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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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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보다 쉬운 거, 그걸 시라카대”

처음 배운 한글 꼭꼭 눌러쓴 시로 생애 첫 시집 <시가 뭐고?> 펴낸 경북 칠곡군의 할머니들
등록 2016-02-02 22:55 수정 2020-05-03 04:28
시 한 편 보내주세요


제목은 ‘다 예쁘다’


이 시를 공모합니다. 시집 의 시 선정위원 가운데 한 명인 고영직 문학평론가는 할머니들의 시를 읽고 “이 땅에는 시 안 쓰는 시인이 참 많다”고 말합니다. “먹고사느라 이마에 땀을 흘리며 나날의 노동과 일상에 바쁜 나머지 좀처럼 시를 쓸 겨를이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생각해보면 독자 여러분의 어제와 오늘이,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시의 한 구절이 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절창을 기다리는 것은 아닙니다. 시골 마을 할머니들의 시가 그랬듯, 소탈한 일상을 담은 시를 보내주세요. 3편을 선정하여 한겨레출판사에서 선정한 좋은 책 3종 중 한 세트를 드립니다(사진 참조).
할머니들이 쓴 시의 제목 중 하나를 주제로 내겁니다. 도기일 할머니가 쓴 ‘다 예쁘다’(원제목은 ‘다 예뿌다’)입니다. 같은 제목 아래 다른 색으로 반짝이는 여러분의 시를 기다립니다.
응모 기간 2월29일 자정까지
문의 또는 보내실 곳 yoon@hani.co.kr (전자우편 제목을 ‘공모-다 예쁘다’로 표기하여 보내주세요)

지구를 살리는 착한 삶
휴(休) (1명)


마음이 따뜻해지는 에세이
한겨레출판 (1명)


놓칠 수 없는 해외문학 특선
한겨레출판 (1명)












경북 칠곡에는 시인들이 산다. 많이 산다.

1월20일 겨울 한파가 매섭던 날, 도시에서는 비둘기가 얼어 죽었다고 했다. 칠곡에도 추위는 비켜가지 않아 길에 사람 한 명 다니지 않았다. 이따금 바람 소리만 귀를 휘감고 가는 적막한 마을에서 시인들은 어디에 깃들어 있을까.

경북 칠곡군 교육문화회관 이한이 주무관의 안내를 따라 복성리 마을회관 문을 두드렸다. 얼마 전 첫 시집을 낸 복성리의 시인들이 그곳에 모여 있었다. 할머니들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맞아주었다. 타지에서 온 손님에게 얼른 아랫목을 내어주었다. 겨울왕국에서 다른 세상으로 건너뛴 듯 따뜻한 기운이 넘실댔다.

칠곡의 베스트셀러
경북 칠곡의 복성리 할머니들(위쪽)과 숭오리 할머니들이 한글 공부와 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경북 칠곡의 복성리 할머니들(위쪽)과 숭오리 할머니들이 한글 공부와 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올겨울 처음 배운 한글로 쓴 시집 를 출간한 할머니들은 마을의 스타가 됐다. 책은 1쇄 1천 권이 3주 만에 팔렸다.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청도 들어온다.

경북 칠곡 여러 마을에 할머니 시인들이 흩어져 있었는데, 복성리에서 만난 할머니들은 특히 한글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았다. 마을회관에 한글학교를 열고 공부를 시작한 지 1년 남짓이다. 제일 막내 학생이 79살 강윤선, 이원순 할머니. 최고참은 92살 박귀순 할머니다.

할머니 10명의 평균나이는 84살. 여든 평생 더듬더듬 글을 읽었거나 아예 글을 배우지 못했던 할머니들은 이제야 세상이 환하고 눈이 밝아졌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추임새처럼 배움의 기쁨을 털어놓았다. “너무 좋지요. 농협에 가면 쓰는 이름자가 조금 똑똑해졌는데, 글도 잘 쓸 수 있게 됐고. 우리 선생님이 애 마이 썼다. 할매들 가르친다꼬.” 그래서 시집에는 유독 배움에 대해 쓴 글이 많다.

배우깨 조은데/ 생가키거를 안는다/ 글이 안 새가킨다/ 그래서 어렵고/ 힘든다/ 그래도 배아야지 (박후금, ‘배아아지’)
아 살아도 재미가 없고/ 세상에 힘도 없고 외로었지만/ 요새는 집에 도마도도 심어노코/ 물 주며 생각하니/ 모르는 글도 배우고/ 노래도 배우고 (…후략) (정순임, ‘재미있는 인생’)

할아버지들은 “다 늙어서 글 배워가 모하겠노”라며 핀잔을 주지만 할머니들은 그렇게 배운 한글로 마음에 맺혀 있던 것들을 글로 푸는 재미가 쏠쏠하다. 농사짓는 기쁨, 어릴 적 겪은 피란의 기억, 노년의 쓸쓸함 등을 소박한 입말에 실어보낸다. 이따금 글 배운다고 타박하는 할아버지 흉도 본다, 이렇게.

