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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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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개만 못하다”

‘고객 견’에 물리고, ‘상주 견’ 변 치우고

‘애견미용사 인권 운동 ME TOO’, 결성 3주 만에 200명 가입
등록 2018-12-08 10:55 수정 2020-05-03 04:29
네이버 밴드에 개설된 ‘애견미용사 인권 운동 ME TOO’ 모임에서 ‘애플’ 작가가 연재하는 웹툰. 애플 작가 제공

네이버 밴드에 개설된 ‘애견미용사 인권 운동 ME TOO’ 모임에서 ‘애플’ 작가가 연재하는 웹툰. 애플 작가 제공

“존경하는 대통령님,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안녕하지 못합니다. (중략) 우리는 개보다 못한 애견미용사입니다. 부디 저희를 살려주세요. 살고 싶습니다.”

11월14일 결성 후 한 달도 안 돼 애견미용사 200여 명이 가입한 ‘애견미용사 인권 운동 미투(ME TOO)’ 모임이 12월3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전자우편 내용이다. 이날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회의실에서 ‘애견미용사 인권 운동 ME TOO’ 모임을 만든 김미나(이하 모두 가명·27)씨와 애견미용사 박미소(23)씨를 만났다.

지난해 반려견 스타일리스트 2급 자격증을 딴 박씨는 같은 해 한 애견숍에 견습 미용 보조로 들어갔다. 박씨는 오전 10시 30분부터 밤 9시까지 주 6일 일했다. 박씨가 받은 월급은 100만원이었다. 단순 계산해도 4천원도 안 되는 시급이다. 숍 주인에게 불만을 말했더니 오히려 ‘그럼 일을 그만두겠느냐”고 되물었다. 일을 그만둔 박씨는 지방 고용노동청에 최저임금 미달, 근로계약서 미작성 등을 이유로 진정서를 냈다. 그러자 한 달도 채 안 돼 숍 주인은 역으로 5천만원이 넘는 손해배상 청구액을 물어내라며 내용증명서를 보내왔다.

내용증명서에는 ‘박씨가 견습 미용 보조로 일하던 중 모델 개들에게 상해를 입혀 미용학원 등에서 손해배상 청구를 하려 했다. 숍 주인의 간곡한 중재로 이들이 손해배상 청구를 보류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최저임금 미달과 근로계약서 미작성 등의 이유를 들어 추가 금전 지급을 원하는 민원을 제기한 사실을 통보받아 더는 중재 이유가 없어 박씨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여기에 더해 숍 주인은 박씨를 절도죄로 경찰에 고소했다. 숍 주인은 박씨가 1천원 상당의 증정용 핸드크림 2개와 일할 때 쓰던 1만원도 안 되는 앞치마를 훔쳤다고 주장했다. 지난 11월 증거 불충분으로 ‘혐의 없음’ 처분을 받고서야 박씨는 오명을 벗었다.

김씨는 “박씨의 경험이 일반적이지는 않다”고 했다. 하지만 저임금, 긴 시간 노동을 겪는 미용사들의 인권·처우 문제와 맥을 같이한다는 점에서 보편성을 띤다고 봤다. 박씨의 개인사에는 견습제, 프리랜서 신분 등 미용사들이 겪는 어려움이 공통적으로 겹쳐 있었다. 두 사람은 3시간에 걸쳐 경험담을, 때론 목격담을 말했다. 신상과 얼굴 노출로 발생할 수 있는 2차 피해를 고려해 이들의 얼굴과 이름을 숨겨야 했다.

견습 땐 ‘무임금~100만원’에 잡일 도맡아

김미나(이하 김) 애견미용사는 견습 전후로 나뉜다. 견습이 끝나면 월급제 미용사와 ‘프리랜서’ 미용사로 갈린다. 하지만 월급제든 프리랜서든 미용사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건 비슷하다. 낮은 임금과 긴 시간 노동에 시달린 미용사가 일을 그만두고 최저임금 미달 등의 문제를 제기하면 애견 미용 사회에서 쉽게 매장당한다. 최근까지 ‘애견미용사 인권 운동 ME TOO’에 접수된 상담 건수만 100건이 넘었다.

