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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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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한테 19번 독촉장

부모 학대로 보호시설에서 따로 지내는데 건강보험료 부과… 건보공단, 2년 동안 고지서 보내고 부모 체납액까지 떠넘겨
등록 2016-07-26 07:50 수정 2022-08-24 02:33



연재 순서


① 건강은 압류할 수 없다
② 초등생한테 19번 독촉장

* 링크를 클릭하면 해당 글을 볼 수 있습니다.


경북의 한 도시 그룹홈에서 지내는 영희(10)에게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년간 보낸 건강보험료 독촉 고지서. 전진식 기자

경북의 한 도시 그룹홈에서 지내는 영희(10)에게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년간 보낸 건강보험료 독촉 고지서. 전진식 기자

경북의 한 도시. 10살 영희(가명). 초등학교 3학년. 아직 한글이 서툴다. 정서장애도 좀 있다. 영희의 집은 아동보호시설 ‘그룹홈’. 아이들 5명과 함께 지낸다. 선생님 세 분이 보살핀다. 2014년 초 아버지와 계모의 학대·폭력에 시달리다 아동보호 전문기관의 도움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런데 2~3개월마다 영희 앞으로 이상한 고지서가 온다.

10살 단독 세대, 18차례 독촉 고지서

건강보험료 독촉 고지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2014년 7월 영희에게 건보료 1만100원을 내라는 고지서를 처음 보냈다. 그해 3월 부모와 ‘분리’됐고 석 달 뒤인 6월에 지금 지내는 그룹홈으로 왔다. 건보료 부과 이유는 단 하나. 주민등록상 ‘단독 세대’라는 것. 건보공단은 같은 해 8월부터 지난 5월까지 모두 18차례 독촉 고지서를 보냈다. 두세 달꼴로 영희에게 건보료를 내라고 독촉해온 것. 금액은 2014년 1월부터 7월까지 7개월치 건보료 3만7420원. 영희는 2014년 7월 의료급여 대상자가 되었다.

사정은 더 고약하다. 지난해 9월에는 115만5240원을 내라는 독촉 고지서가 그룹홈에 날아들었다. 영희의 부모가 체납한 35개월치 건보료. 그룹홈 사회복지사는 어이가 없다고 했다. 7월19일 기자와 만난 그는 건보공단의 무책임하고 기계적인 행정을 비판했다.

“공단에 여러 번 전화를 걸어 사정을 말했다. 그런데 담당 직원은 시스템에 따라 고지서가 발송되기 때문에 본인들이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초기에 부과된 금액이 많지 않기 때문에 내 돈으로라도 낼 수 있지만, 잘못된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아직 납부하지 않고 있다. 영희는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다. 건보료가 처음 부과됐을 때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영희 같은 경우가 더는 안 나왔으면 좋겠다.”

7월 초 광주에서는 6살 아이에게 아버지의 체납 보험료 4만여원을 대신 부과해 독촉한 사례도 있었다. 건보공단은 세월호 사고로 부모를 모두 잃은 7살, 9살 아이들에게 건보료를 부과하기까지 했다. 모두 국민건강보험법의 ‘가혹한 규정’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지역가입자의 월별 보험료액은 세대 단위로 산정….”(제69조 5항, 세대 단위 보험료 부과), “지역가입자의 보험료는 그 가입자가 속한 세대의 지역가입자 전원이 연대하여 납부한다.”(제77조 2항, 연대납부 의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이 부분은 문제가 됐다. 미성년자 등 실질적으로 건보료 부담 능력이 없는 지역가입자 세대원에게 체납 보험료가 부과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도는 개선되지 않았다. 지난해 건보공단에 접수된 건보료 민원은 6천만 건이 넘는다. 기획재정부가 해마다 벌이는 공공기관·준정부기관 고객만족도 설문조사 결과도 현실을 반영한다. 건보공단은 지난해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징수 문제와 관련해 ‘미흡’ 평가를 받았다. 2014년 ‘보통’ 수준에서 더 하락했다.