젊은 때는 집에 있는 것보다/ 주막에 있는 시간이 드 만낫다/ 호호백발 할배 되니/ 갈 곳이 없이 집박계 모르네/ 이제사 할마이가 제일 좋다 하네 (조덕자, ‘영감’)

어쩐지 말로 하기 쑥스러웠던 이야기들도 쓴다.

사랑이라카이/ 부끄럽따/ 내 사랑도/ 모르고 사라따/ 절을 때는 쪼매 사랑해조대/ 그래도 뽀뽀는 안 해밧다 (박월선, ‘사랑’)

박월선(79) 할머니가 수업 시간에 이 시를 발표하고 나서 할머니들 사이에 때아닌 뽀뽀 논쟁이 붙었다. 뽀뽀를 해봤니, 안 해봤니,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이날 인터뷰 중에도 박월선 할머니의 시가 언급되면서 할머니들의 끝나지 않은 논쟁이 다시 이어졌다. 결국 강금연(82) 할머니가 종지부를 찍듯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아를 낳았으모 뽀뽀 해본 거 아이가! 고만 물으라 안 카나.” 이내 소란이 잦아들었지만, 박월선 할머니는 헤어질 때쯤 인사를 하며 끝끝내 “안 해봤다”고 말했다.

“한글 공부하니 기부니 조타”
복성리 할머니들이 생애 처음 배운 한글로 시를 썼다. 직접 삽화를 그리고 또박또박 눌러쓴 시들이 마을회관 벽에 걸려 있다. 류우종 기자

복성리 할머니들이 생애 처음 배운 한글로 시를 썼다. 직접 삽화를 그리고 또박또박 눌러쓴 시들이 마을회관 벽에 걸려 있다. 류우종 기자

인지 아무거또 업따/ 묵고 시픈 거또 업다/ 하고 시픈 거도 없다/ 갈 때대가 곱게 잘/ 가는 게 꿈이다

‘가는 꿈’을 쓴 박금분(87) 할머니는 한글학교 생활에서는 누구보다 의욕적이다. 할머니는 어디를 가든 한글학교 가방을 품고 다닌다. 행여 때가 탈까봐 집에서 쓰던 천가방을 한 겹 덧대어 든다. 가방이 무겁기로도 일등이다. 선생님이 마을회관에 책을 좀 놓고 다니라고 해도, “학생이 가방을 가져 다녀야지”라고 말하며 끄떡없이 가방을 꽉 채워 다닌다.

‘공부’와 ‘기부니 조타’ 두 편의 시를 시집에 실은 곽두조(86) 할머니는 복성리에서 제일 모범생이다. 가방을 풀어 방학숙제와 시 노트를 보여주는데, 글씨가 빼곡하다. “이건 어제 저녁에 했다. 대충대충 이래 했다”라고 말하지만, 할머니들이 입을 모아 “곽두조 할머니는 공부한다고 드라마도 보지 않는다”고 말한다. 박금분 할머니도 옆에서 한마디 거든다. “서울 갔다오더니 정신을 못 채리. 쌔리 마이 잘할라꼬.” 곽두조 할머니가 웃으며 답했다. “더 높은 데 올라갈라꼬.” “어데?” “몰라, 이북으로 갈까.”

모범생 박금분 할머니도 겨울방학 숙제 공책을 자랑하고 싶은데, 오늘따라 가방에 안 넣어와서 어쩐지 시무룩해졌다. “선생님, 나는 공책이 없어. 우짜꼬?” 옆에서 할머니들이 또 말을 얹는다. “(가방에) 저래 책을 여다니면서 노트는 와 없으까.”

모범생 할머니들이 미리 한 숙제 얘기를 하며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반대편에 앉은 이원순(79) 할머니는 좀 뾰로통하다. 이원순 할머니는 전쟁이 나고 가세가 기울면서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칠곡군에 사는 할머니들 중 60대는 초등학교 또는 간혹 상급 학교에 진학한 할머니들도 있지만, 70~80대는 학교를 아예 다니지 못했거나 중도에 그만뒀다. 한글학교 선생님은 이원순 할머니를 “아직 읽고 쓰는 데 어려움이 많은 편인데, 집에서 자습을 가장 많이 하고 열심히 해오시는 분”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래도 할머니는 열심히 한다는 말보다 잘한다는 말에 더 욕심이 난다. 아무도 없이 홀로 지내다보니 자식, 손주며 할아버지의 도움도 얻지 못해 “애가 터진다”. 그렇게 배운 한글로 ‘어무이’라는 시를 썼다. 시집에 실리지 않은 할머니의 시를 소개한다.

