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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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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을 폐쇄하라”

이탈리아 정신보건 혁명 소개한 <자유가 치료다>

저자 백재중 녹색병원 부원장 인터뷰
등록 2019-02-23 13:55 수정 2020-05-03 04:29
<자유가 치료다>의 저자인 백재중 녹색병원 부원장이 정신병원을 폐쇄한 이탈리아의 정신보건 혁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자유가 치료다>의 저자인 백재중 녹색병원 부원장이 정신병원을 폐쇄한 이탈리아의 정신보건 혁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 없는 치료’를 강조했던 강북삼성병원 임세원 교수가 세상을 떠난 지 두 달이 흘렀다(제1246호 ‘임세원 뜻 외면한 임세원법 논의’ 참조).

2월17일 서울 도봉구 도봉산의 한 사찰에선 임 교수의 사십구재가 조용히 치러졌다. 우리는 마음 다친 환자를 위해 평생을 바친 임 교수를 그렇게 2018년에 두고, 2019년으로 흘러왔다.

임 교수의 안타까운 죽음에 온 국민이 슬퍼했지만 한국의 정신보건 체계를 개선할 ‘임세원법’ 논의는 답보 상태다. 국회가 정신질환자 당사자를 배제하면서 논의가 환자 인권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흘렀기 때문이다. 환자들 사이에선 “차라리 섬을 하나 달라. 우리끼리 가서 살겠다”라는 절규의 목소리까지 나왔다.

정신보건 혁명 이끈 ‘바살리아법’

최근 이렇게 절망하는 정신질환자들에게 (백재중 지음, 건강미디어협동조합 펴냄)가 필독서로 떠올랐다.

는 환자를 강제 입원시키는 정신병원이 없는 이탈리아의 정신보건 혁명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이탈리아는 1978년 ‘법률 180호’를 제정하면서 전국에 정신병원을 폐쇄하고 지역사회 정신보건센터로 완전한 역할 이양을 결정했다. 이탈리아에선 법 제정을 위해 평생을 바친 신경정신과 의사 프랑코 바살리아의 이름을 따 ‘바살리아법’이라고도 한다.

백재중 녹색병원 부원장은 이탈리아의 정신보건 혁명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정신병원 없는 이탈리아가 현재 한국의 정신보건 체계에 주는 교훈을 에 담았다. “자유가 치료다”는 바살리아법에 따라 이탈리아에서 최초로 문을 닫은 트리에스테 산조반니 정신병원 벽에 적힌 구호다.

2월18일 오후, 일과를 마치고 집무실에서 과 만난 백 부원장은 정신질환 치료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 우리나라 정신보건 체계를 비판했다.

정신질환 당사자들이 국회에서 논의되는 ‘임세원법’(정신건강증진법 개정안)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신질환 당사자들이 반발을 넘어 격분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신보건 체계의 가장 큰 문제는 입원 중심이라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강제 입원’과 ‘장기 입원’이 대부분인데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역사회 정신보건 프로그램 강화가 핵심이 돼야 한다. 지역사회에서 정신보건센터를 주축으로 정신질환자의 치료, 재활, 질병 관리, 주거·고용 문제 해결까지 책임져야 한다. 정신장애인이 온전하게 사회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것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지금 시작해야 한다.

이외에 입원하는 방식이나 나머지 논의는 부차적이다. 그런데 지금 임세원법 논의에선 지역사회의 역할을 쏙 빼고, 입원을 더 쉽게 하는 방식만 이야기한다. 정신질환자 당사자들이 반발할 수 밖에 없다.

강제 입원 정당화하는 ‘사법입원’임세원 교수 사망 이후 국회에서는 사법부가 환자 입원을 결정하는 이른바 ‘사법입원’이 주목받았다.

사법부가 입원을 결정한다는데, 법조계로 그렇게 넘겨버리면 되는 건지 묻고 싶다. 과거 정신질환자가 장기 입원할 때, 가족과 의사가 상의해서 결정하는 것이 문제가 됐다. 범죄자가 아닌데 인신을 구속하는 것도 문제인데, 민간인 몇 사람이 결정하는 구조였다.

의사들에겐 법이 개입해서 정당성을 부여하는 게 타당해 보일 수 있겠지만, 지금처럼 본질적 논의 없는 사법입원 이야기는 공허하다. 법관이 들어가서 민간의 결정에 법적인 정당성만 추가하는 꼴이 된다. 게다가 지금 법조계는 준비도 안 됐다. 의사가 하자는 대로 입원시킬 텐데 법적 절차를 밟았다는 이유로 사회적 낙인이 더 강화될 우려도 있다.

선진국에서 사법입원의 목적은 환자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장기 입원을 안 시킨다. 장기 입원이라고 해봐야 2~3주를 넘지 않는다. 지금 한국에 사법입원을 적용하면 기존 시스템과 인프라를 고착할 우려가 있다.

우리나라 정신보건 체계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우리나라에는 1995년 처음 정신보건법이 생겼다. 그전에는 정신질환자를 위한 제도가 아예 없었다. ‘범법자, 불순분자 등의 활동을 봉쇄하기 위해’ 제정된 ‘훈령 410호’에 따라 수많은 정신질환자가 형제복지원 같은 시설에 강제 수용돼 고통받았다. 이런 시설의 인권침해 실태가 밝혀지면서 정부가 수습에 나섰다.

