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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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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어누르는 힘, 얼마 못 가 임계점 도달할 것”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인터뷰… 집권 2년간 전혀 성과가 없으니

‘극우편향주의’로 난국을 모면하려 “우리 국민이 보통 국민이냐, 깔보면 안 돼”
등록 2015-01-09 17:12 수정 2020-05-03 04:27

<font color="#006699">갈등과 통한의 갑오년을 뚫고 을미년이 열렸다. 헌 해가 지고 새 해가 떠도 우리 사회를 휘감은 극단적인 소요는 요지부동이다. 길은 없는가. 2015년을 열며 은 한국의 지식인에게 차례로 새날 새길을 묻는다. 신년호에 실린 역사학자 김기협 전 계명대 교수의 기고에 이어, 2014년 12월29일 서울 중구 태평로의 관훈클럽 사무실에서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을 만났다. _편집자</font>


류우종 기자

류우종 기자

세월호 참사와 통합진보당 해산. 와 , 을 두루 거친 언론인이기도 한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이 2014년 한국 사회의 최대 뉴스로 꼽은 두 개의 사건이다. 두 사건의 경중을 다시 묻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테다. 대신 그 결이 다르게 다가온다. “세월호는 정부, 선박회사, 선원, 그야말로 여러 잘못된 관행이 집약돼 일어난 사건이에요. 그러니 분노는 하되, 사람들의 잘못이 축적된 결론인 거지 의도적으로 침몰시킨 건 아니란 말이죠. 진보당을 해산하고 국회의원 5명의 자격을 박탈한 건 전혀 달라요. 하나는 사람들이 잘못한 거지만 의도하진 않았고, 하나는 아주 의도해서 한 거지.” 책임의 방기에 따른 결과이든, 적극적으로 의도한 결과이든, 시민의 상식으로 상상할 수 있는 범주 바깥의 일이 발생한 한 해였음은 분명하다. 세월호 참사의 그 혹독한 절망 속에서도 배려와 위로보다 권위주의로 치달을 수 있는 사회라면, 더는 희망을 논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정치인으로, 언론인으로 현대사를 관통한 남 전 장관의 전망은 다르다. 그는 “(정권의) 찍어누르는 힘이 얼마 못 가 임계점에 도달할 것”이라고 풀이했다. “우리 국민이 보통 국민이 아니잖나. 우리 국민을 깔보면 안 돼.” 입가에 옅은 웃음을 띤 채, 눈을 반짝이며 팔순의 정객이 거듭 말했다.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어떻게 보았나.

=박근혜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작용해서 정부가 정당해산 심판을 청구한 건 맞다. 그런데 내 보기엔 법원과 헌재가 라이벌 관계인 것도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법원과 헌재는 밤낮 토닥토닥 권력다툼을 해왔다. 이건 내 주장이 아니라, 대법원보다 헌재가 서열이 좀 처진다는 게 언론에도 보도되잖나.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에 대해서 1심 법원과 2심 법원이 RO(혁명조직)의 실체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내란음모도 인정하지 않았다. 3심이 남았는데도 헌재가 해산 결정을 해버리고, 지역구건 전국구건 막론하고 전부 의원직을 박탈하고, 어마어마한 조처를 취한다는 게 이상하잖나. 권력의 의지에 충실하게 복종한 것도 있지만, 대법원과 헌재의 라이벌 의식에서 강행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우리도 ‘기요틴’ 한번 해보자고 한 것 아니겠나.

<font color="#006699"><font size="3">헌재의 라이벌 의식 ‘우리도 기요틴 한번’</font></font>

-헌재 김이수 재판관이 작성한 180여 쪽 분량의 소수의견 전문을 다 읽었다고 했다.

=아주 방대하게 진보당의 역사까지 줄줄이 풀이했다. 재판관도 아마 자기 일생일대의 사명감을 갖고 쓴 것 같다. 혼자 반대의견을 내니까 ‘이것이 내 일생의 가장 중요한 문서다’라는 의식을 갖고 쓴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방대하고 충실하게, 정책 해설이니 국제 문제, 핵 문제 이런 부분까지 다 해설을 했더라. 대단한 소신가다. 에서 전문을 게재해준다면 자료로서 소장 가치가 있겠다.

