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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마을에서 큰 해답을 발견하다

타이 북부 고산족 마을과 공정거래하는 ‘아카아마 커피’, 잊혀가는 타이 직조 기술을 되살리는 의류업체 ‘폭참’, 베트남 전통 종이 저이조로 수공예품 만드는 ‘조프로젝트’
등록 2016-05-19 05:32 수정 2020-05-02 19:28



마을에서 길을 찾는 청년


① 같이 살아요 우리
② 청년이 돌아왔다, 바람이 분다
③ 작은 마을에서 큰 해답을 발견하다
* 링크를 클릭하시면 해당 글을 볼 수 있습니다.


타이 북부 고산지대 매잔따이 마을의 주민이 햇볕에 건조 중인 원두를 정리하고 있다. 신소윤 기자

타이 북부 고산지대 매잔따이 마을의 주민이 햇볕에 건조 중인 원두를 정리하고 있다. 신소윤 기자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작은 마을에서 큰 가능성을 발견한 청년들이 있다. 지역 사람들과 협업해 경제를 회복하고, 전통 기술을 이어나가는 이들이다. 타이와 베트남에서 마을공동체와 함께 꿈을 키워나가는 청년들을 만났다.

4월은 커피꽃 피는 계절

“여기 봐요! 하얀 꽃, 이게 커피꽃이에요.” 어른 키만 한 작은 나무에 손톱같이 조그만 꽃들이 오종종하게 달려 있었다. 우리는 그 꽃을 보기 위해 타이 북부 도시 치앙마이에서 출발해 3시간 가까이 달렸다.

치앙마이에서 공정무역 카페 ‘아카아마 커피’를 운영하는 아유 리(31)는 타이 북부 치앙라이주 매잔따이 마을 출신이다. 그 마을에 사는 아카족이 생산하는 커피콩을 공정한 가격에 구매해서 가공해 판다. 2010년 치앙마이 산티탐 지역의 한적한 골목에 처음 문을 연 아카아마 커피는 치앙마이 여행객들에게 버킷리스트 1순위로 언급될 정도로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4월은 커피나무에서 꽃이 피는 시기다. 커피농사를 하는 이들에게 아주 중요한 때다. 타이의 우기는 5월부터 10월까지 이어지는데, 4월 중순부터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올해는 유독 건조한 날씨가 이어졌다. 우기를 향해 달려가는데도 비가 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날 아유가 마을을 찾은 이유는 커피나무들의 상태를 보기 위해서였다.

4월26일, 매잔따이 마을로 가는 길, 꿀렁대며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차는 30분 넘게 하늘을 뚫고 들어갈 것처럼 끝없이 오르막을 탔다. 울타리 없는 길 오른쪽으로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내려다보였다. 출장 떠나던 날, 공항에서 시간이 남아 서성이다 여행자보험에 가입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마을에 도착하기 직전에는 흙더미가 쏟아질 것 같은 흙길을 지나야 했는데, 아유가 어릴 적 학교 다닐 때 걸어다니던 길이라고 말했다. 집에서 학교까지 왕복 8km, 험한 그 길을 걸어서 오르내렸다고 했다.

아유는 타이에서 태어난 1세대 아카족이다. 그의 부모님은 중국에서 태어났다. 마오쩌둥 문화혁명 시절에 버마(미얀마)로 넘어갔다. 버마 내전을 피해 국경지대를 방랑했다. 그러다 당도한 곳이 타이 북부의 깊은 산골이다. 아유의 부모님이 매잔따이 마을에 처음 왔을 때, 아주 적은 수의 아카족이 모여 살고 있었다. 대부분 타이 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불법 체류자 신세였다. 아유 또한 학교에 다니는 내내 항상 이름 옆에 ‘타이 시민권자 아님’이라는 말이 빨간 글씨로 쓰여 있었다. 15살이 되어서야 시민권을 얻을 수 있었다.

