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검찰 ‘실세’로 통한다. 법조계는 물론 정치권과 언론에서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검찰 서열의 정점에 검찰총장이 있는데 왜 윤 지검장을 실세라 할까.
검찰 ‘넘버2’, 아니 그 이상서울중앙지검장은 검찰의 ‘넘버2’라 한다. 검찰총장 직속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대검 중수부)가 2013년에 폐지된 뒤부터다. 그 전에는 대검 차장과 중수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과 함께 ‘빅4’라 불렸다. 이 자리들은 검찰총장이 되기 위한 요직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대검 중수부 폐지로 수사 능력이 뛰어난 검사들이 서울중앙지검에 모이면서 자연스레 정권에 큰 영향을 미치는 권력형 비리 수사도 이곳에 집중됐고, 이곳을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장의 힘이 세졌다. 검찰 권력이 수사에서 나오는 데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윤 지검장의 위상은 ‘넘버2’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힘은 검찰 내부는 물론 검찰 밖에서도 작동한다. 지난 10월19일 서울고등검찰청(고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벌어진 일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날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윤 지검장에게 그의 장모가 연루된 사기 사건에 대해 물었다. 위조된 통장 잔고증명서로 거액을 빌린 뒤 갚지 않은 한 사기 사건에 윤 지검장의 장모 최아무개씨가 연루됐다는 의혹과 관련된 질의였다. 장 의원은 “피해자 9명이 저를 찾아와서 ‘(윤 지검장의) 장모로부터 사기당해 30억원을 떼였고, 장모의 대리인이 징역 받아서 살고 있는데 실질적으로 사기의 주범인 장모는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윤 지검장이 배후에 있다’는 하소연을 했다”고 말했다. 장 의원은 “장모의 일이라 모른다고 하면 안 된다”며 “지검장의 장모 일이 이렇게 회자되는데 도덕성 문제를 당연히 따져야 된다”고 했다.
그러자 윤 지검장은 발끈했다. 그는 “정말 모르는 일이고 중앙지검에는 (제) 친인척 관련 사건이 없다. 그게 왜 제 도덕성의 문제가 되느냐. 제가 관여했다는 증거가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아무리 국감장이지만 너무하시는 거 아닌가”라며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나타냈다. 이전 정권 때 같으면 한바탕 난리가 날 게 틀림없는 윤 지검장의 반발은 의외로 큰 탈 없이 넘어갔다. 장 의원이 “피감기관장이 국회의원의 정당한 질의에 반발하는 것은 대단히 오만한 행동”이라고 핏대를 세웠지만 그것뿐이었다.
윤 지검장의 모습은 과거 국감에서 검찰총장을 비롯한 고위직 간부들이 보여줬던 태도와 전혀 달랐다. 과거에는 의원들이 터무니없는 질의를 할지라도 검찰 간부가 목소리를 높이는 일은 없었다. ‘너무하는 거 아니냐’는 답변은 아예 엄두도 못 냈다. 2016년 국감에서 당시 김수남 검찰총장은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생 지만씨와의 친분 관계를 추궁당했다. 조 의원이 제시한 근거는 출처를 밝히지 않은 카카오톡 메시지뿐이었다. 그의 질의는 ‘카더라’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김 총장은 “금시초문이다” “무슨 말씀을 하는지 제가 잘 모르겠다”고 차분하게 부인했다. 목소리를 높인 쪽은 조 의원이었다.
과거 검찰 고위직과 다른 태도 배경엔법조계에서 윤 지검장의 국감 태도에 대한 평가는 문재인 정부의 검찰에 대한 평가와 궤를 같이한다. 검찰의 ‘적폐 수사’와 ‘사법 농단 수사’를 지지하는 쪽은 “당당하다”고 긍정적으로 보는 반면, 검찰 수사가 못마땅한 쪽에서는 “오만하다”는 혹평이 나온다. 이처럼 상반된 평가를 내리는 이들도 한 가지 사실은 공통적으로 인정하는데, 그게 바로 윤 지검장이 역대 가장 막강한 서울중앙지검장이라는 점이다.
윤 지검장의 힘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 수사에 대한 여론의 지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에 이어 이명박 전 대통령 비리 수사, 그리고 현재 ‘사법 농단’ 수사까지 최근 2년여 동안 진행된 검찰 수사는 여론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노무현 정권 초기에 있었던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능가한다. 윤 지검장은 이 세 수사에 모두 참여했다. 이 전 대통령 사건과 사법 농단 수사(공소유지 포함)는 그가 직접 지휘하고, 국정 농단 사건은 앞서 박영수 특별검사팀(특검팀)에 수사팀장으로 합류해 실무를 총괄했다.
