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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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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이번 제품은 사회적 책임이 우선해야 한다”

중저가형 생리대 개발하고 11월 출시 앞둔 ‘유한킴벌리’ 김미성 여성용품 마케팅본부장 등 인터뷰
등록 2016-10-19 17:18 수정 2020-05-03 04:28
사회적 이윤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 유한킴벌리는 저소득층을 비롯해 저렴하면서 품질 좋은 생리대가 필요한 이들을 위해 중저가형 ‘좋은느낌 순수’를 11월에 내놓는다. 지난 10월13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유한킴벌리 사옥에서 김미성 여성용품 마케팅본부장(가운데) 등 제품 개발에 참여한 이들이 신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사회적 이윤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 유한킴벌리는 저소득층을 비롯해 저렴하면서 품질 좋은 생리대가 필요한 이들을 위해 중저가형 ‘좋은느낌 순수’를 11월에 내놓는다. 지난 10월13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유한킴벌리 사옥에서 김미성 여성용품 마케팅본부장(가운데) 등 제품 개발에 참여한 이들이 신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저희 학교 선생님이 제자 중 한 명이 아프다고 일주일 결석해 찾아갔더니 생리대 살 돈이 없어서 수건 깔고 누워 있었대요. 제자분이랑 선생님이 엄청 우셨다고 합니다.”

지난 5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한 이야기다. 저소득층 여학생들이 생리대를 구입하는 데 일상적이고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안타까운 사연도 잇따랐다. 생리대를 살 형편이 안 돼 “집에 두고 왔다”며 학교 보건실에서 생리대를 받아 쓸 수밖에 없다거나, 어려운 형편의 청소년들이 학교 화장실에 비치된 화장지로 생리대를 대신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시민단체 쪽에선 생리대 구매에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층 청소년(16~19살)이 적어도 6만 명을 넘는 것으로 본다. 일반 여성으로 범위를 확대하면 생리대 가격 부담으로 고통받는 여성은 훨씬 늘어날 수밖에 없다.

36개들이 중형 생리대 판매 가격이 6천~9천원인 점을 고려하면, 저소득층에선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생리대가 비누나 수건, 휴지처럼 ‘당연하고 평범한 공공재’가 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까닭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생리대 시장 50% 차지하는 회사로 향한 비난</font></font>

사태가 불거지자 비난의 화살이 유한킴벌리로 향했다. 당시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가 ‘유한킴벌리의 6월 가격 인상 예정’ 사실을 알리면서 논란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유한킴벌리는 국내 생리대 시장에서 50% 안팎을 점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2004년부터 정부가 생리대를 생필품으로 분류해 비과세 혜택을 줬는데, 유한킴벌리가 생리대 가격을 2~3년마다 꼬박꼬박 인상한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유한킴벌리를 중심으로 소수 기업들의 시장 독과점 체계 때문에 지나치게 비싼 제품을 쏟아낸다는 점도 지적됐다.

소비자들은 “과거 ‘착한 기업’ ‘존경받는 기업’으로 불리던 유한킴벌리가 사회적 책무를 다해달라”고 요구했다. 각종 청원이 이어졌고, 국회에서도 유한킴벌리에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기업이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자 유한킴벌리는 저소득층 청소년에게 생리대 150만개 기부, 기존 제품 가격 인상 계획 철회, 올해 안에 품질 좋은 중저가형 생리대 출시 등 ‘3가지 약속’을 했다. 앞의 두 가지 약속은 지난 7월 끝냈다. 이어 최근 유한킴벌리는 “자사 프리미엄 제품 수준의 품질을 유지하면서 가격을 30~40% 낮춘 생리대 개발을 마치고 11월 ‘좋은느낌 순수’라는 이름으로 제품을 출시한다. 지난 6월 ‘저소득층 청소년 생리대’가 사회문제로 떠오른 당시에 한 ‘3가지 약속’을 모두 지키게 됐다”고 밝혔다.

변화는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깨어 있는 소비자의 힘이 기업 태도를 바꾸도록 강제한 것일까? 기업도 특별한 계기를 통해 사회적 약자에게 눈을 뜨는 것일까? 10월14일 서울 테헤란로 유한킴벌리 사옥에서 김미성 여성용품 마케팅본부장, 손승우 대외협력본부 이사, 이주형 제품개발실 부장, 변아영 마케팅 부문 대리와 나눈 이야기를 문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여러 사람이 함께 답한 내용을 정돈한 것이어서 각 답변의 주인공을 따로 밝히지 않았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가격 낮으면 품질도 낮을 거란 오해 없애야”</font></font>
김미성 여성용품 마케팅본부장.

김미성 여성용품 마케팅본부장.

저소득층에 생리대 150만개를 기부했는데 반응은 어땠나.

“반응을 알아보려 하지 않았고 알아볼 수도 없었다. 과거 서구에서 그랬지만 한국 사회 일부에서는 아직도 여성의 생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금기시하듯 대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문화가 생리대를 ‘공공재’로 받아들이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특히 저소득층 이슈가 겹친 상황이라면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국여성재단을 통해 가장 필요한 이들에게 적절하게 기부된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함께 약속한 ‘품질 좋은 중저가형 생리대’가 제품으로 나오게 됐다.