반면 건보공단의 부당이득금 징수율은 고공행진이다. 부당이득금은 건보료 체납자가 병원을 이용하면 공단에서 병원에 지급한 금액을 체납자에게 부과하는 금액이다. 이 건보공단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받은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2011~2015) 부당이득금 징수액은 5138억원에 이른다. 같은 기간 징수율은 평균 84% 수준이다.

법대로, 무조건 “면제되지 않음”
7월20일 서울 종로구 건강세상네트워크 사무실에서 김정숙 집행위원이 건강보험료 체납액 징수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7월20일 서울 종로구 건강세상네트워크 사무실에서 김정숙 집행위원이 건강보험료 체납액 징수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시민단체 건강세상네트워크는 이러한 건보료 체납액 징수 문제를 꾸준히 지적해왔다. 영희의 사례는 더욱 심각한 탓에 7월18일 건보공단에 민원을 제기했다. 7월21일 건보공단이 보내온 회신은 기존 태도를 반복했다. 관련 법에 따라 보험료를 부과해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미성년자는 세대 단위로 산정·부과하여 고지된 보험료에 대하여 납부 의무가 면제되나 소득·재산을 보유하거나, 미성년자로만 구성된 세대의 경우에는 면제되지 않음.” 건보공단 입장대로라면, 영희의 경우 부모가 사망하기 이전에는 체납 보험료 납부 독촉이 멈추지 않는 셈이다.

생계형 건보료 체납자들의 고통이 크지만, 정작 건보공단은 체납 건보료 탕감(결손처분)이나 감면 등의 절차를 적극적으로 운용하고 있지 않다는 비판이 많다. 제도 자체에 대한 홍보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7월20일 건강세상네트워크 시민건강사업단 김정숙 집행위원을 만나 제도 전반과 문제점, 대안을 조목조목 들었다.

① 건보료 체납 처분 절차

건보료를 6차례 이상 납부하지 못하면 건강보험 혜택이 중지된다. 병원 이용시 전액 본인 부담으로 치료비를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대략 180만 명이 건보료 체납으로 의료 이용이 중지된 것으로 추정된다.

건보공단은 체납 건보료를 독촉하고, 기한까지 건보료를 내지 못하면 통장과 재산 압류를 통해 징수한다. 결국 건보료 체납자는 ‘월 건보료+체납 건보료+연체금+부당이득금(병원 이용시)’이 누적돼 경제적 부담이 더 가중되는 상태가 된다.

② 건보공단의 결손처분 문제점

건강보험이 체납된 세대 중 경제적 빈곤 상태로 건보료를 징수할 가능성이 없다고 인정되면, 건보공단은 국민건강보험법 제84조에 의해 결손처분을 신청할 수 있다. 징수가 불가능한 건보료에 대해 결손처분을 함으로써 인력·예산 낭비를 방지해 징수 효율성을 높인다는 이유다.

건보공단은 결손처분이 ‘도덕적 해이’를 불러온다며 대상을 매우 한정해 실시하고 있다. 재산과 소득 없이 매우 극심한 빈곤 상태이어야 하며, 근로 능력이 있으면 경제적 빈곤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결손처분 대상자가 되지 못한다. 이 때문에 결손처분 혜택을 실제 받는 체납자는 매우 적다. 체납 건보료 때문에 또다시 빈곤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당사자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는 결손처분뿐이므로 대상이 더 확대돼야 한다.

의료보험 사각지대 7%③ 생계형 체납자를 도덕적 해이로 볼 수 없는 이유

도덕적 해이는 윤리적·법적으로 부도덕한 행위를 할 때 쓰는 용어다. 단지 건보료를 납부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도덕적 해이자라고 낙인찍는 것은 가혹한 처사다. ‘생계형 건강보험 체납자 상담센터’( healthforall.or.kr)에 접수된 사례들만 봐도 생계형 체납자의 삶이 얼마나 팍팍하고 곤란한지 알 수 있다. 이들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수급통장을 압류해 비인간적 생활을 하게 만들고, 장기적 빈곤 상태로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사람에게 건강권을 ‘압류’하는 일이야말로 정부와 건보공단의 도덕적 해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건강권은 압류를 당해서도 도덕적으로 낙인찍혀서도 안 되는 기본적인 인권이다.

