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같이 살아요 우리
② 청년이 돌아왔다,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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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서 ‘지역’에 터잡고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는 청년들을 만나러 가는 길, 이방인도 신시가지와 구도심의 개발 격차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수도 타이베이에서 각지로 향하는 고속철도 창문 바깥으로 고층 신축 아파트가 늘어선 곳이 도시의 새살이었고, 청년들이 만든 사회적 기업은 구도심에 자리했다.
대만 제3의 도시 타이중은 1847년 세워진 기차역이 구도심의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국가 2급 고적이기도 하다. 타이중은 일제점령기(1895~1945년)에 집중 개발돼 구도심 건물의 상당수는 당시에 세워졌다. 기차역에서 5분만 걸어가면 골목 사이로 나타나는 사회적 기업 ‘해픈코워킹스페이스’(Happen Coworking Space·好伴駐創)도 1930년대 지어진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건물이 처음 세워졌을 당시 사진을 구해다가 문의 형태를 복원했다. 지역이 활기찼을 때를 환기시키는 거다.” 4월18일 만난 해픈코워킹스페이스 공동대표 추자위안(邱嘉緣·27)이 출입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최근 10~20년 사이 기차역 근처 중구에 있던 시청사가 서쪽 시툰구로 옮겨가고 세계적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만든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등도 그곳에 들어서면서 도시의 중심이 이동했다. 구도심의 상권은 침체되기 시작했다.
청년이 청년을 부르고 또 부르고2013년 11월 문을 연 해픈코워킹스페이스는 이름 그대로 ‘협업 공간’, 사무 공간을 대여해주는 사회적 기업이다. 특히 타이중 구도심에서 또 다른 사회적 기업 창업, 사회혁신가를 꿈꾸는 청년과 단체를 교육·지원한다. 사각형도 둥근형도 아닌 독특한 모양의 1층 탁자들은 타이중시 행정구역 생김새를 본떠 만들었다. 탁자를 모두 모으면 ‘작은 타이중’이 모습을 드러낸다. “인테리어에 많이 투자하고 신경 쓴 이유는 공간이 사람들의 생각이나 느낌에 영향을 많이 미치기 때문이다. 또 디자인이 좋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들어오고 교류하고 싶어 할 테니까.”
1층은 단기 사용자를 위한 사무·교류 공간과 공용 부엌이 있고, 2층에는 장기 사용자를 위한 사무 공간과 휴식처가 마련돼 있다. 공간 이용권은 하루 3시간 150위안(약 5300원), 반나절 250위안(약 8800원), 월 10회 1800위안(약 6만3천원), 한 달 임대 3500위안(약 12만3천원)으로 구성돼 있다. 행사 장소로도 빌려준다. 와이파이·음료 등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
한쪽 벽면에는 공간 이용자들의 자발적 소개글이 붙어 있다. ‘같은’ 공간에서 ‘따로’ 일하더라도 어떤 일을 하는지 나눌 수 있도록 했다. 부엌에서 함께 밥을 지어 먹고 서로의 일에서 영감을 받는다. 해픈코워킹스페이스의 브랜드 로고는 두 얼굴이 겹쳐 있는 모양새다. “사람들이 교류하는 모습을 상징”한다.
추자위안 대표는 타이베이시에 위치한 국립대만대 재학 시절 ‘사회경제 조직의 창신과 설계’라는 이름의 사회학과 수업에서 창업 파트너를 만났다. 실습 삼아 파트너와 함께 대학 건물 옥상에 정원을 만들었다. 버려진 공간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알고 보니 파트너와 ‘고향’이 같았다. “침체 중인 고향에서 더 많은 청년들을 사회혁신에 참여시키는 일을 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공간 공유 모델’이 널리 알려진 게 아니라서 준비 기간에만 1년이 걸렸다. 동업자의 어머니는 창업을 반대했다. 문을 연 뒤에도 난관은 이어졌다. “주변 사람들에게 여기가 어떤 곳인지 설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천천히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가게를 홍보했다. 공간을 이용하는 청년 디자이너가 지역 특산물에 맞춘 캐릭터를 개발해 포장지로 쓸 수 있도록 상인들에게 제공했다. 타이중 시정부와 함께 ‘스타트업 제너레이션’ 프로젝트를 진행해 지역 청년 창업 교육을 했다. 새로 창업한 가게와 오래 자리를 지켜온 가게들을 모아 오픈마켓도 열었다.
“내가 나고 자란 곳에 기여하고 싶어서”둥지를 튼 지 2년 만에 주변에 새로 창업한 가게가 5개 이상, 비정부기구(NGO)가 10여 개로 늘었다. “가장 중요한 건 이 지역에 젊은이들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현재는 창업자 2명을 포함해 정직원이 5명이다. 창업 뒤 분기마다 대학생 1명을 ‘실습생’으로 뽑아 사회적 기업 운영을 체험하게 했고, 그들 가운데 졸업생 일부를 정직원으로 채용했다.
