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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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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돈’으로 보는 정부

주거권 보장할 생각도 없는 사회에 사는 ‘집 없는 시민’이 본 주거정책
등록 2021-06-26 02:36 수정 2021-06-28 09:13
2021년 6월21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종부세·양도소득세 후퇴 정책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2021년 6월21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종부세·양도소득세 후퇴 정책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종합부동산세 대상을 상위 2%로 바꾸자는 더불어민주당의 결정에 시민단체에선 ‘부자 감세’라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또 납세자가 매년 바뀔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완화를 ‘당론’으로 결정한 2021년 6월18일 저녁 8시 방송 뉴스에서 흘러나온 앵커의 목소리였다. 민주당은 이날 의원총회를 열어 1가구 1주택자에 대해 공시가격이 ‘상위 2%’ 이상인 주택 소유자에게만 종부세를 부과하고, 양도소득세 부과 기준을 공시지가 9억원 이상 주택에서 12억원 이상으로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앵커의 목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이 이 결정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해졌다. ‘어차피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느끼는 무주택자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감세 혜택 대상자들, 저 결정조차 ‘마음에 들지 않는’ 다주택자들…. 민주당이 어떤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종부세 완화’ 결정을 내렸는지 너무나 뻔하게 보였다.

20대 1인가구 RIR(월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 27.5%

20대 청년이자 무주택자인 내가 느끼는 ‘종부세 완화’ 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부와 여당이 집을 ‘돈’으로 보는 사회를 앞장서서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집이 주거가 목적이 아니라 살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정부·여당이 앞에 ‘나서서’ 그렇게 만들었다. 국민 앞에서는 ‘집값 안정’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집값이 올라가도록 만드는 결정만 한다. 종부세와 양도소득세 부과 기준 완화는 투기 광풍을 심화하는 경로밖에 만들지 못할 것이다.

이런 사회는 암담하다. 이렇게 고통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사회를 유지하는 것은 결국 우리 모두를 ‘돈’에 종속된 삶을 살도록 만든다. ‘영끌’을 정책으로 만드는 국가는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집’마저 돈으로 보이는 사회를 만들었다. 월세가 10만원이 늘면 집에 창문이 생기고, 5만원이 줄면 여름에 곰팡이로 고생하는 방에 살게 되는 게 지금 청년주거 현실이다.

저렴한 보증금과 월세를 찾다보니 청년의 삶은 불법과 가까워진다. 근린생활시설을 개조한 ‘쪼개기 원룸’이 대표적이다. 층간소음은 당연히 참아야 하고, 작은 방에 몸을 욱여넣다보니 몸이 안 쑤실 때가 없다. 화재를 비롯한 안전에도 취약하다. 집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방’에 사는 청년은 그마저도 부담하기 힘들어 숨이 막힌다.

무주택자 청년 당사자로서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면, 청년 시기에 겪는 주거 문제는 삶을 송두리째 바꾼다. 사회초년생 임금은 높을 수 없다. 그래서 청년의 RIR(월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는 상대적으로 높다. RIR가 20% 넘으면 주거비 부담이 과중하다고 보고, 30% 넘으면 ‘주거빈곤’ 상태로 정의한다. 국토교통부 실태조사(2019년 기준)에 따르면 20~34살 청년가구의 RIR는 17.7%로 전체 평균(16.1%)보다 높다. 20대 1인가구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RIR는 무려 27.5%에 이른다(2017년 기준).

이렇듯 임금 대부분이 주거비로 지출되다보니 저금은 둘째 치고 일상적인 생활조차 어려울 때가 많다. 통계청의 ‘2020년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20대의 ‘자산 대비 부채비율’은 32.5%로 역대 최고치를 다시 경신했다. 그런 20대를 보내고 30대가 되면 빚을 빚으로 갚는 다중채무자가 되기도 한다. 청년은 사회를 ‘빛’낼 존재가 아닌 ‘빚’에 허덕이는 존재가 돼가고 있다.

8만9천 명을 위해 위헌 논란도 감수

그렇다면 ‘종부세 완화’로 이득을 보는 사람은 대체 얼마나 있을까? 민주당의 본래 안은 공시지가 ‘9억원 이상’ 주택을 소유한 사람에게 종부세를 걷는 것이었다. 이 기준을 ‘상위 2%’로 변경하면 약 8만9천 명이 종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된다. 어쩌면 8만9천 명을 위해 ‘위헌’ 논란까지 양산하며 ‘이상한’ 종부세 조정안을 내놓은 것이다. 상위 2%를 해마다 가려내는 것이 세율과 과세대상을 정확히 규정해야 하는 조세법률주의에 어긋난다는 것이 위헌 논란의 핵심이다.

최근 나라살림연구소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민주당의 결정은 50억원 이상 초고가 주택 보유자의 세금 부담을 더 많이 경감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한다. 예를 들어 상위 2% 미만 1가구 1주택 보유자가 최대 85만원의 세금을 덜 낸다면, 상위 2% 안에서도 공시지가 50억원 주택 보유자는 300만원 정도 세 부담이 줄어든다.

김미경 조선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저서 <감세 국가의 함정>에서 “다수 시민에게 납세 의무를 면제해주었다. 국가는 그들에게 줄 것이 없으므로, 아니 줄 생각이 없으므로 요구하지도 않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 문구가 더욱 선명하게 와닿는 시대가 됐다. 국가는 시민에게 주거권을 보장하지도 않고 보장할 생각조차 없기에, 시민에게 납세의 의무를 묻지도 않는다. 집 문제를 비롯한 사회적 불평등과 고통을 개인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결국 시민 모두가 빚쟁이가 되도록 선택하라는 구조를 만드는 가장 큰 기여자가 국가인 셈이다.

‘집 있는 사람 편’에만 서는 정치를 경험할 때 우리는 국가의 역할을 묻기 시작해야 한다. 적어도 집은 능력을 측정하는 척도, 능력주의의 결과물이 돼선 안 된다. ‘안전한 집’은 숨이 붙어 있는 모든 존재에게 당연한 것이 돼야 한다. 의식주라는 당연한 것이 권리로 인정되지 않을 때 우리는 온전한 삶을 상상하기 어렵다.

국회는 들어라, 주거권은 인권이다

종부세 완화 외에도 정치권은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앞두고 또다시 공약이란 이름의 주거상품을 내놓고 다투기 시작했다. 10년 동안 임대료를 내고 이후 입주분양가로 분양전환을 받는 ‘누구나 집’이든, 건물을 분양받고 토지임대료만 지출하는 ‘기본주택’이든, 20~30년간 분할 취득하는 ‘지분적립형 주택’이든 나아질 게 없을 것이다. 각각 1만 가구 남짓한 소량의 물량 공급으론, 또다시 몇십 년 동안 돈을 내고 집을 소유하는 것이 주거 문제 해결의 전부인 것처럼 조장하는 방식으론 주거 사다리, 주거 밧줄도 못 만들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장기공공임대주택 공급과 주거급여 현실화, ‘집은 사는 곳’이라는 주거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

민주당이 종부세 개악을 당론으로 정했지만, 아직 국회가 종부세 개악을 막아낼 시간은 절차적으로 남았다. 국회는 들어라. 주거권은 인권이다.

김혜미 ‘집걱정없는세상연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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