“기존 프리미엄 제품과 견줘 공급가를 30~40% 낮췄다. 제품 가격과 함께 품질까지 낮아지면 ‘중저가형 신제품 개발’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안전기준뿐 아니라 회사 내부 기준, 유럽 수출 기준을 모두 웃돌도록 했다. 물론 기능과 소재 면에서 프리미엄 제품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여성들이 꼭 필요로 하는 것을 해치지 않으면서 가격을 낮추는 방법을 많이 고민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빼야 할까? 원재료를 최대한 그대로 두고 작업 과정 비용을 줄이는 데 힘썼다.”

저렴한 제품을 쓰는 이들의 심리적 부분도 감안해야 할 것 같다.

“제품 개발 때 가장 고민한 점도 그 대목이다. ‘중저가’ ‘저소득층을 위한 제품’이란 표현이 모두 조심스러웠다. 이 제품을 쓰면 마치 ‘소득이 낮은 사람’이란 편견을 받아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회사 입장에서도 가격을 낮춘 만큼 품질이 떨어질 것이란 오해를 불식시켜야 했다. 그래서 프리미엄 기능을 줄이는 대신 꼭 필요한 기능에 충실한 ‘일반형 생리대’라는 방향성을 잡기 위해 내부적으로 논의를 많이 했다.”

개발 과정에서 어려움은 무엇이었나.

“보통 제품 개발에 최소 8개월, 길게는 2년 정도 소요된다. 이번 제품은 5개월 만에 개발됐다. 제품 개발과 관련된 대부분의 전자우편에 ‘긴급’이란 말머리를 붙인 채 작업했다. 가격 수준을 놓고서도 내부에서 치열한 논의가 있었다. 기업으로서 수익을 내기 위해 ‘이 정도 가격은 받아야 한다’는 의견과 ‘적어도 이번 제품은 사회적 책임이 우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기도 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업체들이 중저가 시장에 충분히 신경 쓰지 않은 건 사실” </font></font> 뜻밖에 사회적 함의로 주목받는 제품이 된 것 같다.

“지난 6월 언론 보도 이전까지 우리 사회 일부에서 생리대 구입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를 계기로 업계 선도기업으로서 사회적 약자에게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지 못한 점을 자각했다. 복지 사각지대에 있거나 더 저렴한 생리대가 필요한 사람들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야 한다고 판단했다.

‘올해 안에 제품을 출시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다행이다. 생리대 기부 과정에서 한국여성재단을 통해 ‘교육 일선에서 저소득층 학생들의 생리대 사용과 관련해 근본적인 사회안전망이 확보돼야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아울러 최근 정부에서 관련 예산을 준비한다고 들었는데, 기업이 해야 할 일과 함께 여러 사회안전망이 갖춰졌으면 좋겠다.”

저소득층에 실질적 도움이 될까.

“이번 제품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그 부분이다.”

이전에는 국내에 왜 중저가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을까

“중저가 제품은 지금도 여러 종류가 있다. 시장점유율이 미미할 뿐이다. 값싼 제품들 가운데 국외 제품, 특히 중국산이 많기 때문에 시장이 확대되지 않는다고 본다. 소비자가 안전성과 제조사 신뢰도 때문에 구입을 꺼리는 부분이 있다. 여성들로서는 피부에 직접 닿는 제품인데다 민감한 위생과 관련된 것이다. 안전성이 검증된 국내 제품 선호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시장이 작은 탓에 국내 업체들이 소홀히 했다는 지적도 있다.

“국내 업체들이 중저가 시장에 신경을 충분히 쓰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1980년대 이후 미국, 일본 등 글로벌 제품이 본격 수입·판매됐다. 국내 소비자들이 엄격한 품질 수준을 요구하는 쪽으로 시장이 먼저 형성된 영향이 크다. 국내 업체들도 가격보다 품질 중심으로 경쟁할 수밖에 없었다.

국내 생리대 시장은 1970년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됐다. 약국에서 생리대를 검은 봉투에 숨겨서 팔던 시절이었다. 이후 생리대가 보편화하면서 여성에게 사회생활과 자유로운 활동 영역을 넓혀주는 도구가 됐다. 이 과정에서 많은 여성이 자연스럽게 프리미엄 시장을 수용한 것 같다.”

앞으로 중저가 제품 계획이 있다면.

“이번에 나온 것은 ‘일반형(중저가형) 중대형’ 제품이다. 그렇다고 이것만 내놓고 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제품군처럼 품목을 더 늘려야 한다. 기능과 크기를 다양화해서 더 많은 소비자가 쓸 수 있게 해야 한다. 먼저 이번 제품이 시장에서 각광받아야 한다. 소비자들이 합리적 가격이라고 인정하면 비슷한 가격대에 더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일단 이게 잘 팔려야 가능한 얘기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더 완성된 기업’이 되는 길</font></font>

인터뷰 하루 전, 유한킴벌리는 국회 정무위원회 국감에서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에게 질타를 당했다. 유한킴벌리가 ‘3년 주기로 수요가 늘어나는 여름을 앞두고 생리대 가격을 크게 올렸다’는 지적이었다. 또 유한킴벌리의 시장점유율이 지나치게 높아 ‘시장지배 사업자로서 가격 인상을 주도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손승우 대외협력본부 이사는 “한때 국내 시장점유율이 20%에 불과했다. 당시 1위를 차지하던 국외 브랜드와 차별화하기 위해 프리미엄 제품 중심으로 경쟁력을 강화했다. 그 과정에서 저소득층이나 저렴한 제품이 필요한 이들을 돌아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렴한 일반형 제품을 만드는 노력이 병행돼야 더 완성된 기업,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새삼 느꼈다”고 덧붙였다.

<font color="#008ABD">글</font>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font color="#008ABD">사진</font>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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