‘청년을 불러모으는 청년들’에게 지역 주민들도 서서히 마음을 열었다. “주민들이 처음에는 ‘너는 누구고 뭐하는 거냐’는 반응이었는데, 이젠 우리가 뭘 하려는지 안다.” 무슨 일을 하는 청년들인지 알게 된 뒤에는 먼저 교류·협력을 제안하는 주민들도 생겼다.
타이중에서 고속철로 타이베이 방향을 향해 1시간여 이동하면 나오는 신베이시 싼샤구에도 지역과 청년을 잇는 사회적 기업이 있다. 싼샤는 대만의 대표 화가 리메이수(李梅樹)의 출생지이자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붉은 벽돌 건물이 늘어선 옛 거리 싼샤라오제(三峽老街)로 유명한 문화예술도시다.
카페와 공연·전시 공간을 함께 갖춘 복합문화공간 ‘캔’(CAN·甘樂文創)은 싼샤라오제 바로 뒤쪽 하천변에 있다. 린쥔청(林峻丞·34) 대표가 6년 전 창업했다. 대만에 사회적 기업이라는 용어가 확산되기도 전이다. 타이베이에서 방송사 PD를 하다가 2006년 고향집에서 운영하던 비누공장의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싼샤로 돌아왔다. 당시에는 ‘잠시만’ 집안일을 도운 뒤 다시 타이베이로 돌아갈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전에 생각지 않았던 풍경들이 ‘문제’로 돌출돼 눈에 밟혔다. 고향은 늙어가고 있었다. 청년들은 일시적 방문자인 관광객이 대부분이었다. 개발의 ‘수혜’를 받아 대학 캠퍼스와 고가의 아파트 건물이 줄지어 들어서는 가운데, 구도심과 신도심의 격차가 두드러졌다. 이혼율이 높아지면서 가정과 학교에서 방치된 원주민 아이들이 마약에 쉽게 중독됐다.
“문득 지금까지 (내가) 나고 자란 곳을 위해 한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부모가정의 자녀로서 자신이 과거 고향에서 얻은 기억을 지금 자라는 아이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었다. 지역공동체가 풍성해지면 아이들을 품을 공간이 생길 것이라 판단했다.
정부지원금 의존도 낮추는 게 목표2010년 비누공장을 접고 ‘캔’을 만들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을 불러모았다. 지역 예술가·상인들과 협업해 상품을 기획하고 온·오프라인에서 판매한다. 폭죽을 터뜨리는 전통 축제가 끝나고 남은 쓰레기를 모아 종이봉투를 만드는가 하면, 전통 방식으로 허브오일을 만드는 상인의 상품에 새 디자인을 입힌다. 캔에 상주하며 공예품을 디자인·생산하는 예술가가 3명이고, 지역 예술가 30여 명이 그때그때 협업한다.
초등학교 공간을 빌려 주 1회 아동 돌봄 활동을 시작했다. 캔과 연결된 지역 예술가들이 염색·그림그리기 수업 등을 맡아주었다. 지역 주민의 참여도 독려했다. 요리사가 직업인 주민은 요리교실 선생님이 되었고, 이발 기술을 가진 주민은 아이들의 머리를 다듬었다.
지난해에는 캔 근처에 상시 공부방 ‘샤오차오수우’(小草書屋)도 마련했다. 초·중학생 30여 명이 매일 학교를 마치고 공부방에 모여 책을 읽고 방과후 수업을 듣고 함께 밥을 먹는다. 6년 전 돌봄의 대상이었던 아이가 그새 고등학생이 되어 다른 초등학생 아이들을 돌보는 자원봉사자로 참여한다. 주민·예술가 자원봉사자도 50여 명에 이른다. 지난 4월18일 찾아간 ‘샤오차오수우’에서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한 어린이들은 린쥔청에게 달라붙어 소매를 잡았다가 등에 매달렸다가 재잘재잘 말을 붙였다. 누구 하나 가릴 것 없이 모두 해사했다.
자신의 일이 ‘사회적 기업’이란 개념과 이어진다는 인식은 캔 개업 뒤에 찾아왔다. 2010년부터 격월간 매거진 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싼샤의 소식을 전국에 알리고 싶었다. 대만 각지에 귀향한 청년들, 사회적 기업을 창업한 청년들로부터 호응이 왔다. 자원과 노하우를 나누는 교류의 장에 모두 목말라 있었다. 매거진 은 이들을 위한 플랫폼으로 거듭났다. 지역 예술가, 사회적 기업가들이 무료로 광고를 실을 수 있도록 했다.
“대만 각지에 흩어져 있는 예술가, 사회적 기업가들이 독자이자 지원받는 대상이다. 그들이 어떤 활동을 수익모델로 삼아서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지 사례를 공유하고 직접 방문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청년들의 관점을 소개하는 코너도 매번 담고 있다.”
