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부패는 공직·기업 부패와 함께 우리 사회에서 척결해야 할 3대 부패다.”(윤석열 대통령, 2022년 12월21일 제1차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건설노조는 노조의 탈을 쓰고 돈을 뜯어가는 약탈집단이다. ‘가짜 약자’ 뿌리 뽑겠다.”(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2023년 2월1일 ‘건설 관련 협회 및 공공기관 간담회’에서)
2023년 들어 윤석열 정부가 노동조합과 연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2022년 12월 화물연대 파업을 강경 진압해 지지율 반등에 성공한 윤석열 정부의 공격 ‘타깃’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에서 양대노총의 건설노동조합으로 옮겨간 모양새다. 특히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을 향해 “무법지대 조폭” “정부를 협박하면 통할 줄 아는데 어림없다”는 말을 연일 쏟아냈다. 건설노조가 건설사 하청업체에 조합원들을 채용하도록 강요하고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작업 중에 비공식적인 웃돈을 받는 불법행위를 한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연간 1조원대 임금을 체불하고 불법 재하도급을 주는 등의 건설업체들의 불법행위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최근 건설노조를 둘러싼 논란을 중심으로 윤석열 정부의 ‘노조 때려잡기’가 말하지 않는 이면을 살펴봤다.
2023년 1월19일 아침 8시10분,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가 건설연대, 산업인노조 등 건설업 종사자로 구성된 노동조합의 사무실 5곳에 동시다발로 들이닥쳤다. 이들 노조가 조합원 채용을 강요하고 이를 거부하는 건설사들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첩보를 확인한다는 이유였다. 압수수색 대상엔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과 한국노총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도 포함됐다.
경찰의 대대적인 압수수색은 이제까지의 통상적인 채용 강요 행위 수사와는 달랐다. 그간 건설현장에서는 노조 이름을 빌려 금품을 요구하는 신생 단체나 공사 자체를 못하게 막는 개별 노조 간부들의 과격 행위 등이 주로 문제가 됐다. 그런데 경찰은 이번에 양대노총 건설노조의 채용 요구까지 수사 대상으로 삼았다. △조합원을 채용하라는 요구 발언 △이를 관철하려고 연 집회 △교섭에 응하지 않으면 현장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실을 외부에 알리겠다고 주장한 것까지 모두 형법상 강요 행위라고 판단해 영장에 적시했다.
노조의 채용 요구가 그 자체로 강요죄가 될까. 먼저 건설업의 특수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내 건설업 현장은 계약직·일용직 등의 단기 일자리를 알음알음 소개로 채우는 관행이 1960년대부터 존재했다. 건설사가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만 노동자를 모집하고 관련 공정이 끝나면 노동자를 내보내는 식으로 인건비를 절감한 탓이다. 이에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들은 이른바 ‘오야지’ 또는 ‘팀장’으로 불리는 소개업자 등에 부탁해 건설사 재취업을 요청하곤 한다. 현장직 가운데 그나마 고정적으로 일한다는 형틀목수도 1년에 2∼4차례 현장을 옮긴다. 건설근로자공제회는 2021년 건설노동자 구직 경로의 84.2%가 ‘팀장·반장 인맥’이고 5.5%는 ‘유료 직업소개소’였다고 밝혔다.(2022년 ‘건설근로자 수급 실태 및 훈련수요 조사’)
유료 직업소개소는 수개월짜리 계약을 하면서 매번 소개료를 내야 하고, 일감을 구해오는 소개업자의 상당수는 시중 노임단가보다 못한 임금을 강요하거나 줘야 할 임금을 들고 잠적하는 등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노동조합이 앞장서 채용을 요구하는 교섭을 하게 됐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2021년 하청업체 협회 쪽과 단체협약을 맺고 △시중 노임단가 인상 △유급휴일수당 인상 △토요일 오후 3시 퇴근 △노동자 신체에 맞는 안전보호구 지급 등을 명문화하기도 했다.
“내국인 숙련공이 모자란다, 젊은 청년들이 건설업에 안 온다고 정부가 계속 대책을 내는데요, 살인적인 노동강도에 위험 작업까지 시키는데 누가 일하러 옵니까. 요새는 공사기한 단축 요구가 더 심해져서 ‘아파트 한 층을 하루 만에 만들라’고 하는 지경인데 거절 못하는 외국인노동자가 그런 자리를 메웁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가 일자리 개선, 조합원 채용을 요구하지 않으면 대체 뭘 하겠습니까.”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강한수 토목건축분과위원장이 말했다.
최근 정부가 집중 단속하겠다고 나선 타워크레인 기사의 ‘월례비’도 비슷한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 월례비는 건설 하청업체가 타워크레인 기사에게 위험작업 등을 부탁하면서 지급하는 웃돈, 이른바 ‘급행료’를 말한다. 건설업체가 공사기한을 최대한 앞당기려 밤샘이나 돌발 작업, 법에 금지한 위험작업 등을 크레인 기사에게 부탁하면서 생겨났다. 공중에서 자재를 들고 옮기는 타워크레인은 산업재해 위험요인이 많아 안전수칙상 ‘부분동작’(한 번에 한 동작)만 가능하고 기상 악천후 때는 아예 작업이 불가능하다. 이럴 때 하청업체가 따로 돈을 챙겨주며 동시작업 등을 부탁하던 관행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런데 현재 정부는 업계 관행은 그대로 둔 채 하청업체와 현장 노동자의 금전거래에만 칼을 뽑아들었다.
