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출근. 오후 1시 퇴근. ‘출근 커피’ 마시는 시간, 아침·점심 식사도 포함된다. 오후 4시부터는 무조건 공부다. 업무와 직결된 유기농업, 생화학은 기본이다. 요일별로 기타 같은 악기를 익히거나 철학, 인문학도 배운다.
12월8일 충남 홍성군 장곡면 오미마을 ‘젊은협업농장’을 찾았을 때도 점심이 되기 전에 ‘농사꾼’들은 모두 철수했다. 20대 두 명은 서울에 정체불명의 ‘팟캐스트 녹음’을 위해 아침 일찍 떠났다고 했다. 솔직히 첫인상은 이랬다. 그렇게 농사지어서 뭔가 되긴 할까….
공부하는 젊은 농부들
그러나 정민철(48) 젊은협업농장 상임이사는 “청년들의 일터에는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강한 교육적 성격을 지닌 ‘완충적 사회 공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청년 귀농자들이 생산에만 집착해선 안 된다. 물론 20대의 농업은 일 자체가 생존과 직결돼야 한다. 하지만 청년층에게는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서 반드시 교육적 부분이 결합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젊은협업농장은 협동조합 형태로 꾸려졌다. ‘일-학습 병행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농장에서 일하는 모두가 ‘주인’일 필요가 있었다. 직접 수확량과 노동시간을 정하고, 수입이 생기면 똑같이 나누는 것이다. “돈 좀 더 벌자”고 하면, 협의로 일하는 시간을 늘리거나 노동강도를 높이면 된다. 농사짓는 시간 못지않게 강조되는 게 오후 4시 교육시간이다. 농장에서 일하는 20대는 의무적으로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도 입학해야 한다.
농장의 시작은 이랬다. 홍동면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풀무학교) 환경농업전공부 교사였던 정민철씨가 제자 두 명과 함께 ‘세 남자가 사랑한 쌈채소’를 창업했다. 풀무학교에서 공부했어도 막상 갈 곳을 찾지 못하는 제자들을 위해 직접 소매를 걷어붙인 것이다.
임응철 마을 이장이 빌려준 땅으로 660여m²의 땅에 비닐하우스 한 동을 쳤다. 시세대로 임대료도 냈다. 쌈채소를 심었다. 상추, 생채, 로메인, 오클린, 적삼각추, 백로즈, 셀러리 같은 것들이다. 비교적 값을 많이 쳐주는 유기농으로만 생산했다. 까다로운 인증 과정을 넘어야 하고, 농약을 쓰지 않는 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생산량의 70%를 홍성유기농영농조합에 납품하고, 나머지는 홍성 지역 식당이나 서울 지역에 택배로 배달하는 안정적인 생산 체제를 갖췄다.
2013년 5월9일 협동조합 법인을 세웠다. 조합원 25명이 참여했다. 자본금도 2천만원이 모였다. 1동으로 시작했던 비닐하우스는 4동, 8동까지 늘었다. 조합원은 마을 이장님을 포함해 44명으로 늘었다. 자본금은 창립 초기의 두 배를 넘는 4300만원이 됐다. 협업농장을 거친 조합원들 중 일부는 독립해 재창업을 했다. 허브를 키우는 ‘행복농장’, 멜론을 키우는 ‘열매농장’ 같은 곳이다. 유기농 채소와 삼겹살을 묶어 파는 ‘꾸러미’ 사업을 하는 이도 생겼다.
현재 농장은 전임제 농부가 6명, 월급을 받는 시간제 농부가 1명이다. 전임제 가운데는 20대가 절반이다. 정씨 역시 상임이사라고 하지만 농장에선 한 명의 조합원이자 일꾼이다. 정씨가 말했다. “유기농 쌈채소 1kg 도매가가 6천원 정도 합니다. 돈 벌려고 하면 하루 15시간씩 일하면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어요. 그래도 ‘돈 좀 더 벌래?’ 그러면 대부분 일하는 시간을 줄이자고 해요. 청년들이 고령층으로 구성된 일반 농가처럼 일에 파묻혀서는 미래가 없기 때문이에요.”
