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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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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송파 세 모녀’들을 만드나

헌법에 보장된 건강권 제약당하는 건강보험료 체납자 136만 가구

건강보험공단, 병원 간 체납자에게 부당이득금 물리고 체납 보험료 탕감에는 인색
등록 2016-09-30 08:13 수정 2022-08-24 02:33



연재 순서


① 건강은 압류할 수 없다
② 초등생한테 19번 독촉장
③ “딸한테 대물림될까 두렵다”

④ 누가 ‘송파 세 모녀’들을 만드나
* 링크를 클릭하면 해당 글을 볼 수 있습니다.


건강세상네트워크와 주빌리은행이 7월 13일 서울 영등포구 국민건강보험공단 앞에서 “납부 능력이 없는 체납자의 밀린 건강보험료를 탕감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건강세상네트워크와 주빌리은행이 7월 13일 서울 영등포구 국민건강보험공단 앞에서 “납부 능력이 없는 체납자의 밀린 건강보험료를 탕감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지난 5월 서로를 의지하며 살던 20대 쌍둥이 형제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이 살던 지하 월세방에는 유서 대신 70여만원의 건강보험료 체납 독촉장이 함께 발견됐다. 2014년 대한민국을 큰 슬픔에 빠뜨렸던 ‘송파구 세 모녀’ 사건과 같은 비극이 또 일어난 것이다. 서울 송파구 세 모녀도, 쌍둥이 형제도 모두 경제적 형편 때문에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한 생계형 체납자였다.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이들처럼 6회 이상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해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거나 의료시설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체납자가 국민건강보험공단 통계에 따르면 2015년 7월 기준 136만 가구가 넘는다. 건강세상네트워크와 주빌리은행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생계형 건강보험 체납자 피해 사례 상담센터’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태임에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체납 보험료 독촉과 무차별적 재산압류 등으로 심리적 압박을 넘어 공포스러운 날을 보내는 체납자들의 사연이 매일 접수되고 있다.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열심히 살겠습니다.” “아파서 돈을 벌지 못해 건강보험료를 낼 수 없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으니 잠이 오질 않습니다. 현재 제 몸 상태로는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압류 조치로 금융거래가 불가능해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게다가 병원에도 갈 수 없어 정신적 고통이 심각합니다.”

그런데 국민의 건강을 지켜야 할 정부 당국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오히려 건강보험 체납자에게 매우 가혹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첫째, 건강보험 체납자가 6회 이상 건강보험료를 못 내면 보험급여가 중지되고 체납 보험료에 연체료를 부과한다. 그리고 체납 상태로 의료기관을 이용할 경우 부정적·도덕적 결함이 있는 사람으로 체납자를 낙인찍어 사후에 ‘부당이득금’을 부과해 환수한다. 이는 헌법에 보장된 건강권에 위배될 뿐 아니라 아플 때 병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 사회보험 원리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오히려 국가권력이 체납자에게 과중한 처벌을 내리는 것이다.

둘째, ‘전 국민 건강보험’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건강보험료 체납자 수가 136만 가구로 너무나 거대하다. 그러나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이들에게 ‘병원 이용 금지’ 조치와 ‘체납 보험료 징수’라는 원칙만 적용할 뿐 체납자의 건강을 보호하고 체납자 수가 늘어나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없다. 사실상 경제적 능력이 없어 보험료를 내지 못하는 체납자들을 대부분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선정해 공공부조제도에서 지원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셋째, 건강보험료 납부 능력이 없는 체납자에게 ‘결손처분’ 조치를 통해 체납 보험료를 탕감해주는 제도와 보험료를 경감해주는 제도가 있지만 ‘도덕적 해이’ 우려 때문에 이마저도 혜택을 보는 경우가 드물다. 또한 적극적으로 홍보하거나 안내하지 않아 체납자에게는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했다. 당장 생사의 갈림길에서 고통받는 체납자들에게 ‘결손처분’은 일시적이지만 빚의 굴레에서 숨통을 트이게 한다. 체납자들을 위해 이런 제도는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

