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항로를 오가는 한 항공사 기장이 “태양(방사선)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방법은 없다. 납덩이로 앞을 가린 채 운항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일부 항공사가 시간·연료를 절약할 수 있음에도 북극항로를 이용하지 않는 하나의 이유다. 은 지난 6월 ‘대한항공 승무원 우주방사선 피폭 첫 백혈병 산재 신청’ 보도(제1216호) 이후 지속적으로 태양방사선의 위험성을 알려왔다. 하지만 회사도, 관리·감독 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도 소극적이기만 하다. 법에 규정된 피폭량 고지 의무조차 지켜지지 않는다. 제대로 된 실태조사까지는 갈 길이 멀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의 우주방사선 피폭량 산정 실태와 이에 따른 문제 제기(제1219호 ‘알맹이 쏙 빼고 피폭량 쟀나’ 등)에 위험이 과장됐다는 반박 자료를 내놓았다. 하지만 현장 승무원만 아니라 학계에서도 원안위가 태양방사선으로 인한 현실적 위험을 도외시한 채 국민의 생명·안전 문제를 섣불리 판단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인다.
원안위는 지난 7월6일 보도자료를 내 “(이 위험성을 주장하는) 태양방사선은 우주방사선 피폭 중 약 5%를 차지하며 나머지는 은하우주방사선이 차지한다. 다만 태양 극대기에는 일부 비행고도에서 극히 일부는 방사선량 세기 증가를 일으킨다”며 “보도된 2005년 1월 한 번의 비행기 탑승으로 수백μSv(밀리시버트)에 달할 수 있다는 경우는 지난 50년 동안 가장 강력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한 번의 비행으로 승무원 1년치 피폭량을 넘길 수 있다는 것은 가상의 상황을 산술적 최대치로 계산한 결과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원안위의 설명대로라면 이 지적한 태양방사선의 피폭 위험도는 낮고, 위험성을 경고한 사례는 50년에 한 번 벌어질까 말까 한 극히 예외적인 ‘가상’ 상황이라는 것이다.
우주방사선 위험 경보 1년 새 7번원안위의 입장대로, 보도된 태양방사선 ‘위험’은 예외적이고 과장된 것일까. 최근 태양우주방사선의 경보 상황을 톺아보면, 불과 10개월 전인 2017년 9월, 태양방사선 등급 경보 가운데 S3으로 확인된 것만 2차례다(S2 등급은 5차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우주전파센터는 태양입자 유입으로 인한 피폭 위험성을 경고하는 우주전파환경 경보를 총 5단계(S1~S5)로 나눠 발령하는데, S2부터 피폭 위험이 시작되고 단계별로 위험도가 높아진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우주전파센터의 예·경보 등급표를 보면, S2 등급부터 “고위도에서 비행하는 승객 및 승무원들은 피폭 위험도가 증가할 수 있다”고 돼 있다. 1년 사이에 위험성을 알리는 경보가 최소 7차례 있었던 것만 봐도 원안위의 반박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마저 과소 측정됐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특히 현재 대부분의 항공사에서 사용하는 ‘카리식스엠’(CARI-6M)은 태양방사선을 고려하지 않는다. 2017년 9월만 따져보면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개발한 ‘나이라스’(NAIRAS) 프로그램을 활용해 만든 ‘세이프’(SAFE)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둘의 차이가 확연하다는 것이다. 지난 7월11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제8회 우주전파환경 콘퍼런스에서 우주전파센터 최장석 연구사는 우주방사선 실측 데이터분석 연구를 통해 세이프로 측정하면 1.5~2배 우주방사선 값이 높게 나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이 프로그램을 도입한 항공사는 북극항로를 이용하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등 대형 항공사가 아니라, 이스타항공·에어서울 등 저가항공사다.
