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12일 정부와 국민의힘이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를 열었어. 이 자리에 나온 조현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실업급여 담당자가 이런 말을 했어. “퇴직하면 퇴사 처리되기 전에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사람들이 센터를 방문합니다. 웃으면서 방문하세요. 어두운 얼굴로 오시는 분들은 드무세요. 장기간 근무를 하고 갑자기 실업을 당해서 저희 고용보험이 생겼었던 그 목적에 맞는 남자분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오시는데 여자분들, 계약기간 만료, 젊은 청년들은 이 기회에 쉬겠다고 옵니다. 실업급여를 받는 도중에 해외여행 가요. 그리고 자기 돈으로, 일했었을 때 살 수 없었던 샤넬 선글라스를 사든지 옷을 사든지 이런 식으로 즐기고 있습니다.” 여성·청년·비정규직·저소득층을 싸잡아 비하한 거야.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회의가 끝난 뒤 “실업급여가 악용돼 달콤한 보너스라는 뜻의 ‘시럽(Syrup)급여’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고 말했어. 그러면서 실업급여 하한액을 줄이거나 아예 없애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도 밝혔어.
실업급여는 노동자가 실직해서 일자리를 찾는 기간에 주는 급여야. 실직하기 이전 18개월 동안 180일 이상 근무하고, 자발적으로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다면 말이야. 물론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퇴사해도 ‘어쩔 수 없는 이직’이었단 이유가 인정되면 받을 수 있어. 재원은 사업주와 노동자가 내는 보험료야. 노동자를 고용하는 모든 사업주는 반드시 고용보험에 가입해야 하거든. 그 부담을 노동자와 사업주가 똑같이 부담해(각각 월급여의 0.9%씩). 이렇게 모은 기금으로 실직했을 때 급여를 받는 거지. 이 제도는 1995년 도입됐어. 그 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코로나19 대유행까지 직장을 잃은 이들의 삶을 떠받쳐왔고.
정부·여당은 실업급여를 축소·폐지해야 한다는 근거로 월급과의 형평성 문제를 꺼내들었어. 일하고 받는 월급(세후)보다 실업급여가 많은 ‘역전 현상’이 광범위하게 발생한다는 거야. 어떻게 계산한 걸까? 실업급여는 실업 전 3개월 동안 받은 평균월급의 60%를 지급해. 받는 액수가 너무 적지 않도록 최소한의 금액(하한액)도 정해놨어. 최저임금의 80%(일 6만1568원)로. 근데, 최저임금을 받더라도 4대 보험이나 세금으로 숭숭 빠져나가는 부분이 생기잖아. 그러면 최저임금 노동자의 세후 월급은 179만9800원(2022년 기준), 최저 월 실업급여는 184만7040원이 된다는 게 정부·여당 주장이야. 이런 실업급여 수급자가 2022년 163만 명 중 28%인 45만3천 명이나 된대. 그래서 고용보험기금이 쌓아놓은 적립금도 확 줄었단 거야.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약 10조원에서 2022년 약 6조원으로. 그러니 실업급여 하한액을 최저임금의 80%에서 60%(월 138만원)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래.
왜곡된 주장이야. 최저임금 노동자의 고용보험료를 정부가 대신 내주는 지원 제도가 있거든. 면세 혜택도. 이걸 고려하면 실업급여가 세후 월급보다 많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전문가들 계산으론 실업급여를 받는 노동자 중 5% 정도. 이들 대부분도 하루 4시간 미만 일하는 노동자이고. 최근 고용보험기금이 줄어들긴 했어. 하지만 실업급여 하한액이 많기 때문은 아냐. 2020년부터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실업한 사람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지.
한국은 실업급여를 넉넉히 주진 않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22 한국 경제 보고서’에 이런 부분이 나와. “한국의 고용보험의 주된 약점은 포괄 범위가 낮다는 데 있다.” 전체 노동인구의 절반(52%)가량이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현실을 지적했어. 한국 실업자 중 실업급여를 받은 사람은 38.4%뿐이야. OECD 평균 58.6%보다 크게 낮아.(2018년 OECD 고용전망) 보고서는 고용보험 적용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권고했어. 다른 나라보다 짧은 실업급여 지급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고도 했고. 우리 실업급여 지급 기간은 4~9개월. 독일(6~24개월), 프랑스(4~24개월), 일본(3~12개월) 등에 비해 짧은 편이야.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최소 17개 나라에선 자발적 이직자에게도 실업급여를 지급해.
