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00847C">지난 2월7일 서울고등법원이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에 대해 ‘무효’ 판결을 내렸으나, 회사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이에 쌍용차 해고자들은 회사가 해고자 복직 및 후속 조치를 즉각 취하게끔 강제하기 위해 5월 평택법원에 근로자 지위보전 가처분 소송을 냈다. 최근 해고자들은 가처분 소송의 조속하고 공정한 판결을 위해 매일 아침 쌍용차 정문에서 평택법원까지 3보1배를 하고 있다. 쌍용차 해고자의 아내인 권지영 와락센터 대표가 에 글을 보내왔다. _편집자</font>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설탕공장 바로 옆에 있었다. 이따금씩 바람에서 단내가 났다. 선생님들은 입버릇처럼 ‘그따위로 공부하면 저 옆 공장 간다’고 야단쳤다. 그래서였는지 어쨌는지 정말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엘 갔다. 결혼도 공장 다니는 사람과 했다. 남편의 공장은 쌍용자동차였다. 아이 둘을 낳았고 사는 것도 평범했다. 아침에 눈뜨면 아이들 씻기고 유치원에 보내기 바빴고 돌아서면 저녁 식단을 챙겨야 하는 단조로운 생활의 연속이었다. 남편은 주야간 맞교대로 근무했다. 야간근무를 마치고 낮에 잠을 자야 하는 남편을 위해 집 안을 어둡게 한 뒤 작은애를 업고 공원에 나가 앉아 있거나 주간근무 중인 옆집에 놀러가곤 했다. 부지런히 주야간 근무를 한 남편 덕에 오래되고 작은 평수였지만 대출금을 조금 끼고 아파트도 샀다. 남들 사는 것처럼 넘치지도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게 살았다. 그러다 첫애가 열 살이 되던 해 남편은 해고됐다.
<font size="3">열 살이던 아이가 이제 중학교 2학년</font>파업 뉴스는 날마다 속보로 집 안 깊숙이 배달됐고 나는 졸지에 해고자 아내가 되었다. 6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남편은 여전히 해고자며 나는 해고자의 아내다. 요즘 해고자들과 해고자 아내들은 매일 아침 쌍용차 정문에서 평택법원 앞까지 3보1배를 하고 있다. 해고자들의 근로자 지위보전 가처분 소송의 조속하고 공정한 판결을 요구하고 있다. 두부 넣어 된장찌개 끓이고 콩나물 무쳐 저녁상 차릴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해고 이전엔 단 하나도 내 삶이 아니었던 일들이 파도처럼 덮쳐오는 날들의 연속이다. 낯설었던 집회와 지나는 이들의 시선이 따가운 1인시위도 이제 아무것도 아닌 일이 돼버렸다. 고공농성과 단식농성 그리고 천막농성. 이제는 3보1배까지 하고 있다. 3보1배 첫날. 100번쯤 절하고 일어서자 어지러웠다. 진심을 다한 절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만 있다면 더 깊숙이 고개를 숙일 수 있겠다 싶었다. 이 간절한 마음과 달리 입에선 엉뚱하게 ‘아이고 내 팔자야’라는 마른 소리가 튀어나왔다.
가스레인지 켜서 라면 끓이는 걸 가르쳐주고 직장을 나갈 때 아이는 열 살이었다. 그 아이는 이제 중학교 2학년이 됐다. 콩나물 자라듯 훌쩍 커버린 아이를 보며 아직도 공장 복직을 하지 못하고 아스팔트 위에서 절하고 있는 모습이라니. 가을 햇살 아래 긴 한숨만 까맣게 타들어가는 것 같다. 죽어도 잊을 수 없는 2014년 2월7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쌍용차 정리해고가 무효라는 판결이 났다. 많이 울었다. 쌍용차는 매년 회사 상황이 정상화되지 않았다고 했다. 몇 년째 정상화는 미뤄지고 있었다. 복직 또한 자연스럽게 밀려났다. 기대는 접고 살아야 하는 건가 낙담하던 중 받은 무효 판결이라 정말 좋았다. 우리가 잘못해서 이런 사달이 벌어진 게 아니란 사실이 무엇보다 좋았다. 명치 끝에 걸려 있던 억울함이 내려가는 것만 같았다. 이제 판결도 났으니 조만간 회사가 복직하라 할 줄 알았다. 차가 잘 팔린다는 뉴스는 더 크게 들렸다. 공장 안은 일감이 많아 연이은 잔업과 특근에 힘들어한다는 소리가 들렸다. 복직이 멀지 않았구나, 곧 복직이 되겠구나 싶었다. 새로 바뀐 작업복을 다림질할 생각에 마음이 바빴다.
그러나 회사가 대법원에 상고를 했을 뿐 바뀐 건 아무것도 없다. 자기 이름으로 된 아파트 한 채가 전 재산이지만 거기에 50억원 가까운 손해배상 소송이 걸려 있다. 날마다 절하고 걷기를 반복하며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해고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냥 쌍용차 해고자가 아닌 한명 한명 우주를 품고 있는 그들의 간절함과 절박함을 듣는다. 소리 지르고 화를 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해고자들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같이 미안하다고 한다. 하루살이 생계 때문에 더 열심히 복직 요구 투쟁에 참여하지 못해 늘 미안하고 능력 없고 부족한 가장이 되어 가족 보기가 또 미안하단다. 얼마나 더 엎드리고 얼마나 더 작아져야 하는가? 3보1배 할 만큼, 이제 딱 그만큼의 힘만 겨우 남아 있는 우리다. 제발 정리해고 백화점인 쌍용차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하찮게 보던 시절에서 몇십 년의 세월이 흐르지 않았는가? 이제는 정리해고 같은 거 없애고 노동과 노동자를 존중하고 귀히 여기는 세상이어도 되지 않을까? 공장 안으로 출근하는 동료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다 공장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려 바닥에 절을 하는 해고자들이 원하는 세상은 그런 세상이다. 더 이상 쌍용차 해고자들이 아스팔트 위에서 가을볕에 얼굴과 마음이 새까맣게 타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font size="3">넘기 힘든 마지막 고개, 그 위</font>마지막 고개를 넘기가 가장 힘들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지금 그 고개 위에 있는 것만 같다. 그 마지막 고개를 힘들게 넘고 나서 우리 앞에 놓인 길이 어떤 것일지 두렵고 걱정된다. 죽지 않고 살기 위해 날마다 쥐어짜던 희망을 완전히 놓아버려야 하는 어떤 깊은 절망이 있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랄 뿐이다. 쌍용차 가처분 판결이, 마지막 고개를 넘으니 나타나는 부드럽고 평평한 너른 땅 같은 판결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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