-해산 결정이 나온 뒤, 보수단체는 당원들 10만 명을 고발하고 서울지방경찰청은 전담 수사팀까지 꾸렸다. 김 재판관이 결정문에서 우려한 대로, 헌재 결정의 부작용이 곧바로 나타나고 있는데.

=그게 문제다. 오늘치(2014년 12월29일) 신문을 보니, 극우단체가 박원순 서울시장을 작살내는 광고가 실렸다. 진보당 해산 결정문에 여러 번 등장하는 최규엽씨가 진보적 민주주의를 강령에 집어넣은 사람인데 서울시에서 왜 서울시립대 교수로 월급을 주냐고 지적하는 내용이다. 나는 그게 이해가 안 된다. 진보적 민주주의를 김일성과 연결하는 게 말이 안 되지. 결정문 결론 부분에도 이번 결정이 달리 파급돼선 안 된다고 나온다. (“우리는 피청구인의 해산이 또 다른 소모적인 이념 논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을 경계한다.” 헌재 결정문 146쪽) 종북몰이니 이런 식으로 부작용이 있어선 안 되겠다는 의미로. 이건 때리고 어르고 하는 거나 다름없지.

<font size="3"><font color="#006699">반공교육 해독하는 교육 없어 </font></font> -우리 사회의 종북몰이가 날로 심각해지는 것 같다. 얼마 전 황선·신은미씨에 대한 테러도 그렇고.

=극우세력의 활동이 상당히 활발한데 그게 왜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의 지성적 전통이 약한 것도 있고, 성리학적 전통에서 관용이 원래 모자라다. 일본 식민지배 때 관변통치를 받은 영향도 있다. 거기에 학교 교육과 군 교육이 더해진다. 2014년 12월8일치 에 김진호 전 합참의장의 기사가 났는데 보니까 1997년 대선 때도 군에서는 ‘김대중은 빨갱이’ 하는 분위기였다는 거야. 학교 교육뿐 아니라 군 교육에서 철저히 반공교육을 해왔기 때문에 의식화가 됐다. 독일은 나치 이후 국가 예산으로 민주화 교육을 철저히 한다. 그런데 우리는 반공교육을 해독하는 교육이 없었다. 그게 극우의 토양이 됐다.

권력이 이용하는 면도 있지. 박근혜 정부 들어서고 김기춘 비서실장과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극우 인사를 만났다는 것이 신문에 보도된 적이 있다. 서정갑(국민행동본부 본부장)이니 이동복(북한민주화포럼 대표) 등등인데, 그런 보도는 역사상 전례가 없다. 극우 인사를 만나 인사를 나눈 게 당당히 보도가 됐다고. 청와대 비서실장과 국정원장이 극우세력을 고무·찬양·격려했다는 물적 증거로 볼 수 있지. 거기에 주류 언론이나 인터넷 매체의 극우 상업주의 영향이 있고.

세월호가 침몰한 2014년 4월16일 해경 등이 조명탄을 쏘며 실종자를 수색하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세월호가 침몰한 2014년 4월16일 해경 등이 조명탄을 쏘며 실종자를 수색하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일종의 파시즘으로 볼 수 있을까.

=파시즘이란 건 전 사회적인 침투가 있어야 하고 체계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지금을 파시즘이라고 할 수는 없다. 독재도 아니고 전제도 아니고, 교조주의인데 극우 편향 정도라는 거지. 극우 편향으로 나타난 대표적인 사례는 2013년 12월에 철도노조를 억누르려고 경찰 5천 명을 동원해 경향신문사 건물에 있는 민주노총을 강제 진압한 사건이다. 무슨 계엄령을 내린 것처럼 작살을 냈잖아. 흉악범을 잡는 것도 아니고 노동운동을 그렇게 탄압할 수 있나. 박근혜 대통령이 (비판세력을) 완전히 작살내는 철권통치를 보여준다는 거지. 그런데 며칠 전에 철진보당 해산도 그 한 유형이다. 작살을 내는 거야. 나는 극우편향주의라고 명명하는데 (대통령이) 정치적 실책을 호도하기 위해 그렇게 나가는 거다. 정부가 집권 2년 동안 전혀 성과가 없으니까 야단이 났단 말이야. 그러니 극우편향주의로 이 난국을 모면하려는 거지.