최신호의 커버스토리는 ‘문자의 온도’. 전통 종이와 연필 제작자, 글자체를 개발·판매하는 청년, 최근 증가하는 독립 간행물 사업자들을 소개했다. 전통 사업자, 전통을 변용하는 청년 사업자를 잇고 독자에게도 영감을 전해주려고 한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는 ‘사회·환경에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 ‘지역의 스토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예술가들에게는 지역을 활용한 예술활동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자’ ‘그렇게 번 돈을 지역 아동을 위해서 쓰자’는 정도의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이 사회적 기업 영역으로 확장한 것이다.”
린쥔청에게 ‘6년 장수의 비결’을 물었더니 ‘좌절의 기억’부터 먼저 토로했다. “좌절한 적이 무척 많다. 자금 부족 문제를 직면한 적도 있고 다른 경영상 곤란을 겪은 적도 많다. 사회적 기업이 피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정부보조금을 계속 신청하거나 다른 수익원을 만들어야 한다.”
청년들에게 새로운 길 제시하는 역할그는 정부지원금에 더 의존하지 않을 계획이다. “과거 3년 동안 정부보조금을 신청해서 연 2천만~4천만원 정도 받았는데 올해는 신청하지 않을 계획이다. 더 용감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사회적 기업으로 발전하려면 정부에 의존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자금을 받으면 개입을 피하기 어렵다.” 지난해부터 지역 싱글맘들과 함께 두부가게를 새로 창업했다. 지역 주민들의 창업을 지원하고 수익을 나누는 모델을 확장할 계획이다.
해픈코워킹스페이스 역시 지원금 의존에서 벗어나려 분투하고 있다. “아직까지 제일 주된 수익원은 정부지원금이다. 독립적 사업을 통해 수익을 높이는 게 최우선 목표다. 기업 운영의 ‘자유도’가 올라갈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추자위안 대표)
이들이 지역과 청년을 잇는 교류의 장이자 플랫폼을 만들고 유지하는 동력은 무엇일까. “지금 대만 젊은이들은 취업하기 어렵고, 취업해도 초과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린다. 주거비 벌기만도 빠듯해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거나 이상을 추구하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런데 우리의 스토리를 알게 된 사람들이 ‘이런 길도 있구나’라고 여기게 되는 것, 그게 가장 보람 있다.”(추자위안 대표) “정부가 변화하길 기다리는 건 속도가 늦고 효율이 낮을 수도 있다. 사회적 기업이 가치 있는 일을 통해 자기 역량을 발휘하고 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는 게 더 나을 수 있다.”(린쥔청 대표)
대만 청년들은 ‘22K 세대’라고 불린다. 한국의 ‘88만원 세대’처럼 월급 2만2천(22K)위안(약 73만원)을 받고 살아가는 세대란 뜻이다(제1097호 특집 ‘쯔위 사태? 대만 22K 세대의 분노!’ 참조). 국가가 처한 저성장, 저임금, 정체성 혼란을 청년 세대가 가장 격렬하게 짊어진다. 2014년 식품 대기업 딩신(頂新)그룹이 관련된 ‘식용유 파동’, 애플의 하청 정보기술(IT) 업체 폭스콘의 노동자 인권 침해 논란 등은 전 사회적 차원에서 기업의 책임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현재 대만은 국가 차원에서 사회적 기업을 정의한 법률이나 제도는 없다. 하지만 린충제(林崇傑) 타이베이시 산업개발국장은 사회적 기업에 대한 관심과 실천 흐름을 타고 곧 제도 정비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2000년 이후 대만에서 일어난 변화 중 하나는 대기업 취업보다는 창업을 통해 사회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는지 고민하는 청년이 늘었다는 것이다. 정부도 사회적 기업에 대한 책임의식을 느끼게 됐다.” 시정부도 지난해 처음으로 사회적 기업 창업 지원 항목으로 예산을 배정해 10곳을 선발, 교육 지원했다.
지난 4월17일 타이베이시 대만국립대 체육관에서 민간 사회적 기업 지원단체 SEI(Social Enterprise Insights·社企流) 주최로 연례 국제포럼이 열렸다. 2012년 만들어진 SEI는 대만 최초의 사회적 기업 및 사회혁신을 위한 정보 교류 단체다. 굵은 비가 쏟아지는 궂은 날씨에도 참가자 1500여 명이 몰렸다. 커원저 타이베이시장, 유력 언론사 간부, 기업 임원 등도 참석했다.
우리의 미래를 품어라3회차를 맞은 포럼의 이번 슬로건은 ‘우리의 미래를 품어라’(Embrace Our Future·擁抱未來). SEI 공동대표 린이한(林以涵)은 “지금은 대만에서 ‘서치’(社企·사회적 기업의 줄임말)라고 말하면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됐다. 최근 10년간 (대만의) 변화가 무척 컸다. 앞으로의 10년을 어떻게 설계할지, 후손에게 어떤 사회환경을 물려주고 싶은지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슬로건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사회가 청년을 품지 못해도 도시가 청년을 밀어내도 청년은 포기하지 않는다. 쇠락하는 도심에 둥지를 틀고 새바람을 일으키길 꿈꾼다.
타이베이·신베이·타이중(대만)=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이 기사 취재는 정현욱 국립대만대 국가발전연구소 박사과정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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