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명이 숨졌다. 2009년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서 점거파업 중이던 노조 간부의 아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해고노동자 아내의 첫 죽음이었다. 이어 2010년 남편의 해고 후 생활고와 우울증에 시달리던 한 아내도 스스로 몸을 던졌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거나 스트레스로 인한 심장마비 등으로 목숨을 잃은 해고노동자 가족 30명 속에 가려져 있던 아내들의 죽음이었다.
죽음의 그림자는 2018년 현재까지도 아내들을 따라다녔다. 평택공장에서 점거농성을 벌이지 않았던 쌍용차 해고노동자 아내들에게도 남편들이 받아야 했던 원색적인 비난과 차별, 낙인 등이 가해졌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죽은 자’들의 삶, 해고노동자 아내</font></font>쌍용차 해고자의 아내 배은경(49)씨는 9월5일 과 한 인터뷰에서 “해고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산 자’였고, 그들에게 우리(아내들)는 ‘죽은 자’였다”고 말했다. 배씨는 두통약을 달고 살았다. 그의 가방에는 언제나 두통약이 들어 있다. 눈 피로와 두통이 심해서다. 태평하게 지나가는 헬기 소리만 들어도 놀랐다. 순식간에 그의 시계는 2009년으로 돌아갔다. 헬기로 남편이 있던 공장에 최루액을 쏟아붓던 모습을 속절없이 지켜봐야 했던 당시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쌍용차 사건이 발생한 지 햇수로 10년이 됐다. 하지만 배씨의 고통은 과거에 머물러만 있지도, 사라지지도 않았다. 주위 사람들의 차별과 낙인 등으로 고통은 덧났다. 친한 친구들도 그의 고통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힘들면 남편이랑 이혼하든지, 무슨 수를 써라”는 친구들의 힐난에 상처투성이가 됐다. “이제 복직되는 거 아니냐, 그만 좀 얘기해라”는 남들의 말은 차라리 견뎌낼 수 있었다. 하지만 수년째 같이 일하는 직장 동료들에게 “집안 사정이 어려운 건 알겠는데 직장에서는 얼굴 좀 펴고 다녀라”는 충고 아닌 충고까지 듣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사회와 단절된 배씨는 입을 닫았다.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사회로부터 고립시켰다.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어울리는 것도 피했다. “나를 잘 안다는 사람들한테도 이해받지 못했다.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남편 얘기를 거듭하는 것도 힘들었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첫째 아들(20)은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너희 아빠 새총 던져서 경찰에 잡혀갔냐”는 놀림을 당했다. 첫째 아들은 학교에 제출하는 아버지 직장란에 ‘해고자’ 대신 ‘무직’을 적었다.
밖으로 드러낼 수 없었던 상처와 갈등은 가족 안에서 곪아터졌다. 초창기 배씨는 복직 투쟁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온 남편에게 불만과 울분을 토해냈다. “이제 좀 그만하면 안 되겠냐, 평범하게 살 수는 없냐”고 소리 지르고 울었다. 복직 투쟁 중인 해고자의 아내로, 아이들을 키우는 홑벌이 ‘가장’으로, 남편과 사위의 빈자리를 채우는 며느리와 딸로, 남편에 대한 배씨의 감정은 복합적이었다.
배씨는 2016년 심리치유공간 ‘와락’에서 심리 치료를 받기로 결심했다. 신경성이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약에 의존하고 싶지는 않았다. 우울 증상은 심해졌다. 일하지 않고 쉬는 주말에나 깊이 잘 수 있었다. 2009년의 기억은 예고 없이 그를 집어삼켰다. “잊히지 않는 기억”이고, “땅에 묻혀야만 기억에서 잊힐 법한 일들”이었다. 와락에서 해고노동자 아내들과 둘러앉아 얘기했다. 그들의 얘기는 곧 배씨의 얘기였다. 또다시 눈물을 쏟았다.
복직자의 아내이기도 한 권지영 와락 대표는 “남편들은 당사자이기 때문에 충격이 가장 클 것이다. 남편들이 충격을 추스르고 복직 투쟁에 나서면서 아내들이 육아, 생계, 집안 대소사를 도맡았다. 물론 한국 사회에서 아내이자 엄마였던 여성들이 자기 몫이라 생각해 일을 혼자 껴안은 면도 있다”며 “앞으로는 어떤 사건이 생겨도 더 약자, 더 고통받는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 약자들이 행복하다면 나머지는 굳이 노력하지 않더라도 행복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강조했다.
쌍용차 해고자 아내의 48%가 “최근 1년간 진지하게 자살을 생각해본 적 있다”는 연구 결과도 처음 나왔다. 해고자 아내의 10명 가운데 4명꼴로 최근 1년간 극단적 생각을 했다는 얘기다. 질병관리본부의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참여한 같은 또래 일반 여성의 최근 1년간 자살 생각 유병률(5.7%)과 견줘 8.6배나 높은 비율이다. 복직자 아내의 최근 1년간 자살 생각 유병률도 20.6%에 이르렀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해고자 아내 신체·정신 건강 실태 첫 조사</font></font>해고노동자 아내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 실태 연구가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존에는 해고노동자의 건강 실태를 진단하는 연구 중심이었다. 이번 조사 결과는 국가폭력과 폭력적 해고가 해고노동자 당사자뿐 아니라 아내 등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줬다.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 연구팀은 국가인권위원회와 와락 공동협력사업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는 6월5~29일, 해고자 아내 28명, 복직자 아내 38명에게 온라인 설문으로 했다. 또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자동차지부를 통해 해고자 89명과 복직자 34명에게 와락 회의실에서 해고노동자 설문조사도 했다.