-지금 그런 종북몰이가 국민에게 효과가 있다고 보나.

=일시적으로 먹히는 거겠지. 장기적으로는 약효가 없다고 보는데 일시적으로는 먹히지. 그렇게 약효가 오래가지는 못한다.

-결국엔 역풍이 불 수도 있다는 뜻인가.

=역풍까진 몰라도 약발이 끊어지는 거지. 박근혜 정부 2년 동안 허송세월했다. 통치의 도덕적 기반이 없는데다 한 것도 없으니까. 내가 보기엔 철도노조나 민주노총을 혼내주는 것, 진보당에 기합 주는 걸로 시국을 모면하려고 하는 거란 말이지.

<font size="3"><font color="#006699">‘중산층’에 관한 상식, 그걸 막으니까 악화 </font></font>-박근혜 정부 출범 뒤 경제민주화 공약에 대해선 긍정적 기대를 했던 걸로 안다.

=며칠 전 박 대통령의 경제 참모 김광두(국가미래연구원장)씨 인터뷰(2014년 12월27일치 ‘경제위기 극복 리더십 필요한데… 박 대통령 2년간 보여준 게 없어’)가 아주 크게 났어. 김종인(전 국민행복추진위원장), 이상돈(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등도…. 셋이 말하자면 주요 참모들인데 선거 때 미화하고 그럴듯한 동향을 내세우고 거짓말을 한 거지. 전부 거짓말이 돼버렸지.

기본적으로 우리 경제를 대기업 위주에서 중산층 아니면 서민층 위주로 전환해야 한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규제 철폐만 자꾸 하고, 재벌 봐주는 얘기만 하고, 요새는 또 징역 사는 재벌들의 가석방 얘기가 나온다. 정책에 뚜렷한 일관성을 세워야 할 것 아닌가. 가령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항상 주창하는 게 뭐냐면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는 거다. 미국 경기가 잘되려면 노임을 올려야 한다는 거야. 한 걸음 나가서 힐러리 클린턴은 대선 출마를 하면서 중산층의 지위를 향상시켜야 한다고 얘기했다. 우리나라도 노동자, 서민, 이 사람들에게로 돈이 흘러가야 한다고. 그건 지금 상식 아닌가. 그런데 그걸 싹 막으니까 악화되잖나. 경제지수 가운데서 양극화 관련 지수가 악화된 게 신문에 난 것만 10개가 넘는다. 전부 악화일로다. 그러니까 분통이 터지는 거다. 그런데 지금 경제정책은 대기업 위주로 규제 철폐니 이런 내용들만 쭉 나온다. 그렇게 해선 절대로 노동자의 처우 개선이나 임금 향상은 안 된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내놓은 화두도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이 아니고 노동시장 유연화다. 유연화란, 곧 정규직에서도 하향평준화를 한다는 건데 말이 안 되는 거야.

<font size="3"><font color="#006699">야당 죽 쑤는 건 주인이 없어서</font></font>-‘규제 기요틴’이니 하는 규제 철폐와 관련한 수사도 여럿 만들어냈는데.

=처음에 ‘암적 존재’라든가, ‘진돗개는 살점이 떨어지도록 문다’든지 말이 점점 심해지더니 마지막에는 로베스피에르, 프랑스혁명의 기요틴까지 나오니 말이 어디까지 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말이 험해지는 것에도 배경이 있을 것 같다.

