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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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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올림 1023일 농성 ‘해피엔딩’ 비결은?

삼성 맞서 직업병 피해자·활동가 비닐지붕 아래 풍찬노숙

견고한 투쟁 주체와 광범위한 연대의 힘이 성공 불러
등록 2018-08-07 15:59 수정 2020-05-03 04:29

2017년 크리스마스를 한 주 앞둔 토요일 밤. 나는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자리잡은 ‘5성급 호텔’에 묵었다. 평상시에도 예약이 꽉 차는 곳이지만, 2주 전에 예약해 투숙객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마침 운 좋게 새로 빤 침낭을 펴는 날이어서 향긋한 냄새를 맡으며 쾌적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영하 10.8도의 노숙</font></font>
‘5성급 호텔’은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농성장의 별명이다. 삼성을 향해 직업병 피해 사실 사과·보상·재발 방지 등을 요구하며 강남역 8번 출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 2015년 10월7일부터 2018년 7월25일까지 1023일간 있었던 그 농성장 말이다. 농성장 밤지킴이들을 모시기 위해 반올림 활동가들은 고급스러운 별명을 붙였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땅덩어리에 머리 누이는데, 호텔이 아니겠냐는 심정도 있었다. 실은 눈앞에 별이 다섯 개가 보일 정도로 힘든 농성이었지만.

반올림 농성 803일째. 농성장에서 자고 일어난 변지민 기자가 팻말을 고쳐 쓰고 있다. 반올림 제공

반올림 농성 803일째. 농성장에서 자고 일어난 변지민 기자가 팻말을 고쳐 쓰고 있다. 반올림 제공

내가 찾은 날은 최저기온 영하 10.8도를 기록한 날이었다. 기자가 아닌 직업병 피해자에 연대하는 일반 시민의 자격으로 갔다. 한파에 농성장 안과 밖을 가르는 경계는 고작 비닐 두어 장이었다. 동화 에서 늑대가 입으로 바람을 불면 날아가는 지푸라기 집이 떠올랐다. 농성장에 쟁여놓은 생수병도 얼어붙었다. 그래도 사람의 온기가 머무는 곳이라고, 비닐엔 결로가 가득했다. 농성장 한쪽엔 긴 겨울이 어서 끝나고 봄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우리가 이긴다고 봄’이라고 적은 손팻말이 붙어 있었다.

‘5성급 호텔’은 2~4인실이었다. 그날 함께 숙박하게 된 분과 침낭을 돌돌 말아 껴안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그분은 ‘우리는 아주 긴 릴레이 경주를 하고 있다. 내가 결승선을 통과하는 주자가 아니어도 좋다. 우리가 완주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뜻했다. 나는 ‘그래도 이왕이면 내가 결승 주자가 되면 좋겠다’고 했다.

강남역 8번 출구 주변은 밤이 되니 썰렁했다. 대로변이라 버스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다녔다. 강남역 화장실에서 찬물로 고양이 세수만 하고, 양말을 두 겹 신은 뒤 군용 핫팩을 두꺼운 침낭 속 발밑에 두고 잠을 청했다. 자동차 소리가 시끄러워 뒤척이다 잠깐 잠이 들었을까, 얇은 비닐 너머로 한 남성이 거칠게 욕하는 소리에 신경이 쭈뼛 곤두섰다. 무서웠다. 불이라도 지르면 어떡하지. 나가 보기엔 너무 귀찮았다. 정신이 말똥말똥하게 드러누운 채 작은 농성장 내부를 보고 있자니 새벽 청소를 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한겨울 반올림 농성장 내부 모습. 얇은 비닐이 안과 밖을 구분짓는 경계다.  반올림 제공

한겨울 반올림 농성장 내부 모습. 얇은 비닐이 안과 밖을 구분짓는 경계다. 반올림 제공

<font size="4"><font color="#008ABD">“태풍 오면 모든 걸 버리고 도망가라”</font></font>

농성 시작 1일차(2015년 10월7일). 그날은 ‘삼성전자 반도체 등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이하 조정위원회)가 제6차 조정회의를 연 날이었다. 삼성전자는 같은 해 9월부터 조정위원회의 권고안을 무시한 채 자체 보상위원회를 만들어 피해자들에게 개별적으로 신청받고 있었다. 당시 삼성전자는 조정위원회가 권고한 ‘독립 법인’이 백혈병 등 직업병 피해를 접수하고, 각 사업장 등을 감시하는 권한을 가지는 걸 꺼렸다. 삼성전자는 조정회의 진행을 계속 ‘보류’시켜달라고 요청했다. 반올림은 “삼성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교섭 조정이 삼성의 보류 요청에 더는 농락당할 순 없다”며 농성을 시작했다.