김승섭 교수는 9월6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당신과 당신의 가족은 이런 해고를 받아들일 수 있나요’라는 주제로 쌍용차 해고노동자, 가족 실태조사 연구 결과 발표회를 열어, “세상을 떠난 쌍용차 해고노동자 가족들 가운데 아내들도 있다. 이 때문에 해고자 아내들의 자살 생각 비율이 높을 수 있다고 예상했지만, 실제 응답률은 예상을 웃돌았다”며 “최근 연구팀에서 천안함 생존 장병들에게 동일한 질문을 했을 때 응답률이 50% 수준이었다. 이 결과와 견줘 쌍용차 해고자 아내들이 얼마나 정신적으로 힘든지 수치적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해고노동자 아내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조사 결과 해고자 아내의 82.6%(19명)가 “지난 일주일간 우울 증상이 있었다”고 응답했다. 복직자의 아내도 48.4%(15명)나 됐다. 쌍용차 사건 당시 의료 지원을 했던 이상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는 “어떤 트라우마가 있더라도 삶은 지속될 수 있다. 이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스스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상처나 트라우마는 언제든지 다시 생겨나 이유도 없이 우울 증상을 악화할 수 있다”고 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해체 위기 빠진 상처 입은 가족들</font></font>2009년 관리자들이 한 관제 데모의 기억도 끊임없이 가족들을 괴롭혔다. 함께 일하고 같이 여행도 다닐 만큼 친했던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적이 됐다. 김정욱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자동차지부 사무국장은 “힘이 빠지고 화나고 겁나고 힘들었던 순간”으로 기억했다. 해고노동자 아내들은 김승섭 교수팀이 진행한 ‘포커스 그룹 인터뷰’(FGI)에서도 “관리자들이 너네 때문에 그렇다, 다 같이 죽자”며 욕하고, “가족들에게 쇠파이프나 물병 같은 물건을 던졌다”고 증언했다.
배씨의 말처럼, 아내들은 결코 ‘산 자’가 될 수 없었다. 해고노동자 아내들의 75%(18명)가 남편이 해고당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봤다. 남편의 해고로 세상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끼는 아내도 70.8%(17명)에 이르렀다. 해고자 아내의 45.8%(11명)는 남편의 해고로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보이거나 행동하게 될까봐 예전처럼 사람들과 잘 사귀지 않게 됐다.
‘산 자’들의 차별은 당사자가 아닌 아내들에게도 가해졌다. 남편이 쌍용차 해고노동자라는 이유로 아내들도 유·무형의 차별을 겪은 것이다. 해고자 아내의 54.6%(12명), 복직자 아내의 62.5%(20명)가 각각 차별을 경험했다. 차별은 아내들이 일하는 직장(66.7%)에서 가장 많이 일어났다. 거리나 동네(33.3%)에서, 상점·음식점·은행 등(30%)에서도 해고자 아내들은 차별을 느껴야 했다.
눈앞에서 손가락질하지 않더라도 비언어적인 시선에 해고자 아내들은 위축됐다. 권지영 와락 대표는 “아내들은 육아 문제 때문에 경력이 단절된 채 있다가 남편들의 해고 이후 급하게 일자리를 찾아 취업했다. 소규모 공장, 식당 등 아내들이 일하는 좁은 공간에서도 차별적인 얘기가 오갔다”며 “‘남편이 쌍용차 해고자’라는 선입견을 갖거나 아내들이 자리를 비우면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이기적이었다, 잘못했다’ 식의 대화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상처 입은 가족들은 해체 위기에 빠졌다. 최근 1년간 남편과의 관계가 만족스럽지 않다는 응답은 33.3%(8명)에 이르렀다. 쌍용차 사건을 함께 겪은 부부는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던 관계였다. 하지만 아내도 아팠고, 남편도 아팠다. 엄마아빠 사이가 나빠지자 집안도 화목하지 못했다. 최근 1년간 가족 생활이 불만족스럽다는 해고자 아내는 33.3%(8명)에 이르렀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이들의 고통은 우리의 오래된 미래”</font></font>유금분 와락치유단 상담가는 “옥쇄 파업 당시 엄마를 따라왔던 아이가 그 뒤에도 버스를 타지 못하고, 헬기 소리가 들리면 경기를 일으켰다. 아이가 안심하고 버스를 탈 수 있도록 상처를 치유하는 데 2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며 “아빠가 복직되고 나서야 아이가 아빠가 다니던 회사에 대해 처음 묻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김승섭 교수는 “해고노동자들은 대단한 요구를 하는 게 아니다. 부당하게 해고된 직장으로 돌아가겠다는 상식적 수준의 얘기다”라며 “고용 불안이 점차 심해지는 한국 사회에서 정리해고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정리해고가 가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해고자와 가족의 눈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들이 겪은 고통은 언젠가 겪을 수 있는 우리의 오래된 미래다”라고 말했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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