80이 너머도/ 어무이가 조타/ 나이가 드러도/ 어무이가 보고 시따/ 어무이 카고 부르마/ 아이고 오이야 오이야/ 이래 방가따 (‘어무이’)

이미 중년을 훌쩍 넘긴 아들딸의 엄마, 손주들에게는 엄마의 엄마일지라도 할머니는 자신을 낳고 길러준 어머니의 품이 여전히 그립다. 시를 처음 쓴 날도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는데, 인터뷰를 하는 순간에도 할머니의 눈가가 불그스름해졌다.

우리 동네 단감은 시를 먹고 자랐지

복성리에서 차로 10분쯤 떨어져 있는 숭오리에도 시인들이 모여 산다. 감농사 짓는 마을 숭오리에 도착하니 나무에 까치밥이 인심 좋게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숭오리 마을회관에서 만난 13명 할머니의 나이는 평균 75살. 숭오리에는 농사가 많다. 마을회관 바로 앞에도 할머니들 손이 닿도록 가지치기를 한 키 작은 감나무가 밭을 이루고 있었다. 다른 마을에서 여든 가까운 할머니들은 농사일에 손을 떼는데, 숭오리 할머니들은 한창 농사철에 밭에 나가랴 마을회관에 가랴 도시의 수험생보다 바쁜 하루를 보낸다.

농번기에 손 모자란다고 쏘아대는 할아버지의 잔소리를 피해 마을회관에 나와 한글을 배우고, 저녁에는 이불 깔고 엎드려 시를 썼다. 윤영혜(72) 할머니가 말했다. “여기는 주제가 단감이라. 일손이 바빠, 전신에 단감. 그래도 아무리 바빠도 공부는 하러 나와야지.” 박태분(76) 할머니도 말을 보탠다. “시를 먹고 자란 단감이에요.” 그래서인지 숭오리 할머니들의 작품 중에는 밭에서 일하다 느낀 감정을 정리한 시들이 눈에 띈다.

비가 쏟아져 오면 좋갰다/ 풍년이 와야지대갰다/ 졸졸 와야지/ 고구마, 고추, 콩, 도라지/ 그래야 생산이 나지 (김말순, ‘비가 와야대갰다’)
마늘을 캐가지고/ 아들 딸 다 농가 먹었다/ 논에는 깨를 심었는데/ 검은깨 농사지어서/ 또 다 농가 먹어야지/ 깨가 아주 잘 났다 (박차남, ‘농가 먹어야지’)

한글 공부를 한 지는 3년이 됐다. 그래서 복성리 할머니들이 쓴 시보다 매끈한 글이 더 많다. 황경순 할머니가 쓴 ‘가뭄 끝에’ 같은 시가 그렇다. 소탈하고 반듯하다.

단비가 왔습니다/ 논과 밭에 곡식들이/ 방긋방긋/ 농부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핍니다/ 네 얼굴도 방긋방긋

그래서 복성리에서는 김옥교(81) 할머니가 쓴 ‘감자 오키로’ 같은 시가 할머니들 사이에 뜨거운 감자였다.

감자 오키로 심어서/ 백키로 캐고/ 느무 조와/ 아들 딸 주고/ 느무 절거워/ 우리 아들 손자/ 걱정 없이 살고 하면/ 행복하지

“이런 것도 시예요?” 한 할머니가 묻는다. “저분이 쓴 거 참 신기하지요? 식당에서 점심 먹고 쓰라캤는데, 그대로~ (있는) 그대로 (썼다).” 김옥교 할머니가 웃으며 반박한다. “시라카대, 뭐.” 일평생 농사를 지어왔지만 할머니는 5kg 심은 감자가 100kg 작황을 보이는 것이 여전히 경이롭다. 그렇게 자식들을 먹이고 길러온 한평생의 노고가 시 한 편에 아무렇지 않게 놓여 있다.

삶의 결과 역사가 녹아 있는 시

생애 처음 시를 쓴 할머니들에게 시란 무엇일까. ‘감자 오키로’를 쓴 김옥교 할머니가 말한다. “일상생활하면서 느끼고 보고 이런 기지, 뭐.” 유혜선(80) 할머니와 박차남(85) 할머니는 “농사보다 쉬운 거”라고 말한다. 여기저기서 의견들이 쏟아진다.

“뭔지 알 수 없는 것.” “마음 가는 대로 솔직하게 쓰면 그냥 그게 시지.” “나는 우리 딸 얘기를 썼는데, 그런 거 맞아요?” 모두 시가 무엇인들 그게 뭐가 중요하냐는 투다. 그런 걸 따지지 않아도 꼭꼭 눌러쓴 할머니들의 시에는 당신만이 가진 삶의 결, 지역과 사람과 역사 같은 것이 어떤 시보다 함축적으로 녹아 있었다. 시란 무엇인지, 무엇이 좋은 시인지, 시를 어떻게 쓰는지 등을 따지지 않아도 할머니들은 자기도 모르게 좋은 시의 덕목에 이미 가까이 가 있었다.

칠곡=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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