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가 나타났다. 10월8일 경기도 용인의 한 아파트에서 고양이 집을 마련해주다 위에서 떨어진 벽돌에 맞아 한 명은 숨지고 나머지 한 명은 크게 다친 ‘용인 캣맘 살인 사건’이 일어난 지 여드레 만이다. 16일 오전, 용인서부경찰서 김관석 형사과장은 언론 브리핑을 통해, 용의자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초등학생이라고 밝혔다.
초등학생 1명이 벽돌을 아래로 던지고 2명은 같은 공간에 머무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10월15일 오후 사건이 일어난 아파트에서 수사망을 좁혀가던 중 A군이 옥상에서 벽돌을 던졌다는 자백을 받았다. 이들은 놀이터에서 만나 “옥상에 올라가서 놀자”며 104동 옥상에 올라가 놀다가 학교에서 배운 자유낙하 실험을 해보자며 벽돌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사건 발생 시간 이전과 이후 초등학생 3명이 3·4호 라인 1층 현관으로 들고 나는 모습이 폐회로텔레비전(CCTV)에 녹화돼 있었다. 사건 당일 5·6호 라인 옥상에서 채취한 발자국과 A군의 신발 문양이 일치한다는 것도 경찰청 과학수사센터를 통해 확인됐다.
경찰에 따르면 세 아이들은 같은 학교, 다른 학년 학생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A군은 2005년생,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은 만 9살인 것으로 알려졌다. 세 사람은 자주 만나거나 아주 친한 사이는 아니다. A, B군은 15일 밤 부모 동석하에 조사를 받았고 C군의 신병은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추가 조사를 통해 구체적인 범행 동기와 과정을 확인할 예정이다.
‘캣맘’에서 ‘초등학생 용의자’로 초점이 옮겨간 이번 사건은 이제 혐오 사건 논란을 떠나 고의성 여부와 미성년자 범죄 처벌 여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병원 치료 중인 피해자 박아무개(29·남)씨와 경찰의 말을 종합해 사건을 되돌아봤다.
별안간의 죽음 그리고 발견된 벽돌범인이 밝혀지면 “왜?”라고 묻고 싶었다던 피해자 박아무개씨는 용의자가 지목된 직후 과의 통화에서 “머리가 아프다. 모르겠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고 전했다. 경찰 브리핑이 있기 하루 전만 해도 수사가 장기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가운데 박씨는 유일한 목격자였다. 10월14일 밤 경기도 분당의 한 병원에서 만난 박씨에게서 사건 당시 정황을 들었다.
10월8일 오후 4시40분 즈음 박씨와 고인이 된 또 다른 피해자 박아무개(55·여, 이하 구분을 위해 박씨의 표현에 따라 아주머니)씨는 평소 돌보던 고양이 집을 마련해주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벤치에 가방과 짐을 두고 고개를 아래로 향하고 있던 두 사람에게 별안간에 벽돌이 날아들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아주머니의 머리를 강타한 벽돌은 튕겨서 옆에 있던 박씨의 왼쪽 머리도 쳤다. 잠시 의식을 잃었다 정신을 차린 박씨가 손으로 머리를 짚으니 피와 엉킨 머리카락이 잡혔다. 두 사람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벽돌에 먼저 맞은 아주머니는 결국 사망했다. 박씨는 치료 중이다.
두 사람은 알려진 것처럼 고양이동호회 회원이라거나 평소 특별히 동물 보호 활동을 해왔던 이들은 아니다. 고양이를 돌본 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8월3~4일께 아주머니는 고양이를 처음 발견했다. 어미는 몸을 푼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키우는 강아지 산책을 시켜주던 중이었다. 아주머니의 강아지가 고양이를 발견하고 컹컹거렸다. 어미의 상태는 거의 죽어갈 지경이었다. 그때부터 아주머니가 이들 밥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9월 초, 이른 아침 집을 나선 박씨도 고양이 가족을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도 어미는 경계하는 기색 없이 작은 소리로 야옹거리며 울었다. 새끼들은 도망갔다. 동물을 키우진 않았지만 주변 친구들이 기르는 개나 고양이를 예뻐하던 박씨는 마침 친구네 강아지에게 주려고 사뒀던 강아지 간식을 가져다가 고양이에게 줬다.
