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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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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록다운…어떻게 미치지 않고 살 수 있니

코로나19 록다운… 통로를 달리고, 발코니에서 노래 부르고,
쓰레기통 비우기 외출을 즐기며
등록 2020-04-19 14:13 수정 2020-05-07 01:49
세계 인구 39억 명이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힘겹고 외로운 ‘자가격리’ 생활을 하는 가운데, 오스트레일리아 시민들이 쓰레기통을 비우는 잡일을 기발한 복장의 ‘변장 놀이’로 바꾸며 사진을 공유하고 있다. 페이스북 그룹 페이지 ‘쓰레기통 격리 외출’(Bin Isolation Outing) 화면 갈무리

세계 인구 39억 명이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힘겹고 외로운 ‘자가격리’ 생활을 하는 가운데, 오스트레일리아 시민들이 쓰레기통을 비우는 잡일을 기발한 복장의 ‘변장 놀이’로 바꾸며 사진을 공유하고 있다. 페이스북 그룹 페이지 ‘쓰레기통 격리 외출’(Bin Isolation Outing) 화면 갈무리

“집에 머무르십시오.”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시대, 단숨에 ‘세계화’를 대체해 전세계를 관통하는 화두다. 4월 중순 현재, 90여 개국에서 세계 인구의 절반이 넘는 39억 명이 사회적 거리 두기, 이동 제한, 휴교, 자택 대피 명령 또는 권고 등 어떤 형태로든 발이 묶였다. 4월 초 미국 싱크탱크 퓨리서치센터는 외국인을 상대로 국경을 부분 또는 전면 폐쇄한 국가에 거주하는 사람이 세계 인구의 약 93%(72억 명)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일이다.

“굿바이” 대신 “또 봐요”

4월16일 오후 7시 기준, 세계의 누적 확진자가 207만 명에 이르고, 그중 13만7천 명이 숨졌다. 전세계 누적 확진자의 80% 넘게 집중된 미국(35%)과 유럽(48%)에선 엄격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길어지면서 사람들의 고립감과 스트레스도 심각하다. 코로나19 대응의 모범 사례로 꼽히는 한국에서 사람들이 일상생활의 제약을 비교적 덜 받고 지내는 것은 매우 예외적이다.

유폐에 가까운 외출·대면접촉 제한은 지구촌 사람들의 일상을 크게 흔들어놓았다.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와 무력감, 경제 위축에 따른 생계와 고용 불안, 급작스럽고 전면적인 사회적 단절로 겪는 심리적 고통, 그 속에서 잔뜩 움츠러든 모습이 한 축이다.

최근 영국 방송 BBC가 ‘웨일스 지방의 폐쇄 생활’이란 르포에서 보여준 몇몇 사례는 코로나바이러스 시대 음울한 풍경의 극히 일부인 동시에 일반적인 모습이다. 난치병 환자인 25살 여성 에이미클레어와 자가면역 질환을 앓는 어머니 캐럴라인은 코로나19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모든 병원이 코로나19 환자로 넘쳐나고 병원 감염 위험이 커지면서 정기적인 통원 치료를 포기했다. 집에서 직접 주사를 놓고, 마음을 북돋우려 춤을 추고 홀로 운동한다. 그러나 그들은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이전의 일상을 되찾을 수 없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안다. 에이미가 말한다. “굉장히 열악하고 두려운 상황에서 가장 좋은 시간을 가지려고 애써요.” 이 가족에게 죽음은 어느 때보다 가까이 있다. 캐럴라인은 “대다수 사람이 저녁 메뉴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 가족은 ‘죽음’과 ‘죽어감’에 대해 말한다”고 했다.

BBC가 전한 또 다른 가족의 심정도 이와 다를 게 없다. 크리스 에드워드는 요양원에 있는 90대 노부모를 평소와 달리 유리창 너머로 면회만 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는 마음을 달래며 “굿바이”라는 인사를 “또 봐요”라고 바꿨다.