박미소(이하 박) 초보 미용사에게 기술을 가르쳐준다는 구실로 견습을 악용하는 숍 주인이나 수의사도 있다. 한 견습생은 ‘어차피 바쁜 여름철 한 달만 쓰고 자를 거니까 가르쳐줄 필요도 없고 청소나 목욕 같은 힘든 일만 시켜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부당노동행위를 신고하면 사업주들은 ‘견습생이 할 줄 아는 게 뭐 있냐’고 비난한다. 견습 때 개 목욕을 너무 많이 해 손등이 벗겨졌다. 뜨거운 물에 담갔다가 곧장 뜨거운 바람을 쐬니까 피부가 벗겨진 거다. 하루에 30마리 넘게 목욕을 시킨 적도 있다.

숍 주인이나 수의사는 견습생이 노동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출퇴근 시간도 정해져 있다. 상식적으로 견습생한테 개 목욕을 시켰는데 어떻게 개 주인에게 돈을 받나. 무늬만 견습생일 뿐이다. 노동자로 대우해야 한다. 이마저도 수도권 지역은 견습비를 적게 주는 편이다. 지역에서는 100만원 주는 데도 있다. 하지만 견습생 수요와 공급이 많은 수도권 지역은 평균 50만∼70만원이다. 무임금이나 30만원도 안 주는 곳도 있다. 심지어 견습생이 일을 그만두고 나서 최저임금 미달 문제를 제기할까봐 현금으로 월급을 주는 데도 있다.

김 애견미용사 자격증을 따도 견습생을 거치지 않고 월급제나 프리랜서 미용사로 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자격증을 따면서 배운 이론과 현장에서 익힌 실무는 다르다. 하지만 견습 기간이나 교육 과정이 정해져 있지 않다. 길게는 2년까지 견습생을 부리는 데도 있다.

박 견습생들이 숍 주인이 키우는 강아지(상주 견)까지 관리하는 데도 많다. 상주 견이 많은 데는 수십 마리에 이른다. 도구 소독, 상주 견 방 청소, 목욕, 산책 등까지 교육을 핑계로 떠넘긴다. 식사 시간도 따로 없다. 혼자 미용실을 지키고 있으면 밥 먹다가 상주 견 대변 치우고, 밥 먹다가 상주 견 소변 닦는 처지다.

견습 떼도 일은 ‘직원’처럼 신분은 ‘개인사업자’

김 지금 동물병원에서 주 6일 일한다. 평일에는 오전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토요일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한다. 하지만 점심시간도 없다. 식비도 안 준다. 개 한 마리를 미용하면 2시간 정도 걸린다. 오늘만 해도 5마리 미용하느라 컵라면으로 때웠다. ‘프리랜서’라면서 정작 수의사가 미용사의 스케줄을 직접 고치고 짜기 때문이다.

박 미용사들이 아르바이트생들보다 돈을 못 번다. 미용비가 올라도 미용사들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프리랜서 미용사들에게 사업소득세(3.3%)를 공제하지만 사업소득세는 개인사업자가 내는 세금이다. 일은 노동자처럼 관리, 지시받으면서 신분은 개인사업자인 거다. 많은 미용사가 자신이 프리랜서인지 개인사업자인지 정확히 모른 채 일하는 경우가 많다.

김 대우 잘 받는 미용사는 부가가치세(10%) 안 떼는 미용사다. 비참한 현실이다. 예를 들어 주 6일 근무로 한 달 미용비 220만원을 벌었다고 치자. 하지만 부가가치세를 뺀 미용비도 숍 주인이나 수의사와 평균 7 대 3으로 나눈다. 많이 쳐주면 8 대 2다. 부가가치세와 수의사 몫을 떼고 남은 141만원에서 소득세(3.3%)까지 또 뗀다. 실제 미용사에게 떨어지는 돈은 140만원 정도다.

박 최근 숍 주인이나 수의사들이 4대 보험에 들어준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숍 주인이나 수의사의 인식이 깊어졌다기보다는 최근 미용사들이 고용노동청 등에 부당노동행위를 신고하기 시작하니까 4대 보험에 가입해주는 거다.