“사람 아닌 조직에 충성한다”두 명의 전직 대통령과 전직 대법원장을 겨냥했기 때문에 정치적 논란이 불가피한 수사인데도 여론의 지지가 견고한 데는 사건의 성격(민주주의 훼손과 파렴치함, 전대미문의 재판 거래 의혹 등) 탓이 크지만, 윤 지검장의 ‘강골 검사’ 이미지도 한몫한다. 그가 박근혜 정권 때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팀장을 맡아 검찰 수뇌부의 수사 외압에 맞섰던 모습은 국민이 바라던 ‘검찰상’에 딱 들어맞았다.
윤 지검장은 2013년 국정원 댓글 수사 실무를 지휘하면서 검찰 수뇌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압수수색과 체포영장을 집행했다가 수사팀에서 쫓겨났다. 그는 그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과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찰 수뇌부의 수사 방해와 외압을 적나라하게 증언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는 것을 반대한 검찰 수뇌부가 노골적으로 수사를 방해한 행태를 검찰 수뇌부 면전에서 폭로한 것이다. 그의 증언은 검찰을 정권의 시녀로 전락시킨 ‘정치검사’들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들은 원 전 원장을 선거법 위반(불법 선거 개입) 혐의로 기소할 경우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에 큰 타격을 줄 것을 우려했다.
윤 지검장이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 의원의 인격모독성 질의에 “난 조직에 충성하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한 답변은,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수사에만 전념하는 바람직한 검찰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정권의 ‘역린’을 건드린 대가는 컸다. 그는 항명을 이유로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은 뒤 이듬해 1월 정기인사에서 고검 검사로 좌천됐다. 대검 중수2과장·중수1과장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등 특수부 요직을 섭렵한 경력에 전혀 맞지 않는 인사였다.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 인사들은 그를 정치검사로 깎아내리기에 혈안이 됐다.
그러나 그의 과거 행적은 정치검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서울지검 특수2부 검사 때 당시 김대중 정권의 경찰 실세였던 박희원 정보국장(치안감)을 구속했다. 경찰과 일부 호남 정치인들이 수사 초기부터 거세게 반발했지만 그는 구속을 강행했다. 노무현 정권 때는 대선자금 수사팀에 참여해 이상수 민주당 사무총장, 안희정, 강금원 등 대통령 측근을 잇따라 구속했다. 당시 노 대통령이 측근들에게 검찰에 대한 분노를 토로할 정도로 정권 핵심을 건드린 수사였다. 과거 정권 실세가 연루된 사건에서 절묘한 ‘꼬리 자르기’로 정권이 입을 타격을 최소화했던 다른 권력형 비리 수사들과 달랐다.
이런 맥락에서 2016년 12월 박영수 특검이 윤 지검장을 수사팀장에 임명한 것에 언론이 대체로 좋은 평가를 내린 것은 당연했다. 당시 서울고검 검사이던 윤 지검장은 현직 검사 신분으로 특검 수사팀장을 맡는 것에 부담을 느꼈지만, 과거 대검 중수부에서 함께 일했던 박 특검의 강권을 뿌리칠 수 없었다. 박 특검은 파견 검사 선발을 포함해 수사팀 구성의 전권을 윤 지검장에게 넘겼다. 그만큼 그를 신뢰했기 때문이다.
박영수 특검, 직 걸고 배수진특검 수사팀 구성은 순탄치 않았다. 윤 지검장은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팀에서 함께 일했던 후배 검사들을 파견해줄 것을 법무부에 요청했다. 그들은 눈빛만 봐도 마음이 통하는 막역한 사이였다. 그러나 법무부는 윤 지검장의 요청을 거절했다. 법무부는 해당 검사들이 다른 일을 맡고 있거나 해외연수 대상이라는 이유를 댔지만, 속내는 다른 데 있었다.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에 참여한 검사들은 박근혜 정권에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더구나 당시 수사를 방해했던 황교안 전 장관이 총리로 영전해 국회의 탄핵 의결로 직무가 정지된 박 대통령을 대신하고 있었다. 황 권한대행이 특검 수사를 흔쾌히 도와줄 리 없었다.
윤 지검장의 보고를 받은 박영수 특검은 배수진을 쳤다. 박 특검은 “법무부가 파견 검사 선발에 협조하지 않으면 특검을 그만두겠다”고 통보했다. 박 특검의 최후통첩은 효과를 봤다. 법무부는 윤 지검장이 요청한 검사들 가운데 해외연수를 앞둔 검사를 제외하고 특검팀에 파견했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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