=그건 심리학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부모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고 있고, 남매간에도 정답지 않다. 그러니까 심리학, 정신분석학으로 분석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왜 프로이트적인 분석을 안 하나. 동양적 예의인지 몰라도 외국에선 정치인에 대해서도 프로이트적 분석을 적용한다.

-이런 상황인데도 야당은 맥을 못 추고 있다.

=흔히 주류 언론에서 야당이 죽 쑤고 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주인이 없으니까 그렇다. 이제까지 당권이 없는 상태다. 이게 주인 없는 땅, 주체가 없는 단위였다는 얘기다. 중구난방 엉망인데 당수가 2015년 2월에 결정이 나면 중심이 잡힌다. 그러면 당에 구심력과 결속력이 생기고 노선도 분명히 생긴다. 누가 됐든 당에 주인이 생기면 허튼소리가 줄고 그럼 노선 설정도 쉬워진다. 게다가 2년 뒤면 대선을 앞두고 총력전 양상이 된다. 대통령감은 야당에 더 있다. 문재인과 박원순을 꺾을 여당 후보가 현재로서는 보이지 않는다. 김무성·김문수가 되겠나, 원희룡이 되겠나? 현재로선 대선에서는 야당이 이긴다.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엔 중도 성향의 외연 확대가 필요한가, 진보 노선 강화가 필요한가.

=박 대통령과 선을 그으려면 서민층을 위한 정치를 펼쳐야 한다. 대기업이 아니라 노동자 월급쟁이들의 비애를 다뤄야 한다.

-시민사회 역시 몇 년 새 동력이 약화됐다는 평가가 많은데.

=누르는 힘이 있으면 튀는 힘이 있는 건 상대적인 것이다. 옛날에 독재시대 같은 저항을 우리가 생각하면 ‘국민이 너무 맥 빠졌다, 시민단체는 뭐하냐’ 하게 되지. 이런 건 지난날 독재시대의 시민운동을 머릿속에 두니까 그래. 그땐 집권층의 통치 자세가 달랐잖아. 통치하는 쪽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서 민중의 저항이 상대적인데, 우리 민중이 탄력성은 있다. 말한 대로 독재냐, 전제냐, 파시즘이냐 이렇게 볼 때 아직은 그렇게 흉악한 단계는 아니다. 교조주의적인 극우편향주의, 매카시즘까진 갔어도 파시즘까진 안 갔다고. 그러니 그 얘기는 저항이 그렇게 세게 나올 단계가 아직 아니란 거지.

<font color="#006699"><font size="3">저항은 빨라지고 탄압의 약효는 짧아지고 </font></font>-그 경계선에, 분기점을 넘을 만한 어떤 사건같은 게 있을까.

=그런 돌발사건을 촉매라고 할 수 있다. 어마어마한 스캔들이 하나 터진다든가 하면 저항의 촉매작용을 해서 저항이 빨라지는 거지. 그리고 탄압의 약효가 짧아져간다. 예전 박정희 정권 때는 콱 찍어누르면 그게 한 5년은 갔는데 지금은 1~2년 뒤면 약효가 없어진다. 국민을 깔보면 안 된다.

그리고 지엽적일 수 있는데 천주교의 세가 올라오는 중이다. 신자 수도 늘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왔을 때 국민에게 엄청난 감동을 줬다. 나는 천주교인도 아니지만 큰 감동을 받았다. 요새도 천주교 대주교들이 많은 발언을 하고 있다. 이번에도 광주대교구장인 김희중 대주교가 (진보당 해산 결정을) 세게 비판했다. 평소 강우일 주교도 발언을 많이 하고. 천주교가 이전부터 그런 면이 있었지만 거기(교황의 사회참여 발언)에 아주 자극을 받았어. 시민단체들은 힘을 모으려면 한참 걸릴 텐데 가톨릭이 선봉에 설 듯한 느낌이다. 무엇보다 감동을 주는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 말로 하는 게 아니라, 국민과 감정의 일치를 통해 감동을 주는, 그런 정치지도자 또는 시민지도자, 민간지도자가 나타나야 한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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