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중 쌍용차지부장, 최종식 쌍용차 사장, 홍봉석 쌍용차노조 위원장(왼쪽부터)이 2015년 12월30일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3자 합의안’에 서명한 뒤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위쪽 사진). 이날 합의안 조인식 뒤에 쌍용차지부는 7년 동안 연대해준 이들과 함께 공장 앞에서 작은 문화제를 열었다(아래쪽). 류우종 기자, 류우종 기자
“하루하루 쌓은 것도 아닌데 어느덧 2626일이란 시간이 지났습니다.” 77일의 옥쇄파업, 86일의 굴뚝농성, 21일의 단식. 그의 몸에 지워지지 않을 문신처럼 차곡차곡 쌓인 기억들이다. 그렇게 거리에서 7번의 여름을 버텨냈다. 그 세월을 버텨내지 못한 동료들, 그들의 가족까지 28명이 먼저 세상을 떴다.
2014년 11월13일 해고자 153명이 낸 해고무효 확인소송에서 대법원이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는 정당했다”며 항소심 판결을 뒤집고 회사 쪽 손을 들어준 날, 그는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 길바닥에 앉아 누구보다 많은 눈물을 쏟아냈다. 그동안 서러움을 토해내기라도 하는 듯, 애끓는 울음소리는 한참 동안 그칠 줄을 몰랐다.
쌍용차 노동자 복기성. 그의 이름은 그날 판결문에 없었다. 애초부터 2009년 회사가 정리해고한 2646명이란 숫자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사내하청 소속의 ‘불법파견’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탓이다. 비정규직은 정리해고에 앞서 사내하청이 폐업하면서 가장 먼저 공장에서 쫓겨났다. 공장에서 일한 5년보다 더 긴 7년을 ‘공장으로 돌아가겠다’며 싸워오는 동안, 그는 누구보다 더 “서럽고 외로웠다”. 사람들은 쌍용차 정리해고 싸움이라는 ‘거대한 산’만 쳐다봤지, 5명 남짓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주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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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16년 1월 가장 먼저 공장으로 돌아간다. 회사는 1심 법원에서 불법파견이라고 인정받은 4명을 포함해 비정규직 노동자 6명을 정규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복기성씨는 판결이 보장한 체불임금 3억원을 포기했다. 대신 아직 1심 소송이 진행 중이라서 불법파견을 인정받진 못했지만 끝까지 함께 싸웠던 비정규직 동료 2명의 복직을 약속받았다. 하지만 그는 “가슴이 아프고 죄스럽다”. 7년 동안 같이 싸워온 정규직 해고자들과 한날한시에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2015년 12월30일, 쌍용자동차는 이사회를 열어 ‘쌍용자동차 경영 정상화를 위한 합의서(노·노·사 3자 합의안)’를 의결했다. 쌍용차와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기업노조인 쌍용차노조 3주체가 12월11일 해고자들을 단계적으로 복직시키기로 약속한 잠정합의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이날 이사회 직후 최종식 쌍용차 사장, 김득중 쌍용차지부장, 홍봉석 쌍용차노조 위원장은 경기도 평택 공장에서 만나 최종합의문에 서명했다. 이로써 쌍용차 해고자들이 일터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래도 7년간의 싸움이 ‘마침표를 찍었다’고 하기엔 이르다. 모든 해고자가 복직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지가 불투명한 탓이다. 합의문에는 △해고자 복직 △쌍용차 정상화 방안 △(회사 쪽이 노조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과 가압류 취하 △유가족 지원 대책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노·노·사는 합의문의 세부 내용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합의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우선 2017년 상반기까지 해고자 179명 가운데 복직 희망자 150명을 단계적으로 복직시키는 데 ‘노력’한다. 회사가 인력을 충원할 때마다 해고자 30%, 희망퇴직자 30%, 신규 채용자 40%로 인원을 채우기로 했다. 당장 2016년 1월 말까지 40명이 충원되는데, 이 가운데 12명을 해고자 중에서 뽑는다. 신규 채용 16명에는 복기성씨를 포함한 비정규직 노동자 6명이포함돼있다. 노·노·사는 ‘복직점검위원회’를 구성해 복직 문제와 관련한 사항을 정기적으로 점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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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노력’이라는 단어의 함의다. 쌍용차는 소형 스포츠실용차(SUV) 티볼리 판매의 호조로 2015년 1~11월 총 12만9648대를 판매해 전년보다 1.2% 판매량이 늘었지만, 3분기에도 영업손실 36억원을 기록하는 등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16년 상반기까지 ‘티볼리 롱바디’(기존 티볼리에서 차체 길이를 늘린 모델) 출시, 주간 연속 2교대제 시행 등으로 인해 추가 인력이 필요한 상황이긴 하나, 해고자들이 언제쯤 모두 공장에 돌아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인력 충원 때마다 30%씩 해고자를 뽑는다는 전제하에, 해고자 150명이 모두 복직하려면 쌍용차가 2017년 상반기까지 최소 500명을 충원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재 쌍용차에는 생산직 노동자 3170명을 포함해 임직원 4861명이 근무 중이다. 2009년 7천 명이 넘던 인력을 대규모 구조조정해 4700명대 수준으로 줄인 이후, 쌍용차 인력 규모는 7년째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2013년 3월, 무급휴직자와 일부 징계해고자 등 489명을 복귀시킨 게 거의 유일한 대규모 충원이었다.