‘시럽급여’ 논란을 부추긴 실업급여 담당자의 혐오 발언, 짚고 넘어갈게. 정말 실업급여를 받는 여성, 청년의 태도가 불량하냔 거지. 실업급여 부정수급자의 성별·연령을 보면, 사실이 아니야. 실업급여 신청(2014년 기준)은 남녀가 비슷하게 하거든. 근데, 실업급여를 받을 자격도 안 되는데 거짓말로 수령한 부정수급자 3명 중 2명이 남성이야. 여성보다 2배 많아. 연령별로 보면 50대(33.4%)가 가장 많았어. 그 뒤로 60대(23%), 40대(21.5%), 30대(15.4%), 20대(6.5%) 순이고.
실업급여, 최저임금 등 노동 영역을 취재하는 김해정 요원에게 물어봤어.
휘클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실업급여 담당자의 혐오 발언, 국민의힘과 미리 상의했을까?
해정 요원: 조율되진 않은 것 같아. 그래도 여당 책임이 없진 않지. 혐오 발언이 나온 자리는 당과 정부의 공청회였어.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실업급여를 “시럽급여”라고, 임이자 국민의힘 노동개혁특위 위원장은 “열심히 일하는 개미보다 베짱이를 더 챙겨주냐”며 폄하했거든.
휘클리: 여당은 5년간 3번 이상 실업급여를 반복해 받은 사람이 2022년 10만 명을 넘었다고 말해.
해정 요원: 이 수치는 오히려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자 규모를 보여준다고 생각해. 생각해봐. 5년 동안 3번이나 실직당하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겠어. 실업급여는 자발적으로 사직하면 받기가 매우 어려워. 수급자는 대부분 해고당한 사람이지.
휘클리: 실업급여를 24회에 걸쳐 9126만원을 받은 사람도 있대.
해정 요원: 반복수급이 곧 부정수급은 아냐. 다만 실업급여는 그냥 받는 게 아니란 거야. 정기적으로 고용센터를 방문해 구직 활동 중임을 증명(실업 인정)해야 해. 노동부는 정기적으로 실업급여 부정수급자가 있는지 조사하고. 전문적으로 조사하는 고용보험수사관도 있어.
휘클리: 실업급여를 받는 게 쉽지는 않구나.
해정 요원: 실제 직장에선 ‘실업급여 갑질’이 만연해.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신고된 사례를 보면 기가 막혀. 어떤 회사는 권고사직을 시키면 정부지원금이 끊길까봐 직원을 괴롭혀서 자발적으로 퇴사하도록 만들었대. 직장 내 괴롭힘으로 노동부에 신고하고 퇴사한 사람을 ‘실업급여 부정수급으로 신고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하고.
휘클리: 그래도 실업급여가 세후 월급과 비슷하거나 더 많으면 일을 안 하고 싶지 않을까?
해정 요원: 실업급여 제도의 목적이 구직 기간에 최저 생계를 보장해주는 거야. 최저임금도 최저 생계비를 고려해 정하잖아. 최저임금의 80%면, 정말 최저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만 해주는 거지.
휘클리: 근데 여당에서 별 관심 없다가 이제야 불붙은 이유가 뭐야?
해정 요원: 최근 윤 대통령이 건전 재정을 강조했잖아. 부자·대기업 감세로 세수가 부족해지니 돈을 아끼라고 한 거지. 여당에서도 그럼 뭘 줄일 수 있을까 찾다가 실업급여를 타깃으로 잡은 게 아닌가 하는 분석이 나와.
휘클리: 보험료는 사업주와 노동자가 반씩 내는 거라며. 세금이 왜 나와?
해정 요원: 최저임금 노동자가 내는 고용보험료의 80%는 정부가 지원하거든.
휘클리: 실업급여를 줄이는 게 맞을까?
해정 요원: 그렇지 않지. 자영업자는 고용보험 의무가입이 아니다 보니 가입률이 낮아. 고용보험 가입률이 정규직은 90% 이상인데, 비정규직은 74%만 가입했어(2020년 기준). 고용보험이 꼭 필요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가입률이 낮으니, 오히려 고용보험 제도의 문턱을 낮추고 확대해야 할 상황인 거지.
휘클리: 대기업 직장인들은 고용보험 내는 걸 아까워하더라고. 실업 가능성은 적은데 급여는 많으니 보험료도 많이 낸단 거지.
해정 요원: 해고당할 가능성도 낮고 노조 가입률도 높은 대기업 직장인들은 실업급여를 받는 상황이 잘 상상이 안 될 수 있어. 그런데 대기업 직장인도 실업률이 0%는 아니잖아. 보험이란 것 자체가 일어날 가능성은 낮지만, 일단 발생하면 피해가 큰 위험에 대비하는 것이기도 하고.
*<한겨레> 뉴스레터 휘클리는 김지훈(정리몬) 기자가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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