춘천 구도심 살린 파티하는 여인숙젊은협업농장은 귀농을 생각하는 젊은이들에게 일종의 ‘정거장’ 구실을 한다. 지날 수도, 머물 수도 있는 그런 곳이다. 젊은협업농장의 젊은 농부이자 매니저인 정영환(33)씨는 “우리 농장 하나로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비슷한 형태의 ‘정거장’이 많은 지역에 생기면 청년들이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거점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강원도 춘천 근화동에 자리잡은 ‘동네방네협동조합’은 또 다른 형태의 ‘청년 정거장’이다. 1990년대 춘천 최대 번화가 가운데 하나였던 이곳은 시외버스터미널이 자리를 옮기면서 상권이 주저앉았다. 조한솔 대표를 중심으로 이곳에서 대학 생활을 했던 청년 6명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지역에서 스러져가는 공간을 되살려냈다. 이들이 주목한 곳은 버스터미널이 사라지면서 방치된 재래시장과 여인숙이었다.
이들은 터미널 인근 ‘비선여인숙’을 임대해 ‘봄엔(N)게스트하우스’를 열었다. 역시 버스터미널과 함께 하룻밤을 청하던 여행객들이 사라지면서 방치된 곳이었다. 이들은 이곳을 4개 방에 하루 20명 수용이 가능한 기숙사형 숙소로 개조했다.
하루 2만~2만4천원을 내면 아침식사가 제공되는 숙박을 할 수 있다. 저녁에는 막걸리와 파전을 곁들인 파티가 제공된다. 운이 닿으면 옥상에서 열리는 멋진 문화공연도 즐길 수 있다. 지난해 투숙 인원만 4천여 명에 이른다. 평일·주말 할 것 없이 매일 수용 가능한 인원의 절반가량이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른 셈이다.
숙소를 이용하면 시장에서만 쓸 수 있는 소액 상품권도 준다. 젊은 여행객들이 봄엔게스트하우스를 찾으면서 무너져내리던 주변 상권도 활력을 얻었다. 최근엔 지역주민들과 함께 각종 마을사업을 벌이고, ‘싹수가 놀랍다’ 같은 문화축제도 열고 있다.
앞서 춘천 중앙시장에 방치된 2층 공간을 살려 복합문화커뮤니티 ‘궁금한 이층집’을 만들었다. 이들은 이곳에서 시장 상인들을 위해 배달 커피를 팔거나, 라디오 방송을 제작해 시장 상인들을 도왔다. 시장 손님뿐 아니라 상인, 춘천 여행객들의 모임 장소로도 활용된다. 젊은이들을 상대로 토크쇼나 ‘감성포텐 작렬’ 어쿠스틱 밴드들의 산뜻한 음악 공연도 열린다. 임의단체로 시작한 이들도 3년 만에 조합원 6명을 둔 어엿한 협동조합으로 성장했다. 뿌리를 내리려는 청년과 지역사회가 동시에 성장하는 셈이다.
앞선 두 경우가 청년들이 제 소매를 걷어붙인 것이라면, 청년 지역네트워크 카페를 표방한 ‘들락(樂)날락(樂)’은 지역사회의 기성세대가 청년들을 위해 깔아둔 멍석 같은 곳이다. 문화예술주민협력체로 불리는 충남 ‘금산문화의 집’에 복합문화공간을 마련해 청년들이 지역사회로 손쉽게 진입할 수 있게 돕는다. 주로 지역에서 활동할 문화기획자를 양성하거나, 출판 프로젝트 등을 통해 지역사회의 일꾼으로 성장하도록 지원하는 구실을 한다. 이렇게 성장한 청년들이 다시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생태자립캠프나 축제의 활동가로 결합하는 방식이다.
‘청춘스테이션’ 확장 꿈꾸며은 12월16일(오후 2시)에 열리는 첫 ‘21청춘포럼’에서 이들처럼 함께 놀며 일하며 미래를 개척할 청춘들을 찾는다. 지역에서 착한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에게 언제든 문을 열어주는 ‘청춘스테이션(정거장)’을 만들기 위한 자리다. 젊은협업농장(홍성), 들락날락카페(금산), 동네방네협동조합(춘천) 등의 사례가 발표되고, 임경수 박사 등이 참여해 청춘스테이션의 확장성에 대해 논의한다.
21청년포럼을 기획한 사회적 경제 전문가 임경수 박사는 “포럼을 통해 지역마다 청춘스테이션이 자리를 잡게 되면, 지역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 경제 안에서 청년들이 생활 터전을 잡는 데 큰 구실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소는 미디어카페 ‘후’(서울 홍대입구역 2번 출구), 첫 포럼 주제는 ‘청년, 마을에 응답하다’이다. 문의 041-736-9720
홍성·춘천=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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