지금도 생산 물량이 부족해, 코란도C와 티볼리를 생산하는 조립 1라인을 제외하고는 2개 라인이 야간조 없이 주간조만 근무하고 있다. 공장 가동률은 58%에 불과하다. 쌍용차지부가 잠정합의안을 놓고 조합원 찬반투표를 벌였을 때 찬성(58표)과 반대(53표)가 팽팽하게 맞선 까닭도 확실한 복직이 불가능할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었다. 해고자 전원 복직 여부는 결국 생산량과 판매량에 달려 있다.
회사와 기업노조, 쌍용차지부는 2009년 이후 숨진 노동자의 유가족을 지원하고 해고자들이 복직할 때까지 생계를 지원하기 위한 ‘희망기금’ 15억원도 조성하기로 했다. 회사는 쌍용차지부와 조합원을 상대로 제기한 각종 손해배상 청구소송 및 가압류도 취하할 예정이다. 다만 현재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인 ‘해고무효 확인소송’과 1·2심 재판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근로자지위 확인소송’ 등 노동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도 취하하는 게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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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중 쌍용차지부장은 “해고자 전원 복직 때까지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는 완전히 끝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2015년 여름 45일간 단식농성으로 교착상태에 빠져 있던 노·노·사 교섭의 물꼬를 텄던 그는 모든 해고자들이 일터로 돌아간 뒤에 맨 마지막으로 복직하겠다고 약속했다. “모두가 공장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우리와 함께해주십시오.”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는 7년여 만에 한고비를 넘겼으나 “해고는 살인”이라는 이들의 외침은 아직 유효하다. 경기 불황으로 인해 조선·해운·건설업 등에서 매서운 구조조정 바람이 몰아치는 탓이다. 쌍용차 노·노·사 최종합의문 조인식이 있던 12월30일, 고용노동부는 ‘저성과 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지침 정부안을 발표했다. ‘경영상 긴박한 필요’가 있을 때 노동자를 집단해고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해준 ‘정리해고’에 이어, 개별적으로 노동자를 해고할 때도 ‘고용관계를 지속하기 어려운 이유’에 ‘저성과’를 확실히 못박아 기업들이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는 여지를 넓혀주려는 시도다. 2016년 새해 벽두부터 제2의 쌍용차, 또 다른 해고 한파가 몰아칠지 모른다는 시린 예감이 번진다.
■ 2016년 1월까지 비정규직 6명 정규직으로 채용
■ 2017년 상반기까지 정규직 해고자 150명 복직을 위해 회사 쪽 ‘노력’ 약속
■ 회사가 노조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과 가압류 취하
■ 유가족 지원, 해고자 생활 지원대책 마련
2009년 1월 중국 상하이차, 경영권 포기. 법정관리 신청
5월 2646명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노조 무기한 총파업
8월 공권력 투입해 평택공장 옥쇄파업 해제
2010년 11월 인도 마힌드라그룹, 쌍용차 인수
2013년 3월 무급휴직자 등 489명 복직
2014년 11월 대법원 ‘정리해고 유효’ 판결
12월 평택공장 앞 굴뚝농성(각각 89일, 101일간)
2015년 8월 김득중 쌍용차지부장, 45일간 단식
12월 쌍용차 노·노·사 3자 간 최종합의문 조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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