“아주 잘 먹었어요. 그 다음날에 어디 다녀오면서 동물병원에서 주식캔을 사서 주고 담에 또 줘야지 생각했어요. 그렇게 밥을 주다 서너 번째쯤에 아주머니를 만났어요.” 아주머니는 박씨를 아주 반가워하며 밥을 나눠서 주자고 제안했다. 두 사람은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아주머니는 정이 많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고양이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없었다. 박씨가 인터넷 등을 통해 고양이 돌보는 방법을 찾아보고 아주머니한테 알려줬다. 거의 매일 밥을 챙겼다.
두 사람이 시간을 정해 챙긴 건 아니지만 아주머니는 주로 낮이나 저녁에, 박씨는 이른 아침이나 밤에 밥을 줬다. 그러다 가끔 시간이 겹쳐 만나기도 했다. 5일에 서너 번꼴로 마주쳤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약속하고 만나기도 했다. 고양이들은 아파트와 마주 보는 언덕 수풀 속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살았다.
이들이 돌보던 고양이는 유독 사람에게 경계가 없었다. 아주머니는 버려진 고양이인 것 같다고 박씨에게 얘기했다. 어느 날 고양이 밥을 주고 있는데 한 아이가 다가와 누구야, 이름을 불렀단 거다. 아주머니가 “너 얘 아니?” 물어보니 자기 집에서 키우던 고양인데 아빠가 키우기 힘들다고 하고, 이런저런 사정이 있었다고 설명을 했다고 한다. 박씨는 고양이를 안다는 아이를 만난 적은 없다. 사람 손을 탄 고양이라 입양처를 알아보자고 뜻을 모으기도 했다. 개체 수가 늘지 않도록 TNR(Trap-Neuter-Return·중성화 수술을 한 뒤 살던 곳에 다시 고양이를 방사하는 것)에 대해 알아보고, 시도해보자고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마주치는 이웃 중 싫다는 사람 없었어요”사건이 일어난 10월8일, 오후 2시50분께 아주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동물병원인데 하루 이틀 전부터 새끼고양이가 기침을 하는 것 같아 약을 지었다고 말했다. 하루에 여러 번 약을 혼자 주긴 힘드니까 나눠서 주자고 했다. 박씨는 그러자고 했다. 아주머니가 볼일을 보고 다시 연락을 주기로 했다.
4시20분께 아파트에서 만났다. 아주머니는 상자와 비닐로 만든 집을 가져왔다. 두 번째 만든 집이었다.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떨어지면서 아주머니는 고양이집을 만들었다. 그런데 처음에 만든 집은 크기가 좀 작았는지 늘 새끼들만 들어가 있고 어미는 밖에 나와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이 딱해 보여 아주머니는 이번에 좀더 큰 집을 만들어왔다. 지어온 약을 새끼고양이에게 먹이고 집을 마련해주는 작업을 하느라 두 사람은 벤치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벽돌이 떨어졌다.
언론은 이번 사건을 두고 길고양이 혐오 범죄라고 여론을 몰아갔지만 박씨는 처음부터 그렇게 단정할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박씨와 아주머니는 사람들이 자주 왕래하지 않는 시간에 밥을 챙겨주고 밥을 준 다음에도 항상 청소를 했다. 이웃을 마주치더라도 단 한 번도 “밥을 주지 말라”거나 고양이가 정말 싫다는 투의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박씨가 아는 선에서 아주머니도 그랬다. 길고양이 밥을 챙겨주는 이들이 흔히 겪는, 누가 밥을 엎어놓는다거나 고양이 집을 훼손해놓는 일도 없었다.