페이스북 그룹 페이지 ‘쓰레기통 격리 외출’(Bin Isolation Outing) 화면 갈무리

페이스북 그룹 페이지 ‘쓰레기통 격리 외출’(Bin Isolation Outing) 화면 갈무리

코로나 이혼이냐 코로나 베이비냐

최근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코로나19가 연애와 부부 관계에도 영향을 준다고 보도했다. 부부가 거의 종일 집에서 함께 지내면서 갈등과 다툼이 심각해질 수도, 반대로 상대에 대한 마음이 더욱 애틋해질 수도 있다. 어느 쪽이냐에 따라 ‘코로나 이혼’으로 치달을 수도, ‘코로나 베이비’가 생길 수도 있다. 터키 이스탄불의 한 부부는 불행히도 전자의 한 사례다. 코로나19 감염 증세로 자가격리 중이던 42살 남편이 물리적·심리적 고립을 이유로 아이패드로 데이트앱에 접속했다가 아내에게 들킨 게 불씨가 됐다.

강력한 ‘사회적 격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들이 ‘코로나 봉쇄’ 출구전략을 검토하기 시작했지만, 보건 당국들은 시기상조라고 우려한다. 이탈리아는 3월10일 세계에서 처음 시행한 ‘전국 폐쇄’라는 초강수를 5월3일까지 연장했다.

그러나 사람은 어려운 생존 환경에서 자신을 치켜세우고 서로를 격려할 줄도 안다. 초현실적으로 바뀐 환경에 적응하는 ‘슬기로운 격리생활’이 새로운 풍속도로 떠올랐다. 제한된 삶에서 빛나는 또 다른 축이다. 예컨대 인터넷과 반려동물은 특히 1인가구 생활자들에게 고립 생활에서 둘도 없는 동반자다. 사이버 세계에서 가상 여행을 하고, 파티를 하며 외로움을 달랜다. 몇 주째 엄격한 외출 통제를 시행하는 여러 유럽 국가에서 반려견 산책은 약국이나 식료품점을 가는 것을 빼면 거의 유일한 집 밖 나들이 구실이다.

이탈리아에선 집에 갇힌 시민들이 저녁이면 자택 발코니로 나와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며, 요리 레시피도 나눈다. 프랑스인들은 격리된 삶의 고단함을 유머로 녹인다. 코미디언들이 날마다 하나씩 새로운 코미디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린다. 스페인 시민들은 공동주택의 통로와 계단을 달리기 코스로 삼아 체력을 다진다. 독일 해커들은 ‘코로나바이러스 추적’ 앱을 만들며 시간을 보낸다. 최근 영국 일간 가디언이 ‘이동 제한 생활: 유럽인들은 어떻게 미칠 지경을 피하는가’라는 제목의 기사로 전한 풍경의 한 단면이다.

각양각색 옷을 입고 쓰레기 버리러

3명 이상 모임이 금지된 오스트레일리아 시민들은 쓰레기통을 비우는 잡일을 기발하고 유쾌한 착상의 놀이로 바꿔 웃음을 나눈다. 평소 같으면 귀찮고 하기 싫은 일조차 즐거운 집 밖 나들이 삼아 분장술 경연처럼 각양각색의 복장을 차려입고, 그 모습을 소셜미디어에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올리는 것. 명칭도 ‘쓰레기통 격리 외출’인 이 페이스북 그룹 페이지는 3월 말 개설된 지 보름 만에 가입자가 80만 명이 훌쩍 넘었다.

영화 <겨울왕국>의 엘사를 연상케 하는 왕관과 화사한 드레스부터, <스타워즈>의 제국군 병사, 슈퍼맨과 스파이더맨, 인어공주,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분장, 수영복과 오리발에 스노클링 마스크, 쓰레기통 앞에서 우아하게 펼치는 발레 춤사위까지 재치 만점의 ‘코스튬 플레이’와 다양한 퍼포먼스가 보는 이를 웃게 한다. 멀리 영국에서 이 페이지를 본 한 여성은 너무 재미있어서 수영복을 걸치고 따라 했다. 그는 최근 미국 방송 CNN에 “(내가 올린 사진으로) 다른 사람들을 웃게 해서 너무 행복했다”고 말했다. “(이런 작업들이) 내 영혼을 완전히 충전하고 의기소침한 상태에서 건져주었어요. 온전히 단절돼 혼자인 것 같은 시기에 이토록 많은 사람과 연결되는 것은 멋진 경험이죠.” 코로나19는 인류 역사에서 몇백 년 만의 대재난 사태로 기록될 게 틀림없다. 많은 사람이 충격과 혼란, 슬픔과 분노, 성찰과 소망이 뒤범벅된 평범하지 않은 시간 속에서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재발견하고 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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