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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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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코 난파선을 띄우자는 건가

4·16 세월호 참사 특별법 시행령 수정안, 업무 지휘·감독권 보장 않는다는 본질은 바꾸지 않고 ‘말장난’ 수준으로 문구만 몇 군데 바꿔넣어
등록 2015-05-05 20:27 수정 2020-05-03 04:28

“문구만 살짝 바꾼 말장난이다.”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4월30일 차관회의를 통과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수정안(정부 시행령안)을 이렇게 평가했다. 정부는 “(입법예고 기간에) 제기된 10가지 쟁점 사항 가운데 7가지를 반영했다”며 ‘대폭 수정’이라고 주장했지만 특조위는 “수정한 것 없는 수정안”이라고 평가했다. 특조위를 공무원이 좌지우지하는 관제 기구로 전락시킨다는 문제의 본질이 고쳐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해양수산부는 3월27일 시행령 제정안을 입법예고(입법예고안)했지만 특조위와 유가족들의 반발로 수정 작업을 해왔다.
이석태 특조위 위원장은 4월27일부터 서울 광화문에서 입법예고안을 폐기하라며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그러나 4·29 보궐선거가 끝나자 정부는 정부 시행령안을 밀어붙일 태세다. 추경호 국무조정실장은 4월30일 “앞으로 더 바뀔 가능성은 없다”고 못박으며 5월16일 정부 시행령안을 국무회의에 올려 통과시킬 것이라고 예고했다. 시행령은 대통령령이라서 국무회의만 통과하면 효력을 얻는다. 세월호처럼 복원력을 잃은 특조위가 강제 출항할 위기다.

무소속 천정배 후보가 4월29일 당선이 확정된 뒤 선거사무소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그는 52.3%의 득표율로 조영택 새정치민주연합 후보(29.8%)에 압승했다. 한겨레 이정용 선임기자

무소속 천정배 후보가 4월29일 당선이 확정된 뒤 선거사무소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그는 52.3%의 득표율로 조영택 새정치민주연합 후보(29.8%)에 압승했다. 한겨레 이정용 선임기자

7가지 반영했다지만 모두 “말장난”

정부 시행령안의 첫 번째 문제는 진상규명·안전사회·피해지원 소위원장의 업무 지휘·감독권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조위는 여야 정치권(10명)과 법조계(4명), 유가족(3명)의 추천을 받은 위원 17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위원장과 부위원장(사무처장), 각 소위원장(3명) 등은 상근자다. 이 상임위원들이 특조위 업무를 분담해 이끌도록 특별법은 규정하고 있다. 활동 기간이 최장 1년6개월에 불과한 한시 조직인데다 독립성과 중립성을 확보해야 하는 특조위의 특성을 고려한 조치다.

그러나 정부 시행령안은 상임위원 대신 국무조정실이나 행정자치부, 기획재정부에서 파견한 행정지원실장이 실무 최고책임자로서 특조위 업무를 협의·조정하도록 했다. 애초 입법예고안에 들어 있던 ‘기획조정실장’을 ‘행정지원실장’으로 정부가 이름을 살짝 바꾸었지만 그 역할은 ‘종합·기획·조정’에서 ‘협의·조정’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김영석 해양수산부 차관은 4월29일 정부 시행령안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업무, 역할은 큰 차이가 없다”며 “용어를 순화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권영빈 상임위원(진상규명 소위원장)은 “위원회 업무 종합조정은 위원장과 부위원장, 각 소위원장이 매일 참여하는 상임위원 회의에서 처리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실효성도 있다”며 “기획조정실장이든 행정지원실장이든 그런 직책 자체가 필요 없다”고 설명했다. 선례를 봐도 그렇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등 과거 그 어떤 위원회도 행정지원실 같은 행정부서를 따로 두지 않았다.