아유는 마을에서 처음으로 대학에 들어간 청년이었다. 온 동네의 주목과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마을로 다시 돌아오자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대기 시작했다. 아유의 말에 따르면 “그냥 은행원이나 되지 왜 마을로 돌아왔냐고, 미친 사람 취급을 했다”. 아유의 부모님은 “교육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와는 다르게 살아라”고 말했다. 치앙마이 같은 큰 도시에서 번듯하게 살면서 마을에는 영영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다는 뜻이었다.

아유는 대학을 졸업하고 난민과 이주민을 돕는 시민단체에서 일했다. 일하다보니 그 자신이 이주민이었던 부모님과 마을 사람들의 가난한 삶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직장을 그만두고 그가 험한 산길을 건너 마을에 다시 깃든 이유다.

“우리가 가는 곳이 어디인 줄 알아요? 커피나무를 기르면서 커피 한잔 마실 줄 모르던 사람들이 살던 마을이에요.” 습기가 많고 기온이 비교적 낮은 고산 지역인 매잔따이 마을은 커피가 자라기에 좋은 환경이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농사만 지을 줄 알았지 내다 파는 법은 몰랐다. 도심과 워낙 떨어져 있어 중매업자가 한 번씩 찾아와 물건을 대량으로 사가는 것이 아니면 판매 통로도 없었다.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을 책정해도 팔 수밖에 없었다.

“왜 마을에 돌아왔지?”
매잔따이 마을 고향집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아카아마 커피’ 운영자 아유 리(왼쪽), 자신이 만든 제품과 포즈를 취한 ‘폭참’ 운영자 파사위. 신소윤 기자

매잔따이 마을 고향집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아카아마 커피’ 운영자 아유 리(왼쪽), 자신이 만든 제품과 포즈를 취한 ‘폭참’ 운영자 파사위. 신소윤 기자

아카아마 커피가 마을 사람들에게 지급하는 가격은 시장가격보다 높다. 올해 아카아마 커피는 선불로 돈을 받는 농민에게는 kg당 127밧을, 후불로 받는 농민에게는 135밧을 지급했다. 시장가격은 kg당 105밧이다. 아유는 “아마 세계에서 커피값을 가장 많이 쳐드릴 거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커피 품질도 좋아졌다. 화학비료의 사용을 제한하고 유기농 시스템을 도입했다. 키가 작은 커피나무는 울창한 숲의 키 큰 나무 아래서 잘 자란다. 그래서 아유가 보여준 커피농장은 언뜻 평범한 나무숲처럼 보였다. 커피나무는 커다란 과일나무와 풀, 꽃 사이에서 함께 자란다. 다른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들은 커피나무의 자양분이 된다.

“최종 목표가 뭐냐고요? 마을 사람들이 모두 자립하는 거예요.” 아유는 커피나무와 다른 나무들이 의지하며 자라 각각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것처럼,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한 그루의 튼튼한 나무처럼 삶을 지탱하길 바란다고 했다.

아유가 고향으로 돌아가 마을의 지속가능성을 탐구했다면, 또 다른 청년들은 작은 마을에서 가능성을 찾았다. 타이 방콕에서 전통 천 가공과 수제 옷을 작업하는 ‘폭참’의 파사위(31)와 베트남 하노이에서 전통 종이 ‘저이조’를 이용해 수공예품을 만들어 파는 ‘조프로젝트’의 판투장(28)이다.

4월25일 방콕의 한적한 교외에 있는 파사위의 집에서 그를 만났다. 거실의 옷걸이에 걸린 색 고운 옷들은 그가 지역의 직조 기술자들에게 의뢰해 베틀로 짠 천에 나무껍질, 나뭇잎, 열매, 꽃 등 천연 재료로 색을 입혀 만든 것이다.

1년 만에 마을에 불어온 변화의 바람

파사위는 대학원에서 지역개발을 공부하다 수공예품 기술의 가치를 발견했다. 논문을 준비하면서 200명이 넘는 여성 노동자와 인터뷰했는데, 훌륭한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을 받고 일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2008년이었어요. 당시 타이 최저임금이 하루 300밧(약 1만원) 정도였죠. 그런데 천을 만드는 여성 노동자들이 하루 종일 일해도 100~150밧밖에 받지 못하더라고요. 시장을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에 중개업자들에게 아주 적은 돈을 받고서라도 팔 수밖에 없었죠.” 좋은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일을 그만두고 도시의 공장으로 떠났다. 전통 베틀 기술이 전승자가 없어 대가 끊길 수 있다는 염려도 됐다.