더 큰 문제는 이에 대한 대처다. 국토교통부 지침을 보면, S3 등급 경보시 태양방사선 피해를 줄이기 위해 비행고도 9.4㎞ 이하로 운항해야 한다. 하지만 당시 북극항로를 운항했던 복수의 비행기 조종사들은 일관되게 회사로부터 당시 등급 고지와 이에 따른 고도 제한 공지를 받은 바 없었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장은 “최근 우주방사선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은 언론 보도를 통해 들었다. 회사에서는 안전하다는 말만 하지 그 위험성은 얘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태양방사선에 대해 회사와 관리·감독 기관의 안전 불감증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준다.
원안위가 반박만 한 건 아니었다. 2017년 원안위 실태조사 보고서 수정 등 일부 개선안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 내용에서도 정부가 우주방사선 문제를 어느 수준으로 대응하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우선 원안위는 2017년 실태조사 보고서를 수정해 재발간하고, 사전 실태조사 정보 제공 방식을 재조사하기로 결정했다. 또 승무원들의 방사선 피폭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피폭선량 평가 프로그램 개발의 진척 상황을 점검하도록 했다. 원안위는 국토부와 함께 8월 합동 실태조사를 하고, 정보 제공과 피폭선량 평가 프로그램 운용 실태 등을 집중 점검할 계획이다.
피폭 정보 제공 의무 위반 사항 버젓이 기재얼핏 보면 “일부 항공사가 승무원에게 피폭선량 정보를 적극적으로 제공하지 않으며 원안위 실태조사 보고서에 왜곡돼 기술돼 있다”거나 “승무원 피폭선량을 산출하는 프로그램은 태양 폭발 영향을 기술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의 지적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재발간을 위해 수정한 보고서 내용을 보면, 대한항공은 “피폭선량을 산출해 사내 시스템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승무원 요청이 있는 경우에만 피폭선량 정보를 제공한다”고 썼다. 아시아나항공은 “사내 전산망(크루월드)을 통해 개인별 피폭선량 정보를 월별로 올리고 있으며, 승무원 개인 계정 아이디를 통해 조회가 가능하다”고 돼 있다. 제공 의무를 기술한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법’의 취지와 다르다는 지적에도 해당 회사는 물론 정부 당국조차 이를 무시한 것이다.
한 항공사 운항기술팀 관계자는 “우리도 제공 의무 규정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지적을 알고 있다. 하지만 원안위조차 문제 삼고 있지 않으니 항공사가 먼저 나설 이유는 없다”며 “위험을 알려 승무원들의 불안만 고조할 뿐이라는 판단도 작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저가항공사의 경우 제공 의무 위반 사항이 버젓이 보고서에 기록될 예정이다. “승무원 개인별 연간 피폭선량을 운항본부장 및 관련 부서에만 통보”한다는 에어인천이나, “사내 전산망을 통해 매년 관련 부서에만 통보”한다는 제주항공이 단적인 예다. 제공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사업자는 과태료가 부과되는 위법 사항이다.
피폭선량 평가 프로그램 운용 실태를 점검하겠다는 대목도 현장의 인식과는 차이가 크다. 승무원들은 원안위가 회사의 시스템 점검 차원을 넘어 위험 여부를 확증하는 실태조사에 나서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피폭방사선 제공 의무 불이행 책임 묻겠다”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우주방사선에 대한 안전조치를 법적으로 강제하기 위해 현재 과태료에 불과한 벌칙의 수준을 높이는 입법을 준비 중이다. 이와 함께 대한항공 등의 피폭방사선 제공 의무 불이행을 확인해놓고도 과태료 부과조차 검토하지 않는 원안위에도 책임을 물을 계획이다. 변 의원은 “항공 승무원 우주방사선 피폭 문제는 2006년 북극항로를 이용하기 시작할 때부터 우려했던 사안”이라며 “운항 시간을 줄이고 항공유를 절약하기 위해 항로를 개척해놓고 정작 승무원들의 건강과 안전은 등한시해왔다. 이제라도 정확한 피폭 위험을 적극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변지민 기자 d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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