경찰 또한 이 아파트 단지에서 최근 고양이로 인한 분쟁이 있었다거나 민원이 접수된 적이 없었다고 확인했다. 주민 이아무개(36)씨는 “우리 주민들 중에 그런 사람(캣맘에 대한 분노로 벽돌을 던진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사건이 일어나고 (경찰과 언론 등) 낯선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는 지금이 더 시끄러운 것 같다”고 말했다.
사건이 일어난 이후부터 용의자가 밝혀지기까지 해당 아파트의 일상은 여느 동네와 없었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소리를 지르며 뛰어놀고 엄마들은 아이들 근처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택배 기사가 단지 내를 바쁘게 오갔다. 사건 당일에도 그랬다. 평범한 하루였다. 산 아래 조용한 동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평소 특별한 분쟁이나 소란이 없는 곳이다. 사건은 조용한 단지 안에서도 가장 깊고 한적한 곳에서 일어났다.
10월14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해 3차원 스캐너를 이용해서 현장 시뮬레이션 실험을 하는 현장에 인근 초등학교 3학년 학생 7~8명이 모여들었다. 아이들은 서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설마 아이들이 모르고 한 건 아니겠지?” “그 무거운 벽돌을?” “실수로라도?” “고양이를 싫어하는 어른이 아닐까?” “함부로 의심하면 안 돼”. 이들 중에 고양이나 피해자를 안다는 이는 없었다. 아이들은 용의자가 하루빨리 밝혀지길 바라면서도 잔혹한 살인 사건은 아니길 바랐다.
우려와 예상을 모두 벗어나 범행을 자백한 용의자는 초등학생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A군을 용의자로 특정하되, 아이들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다는 점, 진술만으로 신빙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점 등을 들어 범행을 확정하지는 않았다.
경찰은 브리핑에서 “실질적으로 그 학생이 거기에 갔는지 안 갔는지 확인할 의무가 있다”며 수사 계획을 밝혔다. 아이들의 부모는 지금까지 이들이 범행을 저지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두려워한 아이들이 부모에게 밝히지 않았던 것이다. 사건 당일 옥상에서 A군의 족적이 채취됐으나 경찰은 그동안 5·6호 라인 안방 베란다 쪽이라 추정해왔다. 경찰이 104동 주민을 용의선상에 놓고 5·6호 라인에서 3·4호 라인 주민까지 확장해 조사하던 중에 용의자의 자백을 받았다.
이번 사건 뒤 길고양이 돌보기 더 힘들어져A군 등의 진술에 따르면, 사건 당일 104동 3·4호 라인 출입구로 진입해 옥상에 올라간 아이들은 여기서 놀다가 5·6호 라인 옥상 쪽으로 이동했다. 3·4호와 5·6호 라인은 출입구는 다르지만 옥상은 연결돼 있다. 경찰은 이들이 5·6호 라인으로 옮겨가 벽돌을 던진 이유는 3·4호 라인 아래 안테나가 있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아이들은 벽돌에 앞서 조그만 돌을 먼저 던졌다고 진술했으나 경찰 조사에서 그런 돌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벽돌을 던지기 전에 아래에 사람이 있는 줄 알았는지에 대해서는 진술이 엇갈린다. 다만 던진 다음 B군이 “사람이 맞았다”라고 A군에게 얘기를 했다.
경찰은 그동안 벽돌이 자유낙하하지 않고 포물선을 그리면서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해왔지만 1.8kg의 벽돌을 아이들이 포물선을 그리도록 던지기는 어렵다. 이들 스스로도 자유낙하 실험을 하기 위해 아래로 떨어뜨렸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보강 수사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본질을 넘어 각박한 혐오사회의 단면을 여지없이 보여줬다. 용의자가 나타나기 전에 온갖 추정이 난무하는 가운데 논점은 ‘누가 캣맘을 죽였나’보다 길고양이 혐오에 초점이 맞춰졌다. 일부 언론은 당사자 확인도 하지 않은 채 피해자들을 길고양이 구호 활동을 하는 사람, 고양이동호회 회원 등으로 서술했다.