파사위는 현재 5개 지역과 함께 일한다. 사꼰나콘 지역에서는 청 제품을 생산하고, 수린 마을 사람들과는 실크 작업을 한다. 르이와 치앙마이에서는 면, 랏차부리에서는 액세서리를 만든다. 지역에서 천을 만들어오면 방콕에 있는 재단사 3명이 옷을 만든다. 디자인은 파사위가 직접 한다.

하지만 서로 다른 문화의 지역 주민들과 일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고 파사위는 토로했다. “지역 주민들과 일한다는 어떤 사회적 기업과 얘기해봐도 다 어렵다고 할 거예요. 특히 타이 사람들은 치열하지 않고 느긋한 편이에요. 한 예로 액세서리 기술자 중 한 분은 사돈의 팔촌의 어머니쯤 되는 먼 친척이 돌아가셨는데 그 이유로 약속을 2주 어겼어요. 재고 관리가 힘들고 고객에게 물건을 제때 제공할 수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사위는 앞으로 더 많은 지역 주민이랑 일하고 싶다. “아직 1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일하는 분들이 자기가 한 일을 자랑스러워하고, 일의 가치를 알아가는 등 의미 있는 변화가 보여요. 지역에서 신뢰를 얻고 그 신뢰를 지속해가는 과정도 마음을 든든하게 하고요. 내가 하는 작은 일이 진짜 변화를 가져올 수 있구나, 확인하니까 더 큰 변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중에는 도시의 공장으로 떠난 젊은 세대가 돌아와 제직 기술을 이어나가면 좋겠어요. 이 일을 하면서 삶을 계속할 수 있도록.”

베트남 하노이에서 4월27일 오후에 만난 판투장은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며 박닌성에 있는 저이조 장인을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조프로젝트에서 디자인을 담당하는 그와 함께 자동차에 올랐다.

천천히 사는 법을 알려주는 종이[%%IMAGE4%%]

“저기가 삼성전자 공장이에요.” 1시간 가까이 차를 타고 가는 길에 판투장이 거대한 공장단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박닌성 옌퐁 공단이다. 삼성전자 공장에서는 한 해 1억 개가량의 휴대전화를 만들어낸다. 공장 앞 광고 간판에는 ‘갤럭시 S7 엣지’가 맵시를 뽐내고 있었다.

그러나 휴대전화 액정이 활자를 독점하면서 종이는 점점 설 곳을 잃어가고 있다. “예전엔 이 마을이 저이조를 만드는 집으로 가득 찼어요. 하지만 이제는 대부분 기저귀나 휴지를 만들고 있어요.” 옌퐁 공단에서 1시간 가까이 차를 몰고 도착한 동까오 마을에서 판투장이 말했다. 곳곳에 들어선 창고에는 수백 개 단위로 포장된 기저귀와 휴지가 쌓여 있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10분쯤 걸어 들어가자 저이조 장인인 팜반땀(47)이 집 앞 마당에서 저이조를 만들고 있었다. 저이조를 만드는 과정은 한국의 한지와 비슷하다. 재료인 조나무 껍질을 벗겨내 이틀 동안 끓인 뒤 깨끗하게 씻는다. 잘게 찢어 물에 담가 분해한다. 일주일 뒤 촘촘한 그물망으로 건져내 말리면 저이조가 탄생한다. 보름 넘게 걸리는 과정이다.

“저이조는 무게가 가볍고 오랫동안 보존되는 장점이 있어요. 보통 200년 이상은 문제없이 보존할 수 있죠.” 13살 때부터 이 일을 해온 판반땀이 말했다. 그의 집안은 100년 넘게 저이조를 만들어왔다. 지금은 아내, 친척 등 총 4명이 이 일을 한다. 하지만 가업을 잇는 것은 자신이 마지막이다.