④ 의료급여 확대가 필요한 이유

현재 한국의 의료보장 시스템은 건강보험과 의료급여, 두 제도로 운영된다. 불안정한 일자리와 낮은 소득 때문에 최저생계비 이하인 저소득층인데도 아무런 제도적 보장이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이 생계형 체납자다.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것이다. 현재 한국의 빈곤층을 10% 안팎으로 보는데, 이 가운데 의료급여 수급권자는 3%에 불과하다. 나머지 7%가량은 두 의료보장 시스템에서 오갈 데 없는 상황이다. 생활이 어려운 저소득층의 의료 문제는 국가가 보장해야 옳다. 소득이 낮거나 없는 사람은 의료급여 수급권자로 범위를 확장해 이들이 건강권을 박탈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⑤ 건보공단의 가혹한 체납 독촉

건보공단의 지난해 건보료 징수율은 99.4%다. 이 숫자에서 가혹함이 보인다. 물론 사회보험이라는 형태가 유지되려면 국민이 보험료를 성실히 납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생활고로 생계가 막막한 이들에게 무조건 내라는 방식의 징수 행태는 올바르지 않다. 현재 건보공단은 독촉 방법으로 통장과 동산 압류를 가장 많이 쓰는 것 같다. 건보공단에서는 법을 어기는 게 아니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돈도 없고 돈을 벌 수도 없는 어린아이에게까지 체납액을 독촉해 징수율 99.4%를 만들어내는 게 현재 정부와 건보공단의 가혹한 모습이다.

99.4% 징수율, 자랑이 아니다

김정숙 집행위원은 생계형 건보료 체납자를 위한 최선의 방안으로 3가지를 꼽았다. 첫째, 체납자에 대한 급여 제한과 부당이득금 환수 등 의료 이용에 제한을 두거나 압류·연대납부 같은 차별적인 조처를 없애는 것. 둘째, 생계형 체납자나 기초생활수급자 등 경제적 지급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는 이들의 체납 건보료를 결손처분하는 것. 셋째, 체납자와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국민을 위한 건강권 보장 대책을 하루빨리 마련하는 것. 김 집행위원은 “국민의 건강권을 보호하는 것이 건보공단의 의무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60일의  건강보험증  캠페인

“매달  100만원  기부  약속한  30대  부부”

비영리 공익법인 아름다운재단이 ‘60일의 건강보험증’ 캠페인을 시작했다. 재단은 생계형 체납자들에게 체납 건보료 1회분과 1개월치 건보료를 지원한다. 이렇게 납부하면 최소 60일 동안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캠페인 이름도 정했다. 재단 누리집( beautifulfund.org) 첫 화면에서 ‘60일의 건강보험증’ 배너를 누르면 캠페인 내용과 참여 방법을 확인할 수 있다. 박효원 아름다운재단 홍보팀 간사는 “최근 기사를 보고 공감한 30대 부부가 사업에 동참하고 싶다며 매달 100만원씩 정기기부를 약속했다”고 말했다. 전화 문의 02-766-1004.

건강세상네트워크와 주빌리은행이 함께 운영하는 ‘생계형 건강보험 체납자 상담센터’( healthforall.or.kr)에서는 체납 보험료 상담과 피해 사례를 접수하고 있다. 건강세상네트워크(02-6339-6677), 주빌리은행(1661-9736)에 직접 문의할 수도 있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 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의 ‘스토리펀딩’( storyfunding.daum.net)에 생계형 건강보험료 체납 제도 개선을 위한 기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스토리펀딩을 통해 모인 독자 여러분의 후원금 대부분은 건강보험료 지원사업을 펴는 아름다운재단( www.beautifulfund.org)에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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