농성은 험난했다. 활동가들은 플라스틱 팰릿(화물을 쌓는 대) 위에 돗자리를 깔고 지붕도 없이 첫날 잠을 잤다. 당시 반올림은 한 달에 한 번씩 집회신고를 했는데(30일치씩), 경찰은 집회 물품에 텐트나 천막을 못 넣게 했다. 서초구청은 농성장의 높이가 1m만 넘어가도 ‘민원이 들어왔다’며 철거하겠다고 들이닥쳤다. 활동가들은 머리를 모았다. 기둥이 아니면서도 기둥을 할 만한 무언가를 찾아야 비와 눈을 피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온 게 ‘우산지붕’이다. 파라솔 받침대 위에 우산을 펴고, 그 위에 비닐을 얹었다.

겨울보다 여름이 더 힘들었다. 황상기 반올림 대표(삼성전자 노동자 고 황유미의 아버지)는 “겨울에는 침낭과 난로라도 있는데, 여름은 더위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도 없다. 사람이 많은 곳이라 옷도 함부로 벗을 수 없고 선풍기 한 대 없다. 땀이 나면 나는 대로, 해가 비치면 비치는 대로 맞을 수밖에 없다. 폭염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바람 역시 큰 위협이었다. 권영은 전 반올림 상임활동가는 “여름마다 걱정이었다. 우산지붕과 철제에 끈을 연결해 무거운 시멘트 블록을 달아놓기도 했다. 태풍이 와서 농성장이 날아갈 것 같으면 ‘모든 걸 다 버리고 강남역 8번 출구로 도망가라’는 비상 지침도 정해뒀다. 다행히 태풍이 한 번도 안 왔다”고 했다.

그래도 가장 무서운 건 사람이었다. 엄마부대 회원 30여 명은 2017년 1월16일 반올림 농성장을 찾아 “이재용 구속을 중단하라”며 손팻말과 펼침막을 찢고, 전시 물품을 망가뜨렸다. 올해 7월7일엔 지나가던 일가족 예닐곱 명이 농성장의 손팻말을 부쉈다. 이에 항의하는 활동가를 밀치며 “길 가다 건물에 붙어 있는 게 더러워서 치운 게 뭐가 문제냐”고 소리치기도 했다. 밤에 취객들이 농성장에 오줌을 누거나 손팻말 또는 반도체 노동자 형상 부수기는 예사였다. 언론의 왜곡 보도 역시 큰 상처를 안겼다.

반올림 농성장에는 유독 꽃이 많았다.  변지민 기자

반올림 농성장에는 유독 꽃이 많았다. 변지민 기자

<font size="4"><font color="#008ABD">꽃이 많았던 농성장</font></font>

각종 위협에도 반올림이 끈질기게 1023일을 버틸 수 있었던 건 그만큼 반올림을 지켜주는 사람들이 많았던 덕이다. 예닐곱 명의 상임활동가와 직업병 피해자들뿐 아니라 시민사회단체의 광범위한 연대가 반올림 농성을 이끌어왔다. 반올림의 초대에 응한 ‘이어말하기’(집회 발언) 손님의 면면만 봐도 그 폭을 짐작할 수 있다.

백혈병·유방암·뇌종양·갑상선암·다발성경화증·재생불량성빈혈 등 삼성 직업병 피해자, 세월호·용산 참사·가습기살균제 유가족, 쌍용차·KTX 해고노동자, 참여연대·민변·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공익인권법재단 공감, 희망연대노조·직장갑질119·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삼성전자서비스지회·갑을오토텍지회, 천주교 서울대교구·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 더불어민주당·녹색당·노동당·사회변혁노동자당 등 수없이 많은 사람이 찾았다.

‘대중과 함께하는 싸움’은 반올림의 전략이기도 했다. 반올림 농성장에는 유독 꽃이 많았다. 권영은 전 상임활동가는 “농성장을 일부러 지저분하고 보기 싫게 만들어 회사로 하여금 ‘빨리 치워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곳도 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이 문제를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이목을 집중시키고 싶었고, 그래서 깨끗하고 예쁘게 농성장을 가꿨다”고 말했다.

2016년 봄 농성장 주변으로 하얀 고무신 수십 켤레가 늘어섰다. 고무신마다 흙이 담겼고 꽃이 심겼다. 하얀 고무신은 삼성에서 직업병으로 돌아가신 한 분 한 분을 상징했다. 하도 꽃이 많아 지나가는 사람이 ‘꽃집이냐’고 묻기도 했다.

농성장은 학생들의 학습 장소로도 쓰였다. 각 대학의 직업환경의학과, 사회학과, 로스쿨 학생들이 견학을 하러, 과제를 하러 찾았다. 농성장 앞마당은 매주 열리는 문화제로 북적였고, 때로는 야외 영화 상영장이 되기도 했다. 등 삼성 직업병을 다룬 영화가 빔프로젝터로 펼쳐졌다.

