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30일, 경기도 용인 육군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재판장 문성철 준장). 군판사가 가해자들의 양형 이유를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구타’ ‘가혹행위’라는 말이 여러 차례 등장하고 ‘폭행’ ‘사망’이라는 단어가 뒤를 잇는다. 고 윤아무개 일병 유가족은 그동안 애써 참아왔던 울분을 터뜨린다. 나이 마흔에 얻은 귀한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흐느낌이 법정을 메웠다.
“휴가 중인 병사가 폭행을 했다는 건가요?”
이날 군사법원은 고 윤아무개 일병 폭행 사망사건 가해자들에 대해 ‘살인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기에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피고인들의 ‘성추행’ 혐의도, 사건을 은폐·축소하려던 정황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다. 재판부는 폭행과 가혹행위를 주도해 윤 일병을 숨지게 한 혐의(살인 등)로 구속 기소된 이아무개(26) 병장에게 상해치사죄 등을 적용해 징역 45년을 선고했다. 그동안 법원이 상해치사죄에 내려온 형량 가운데 가장 높은 것이다. 이 병장과 함께 살인죄로 기소된 나머지 3명에 대해서도 상해치사죄 등을 적용해 하아무개(23) 병장에게 징역 30년, 이아무개(21)·지아무개(21) 상병에게 징역 25년을 각각 선고했다. 폭행을 방조한 의무반 의무지원관 유아무개(23) 하사에게는 징역 15년을, 선임병의 지시에 따라 폭행에 가담한 이아무개(21) 일병에게는 징역 3개월에 집행유예 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살인죄’ 대신 ‘살인죄에 버금’가는 중형이라는 말로 대신했다.
판결 직후 군검찰은 “재판부가 사실을 오인해 양형을 부당하게 했다”며 “항소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해치사죄로 징역 45년을 선고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현행법을 보면 징역형의 상한선은 30년이다. 여러 범죄를 저질러 형을 가중할 경우 50년까지 가능하지만 대법원 판례를 보면 상해치사죄의 최고 형량은 징역 15년이다. 살인죄가 적용되지 않는 한 2심, 3심에서 가해자들 형량이 낮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피고인 쪽 변호인은 이날 법정을 나서면서 “이번 재판은 왜 군사법 제도를 개혁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또 “군판사의 양형 이유도 납득할 수 없지만, 진짜 문제는 ‘군검찰’의 아마추어적인 구형에 있다”고 비판했다. 피해자 변호인도 아닌, 가해자 변호인의 한탄이었다. 윤 일병 사건을 통해 본 군사법 체계의 현재 모습은 어떨까.
“휴가 중인 병사가 폭행을 했다는 건가요?” “….”
10월24일 공판에서 군판사가 군검찰에게 물었다. 어떻게 휴가 중인 병사가 윤 일병을 때릴 수 있었느냐며 공소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이러한 지적에 군검찰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산더미처럼 쌓인 진술서를 몇 분간 뒤척이더니 “수정하겠다”고만 답했다. 이러한 군검찰의 태도에 방청석에서 야유가 쏟아졌다. 1심 선고를 앞두고 피고인들의 죄목을 심리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검찰은 범죄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윤 일병이 사망했는지를 정확히 명시해야 한다. 하지만 군검찰은 사망 시각, 사망 원인에 대해 말하지 못했다. 한 달하고도 5일 이상 지속된 가혹행위가 있었음에도, 성추행이 있었다는 목격자의 증언이 있었음에도, 어느 것 하나 명료하게 입증해내지 못했다. 군검찰의 허술함은 재판 과정 곳곳에서 드러났다.
머리에 방탄헬멧 씌우고 폭행?10월24일 유 하사가 증인석에 앉았다. 유 하사는 폭행사건의 주동자인 이 병장을 ‘형’이라고 불렀던 간부다. 군판사는 유 하사의 진술 내용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특히 “확성기를 든 손으로 윤 일병의 머리를 쳤다”는 부분에 대해 거듭 확인했다. 이에 유 하사는 “손에 확성기는 쥐고 있었으나 확성기가 아닌 손으로 윤 일병 머리를 내리쳤다”고 진술했다. 육군 28사단 헌병대 조사에서 밝힌 내용을 그대로 반복하기만 했다.
