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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시대를 건너는 방법

국내 연구자 353명 ‘성소수자 혐오에 맞서 공존’ 호소하는 입장문 발표… 12명의 젊은 학자, 성소수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 담은 책 펴내
등록 2016-06-14 14:55 수정 2020-05-03 04:28
2015년 서울광장에서 열렸던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모습. 올해도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2016 퀴어퍼레이드’에서 ‘한국성소수자연구회’는 성소수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는 책(왼쪽 작은 사진)을 배포한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한국성소수자연구회 제공

2015년 서울광장에서 열렸던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모습. 올해도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2016 퀴어퍼레이드’에서 ‘한국성소수자연구회’는 성소수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는 책(왼쪽 작은 사진)을 배포한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한국성소수자연구회 제공

“‘차별할 권리’를 얻기 위한 싸움이란 게 있을 수 있을까? 불행히도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모욕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고자 싸우는 사람들을 본다. …바야흐로 ‘혐오의 시대’이다.” 김승섭 고려대 교수(보건의료), 김지혜 강릉원주대 교수(인권법·사회복지), 김현미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 조대훈 성신여대 교수(사회교육),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 등 12명의 젊은 연구자들이 진단한 ‘오늘’이다.

2016년 6월 ‘혐오’는 일상어가 됐다. 이주노동자·장애인·성소수자·여성 등 ‘혐오’는 사회적 약자를 징검다리 삼아 바이러스처럼 번지며 노골화되고 있다. 표현의 노골화를 거쳐 범죄로도 이어짐에 따라 ‘혐오의 시대를 어떻게 건널지’는 2016년 대한민국을 살아내야 하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생존과도 직결된 문제가 됐다.

40년 전 멈춘 시간 되살리는 작업

이에 대해 국내 연구자 집단이 의미 있는 답안지를 제출했다. 교육학·법학·보건학·사회복지학·사회학·신학·인류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를 전공한 젊은 연구자들이 지난 3월 ‘한국성소수자연구회’라는 학문집단을 구성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기초적인 질문에 아카데믹한 방식으로 대답하는 책 (이하 )을 펴냈다. 이들은 이 책을 6월11일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2016 퀴어퍼레이드’ 현장에서 무료 배포한다.

책은 ‘동성애는 무엇인가요?’ ‘트랜스젠더는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통해 섹슈얼리티와 젠더의 다양성을 설명하고, ‘커밍아웃, 왜 하는 걸까요?’ ‘왜 동성 간에 결혼을 하려고 하나요?’ ‘성소수자들은 왜 축제를 하는 걸까요?’ 같은 질문을 통해 성소수자의 평등권, 성소수자가 사회와 소통할 권리 등에 대해 답한다. ‘왜 성소수자를 차별하면 안 되나요?’ 같은 질문에선 차별 금지의 법적 근거를 말하고, ‘동성애는 HIV/AIDS의 원인인가요?’ 같은 질문에 답하면서 사회적으로 조작된 오해와 낙인을 바로잡는다.

연구자들은 이 작업 과정에 대해 “40년 전 혹은 그 이전에 멈춰 있는 것 같은 시간을 되살리는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김지혜 강릉원주대 교수는 “오랜 기간 성소수자와 관련해 전세계적으로 축적돼온 지식이 한국 사회에는 제대로 전해지지 못했다”며 “혐오나 편견은 결국 정확한 정보가 전달되지 않아 생기기 때문에 최근 연구자료를 모아내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법적 근거, 학문적 연구 결과

‘동성애를 정신질환자’로 명명하며 ‘정신병원에 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에 따르면, 동성애가 정신질환 목록에서 제외된 지는 벌써 40년이 지났다.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는 전세계적으로 정신과 진단의 표준을 제시하는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편람 3판에서 동성애를 정신과 진단명에서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더불어 미국정신의학회 소속 학자들은 성명을 발표했다. “동성애가 그 자체로 판단력, 안정성, 신뢰성, 또는 직업 능력에 결함이 있음을 의미하지 않으므로 ‘미국정신의학회’는 고용, 주택, 공공장소, 자격증 등에서 동성애자에 대해 행해지는 모든 공적 및 사적 차별에 개탄하며 그러한 판단력, 능력, 신뢰성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을 다른 사람들에 비해 동성애자에게 더 많이 지워서는 안 된다고 선언하는 결의안을 채택한다.” 이후 40년 동안 의학·심리학·사회학을 비롯한 다양한 학제 간 연구 결과로 ‘동성애가 정신질환이 아니다’라는 주장은 상식이 되었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그런 주장들이 횡행하고 있다.

종교인들이 성소수자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혼란을 느끼는 것에 대한 대답도 있다. ‘종교인은 성소수자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라는 질문에 동국대 외래강사인 효록 스님은 불교 입장에서, 강남순 미국 텍사스크리스천대학 교수는 기독교 입장에서 답변한다.

초기 불교 경전들은 “성은 생과 생 사이에서뿐 아니라 한 생 안에서도 변할 수 있는 어떤 것”이라고 말한다. 승가의 육체적·생리적 문제를 자세히 기록한 율장에서는 남성 동성애자, 여성 동성애자, 양성애자, 성전환자 등에 대한 차별은 없고, 성적 교섭의 길로 성기 외 항문이나 구강도 언급하며 항문이나 구강을 성기에 비해 더 하열한 기관으로 폄하하거나 문제 삼지 않는다. 또 비구(남자 승려)가 중간에 비구니(여자 승려)로 바뀔 때도 비구니 구족계를 다시 받으면 될 뿐, 그에 대한 어떤 차별도 없었다. 효록 스님은 “불교 교단 안에서 동성애가 비난을 받는다면 그것은 동성과 성행위를 하였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계율로 금지된 성행위 일반을 즐겼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문제”라고 쓰고 있다.

성경에서 ‘동성애를 금지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강남순 교수는 “성소수자 혐오에 인용되는 구절 중 정작 ‘예수’로부터 나온 것은 하나도 없다”고 지적했다. 동성애 금지로 인용되는 성서구절은 ‘창세기’ ‘레위기’ 등 구약과 ‘로마서’’고린도전서’ 등 예수 제자 바울의 서신에서 비롯한 성경에 해당한다.

강남순 교수는 “기독교인은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라며 “예수는 성소수자를 포함하여 누군가를 혐오하고 정죄하는 것을 주저함 없이 단호히 거부할 것”이라고 에 썼다. 일부 기독교 집단에서 동성애를 극단적으로 혐오하는 것에 대한 따끔한 일침이다.

353명 연구자들 연대해 낸 ‘목소리’

연구자들은 6월11일 퀴어퍼레이드에 맞춰 ‘혐오에 맞서 공존의 사회를 호소하는 입장문’도 발표한다. 신학·사회학·정신보건·문화인류학·종교학·여성학·사학·예방의학·물리학·역학·치의학·의료인문학·유전학 등 여러 학문 분야에 참여한 연구자 353명이 연명했다.

이들은 “학자 및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들을 보며 우리는 이 자리에서 다시금 성소수자가 치료의 대상이 아니고 서구의 산물이거나 시혜적으로 돌봐야 할 존재도 아니며 모두 다양성을 가진 동등한 인간이라는 점을 확인한다”며 “우리는 헌법과 국제인권법의 정신에 따라, 누구도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평등한 세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고 발표했다. 국내 연구자들이 처음으로 ‘벽장’에서 괴로워하며 혐오에 시달리는 이 땅의 많은 성소수자들을 위해 목소리를 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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