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 운영을 두고 서울시와 유족의 갈등이 3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앞서 서울시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유가협)와 시민대책회의에 2023년 2월4일부터 4월6일까지 무단점유한 서울광장 72㎡에 대한 변상금 2899만2760원을 내라고 통보했다. 이후 매주 정례 브리핑에서 강제철거(행정대집행)를 압박하고 있다. 유족은 변상금 부과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양쪽이 근거로 내세우는 법은 각각 다르다. 유족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상 문제없다는 입장을, 서울시는 이와 무관하게 분향소 설치가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공유재산법) 적용 대상이라고 본다.
현행 집시법에서 집회와 시위는 허가제가 아니라 신고제다. 주최자가 집회 일시와 장소, 참여 인원 등을 관할 경찰서에 신고하면 일부 예외 장소를 제외하고 집회와 시위를 열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집회에 대한 허가제는 집회에 대한 검열제나 마찬가지”라고 판단한다. 하지만 집시법과 별개로 광장이나 공공청사 인근, 공원 등 지방자치단체가 소유한 행정재산에서 집회와 시위가 열릴 때는 장소 사용 허가를 받아야 한다.
공유재산은 지자체장이 목적과 용도에 장애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행정재산의 사용 허가를 낼 수 있도록 규정한다. 서울시는 조례에서 광화문광장과 청계광장의 조성 목적을 ‘시민의 건전한 여가선용 및 문화활동 등’으로 한정한다. 만약 이 목적에 맞지 않는 행사를 열겠다는 사용 신청이 접수되면, 사용 허가를 내주지 않을 수 있다. 실제 서울시는 2022년 10월 광장에서 집회를 열겠다는 시민단체의 사용 신청을 반려했다. 광장 조성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이태원 참사 분향소를 둘러싼 서울시와 유족의 갈등도 집시법과 공유재산법의 충돌에서 비롯된다. 유가협과 대책회의는 “분향소 운영을 위한 집회신고서를 남대문경찰서에 제출했고, 이는 적법하게 수리됐다”며 서울시의 변상금 부과와 행정대집행 강행이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서울시는 2019년 대법원이 내린 판결을 근거로 분향소 운영이 무단점유에 해당하며 변상금 부과 대상이라고 본다. 이 판례에서 대법원은 집시법상 적법한 집회·시위라 할지라도, 사용 신고와 수리를 거치지 않고 서울광장에서 천막농성을 한 1인시위자에게 변상금을 부과한 처분이 정당하다고 봤다.
유족 쪽은 분향소를 서울광장에 설치한 다음날 제출한 광장 사용 신청서도 반려됐다며 “절차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위법하다”고 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사용신고서를 사용일 90일 전부터 5일 전까지 시장에게 제출해야 한다”는 조례 규정을 들어 반박했다. 유족 쪽이 사전신고 없이 광장을 무단점유한 뒤 다음날에야 신청서를 냈다는 것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지자체가 정의한 광장의 조성 목적에 의문을 제기한다. 광장의 의미와 목적은 문화활동과 여가선용, 휴식 등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는 광장의 공공성을 구성하는 일부일 뿐 전부가 될 수 없다. 인권단체연석회의 공권력감시대응팀의 랑희 활동가(인권운동공간 활)는 “광장 사용 여부를 시가 결정하고, 그 권한이 시에만 있다는 건 광장의 공공성이 전혀 발현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용 신청을 하도록 하는 이유는 단체 간 장소와 시간대가 겹칠 수 있으니 시가 조율하도록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취지인데, 오세훈 시장 당선 이후엔 광장 사용을 통제하려는 쪽으로 악용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기본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행정적 권한이 쓰이기보다 이를 무력화하는 방향으로 공유재산법과 조례를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서울광장은 2010년부터 주최 쪽이 사용 신고를 하면 원칙적으로 서울시가 수리하는 신고제로 운영되고 있다. 다만 시민단체, 학계 전문가, 시의원, 시 공무원 등으로 구성된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광장운영위)의 의견을 들어 신고를 수리하지 않는 예외도 있다. “광장의 조성 목적에 위배되거나 다른 법령 등에 따라 이용이 제한되는 경우” “동일 목적의 행사를 위해 7일 이상 연속 사용하고 다른 행사와 중복될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실제 서울시는 퀴어문화축제 개최 여부를 2016~2019년, 2022년 등 다섯 차례 광장운영위에 안건으로 상정했다. 2022년엔 주최 쪽이 축제 기간을 엿새로 신청했지만, 행사를 하루만 허용하고 허용 행위도 제한해 ‘조건부 허가’ 논란이 일었다.
10여 년 전 조례 개정을 추진해 광장을 개방하려던 이들은 광장 사용을 두고 지자체의 통제가 강화되는 추세를 우려한다. 2010년 전후로 참여연대에서 ‘서울광장 조례 개정 운동’을 맡았던 이재근 협동사무처장은 “광장 사용 신고에 대한 수리권을 가지고 마치 허가제처럼 운영한다”며 “서울광장 조례 개정은 시민이 언제든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개정됐다”고 했다.
서울광장은 광화문·청계 광장과 달리, 조례에 “공익적 행사 및 집회와 시위의 진행”이 조성 목적으로 포함됐다. 2010년 서울시의회에서 서울광장 조례가 개정됐기 때문이다. 2009년 5월 서울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민주당이 추모행사를 열겠다며 낸 광장 사용 신청을 불허했다. 추모행사가 “시민의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활동 등”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자 야당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주민청구 조례 개정을 추진했다. 2009년 6월부터 12월까지 주민 발의를 위해 10만여 명의 서명을 받고 개정안을 시의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의 뼈대는 서울광장의 조성 목적에 “공익적 행사 및 집회와 시위의 진행”을 넣고, 사용허가제를 신고제로 바꾸는 것이었다. 이 개정안은 2010년 6월 회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지만, 같은 해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의원이 다수를 차지하며 살아났다. 민주당 의원 전원이 개정안 발의에 참여했고, 이는 8월 본회의를 통과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거부권을 행사하며 재의를 요구했다. 시의회가 재의결하자 대법원에 재의결 무효 확인 소를 제기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2011년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전 시장이 당선되며 서울시는 소를 취하했다.
이재근 협동사무처장은 “광장이 공유재산법이 규정하는 행정재산이라고 해서, 단순히 지자체나 지자체장의 소유가 아니다. 서울시가 주최하는 ‘책 읽는 서울광장’ 행사를 내세워 분향소 철거를 말하는 것은 조례 개정 취지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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