “결국 기업들은 산업화가 잘돼 돈을 벌어야 하는데, 이렇게 결론 없이 진행되다보면 남는 게 없다”고 말했다.

용어 설명

HEMP(헴프) 일반적으로 THC 함유량이 0.3% 아래인 의료용으로 재배되는 대마를 말함. 환각성 물질이 있는 마리화나와 구별돼 비환각성 산업용 소재로 이용.
CBD(칸나비디올) 대마에 있는 진정 등의 효과를 지닌 성분. 난치성인 뇌전증 이나 다발성경화증 같은 질환을 치료하는 데 쓰임.
THC(테트라히드로칸나비놀) 대마에 있는 향정신성 효과가 큰 성분. 통증질 환이나 마취 등에 활용되나 환각작용을 일으킴.
특구 사업자 반복되는 이탈, 관리도 허술

물론 기업이 낸 성과도 있다. 연구원은 원료의약품 제조·수출 실증을 통해 고품질 ‘iCBD’(정제 과정을 거쳐 분리한 순수 CBD)를 약 32㎏ 제조했다는 성과를 강조한다. iCBD는 국외에서 뇌전증 치료제인 에피디올렉스(Epidiolex) 등의 원료로 쓰인다. 그러나 김 박사는 이미 의약품 원료로서 iCBD는 세계시장에서 가치가 빠르게 떨어져 경제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최근 CBD 가격이 폭락했어요. 2년 전만 해도 평당 재배로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이 18만원 정도였다면, 지금은 1만원 이하로 내려갔거든요. 특히 라오스산, 타이산은 미국산보다 한 6배 이상 더 싸요. 의료용 iCBD의 국외 수출은 순진하고 허울뿐인 희망 없는 사업이에요.”

연구원 쪽은 iCBD가 단순 원료일 뿐, 이를 가공해 의료품을 생산하면 부가가치가 높아진다고 반박했다. iCBD만 수출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가공제품을 생산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원료의약품’으로 등록하지 못하면 경제성도 없다.

현재 특구엔 iCBD를 가공해 의약품을 생산하는 연구는커녕 iCBD를 수출하려면 거쳐야 하는 공정 자체도 구축돼 있지 않다. 원료의약품을 수출하려면 지엠피(GMP·우수의약품 제조관리 기준) 공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 자체를 만들지 못했다. 최정두 헴프천연물연구센터 센터장(전 규제자유특구 단장)은 “지엠피 공장을 만들려면 최소 2~3년 걸린다”며 “만든 뒤에도 인정받는 절차가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특구 사업 기간 내에 구축하기 어렵다고 해서 중장기 과제로 추진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특구에서 생산된 iCBD는 국내에서 의료용으로 개발된 사례도 없다. 특구 사업자들은 iCBD를 원료의약품 대신 화장품 등에 사용할 수 있도록 특구 사업 범위를 넓혀달라고 요구하는 상황이다.

연구원이 갖춘 장비를 다룰 수 있는 연구자가 없는 것도 문제로 지적했다. 연구원은 특구를 총괄하지만 특구의 주요 실증 사업 세 가지에 모두 참여한다. 기관 직제상 헴프와 관련된 연구원도 많다. 김 박사는 “해외 인증 수준의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연구자가 없다”고 말했다. 그가 언급한 장비는 CBD와 THC 성분 분석 등에 쓰이는 LC-MS/MS(액체크로마토그래피 텐덤질량분석기)와 GC-MS/MS(가스크로마토그래피 텐덤질량분석기) 등 기본장비였다. 수억원을 호가한다.

연구원은 “추출과 분리 정제 등에 사용하는 장비는 활용률이 50% 이상 되지만, 분석 장비는 2023년 초에 구축돼 상대적으로 활용률이 낮은 20% 정도”라며 “물론 사용이 서툰 장비도 있지만, 장비에 따라 활용률이 낮은 것도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원의 장비는 기업들의 수요조사를 한 뒤 마련됐다. 연구원과 기업 모두 장비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연구원 쪽은 “총괄기관으로서 장비를 구축·관리하는 일을 더 많이 했다”며 “앞으로는 그걸로 자체적으로 연구하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남수 박사가 2023년 11월17일 서울 안암동 한 카페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김남수 박사가 2023년 11월17일 서울 안암동 한 카페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재래종 대신 외래종 연구, ‘배스' 될까 우려