경제위기와 실업률이 상승하면서 장기 실직 및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은 계속 증가할 것이다. 이런 환경 속에 건강보험료 체납자에게 보험급여 혜택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의료보장 사각지대가 계속 확대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이 제도의 문제 때문에 스스로 건강권을 포기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 또 건강보험 지역가입자 중 사실상 보험료 납부 의무를 갖지 않는 가구원에게 보험급여 혜택이 중단되기도 한다. 이로 인해 미성년자 등이 피해를 보는 문제가 발생한다.

현재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의 경우 보험료 납부 의무가 가구주뿐만 아니라 가구원에게도 부여된다. 보험료가 체납될 경우 가구주뿐만 아니라 가구원인 미성년자, 장애인, 희귀질환자 등이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결국 건강보험 납부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건강보험 자격을 유지하게 할 경우 체납 보험료를 탕감한다고 해도 또다시 체납자가 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체납자들은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건강권을 침해당하고 있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과 보건복지부의 책임 떠넘기기로 인해 아무런 해결책 없이 고스란히 피해를 보는 것이다.

아프면 무조건 병원 갈 수 있어야

건강보험 체납자 문제를 해결하려면, 첫째 건강보험 체납자에 대한 ‘급여제한’이 폐지돼야 한다. 보험료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국가가 국민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현재의 ‘급여제한’ 중단 조처는 과도하다. 특히 건강보험료 납부 능력이 없는 미성년자, 만성질환자, 장애인, 임산부, 중증질환자, 응급환자 등에 대해서는 당장 급여제한 예외 조치를 적용하도록 하자. 또한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의 경우 보험료 납부 의무가 없는 가구원에게 ‘보험급여 제한’ 조치를 하지 않는 방안을 마련해 어떤 경우에도 아파서 병원에 못 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둘째, 생계형 건강보험 체납자에 대한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 현재 전 국민의 약 3%에 불과한 의료급여 수급자를 빈곤층 수만큼 늘리고 차상위계층까지 정부가 건강보험료를 부담해 건강보험제도의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 생계형 체납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하다.

셋째, 건강보험료 체납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정책이 필요하다. 일시적 실업 등과 같은 무소득자에게 보험료 납부를 유예해주는 제도를 만들어 제도의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체납 보험료의 분할납부 적용을 체납자의 경제적 상황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 납부 기한을 연장하거나, 일시적으로 소득이 없는 경우 체납 보험료를 분할 납부하는 동안 당월 보험료 납부를 유예해주는 조치 등 가입자의 상황과 조건에 맞게 적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넷째, 생계형 체납자인 것이 확인될 경우 결손처분을 신속하게 처리해 당사자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현재 결손처분은 당사자의 상황을 고려하기보다 공단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대상자를 선별하고 재정운영위원회에서 분기별로 처리된다. 당장 재산이 압류돼 사회생활에 걸림돌이 되거나, 병원에 가야 하는 급박한 상황에도 공단의 절차 때문에 당사자들의 상황은 무시된다. 체납자의 입장에서 결손처분이 이뤄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생계형 체납자 구제는 신속하게

국가가 국민의 건강을 방치하는 동안 체납자들은 스스로 삶을 포기하거나 본인의 삶을 체납에 저당 잡힌 채 고통받으며 불안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국민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해 사회보장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전 국민 건강보험’의 취지를 생각하면 가난하다고 해서 의료서비스를 차별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체납자의 건강을 보호할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의 ‘스토리펀딩’( storyfunding.daum.net/project/7787)에 생계형 건강보험료 체납 제도 개선을 위한 기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스토리펀딩을 통해 모인 독자 여러분의 후원금 대부분은 건강보험료 지원 사업을 펴는 아름다운재단( www.beautifulfund.org)에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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