선진국 사례를 보니 정신보건센터가 정신병원 역할을 대신하고 있어 한국도 도입했는데, 이후 정신병원 수가 되레 늘었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거다. 정신보건센터가 정신병원에 의존하면서 두 시설이 어정쩡하게 공존하는 형태가 됐다. 현재 한국의 정신보건센터는 영세하고 복지사들 업무 과중 등의 문제로 기능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첫 단추 잘못 끼운 정신보건법
프랑코 바살리아. 위키미디어 커먼즈 갈무리

프랑코 바살리아. 위키미디어 커먼즈 갈무리

정신질환자에 대한 잘못된 인식도 문제다. 환자가 적절한 시기에 안정을 하고 제대로 치료받으면 회복해서 사회로 복귀할 수 있다. 하지만 강제로 끌려가 치료를 받으면 환자에게 트라우마로 남는다. 가족 처지에선 자체적으로 해결이 어려워 손쉽게 병원에 입원시키려는 경우가 많다. 지역사회에서 해결을 못하기 때문에 대안으로 병원에 보내는 거다.

조현병은 10대, 20대 초반에 잘 생기는데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회적으로 낙오와 혐오 정서가 있으면 ‘내 자식이 그럴 리 없다’고 부정하면서 치료 시기를 놓친다. 조현병은 다른 병과 다르지 않다. 조현병 환자 중에 의사도 있고, 변호사도 있다. 199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존 내시도 조현병을 앓았다.

이탈리아의 정신병원 완전 폐쇄를 한국 사회에 당장 적용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물론 그대로 따를 순 없다. 이탈리아 정신병원은 대부분 공공병원이었기 때문에 법으로 닫을 수 있었지만, 한국에선 90% 이상의 정신병원이 민간부문이어서 강제로 닫기는 쉽지 않다.

책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건, 정신병원이 없어도 사회가 돌아가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탈리아에서 추적 조사한 내용을 보면 (바살리아법 이후) 정신장애인들 삶의 질이 좋아졌고, 정신장애인의 범죄율이 낮아졌다. 정신보건에 드는 사회적 비용도 줄었다. 무작정 이탈리아와 상황이 다르니 우리와는 안 맞다고 할 것이 아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가야 할 방향은 이탈리아다. ‘정신병원 폐쇄’라고 말하고 싶다.

언론이 정신질환 혐오 조장 ‘정신병원 폐쇄’ 목표를 위해 어떤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할까.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탈리아의 바살리아 입법 사례를 보면 방송사가 정신병원에 갇힌 환자들의 인권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국민의 공감대를 얻어냈다.

한국에선 정신질환자가 범죄를 저지르면 언론에서 ‘저런 환자를 왜 돌아다니게 놔두냐’고 보도한다. 이렇게 기사를 쓰면 국민은 정신질환자를 혐오하게 된다. 환자에게 씌운 낙인이 강화된다. 언론이 냉정하게 문제의 핵심을 파악해서 알려야 한다. 갈등을 조장하는 보도는 지양해야 한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정신건강증진법 개정 어떻게 되고 있나


임세원 이름 무색한 ‘임세원법’


“우리 가족의 자랑이었던 임세원 의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의료진의 안전이 지켜지고, 모든 사람이 정신적 고통을 겪을 때 사회적 낙인 없이 적절한 정신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1월2일 강북삼성병원의 임세원 교수 장례식장에서 유족들은 의사와 환자의 불행이 반복되지 않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유족은 고인의 유지를 꼭 실현해달라며 장례식 조의금으로 받은 1억원을 대한정신건강재단에 기부했다.
그런데 임 교수의 뜻을 실현시킬 법제도는 두 달이 지나도록 안갯속이다. 국회에서 발의한 ‘임세원법’이 정신질환자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면서다. 2월8일 윤일규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열린 ‘임세원법 입법 공청회’에선 정신질환 당사자와 가족, 인권단체 관계자 등 100여 명이 “자유가 치료다” “과거로 회귀하는 반인권법 항의한다” 등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항의했다. 이들은 윤 의원의 발의로 논의 중인 사법입원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공청회를 주최한 윤 의원은 행사 시작 전부터 쏟아진 법안 반대 목소리에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준비한 개회사 대신 “이렇게 논란이 될 줄 몰랐다. 우리가 아무리 선한 뜻을 가지고 있더라도 받아들이는 분이 오해한다면 시정하겠다. 환자분들이 원하지 않으면 개정하지 않으면 된다. 오늘 공청회가 격렬하더라도 서로 의견을 겸허히 듣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공청회에 패널로 나선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이정하 대표는 “정신질환자 다수는 남을 속이거나 죽일 수 있는 사람이 못 된다. 그런데 이 법안(정신건강증진법 개정안)은 살인 사건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운을 뗐다. 이 대표는 “윤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보면 강제 입원에 대한 내용이 있지만 치료 환경이나 환자의 권익, 삶의 질은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이 법에 반대한다. 정신질환자들은 강제 입원과 정신병원에 트라우마가 있다. 퇴원 환자 10만 명당 110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통계도 있다. 치료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치료를 받고 나오면 죽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제발 우리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토로했다.
고 임세원 교수의 뜻을 실현해달라는 국민의 요구에 응답하려면 ‘정책’과 ‘정치’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현 상황은 총체적 난국이다. 환자 당사자를 배제하고 이뤄진 정책과 제도의 논의는 정신보건 문제의 핵심을 비켜갔다. 정치권의 관심도 빠르게 식었다. 여야 대치로 올해 들어 국회 본회의는 한 번도 열리지 못했다. 우리는 임세원 교수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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