둘째, 정부 시행령안은 사고 원인의 조사, 특검 요청, 청문회 등을 이끌고 종합보고서까지 작성하는 진상규명국 조사1과장을 공무원(법무부 4급)이 맡도록 했다. 특조위의 조사 범위는 세월호 참사의 원인 규명만이 아니다. 세월호 특별법(제5조 1항·3항)은 진상 규명 업무를 ‘원인 규명’과 ‘구조·구난 작업과 정부 대응의 적정성에 대한 조사’로 규정했다. 사고 원인뿐 아니라 그 토대를 이루는 정부 관료 조직의 문제점을 드러내라는 취지다. 이를 위해서는 세월호 참사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공무원들을 집중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또 관료 조직을 새로운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파헤쳐야 한다. 그런데 정부 시행령안은 그 칼잡이 역할을 또 다른 공무원에게 맡겨버렸다. 그 이유를 김영석 차관은 “균형된 시각에서 조사를 수행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조사1과장을 지휘·감독하는 진상규명국장을 민간이 맡으니까 조사1과장은 수사 분야의 전문성이 있는 공무원이 맡아야 한다. 국장과 과장이 모두 민간이면 오히려 조사의 객관성을 저해할 수 있다.”

칼 댈 곳 정해놓고 모든 것 조사하라?

그러나 속내는 조사 범위를 어떻게든 축소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애초 입법예고안을 보면, 특조위 진상 규명 활동을 ‘정부 조사 결과의 분석 및 조사’로 제한했었다. 특조위의 자체 조사를 원칙적으로 제한하고 정부 조사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임무를 맡기려 했던 셈이다. 비판 여론이 거세자 정부는 ‘정부 조사 결과의 분석 및 조사’를 ‘정부 조사 결과의 분석’이라는 항목과 ‘조사’라는 항목으로 나눴다. 그러면서 해수부는 “특조위는 정부 조사 결과와 상관없이 특별법에서 규정하는 범위 내에서 진상 규명과 관련한 모든 사항을 조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현실은 사뭇 다르다. 특조위는 지난 3월부터 해수부, 검찰, 법원, 감사원에 진상조사를 위한 공식 자료를 요청했지만 대부분 외면받고 있다. 검찰은 한 달 넘게 답변이 없고 감사원은 홈페이지에 공개한 자료를 출력해 보내왔다. 세월호 참사 관련 재판을 맡고 있는 광주고법은 처음에 긍정적 답변을 보내왔지만, 나중에는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의 지침이라며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특조위가 정부 조사 결과를 분석하는 것마저 정부가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안전 대책이 크게 줄어들 상황이다. 세월호 특별법(제5조 6항)은 안전사회소위의 업무를 ‘재해·재난의 예방과 대응 방안 마련 등 안전한 사회 건설을 위한 종합대책 수립에 관한 사항’이라고 규정했다. 한국 사회가 직면한 재해·재난에 대해 포괄적 안전 대책을 마련하라는 취지다. 하지만 정부는 시행령 각 항목에 ‘4·16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이라는 문구를 집어넣었다. 김영석 차관은 “재해·재난의 예방 사항을 특조위가 다루면 국민안전처, 국토해양부 등 다른 부처의 고유 업무와 정책 혼선이 초래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해수부가 관할하는 해난사고 예방·대응책만 손보라는 사실상의 지침이다. 박종운 상임위원(안전사회 소위원장)은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며 600만 명이 서명해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됐다. 그때 우리가 해난 안전만 이뤄지면 된다는 의미로 서명했나. 그렇지 않다. 정부 시행령이 특별법의 입법 취지에 명백히 반한다.”

눈가림에도 분수가 있다

특조위 활동을 축소하고 그마저도 공무원이 장악하도록 했다는 본질은 살려둔 채 정부는 한발 물러서는 척, 몇 가지 숫자를 고쳤다. 입법예고안에는 특조위가 90명 정원으로 일단 출범하고 나중에 이를 120명으로 확대하려면 시행령을 개정하도록 했지만, 수정안은 6개월 뒤 자동으로 120명으로 확대되도록 바꿨다. ‘셀프 조사’라는 비판을 의식한 듯 해수부와 국민안전처 파견 공무원 수를 8~9명에서 4명으로 줄였다. 그 결과 파견 공무원 수가 42명에서 36명이 됐다. 그러나 본질을 뜯어고치지 않아 특조위가 반발할 것을 정부도 예측했다.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 해수부 역할이 상당히 떨어진다. 만일 상당한 수준의 합리적인 특수성을 갖고 (특조위가) 개정안을 제출하면 차관회의, 장관회의에 다시 올려서 개정할 수 있는 여건이 될 것이다.” 김영석 차관의 말이다. ‘물론 특조위 개정안이 상당한 수준의 합리적인 특수성을 갖췄는지는 우리가 또 결정할 테지만’이라는 속말은 내뱉지 않았다. 정부의 ‘말장난’ 퍼레이드가 끝날 줄 모른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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