사람이 많이 찾으니 후원도 많이 들어왔다. 이종란 반올림 상임활동가는 “농성을 시작한 뒤로 사람들이 고생한다고 더 후원을 많이 해주셔서 경제적으로 어렵지는 않았다”고 했다. 점심과 저녁 때는 도시락을 사들고 오는 ‘도시락 연대’ 방문이 있었고, 후원금 모집을 위해 만든 배지와 티셔츠, 부채도 수천, 수만 개씩 팔렸다.

7월25일 반올림 농성장 해단식. 황상기 반올림 대표가 한 참가자에게 ‘최고의 연대상’을 주고 있다. 박승화 기자

7월25일 반올림 농성장 해단식. 황상기 반올림 대표가 한 참가자에게 ‘최고의 연대상’을 주고 있다. 박승화 기자

<font size="4"><font color="#008ABD">농성 성공의 세 가지 비결</font></font>

반올림의 1023일은, 농성 투쟁으로선 드물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됐다. 올해 7월18일 조정위원회가 새로운 질병 보상 방안, 반올림 피해자 보상안, 삼성전자의 사과, 반올림 농성 해제, 재발 방지와 사회공헌 등의 내용이 포함된 2차 조정안을 발표했고 7월24일 삼성전자·반올림·조정위원회가 중재합의서에 서명했다. 7월25일 반올림은 농성장을 철거하고 해단식을 열었다.

‘해피엔딩’의 비결은 뭘까. 반올림 농성에 매주 밤지킴이로 나섰던 하해성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조직부장은 세 가지 성공 비결이 있었다고 했다.

“첫째로 투쟁의 주체가 견고했어요. 황상기·김시녀·한혜경 등 피해자들이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버텼어요. 아무리 연대가 많이 들어와도 투쟁할 주체가 한 명도 안 남아 있으면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요. 황상기 아버님은 삼성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고, 김시녀·한혜경 모녀는 박사모로부터 온갖 수모를 받아도 의지를 꺾지 않았어요.

둘째는 연대의 힘이에요. 삼성이라는 거대한 힘에 맞서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문제가, 우리 사회의 정의를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됐어요. 그래서 사회적 정의를 지향하는 수많은 분이 연대하게 됐죠.

셋째는 연대하러 온 분들의 면면도 훌륭했어요. 이종란의 공감력, 공유정옥 상임활동가의 다재다능함, 전성호·이상수 상임활동가의 반도체 노동에 대한 전문성, 임자운 변호사의 변론 능력 등이 모여 불패의 팀이 만들어졌죠. 투쟁하다보면 서로가 서로의 열정을 갉아먹는 일이 많은데, 반올림에 연대한 분들은 풍성하고 너그러웠어요.”

반올림의 투쟁은 한국에서 노동자의 건강권을 진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고 황유미 씨는 2007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지면서 반도체 공정의 직업병 논란을 세상 밖으로 처음 알렸다. 그는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질병 피해를 본 노동자 중 처음으로 2011년 법원의 산업재해 인정 판결을 받았다. 2018년까지 법원은 반도체·엘시디(LCD) 노동자 13명의 질병을 산업재해로 판단했다. 근로복지공단도 2011년 이후 반도체 노동자 15명의 산업재해 피해를 인정했다.

총 28명. 작지만 큰 숫자다. 질병의 업무 관련성을 부정하고 관련 자료를 내놓지 않으려는 대기업에 맞서 반도체 노동자 28명이 백혈병, 재생불량성빈혈, 뇌종양, 난소암, 다발성경화증, 림프종, 유방암, 폐암, 불임으로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아직 갈 길은 멀다. 반올림은 “삼성전자 반도체와 엘시디 부문 피해 제보자가 230여 명이고 이 중 사망자가 80명”이라고 밝혔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농성 끝 투쟁 시작</font></font>

농성은 끝났지만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종란 상임활동가는 “삼성전자의 반도체·엘시디 공장 피해자에 대해서만 중재안이 마련될 예정이다. 반올림은 삼성전기와 삼성SDI 등 다른 계열사와, 삼성 외 반도체 전자산업에서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되는 노동자 전체의 건강권 쟁취를 위해서 계속 싸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연대의 시작이기도 하다. 반올림 농성이 끝나고 8일 뒤인 8월2일. 반올림 상임활동가와 자원봉사자들은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쌍용차 농성장을 찾았다. 초열대야(최저기온 30도 이상)가 닥친 날 쌍용차 농성장의 밤지킴이를 하러 온 것이다. 황상기 대표는 “그동안 진 빚을 갚으러 왔다”고 했다. 그는 “다들 몸이 많이 상해 있는데, 조금씩 회복되는 대로 다른 사업장도 연대하러 다닐 것”이라고 했다.

폭염에 농성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좋은 일이지만, 그 속에서 함께 고생하며 연대했던 사람들에게 기억의 공간이 사라지는 일은 사뭇 아쉬운 일이다. 이젠 돈 주고도 못 자는 ‘5성급 호텔’이 그리울 것 같다.

<font color="#008ABD">글 </font>변지민 기자 d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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