개에 물려도 보상 대신 “기술 서툴다” 타박
애견미용사들이 미용을 하다가 개에 물려도 견주나 숍 주인, 수의사 등에게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애견미용사 인권 운동 ME TOO 모임 제공

애견미용사들이 미용을 하다가 개에 물려도 견주나 숍 주인, 수의사 등에게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애견미용사 인권 운동 ME TOO 모임 제공

김 개가 손 말고도 얼굴, 가슴, 옆구리도 문다. 턱을 물리거나 입술이 찢어지는 미용사도 있다. 대형견뿐만 아니라 소형견도 문다. 개 주인들은 ‘작은 개가 물면 얼마나 문다고 입질 비용(개한테 물린 배상 비용)을 추가로 받냐’고 따진다. ‘우리 개는 안 문다. 기술이 서툰 거 아니냐’고 비난한다. 하지만 수십 년 된 베테랑도 물린다.

박 어느 날 숍 주인에게 애견 미용을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나이 든 강아지를 미용해보라고 했다. 알고 보니 미용을 받다가 미용사를 문 기록이 있는 개였다. 그런데도 숍 주인은 이를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 결국 미용을 하다가 개에게 손가락을 물렸다. 갑자기 무는 바람에 피하지도 못했다. 유기견이어서 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 숍 주인에게 병원에 다녀오겠다고 했지만 ‘상처에 물 안 들어가게 미용하라’는 말만 들었다. 몰래 점심시간에 사비로 파상풍 주사를 맞았다.

김 개 주인에게 입질 추가 비용 1만원을 달라고 하면 ‘기분 나쁘다. 다신 안 오겠다’며 오히려 따진다. 수의사는 ‘손님에게 토 달지 말라’고 한다. 한 숍 주인은 ‘밖에 있는 손님들이 놀라니까 개에 물려도 소리 지르지 말라’고 했다. ‘입질견(미용 중 사람을 무는 개) 미용하기 너무 힘들다. 그만 받으면 안 되겠냐’고 물어도 숍 주인은 ‘가게 용품을 많이 사 가는 손님을 어떻게 내치냐’며 참으라고 한다.

입마개를 해도 오리 부리처럼 벌어지는 입마개를 하면 미용사가 물릴 수 있다. 스스로 입마개를 벗는 개도 있다. 이 경우 다시 입마개를 씌우면 된다. 하지만 정작 미용할 때는 입 주변 털도 깎아야 하니까 입마개를 못 씌운다. 미용사가 손으로 잡고 있어도 손아귀 힘이 약해 개 입이 벌어진다. 그사이에 물려 손가락 살점이 떨어지는 거다.

애견업계 좁아 문제 제기 땐 ‘블랙리스트’

박 이 바닥이 좁으니까 미용사 학원, 숍 주인, 수의사 등이 몇 다리 거치면 알 수 있다. 수의사는 수의사끼리, 숍 주인은 숍 주인들대로 ‘블랙리스트’ 미용사 정보를 나눈다.

김 일부러 서울로 올라왔다. 미용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노동 착취의 심각성을 알리는 집회도 열 거다. 연맹과 협회 등이 있다. 하지만 처우 개선 등에는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포털사이트 카페들에도 학원 관계자, 유명 숍 주인, 개인 숍 주인, 가위 등 협력 회사들이 미용사 머릿수보다 많다. ‘미용사한테 신고당했다’ ‘쪽지로 미용사 실명 주고받자’ 등의 얘기가 수시로 오간다.

지난 11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밴드에 ‘애견미용사 인권 운동 ME TOO’ 모임을 만들었다. 모임을 만든 지 한 달도 안 돼 회원 수가 220명을 넘어섰다. 익명인데도 여전히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회원이 있다. 내부에 적이 있을지 모르니까 겁내는 거다. 하지만 오로지 미용사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공간으로 쓸 거다. 현재까지는 이런 모임도 없었다. 심지어 한 인터넷 카페에는 미용사 블랙리스트 카테고리가 따로 있었던 때도 있다. 그만큼 애견 미용 바닥이 좁고 폐쇄적이다.

박 그래도 사람들이 알음알음 모이고 있다. 포털사이트, SNS, 오픈 채팅방 등에 알리고 있다. 미용사들이 주변에 추천해주는 경우도 있다. 방관하면 우린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한다.

김 우선 회원 수 300명 돌파가 목표다. 집회에 10명만 참여해도 성공했다고 본다. 이르면 올해 말에 집회를 열 예정이다. 얼굴이나 신원이 드러나지 않게 가면을 쓰고 거리로 나설 거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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