과의 인터뷰에서 피해자 박씨는 용의자와 범행 의도를 짐작하지도 못하는 시점에 여론이 길고양이 급여 반대와 옹호 충돌로 몰려가는 것을 우려했다. 캣맘 혐오 사건이 아니라 “벽돌 살인 사건 혹은 돌 테러라고 말하는 게 맞다”고 그는 말했다.
용인 수지구에서 13년째 캣맘으로 활동한 아무개(38)씨는 “이번 사건을 통해 ‘캣맘’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람들 입길에 오르내리는 것이 불편하다”고 말한다. “캣맘은 숨어다니는 사람. 밥을 줄 때도 고양이가 활동하는 어두운 시간, 사람들 왕래가 적은 시간에 검은 옷과 검은 모자 같은 눈에 띄지 않는 옷을 입고 움직인다. 고양이가 반갑다고 소리 내며 다가와도 조용히 하라고 손짓하는 이들이 캣맘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통해 오히려 길고양이를 돌보기 힘들어졌다. “고양이 밥을 주고 있으면 사람들이 캣맘이라고 수군대는 게 느껴진다. 밥 얻어먹던 애들(고양이들)이 갑자기 굶을 것이 걱정되지만, (세간의 시선 때문에) 남편이랑 같이 나가는 지인도 있다.” 수의사 박정윤씨는 캣맘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분노를 쏟아붓던 사람들의 심리 상태를 우려했다. “주변에 길고양이 돌보는 분 중에 청심환을 먹고 아이들(고양이들) 밥을 주러 간다더라. 이런 얘기를 하면 이 난리에도 고양이 밥을 주냐는 댓글이 달릴 거다.”
동물 관련 출판사 ‘책공장더불어’ 김보경 대표 또한 사건의 프레임이 ‘캣맘’에 맞춰져온 현상을 지적했다. “결국은 어떤 내용인지 하나도 모르는 상황에서 캣맘과 주민의 갈등으로 여론몰이가 됐다.” 김보경 대표는 서울 종로구에서 10년 이상 길고양이를 돌봐왔다. “정말 많이 싸우긴 한다. 하지만 주민들이 불편해하는 부분, 예컨대 고양이가 몰려들어서 힘들다고 하면 중성화 수술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개체 수를 줄이는 게 목표라고 하면 대체로 설득이 된다.”
김 대표에 따르면 문제는 캣맘과 캣맘이 아닌 사람의 갈등이 아니라 특정 대상을 지목한 혐오 심리다. “밥을 주는 이들은 늘 일방적으로 당한다. 완력으로도 당하고 쏟아지는 욕을 코앞에서 듣기도 한다. 돌보는 고양이를 죽이겠다는 협박도 듣는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약자가 된다.” 캣맘과 고양이를 만만한 상대, 싫은 대상으로 설정해 극도로 혐오하는 심리가 이번 사건을 통해 오히려 도드라졌다는 얘기다.
자유낙하 벽돌이 포물선을 그렸을까약자를 대상화한 혐오·분노·갈등으로 얼룩졌던 사건은 용의자의 등장으로 본질을 벗어난 여론 일부가 가라앉는 듯하다. 사건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진 부분이 많다. 경찰은 어린 학생들이 용의자라 진술이 명확하지 못한 점을 들었다. 경찰은 아직 A군이 아래에 사람이 있는지 알고 벽돌을 던졌는지 아닌지를 단정하지 않았다. 꾸준히 벽돌이 포물선을 그리며 던져졌을 것이라고 추정해왔는데 자유낙하한 벽돌이 피해자를 타격할 수 있었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경찰은 현장검증 여부도 이들이 초등학생인 점을 고려해 아직 판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용의자로 지목된 이들은 만 14살 미만 미성년자라 사건에 고의성이 있는지, 우발적 사고인지를 떠나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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