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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가족대책위, 팽목항에 분향소 설치…

실종자 찾는 정부 지원은 끊기고 인양 관련 논의에는 실종자 가족 배제해
등록 2015-01-20 17:01 수정 2020-05-03 04:27

별이 된 세월호 희생자 288명이 전남 진도 팽목항으로 돌아갔다. 단원고 학생 조은화·허다윤·남현철·박영인, 단원고 교사 고창석·양승진, 권재근씨와 아들 혁규, 이영숙씨. 실종자 9명을 하루라도 빨리 맞이하고 싶어서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이하 가족대책위)는 실종자들과 가장 가까운 육지 팽목항에 분향소를 설치했다. 가로 6m 컨테이너 두 개를 이어 만든 건물이다. 참사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단원고 전 교감까지 모두 298명이 모였다. 희생자 명패와 손바닥만 한 영정 사진이 한쪽 벽을 빼곡히 채웠다. 실종자들 이름 옆엔 얼굴 사진 대신 그리움에 사무친 글귀가 쓰여 있다. “엄마는 너를 끝까지 기다릴게.” 실종자들이 뭍으로 돌아오면, 서러운 글귀는 얼굴 모습이 될 것이다.

그날처럼 비 흩뿌리던 날 연 분향소

팽목항 분향소는 참사 274일째인 1월14일 오후 4시16분에 문을 열었다. 4월16일을 잊지 말자는 의미다. 희생자·실종자 모두 배를 빠져나올 수 없었던 그날처럼,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2015년 1월 팽목항은 외롭고도 적막한 기다림의 장소다. 실종자 가족 숙소인 18m²(약 5.5평) 조립식 주택 여덟 채와 식당·화장실용 컨테이너 건물 두 채가 매서운 바닷바람에 맞서고 있다. 난방조차 되지 않는 숙소 옆으로 분향소가 들어섰다. 지난해 11월 실종자 수색 작업이 중단되고, 세월호 범정부사고대책본부도 해체됐다. ‘마지막 한 명까지 찾겠다’던 정부는 지원을 거의 끊었다.

그 빈자리를 메운 건, 진도를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유가족들과 시민들이다. 분향소 개소식엔 실종자 가족뿐 아니라 단원고 학생 유가족, 일반인 유가족, 시민 등 약 60명이 참여했다. 참사 열흘째 되던 날 숨진 딸을 찾은 아버지 임종호씨는 아이의 장례를 치른 뒤 다시 진도로 돌아갔다.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이 희생된 단원고 학생 부모 13명을 인터뷰해 최근 펴낸 책 에선 아픈 속내를 읽을 수 있다. “옆에 있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어요. 처음에는 진도에 며칠 있다가 하루이틀 볼일 보러 올라오고는 했는데 시간이 점점 흐를수록 빈자리가 많아져서 쉽게 못 오겠더라고요.” 범대본 해체 이후, 유가족 10명 정도가 번갈아가며 실종자 가족들과 팽목항을 지킨다.

실종된 조은화 학생 어머니 이금희씨는 분향소 설치를 고마워했다. “합동분향소, 철수해야 할 시기입니다. 유가족이 힘든 결정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볼 때마다 가슴 아플 텐데 손 내밀어주신 점 정말 감사합니다. 이 자리에 차마 오지 못하는 다른 실종자 가족 (마음도) 헤아려주세요.” 고 오영석 학생 어머니 권미화씨는 “이러한 고통을 외 면하지 말아달라”고 정부에 호소했다. “우리는 다시 고통의 시작점인 팽목항에 모였습니다. 잊으려고 해도 떠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을 우리는 차라리 직면할 것입니다. 가족과 국민들 앞에 세월호를 인양하겠다고 분명히 약속하세요.” 정부는 세월호 선체 인양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사고 해역 조사를 진행 중이다. 앞서, 가족대책위는 조속한 인양 계획 수립과 인양태스크포스(TF)에 유가족들의 참여를 요구했으나,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유가족들, 1월26일부터 도보행진

2시간가량 이어진 개소식이 마무리될 무렵, 비도 잦아들었다. 어둑어둑해진 팽목항 너머로 ‘기다림의 등대’가 불을 밝혔다. 유가족들은 1월26일부터 2월14일까지 “실종자의 온전한 수습을 위한 세월호 인양 및 진상 규명”을 촉구하며 안산에서 팽목항까지 도보행진을 할 예정이다.

진도=강예슬 인턴기자 milklef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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