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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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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억울함, 형상화할 수 있을까요”

영화 <귀향>에 끌려가는 위안부 소녀 ‘정민’ 역을 맡은 재일동포 4세 강하나…
제작비 마련 위한 소셜 펀딩 계속되고 있어
등록 2014-10-09 15:49 수정 2020-05-03 04:27

조정래(41) 감독은 투자자를 구하러 다니며 그들의 ‘뒤틀린 역사 인식’과 마주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위안부는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거 아닌가? 돈 벌러 (스스로) 위안소에 간 사람도 있었던 게 아니었나?” 동료 영화인들은 걱정이란 마음의 형태로 그를 만류하기도 했다. “누가 이 영화를 극장에서 틀어주겠어. 감동스럽게 만들어도 누가 위안부의 고통을 영화로 보려 하겠니? 이 영화 만들고 (망한 뒤에) 감독을 끝내려 하는 거야?”

카메라 속에서 ‘정민’과 겹쳐 보이는 ‘하나’

재일동포 4세인 강하나는 영화 〈귀향〉에 나오는 주요 출연자 중 가장 어리다. 영화에서 맡은 ‘정민’ 역의 옷을 입은 이 사진(왼쪽)은 영화 예비 포스터에 실렸다. 오른쪽은 하나씨가 제주 외할머니 댁에서 〈귀향〉에 같이 출연하는 엄마 김민수씨와 함께 웃는 모습이다. 두 모녀는 11월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재일동포의 삶을 다룬 연극 무대에도 함께 오른다. 조정래 감독 제공, 송호진 기자

재일동포 4세인 강하나는 영화 〈귀향〉에 나오는 주요 출연자 중 가장 어리다. 영화에서 맡은 ‘정민’ 역의 옷을 입은 이 사진(왼쪽)은 영화 예비 포스터에 실렸다. 오른쪽은 하나씨가 제주 외할머니 댁에서 〈귀향〉에 같이 출연하는 엄마 김민수씨와 함께 웃는 모습이다. 두 모녀는 11월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재일동포의 삶을 다룬 연극 무대에도 함께 오른다. 조정래 감독 제공, 송호진 기자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며 이 작품에 매달린 지 11년째. 주변의 우려대로라면 진작 주저앉아야 했을 영화 이 10월6일 제작발표회를 열고 개봉을 향해 움직였다. 시민과 재일동포 등이 모아준 약 1억1천만원의 후원금을 용기 삼아 첫걸음을 뗐다. 영화는 1943년 15살 전후에 위안부로 끌려간 소녀들의 과거를 비추고, 현재를 사는 16살 무녀가 타지에서 숨진 어린 넋들을 불러내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굿판의 형식을 가미했다. 일본군이 위안부 소녀들을 산 채로 불구덩이에 밀어넣는 실제 경험을 그린 강일출 할머니의 ‘태워지는 처녀들’이란 제목의 끔찍한 그림, “내가 당한 거 해결되지 않으면 눈을 감고 못 간다”는 강 할머니의 한 맺힌 실화가 감독이 영화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였다.

“(강)하나를 일본에서 만난 순간, ‘내가 여기에서 정민(영화 주인공)을 만나게 되는구나’라고 생각했죠. 아무것도 모른 채 끌려갔던 (일제시대 당시) 천진한 소녀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어요. 재일동포 4세인데 우리말을 익히며 한국의 것을 이어가는 진정성이 느껴졌고요.”

영화 속 14살 ‘정민’은 주름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손가락 끝에 봉숭아 물을 들이던 시절의 과거다. ‘정민’은 영화에서 1943년 중국 목단강 위안소로 끌려가 ‘똑같은 지옥’에서 생활하던 비슷한 소녀들을 추스르며 고향, 엄마, 아빠를 불러보지만 산속 불구덩이에 처넣어지는 위기를 만난다. 쉽지 않은 이 주인공 역을 15살인 재일동포 4세 강하나(히가시오사카조선중급학교 2학년)가 맡았다. ‘정민’은 감독이 국내에서 오디션으로도 찾지 못했던 배역이다. 영화는 어린 관객도 볼 수 있게 제작될 계획이다.

“충격이었어요. 평범하게 생활하던 소녀들이 어느 날 갑자기 위안소로 끌려가 당했다는 일들. 가슴 아팠어요. (소녀들이) 불 속에 버려지기까지 했다는 것도 몰랐어요. 일본이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10월3일 제주에서 만난 (강)하나는 시나리오를 읽었던 감상을 천천히, 또박또박 한국말로 풀어갔다. 영화 촬영을 위해 한국에 들어온 하나는 3년 전 일본에서 제주로 이사온 외할머니·외할아버지 댁에 잠시 머물고 있었다. 하나는 예기치 않게 이 영화 속으로 들어왔다. 감독이 에 나오는 일본군으로 출연할 일본 배우들을 찾으려 재일동포들의 삶을 다루는 극단 ‘달오름’의 김민수(40) 대표를 오사카에서 만났고, ‘정민 역’을 고민하던 감독에게 김 대표가 “가끔 아역이 모자라면 우리 연극에 출연시켰다”던 자신의 딸을 보여준 게 인연이 됐다. 감독의 카메라 앵글 속에서 하나와 ‘정민’이 겹쳐 보인 것이다. 재일동포 3세인 엄마 김민수씨도 이 영화에서 위안부 소녀들을 관리하는 일본 여성 ‘노리코’로 출연한다. 엄마 민수씨의 말처럼 “재일동포들에게 멀게 느껴지기도 했던” 한국 사회의 영화에 주연이 된 것은 하나에게도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외면할 수 없는 문화적 증거가 될 영화

