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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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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피해자’에서 벗어나라

‘가해자’에 대한 고민은 학살 생존자와

참전군인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에서 시작
등록 2018-04-10 17:58 수정 2020-05-03 04:28

시민평화법정을 준비하면서, 학살 의혹에 대한 법률 검토와 법정 공방을 준비한 법률팀과는 달리, 조사팀은 베트남전쟁에서 한국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이라는 주제가 어떻게 학술적·대중적으로 와닿을지 고민해야 했다. 이를 위해선 단순히 과거에 벌어진 학살만을 꼬집어 다루는 게 아니라 학살의 역사적·국제정치적 배경을 조사하고 고민할 필요가 있었다. 한국 정부의 법적 책임을 물어 배상과 사죄만을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 당시 사건이 지금 우리에게도 지속적 의미가 있도록 하고 싶었다. 그렇게 법정뿐 아니라 예술제·문화제·학술제 등을 함께 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결국 학술제도 하기로 결정됐다.

사설 용병 블랙워터와 한국군
학술제를 준비하려면 베트남의 현재를 좀더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전쟁과 학살이 아직도 베트남 사회와 국외 베트남 교민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개개인의 삶에 침투한 것을 보여주는 논문과 서적을 읽었다. 마을 위령제, 교민 문화제 등 많은 사례가 흥미롭게 다가왔지만 베트남 내에서 학살 문제가 정치적·학술적으로 공론화되고 연구되기는 힘들어 보였다. 미국과 베트남, 한국과 베트남의 교역 규모가 매우 크고, 이를 통해 베트남 정부는 아직 얻을 게 많다. 이런 현실에서 과거의 학살 사례나 학살 생존자의 증언이 차지할 자리는 없었다. 많은 생존자가 정치적 제약 때문에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학살 50년이 지나 그나마 남은 이들도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다. 게다가 베트남 전체 인구의 65%가량이 전후 세대임을 고려하면 상황은 더 비관적이다.
한국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직 상당한 양의 베트남전쟁 기록이 공개돼 있지 않고, 참전군인의 구술에서 읽어낼 수 있는 정보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민주화 이후 한국인들에게 베트남전쟁은 불쾌한 전쟁일 뿐이다. 불쾌하기에 서서히 잊히는 전쟁에서 일어났던 학살을 대하는 태도 역시 같은 연장선상에 있을 수밖에 없다.
학술제와 법정을 준비하며 적잖은 양의 주베트남 미군 감찰 자료를 검토했다. 학살의 맥락을 짚기 위해 감찰 자료와 대조하고, 베트남전쟁을 다룬 다양한 영어권 역사학 학술 자료도 참조했다. 이들 자료는 베트남전쟁을 그들의 현재에 어떻게 반영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었다. 베트남전쟁은 미군의 국외 파병에 대한 미국인의 대중적 인식이 부정적으로 전환되는 결정적 분기점이었다. 그렇기에 베트남전쟁은 서구인들의 현실에 아직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러한 학술 자료의 중심에 당시 서구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미라이 학살’을 비롯해 다양한 민간인 학살 사건들이 있었다. 최근 정보 공개된 ‘베트남전쟁 범죄연구그룹’(Vietnam War Crime Study Group·베트남전 당시 미라이 학살 등 학살사건을 조사·연구하기 위해 구성된 미 국방부 산하 태스크포스) 자료에 힘입어, 영어권 역사학자들은 미 국방부 기록, 미국과 베트남의 참전군인과 민간인들의 수기·서신·증언·인터뷰 등을 참조해 어떤 국제정치적·군사적 구조 아래서 학살이 자행됐고, 그중 어떤 구조가 지금까지 (미군 내에) 남아 이라크전쟁 등에서 벌어진 전쟁범죄와 연결됐는지 서술했다. 한 예로, 베트남전쟁 참전 경험이 있는 인류학 연구자 제럴드 웨이트는 2014년 논문 ‘아웃소싱 워’(Outsourcing A War)에서 동맹군 학살(즉, 한국군에 의한 학살)의 원인을 상대적으로 당위와 윤리적 책임의식이 얕게 조성될 수밖에 없는 용병 구조에서 찾으며, 상황에 따라 사설 용병의 개념이 다른 국가의 군대까지도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라크전쟁 때 니수르광장에서 민간인 학살을 저질렀던 사설 용역업체 블랙워터와 한국군의 유사점을 간략히 언급했다.

피해 서사에 익숙한 한국
피해 서사에 익숙한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폭력을 당하는 쪽에 우리를 대입하는 것은 쉽다. 이는 미군 위안부와 일본군 위안부에 공분하는 우리의 태도, 심지어 “우리도 피해자다”라고 주장하는 베트남 참전군인들의 외침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나도 피해자인데?”라는 수사에서 벗어나 가해자라는 위치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4월20일부터 22일까지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베트남전쟁 때 한국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에 대한 시민평화법정과 학술제가 열린다. 베트남전쟁에서 가해자였던 한국의 위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학살 생존자는 물론 참전군인이 그동안 했던 말은 물론 하지 못했던 말까지 들어주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

장한길 시민평화법정 조사팀



시민평화법정에 참가하려면


4월21일 심리하고 4월22일 판결합니다


한베평화재단 제공

한베평화재단 제공


베트남전쟁 때 한국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의 진상 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이 4월21~22일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 T2공연장에서 열립니다. 원활한 행사 진행을 위해 사전 참가 신청을 받습니다. 군복 등 군인을 상징하는 복장을 하면 행사장에 들어올 수 없고, 소란 등 행사 방해 행위를 하면 퇴장당합니다. 행사 참가 신청 뒤 개인 사정으로 참석이 어려워진 분들은 전자우편(tribunal4peace@gmail.com)으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 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
일시 4월21일(토) 오전 10시~오후 6시(심리)
4월22일(일) 오후 1~6시 예정(판결)
장소 문화비축기지 T2 공연장(서울 마포구 증산로 87,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 도보 10분)
대상 사건 1968년 2월 베트남 중부 꽝남성에서 일어난 퐁니·퐁넛 사건(74명 학살), 하미 사건(135명 학살)
원고 1968년 한국군에게 가족을 잃고 상해를 입은 베트남 학살 생존자 2인
피고 대한민국
재판부 김영란(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전 대법관), 이석태(법무법인 덕수 변호사·전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 양현아(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2000년 일본군 성노예 국제여성전범법정’ 남북한공동기소단 검사)
주최 민주사화를위한변호사모임, 베트남평화의료연대, 국회시민정치포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한베평화재단, 화우공익재단
주관 시민평화법정 준비위원회
후원 아름다운재단
참가 신청 goo.gl/forms/1t5HbZam7XVCJGA22
국제학술대회: ‘가해자’의 자리에 선다는 것- 베트남전쟁에 연루된 ‘우리’
일시 2018년 4월20일(금) 오전 10시~오후 6시
장소 문화비축기지 T6 원형회의실
개회사 하민홍 교수(베트남 호찌민시 인문사회과학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제1부 베트남전쟁의 동시대성- 새로운 세대의 전쟁 기억
발표 심주형(서강대 동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
제2부 가해 경험을 말한다는 것- 일본의 경우
발표 후지이 다케시(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제3부 우리가 만난 참전군인- 법정에선 말할 수 없었던 이야기
발표 시민평화법정 준비위원회 조사팀
참가 신청 (blog.naver.com/tribunal4peace)
*자세한 내용은 시민평화법정 블로그(blog.naver.com/tribunal4peace)를 참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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