김 박사는 특구에서 외래종 헴프를 수입해 사용하는 점도 문제라고 봤다. “해외에서 외래종을 수입해 여기서 재배하는데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한국에서 잘 자란다는 근거도 없고요. 관리가 잘 안 돼 분실률도 높습니다. 이런 걸 어딘가에 돌아다니면서 키우면 배스처럼 생태계를 교란할 수도 있거든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규제하는 THC 함유량은 대마 씨앗의 경우 5ppm(0.0005%), 대마 씨유는 10ppm(0.001%)이다. 미국 등 국외에선 대부분 규제 수준이 3천ppm(0.3%) 정도다.

특구에선 왜 재래종을 사용하지 않을까. 연구원 쪽은 “국내 청삼종은 유해물질인 THC 함량과 CBD 함량이 수입 품종보다 낮다”는 이유를 밝혔다. 실제 재래종은 1977년 대마관리법 제정 이후 THC와 CBD가 대부분 제거된 형태로 개량됐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산업용 헴프 재배를 하지 않았어요. 유일하게 개발된 종인 청삼은 섬유를 채취할 목적으로 만들었어요. 품종 개량에는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이 걸립니다. 애초 실증 기간을 2년 받은 특구로서는 그런 사업은 못하죠.” 최정두 센터장의 말이다. 연구원 쪽은 “높은 CBD 함량을 생산할 수 있는 국산 재래종을 개발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개발 과제를 계획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사업자들이나 연구원은 규제를 THC 함유량 0.3%까지 풀어주길 바란다. 경북에 지역구를 둔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은 2021년 THC 함유량 0.3% 이하의 대마는 마약류에서 제외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김 박사는 “CBD 합법화는 바람직하지만, THC는 더 엄격하게 규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THC 함유량을 0.3%까지 허용한다면 재래종과 THC 함유량이 큰 차이가 나는 품종이 우후죽순 넘어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미국 등 해외에서 THC 함유량을 0.3%로 정한 것은 그 나라 재래종이 평균 그 정도 나오기 때문”이라며 “수입종 분석을 해보면 CBD나 THC 말고도 우리가 분석할 수 없는 다른 이상한 성분도 나온다”고 말했다. 국내 재래종의 경우 THC가 가장 많이 함유된 씨앗 껍질에서 평균 300ppm(0.03%) 정도 검출된다. 그래서 김 박사는 규제기준이 500ppm(0.05%)가 적정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3년 동안 도돌이표, 새 특구가 필요할까

결국 경제성도 안정성도 잡지 못하고, 원천기술과 활용 가능한 지식재산권을 확보하지 못한 방향으로 가는 형국이다. 연구원은 최근 ‘산업용헴프 글로벌혁신특구’ 유치를 시도하고 있다. “국내 판매는 어려우니 수출이라도 주력해보자는 취지예요. 딱 우리 특구에 부합하는 사업이거든요. 그리고 원료의약품뿐만 아니라 화장품, 식품까지 산업군도 넓히는 게 목적이에요.” 최 센터장이 말했다. 글로벌혁신특구로 지정되면 진정한 의료용 대마 산업의 포문을 열 수 있을까. 다시, 3년 전으로 돌아가는 질문이다.

안동(경북)=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김남수 박사는 누구?

미국 엘패소 소재 텍사스주립대학에서 바이오재료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해외고급과학자초빙(Brain Pool) 사업으로 초청된 과학자. 2020년 한국에 들어와 고려대에서 대마 성분 분석을 시도했지만, 분석할 대마 성분 샘플조차 구하기 어려워 2023년 경북바이오산업연구원 으로 자리를 옮겨 1년 동안 초빙연구원으로서 헴프 성분 분석법 연구를 했 다. PK-16을 이용한 대마 표준물질 제조와 대마 연속 분석분리법, 청삼 의 전처리공정 등 국내외 특허 45건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임상실험이 가 능한 타이의 쭐랄롱꼰대학에서 PK-16 분석 해외인증과 HHCH를 포함한 PK-18 분석기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