하나는 “학교에서 일제시대를 배웠지만 (중급학교) 2학년 교과서에 아직까지 위안부 문제는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해 위안부 할머니들이 우리 학교에 와서 3학년 언니·오빠들에게 (위안부 관련된) 얘기를 해주셨고, 우린(1·2학년) 선생님한테 (내용을 전해) 들었어요. 어린 나이에 끌려가셨다고 선생님들이 말해주셨지만 그게 몇 살인지는 몰랐어요.”

영화 속 ‘정민’이 14살에 위안소란 불구덩이로 끌려간 게 영화적 허구가 아님을 알고 놀랐다는 얘기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정민 역을 위해 사투리가 많이 나오는 드라마 를 보기도 하고, 조만간 엄마 극단과 교류해온 경상도의 한 극단에서 사투리도 배울 작정이지만, 하나의 고민은 다른 곳에 더 닿아 있다.

“할머니들이 느낀 억울함, 슬픔이랄까. 내가 거기까지 깊이 잘 형상화할 수 있을까 생각해요. 이 영화가 할머니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드리면 좋겠고, (위안소 현지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영혼을 (영화를 통해) 고향땅에 모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고향. 엄마의 젖처럼 포근하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본질을 어린 소녀가 이해할 수 있을까. 하나는 말을 이었다. “자기가 태어나 어린 시절에 살던 곳인데, 엄마·아빠가 보고 싶었을 텐데. 그곳(고향)으로 (넋이나마) 돌아갈 수 있게 해드려야죠.”

이 영화가 1회 상영될 때마다 타지에서 떠도는 위안부 소녀 한 명의 넋을 귀향시킨다는 바람으로 영화를 만들겠다는 게 감독의 마음이기도 하다. 시나리오에 공감한 배우 손숙씨는 ‘정민’의 도움으로 살아난 위안부 피해 할머니 역을 출연료 없이 맡기로 했다. 오디션에서 뽑힌 국내 배우와 일본인 배우들도 재정 여건이 좋지 않을 경우 일단 출연료 없이 출연(추후 수익이 생기면 배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감독은 “제작비 20억원을 목표로 하지만, 잘되지 않는다면 10억원으로 촬영을 마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10월20일 1차 촬영 뒤 내년 2월에 본격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 일단 5억원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홈페이지(http://guihyang.com)에 들어가면 ‘유캔펀딩’이란 온라인펀딩 홈페이지를 통해 제작비를 후원하는 등의 지원 방법을 알 수 있다. 조정래 감독은 “이 영화가 위안부라는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는 이들에게 문화적 증거가 될 수 있도록 영화를 빨리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 영화가 “세계 여러 곳에서 상영되고 역사에 두고두고 명작으로 남을 작품”이 되면 좋겠다는 엄마(김민수)의 얘기를 듣던 하나가 말했다.

“전쟁과 분쟁이 지금도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이 영화를 통해 그런 전쟁을 없애고 싶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역사에 무관심한 사람들, 나와 같은 나이의 친구들도 이 영화를 통해 할머니들에게 억울한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엄마 민수씨는 하나가 위안부 소재 한국 영화에 출연한 것을 일본의 강경 우익들이 나중에 알면 위협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일본 극우단체인 ‘재일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재특회)은 “조선인을 몽땅 죽이자”라는 등의 험악한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극우단체 위협? “끝까지 할 거예요”

하나는 두렵지 않을까? “두려움과 걱정이 있었지만 이제는 없습니다.” 오히려 궁금해진 엄마 민수씨가 “갑자기 왜?”라고 물었다. “영화에 출연하겠다고 결단을 내렸다면 끝까지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나는 10월20일 경남 거창에서 ‘70년 전 정민’이가 되어 아빠(배우 정인기)한테 업혀 황금 들녘을 걸어가는 모습을 첫 촬영한다. 정민이가 위안부로 끌려가기 직전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보여주는 이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서글픈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국내 영화 한 편이 관객 1700만 명()을 모았다는 시대에 위안부 할머니들의 과거인 ‘70년 전 정민’과 ‘재일동포 4세 하나’가 만난 이 영화 은 내년 여름 개봉에까지 이를 수 있을까?

제주=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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