애초 윤 일병 폭행 사망사건은 ‘질식사’로 결론지어져 묻힐 뻔하다 군인권센터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졌다. 결심공판을 앞두고 공정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사건 발생 부대인 육군 28사단에서 3군사령부로 이관됐다. 군검찰은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유 하사의 진술을 반박하지 않았다. 사건 발생 몇 달이 지난 시점에서도 육군 28사단 헌병대 기록을 중심으로 공소사실을 유지하기만 했다. 추가 검증도, 그 어떠한 조치도 없었다. 유 하사는 군 생활의 교훈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윤 일병의 머리를 쳤다고 진술했다. 그냥 때리면 많이 다칠까봐 윤 일병의 머리에 방탄헬멧을 씌우고 책상 스탠드로 때렸다고 했다. 이러한 진술은 기존 진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가해자이자 목격자인 다른 피고인들의 진술 내용과도 어긋난다. 그런데 진술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군검찰은 유 하사에게 이러한 내용을 추궁하지 않았다. 공소사실만을 확인했을 뿐이다.
피고인들의 진술을 종합해보면, 자대 배치를 받은 뒤 35일 동안 윤 일병은 지속적으로 폭력에 노출돼 있었다. 신병 배치를 받고, 보직이 없는 2주 동안 눈앞에서 이 병장의 주도하에 맞선임 이 일병이 폭행당하는 상황을 목격해야만 했다. 이 병장은 윤 일병이 보는 앞에서 이 일병의 입에 치약 한 통을 부었다. 물고문도 이어졌다. 윤 일병에게도 비슷한 폭력이 가해졌다. 이 병장의 폭력은 주도면밀하게 이루어졌다. 한 명이 때리면 다른 한 명이 망을 보며, 돌아가면서 윤 일병을 때렸다. 선임병들은 윤 일병이 맞다가 쓰러지자 ‘수액’을 주입해 정신을 차리게 했다. 윤 일병이 정신을 차리면 또다시 때렸다. 윤 일병이 숨지기 5일 전인 지난 4월1일엔 잠을 재우지 않고 기마 자세를 시켰다. 피고인들은 윤 일병에게 끊임없이 기마자세를 시켰다. 숨지기 5일 전인 지난 4월1일엔 잠을 재우지 않고 기마 자세를 시켰다. 사망하기 이틀 전에도 밥을 먹이지 않고 기마 자세를 시켰다. 지속적인 가혹행위에 이은 폭행. 윤 일병은 사망 직전 오줌을 쌌다. 숨을 헐떡이기도 했다. 가해자 중 한 사람인 이 상병이 입에 물을 넣었지만 윤 일병은 받아 넘기지 못했다. 쓰러진 윤 일병에게 이 병장은 “꾀병 부리지 말라”며 가슴을 쳤다. 두 차례의 발길질. 그것이 결정타였다. 이 병장은 법정에서 사건 당일 “왜 발길질을 했느냐”는 군판사의 질문에 “윤 일병이 단순히 맞기 싫어 ‘꾀병’을 부리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사건 발생 하루 뒤인 4월7일, 피고인들은 윤 일병의 관물대를 뒤져 개인 물품을 소각하고 처분했다. 사건 은폐와 증거 조작 시도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정황이다.
사건 발생 뒤 윤 일병 개인 물품 소각 처분10월30일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뒤늦게나마 반성하는 기미를 보여 양형에 참조하겠다고 말했다. 주범인 이 병장은 윤 일병이 군 생활을 똑바로 하지 않고 행동과 답변이 느렸다며 책임을 전가했었다. 윤 일병의 맞선임 이 일병을 제외한 5명의 피고인들은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 내용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여기에 우리 군 사법 당국은 성의 없는 기소와 형식적인 처벌을 내렸다. 200여 일 전 숨진 윤 일병은, 아직도 편히 잠들지 못하고 있다.
정현환 기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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