판투장이 저이조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대학 시절이다. “디자인을 전공했어요. 돌, 나무, 종이 등 많은 재료를 접했죠. 그러다가 저이조를 알게 됐어요. 종이가 참 예뻤습니다.” 판투장은 2015년 9월 조프로젝트 설립자인 쩐홍늉(36)을 찾아가 함께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쩐홍늉은 판투장을 환영했다. 조프로젝트는 두 사람과 함께 마케팅을 담당하는 응우옌번아잉(23) 등 3명의 젊은이들이 꾸려가고 있다. 이들은 박닌성과 호아빈성의 장인 2명에게서 저이조를 공급받아 전등갓, 수첩, 달력 등을 만들어 판매한다.

“저이조를 아는 베트남 사람이 거의 없어요. 이 종이를 만드는 곳도 대여섯 곳밖에 남아 있지 않아요. 우선 많은 사람들에게 저이조를 알리는 것이 목표죠.” 판투장은 저이조가 사라져가는 어두운 현실에 대해 말하면서도 조급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저이조에는 천천히 사는 법이 녹아 있어요. 늘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저이조를 보면서 느리지만 정성이 담긴 삶의 방식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 꿈이에요.” 판투장은 저이조처럼 천천히 사라져가는 전통을 지키겠다는 꿈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잼팩토리의  ‘핫한’  환경운동


힙스터들이여,   강을  지켜라


타이 방콕의 힙스터(최신 유행에 민감하지만 대중의 흐름을 좇지 않는 부류)를 만나고 싶다면 잼팩토리를 찾으면 된다고 했다. 방콕 클롱산에 위치한 잼팩토리를 처음 소개받았을 때, ‘방콕의 핫플레이스’라는 얘기를 들었다. 이름 때문에 잼 공장을 개조한 곳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얼음과 배터리 등을 보관하던 폐창고 부지에 세워졌다.
뾰족한 지붕과 무거운 철문 등 30년간 문 닫혀 있던 낡은 창고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가운데 건축사무소, 갤러리, 서점, 카페, 인테리어숍, 식당 등 세련된 공간이 들어서 있다.
4월25일 만난 잼팩토리의 사진작가 시리마 파판(28)은 “클롱산은 중국인 중산층이 많이 모여 사는 지역이다. 여기 주민들은 구매력은 있지만, 방콕에서 문화적으로 소외된 편이었다”고 소개했다. 잼팩토리로 인해 클롱산 주민들과 타 지역 주민들이 교류하면서 동네가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잼팩토리가 몰고 온 활력이 진짜 중요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지금 타이에선 짜오프라야강의 범람을 해결하기 위해 수년째 강 개발 계획을 추진 중이다. 한국에선 타이판 4대강 사업으로 알려지며 수자원공사가 수주한다고 대대적으로 광고했으나 결국 무산됐다. 하지만 강가를 따라 방수막과 둑을 세우는 것이 공사의 핵심임은 여전하다.
그러자면 강을 끼고 형성된 마을에 터전 잡고 사는 주민들이 모두 이주해야 한다. 짜오프라야강 인근에는 클롱산 지역의 중산층부터 위태롭게 서 있는 판잣집 등 다양한 계층이 모여 살고 있다. 여러 시민단체가 환경 파괴와 보상 계획 없는 주민 이주 문제를 들어 강 개발 사업을 반대하고 있다.
FOR(Friends of River)도 그런 시민단체 가운데 한 곳이다. 잼팩토리와 긴밀하게 협업하며 강 보호 활동을 하고 있다. 잼팩토리의 설립자이자 건축사무소장인 두앙릿 분낙 역시 FOR 멤버이기도 하다. 그는 방콕 사람들의 삶과 역사는 짜오프라야강과 그 주변에서부터 쌓여왔다고 믿는다. FOR와 잼팩토리는 강을 따라 걷는 도보여행 등을 기획하면서 자연 그대로의 강이 가진 힘을 돌아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소리쳐 구호를 외치지 않아도, 공간에 사람이 모여들고 그 공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을 거라고 그들은 믿는다.
신소윤 기자


치앙마이(타이)=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하노이(베트남)=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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