국토부는 2022년 말 민간 건설분야 협회 12곳을 상대로 건설현장 불법행위 피해사례 실태조사를 벌여 ‘타워크레인 기사 월례비 지급’ 관련 신고 1215건을 받았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이런 관행을 “뿌리 뽑겠다”는 태도다. 양대 노총 역시 월례비를 없애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타워크레인 기사가 가욋일 때문에 위험을 무릅써야 하고 일부 조합원이 월례비를 과도하게 요구하며 태업한다는 문제 제기도 있어서다.
그러나 월례비를 없애더라도 하청업체의 편법 작업 요구는 없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2000년대 초반 최저가낙찰제 확산으로 저가경쟁에 노출된 건설사들은 일단 최저가를 써내 수주를 따낸 뒤 공사기한을 최대한 단축하는 식으로 이윤을 확보했다. 정해진 공사기간보다 일찍 일을 끝내면 그만큼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어서다. 건설사 요구로 건설 하청업체가 늘 고도의 속도전에 내몰리는 이유다.
“월례비를 없애도 ‘빨리빨리’ 공기 단축 관행은 그대로일 건데 그런 요구가 한꺼번에 줄어들까요. 이젠 (월례비 같은) 보상도 없으니 일을 시키려는 하청업체와 이를 거부하는 타워크레인 기사의 분쟁이 극심해질 겁니다.” 타워크레인 기사로 일한 경험이 있는 박종국 전 시민안전감시센터 대표(안전보건활동가)의 말이다.
“정부는 지엽적인 문제에서 나아가 본질을 보아야 한다. 건설업을 비정상적으로 흘러가게 만드는 핵심 문제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건설업을 오래 연구한 심규범 건설근로자공제회 전문위원의 말이다. 그가 보기에 월례비 등 변칙을 만든 근본원인은 건설업의 제살 깎아먹기 경쟁이다. 처음부터 이윤을 내기 힘들 만큼 공사비를 적게 확보하다 보니 이에 맞추는 과정에서 변칙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매년 1조원이 넘는 상습적 임금체불과 규모도 파악하기 힘든 불법 재하도급 관행도 그 결과물 중 하나다.
고용노동부가 2023년 1월 공개한 임금체불 관련 통계를 보면, 2022년 1월∼11월 합계 임금체불액은 1조2202억원, 체불 인원은 21만6972명에 이른다. 한 사람당 560만원가량 임금을 체불당한 셈이다. 제조업(34.1%)과 건설업(21.6%)이 체불액 기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불법 재하도급으로 손쉽게 이익을 보려는 관행도 여전하다. 건설산업기본법상 재하도급은 금지되며 전문하청업체는 직접 노동자를 고용해 사업을 완수해야 한다. 도급 단계를 거치며 이윤이 줄어들고 부실공사 위험도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은 전문하청업체가 편의를 위해 소개업자에게 소개료만 받고 일감을 통째로 넘기는 불법 재하도급이 만연해 있다. 2021년 6월 17명 사상자를 낸 광주 학산빌딩 붕괴 사고도 최초의 단위면적당 공사비는 28만원이었으나 재하도급을 거치면서 가장 밑단에 있는 하청업체가 받는 공사비가 4만원밖에 되지 않았다.
임금체불과 불법 재하도급, 월례비 등은 모두 하한선 없는 저가 수주 경쟁의 결과물이다. 이러한 폐해를 막을 대안의 하나로 건설공사의 평균 노동자 인건비를 산정해 하한선으로 정하자는 적정임금제가 꼽힌다. 국토부는 애초 적정임금제 등의 내용을 담은 건설근로자법 개정안(송옥주 의원 대표발의)과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김교흥 의원 대표발의)을 통과시켜 2023년 1월부터 관급공사에 적용하겠다고 2021년 6월 대책 발표까지 했다. 그러나 두 법안은 아직 국회 상임위도 통과하지 못한 채 계류돼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원희룡 장관은 건설노조를 탓하면서도 이른바 ‘월례비’ ‘채용 강요’ 등의 이면에 자리잡은 건설공사 속도 경쟁과 고용 불안정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노조를 범법·부패집단으로 상정하고 강경 대응하는 모양새가 지지층 결집에 이득이 된다는 정치적 계산이 숨어 있다.
윤 정부는 취임 직후인 2022년 6∼7월, 화물연대 파업과 대우조선 하청 노조 파업 대응에 연달아 실패하며 비판 여론에 직면했다. 이 밖에 국정수행 능력에 의구심을 갖게 하는 여러 사건이 겹치면서 취임 초 52%(한국갤럽·5월 둘째 주)였던 지지율도 29%(11월 첫째 주)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정부가 2022년 11월 말 화물연대의 2차 파업에 ‘강경 대응’하면서 지지율이 33%(12월 둘째 주)로 반등했다. 당시 지지층의 긍정 평가 이유로는 ‘노조 대응'이 가장 많았다.
노조를 향한 공격 발언이 본격적으로 쏟아진 것도 이 무렵부터다. 윤석열 대통령은 “노-노 이중구조는 착취구조”(2023년 1월12일)라며 정규직 노조를 착취자로 호명했다. 각 정부 부처 장관들도 “민폐노총(민주노총) 손절이 민심”(원희룡 국토부 장관, 2022년 12월1일)이라거나 “노조 회계에 대한 국민 불신이 커지고 있다”(이정식 노동부 장관, 12월30일)는 발언을 잇달아 내놨다.
이런 ‘노조 때리기’ 발언의 대가는 누가 치르게 될까.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경영학)는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보수정부엔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경제 불황이 길어질수록 저임금 노동자 처우 문제며 실업 문제 등이 가시화할 텐데 노사가 서로 힘을 합쳐야 할 타이밍에 이전투구하면 그 손실은 공동체 모두가 볼 것”이라고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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