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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위 ‘전기의 공포’

김제남 정의당 의원실 ‘일반용 전기설비 점검 현황’ 자료 분석… 가로등·신호등 분전함 등
전국 전기시설물 중 10만 개가 감전 위험 노출, 안전 부적합 판정에도 방치되고 시설관리 미흡
등록 2014-09-19 15:00 수정 2020-05-03 04:27
서울 종로구 주변 도로에 가로등과 신호등 등 각종 전기시설물이 늘어서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서울 종로구 주변 도로에 가로등과 신호등 등 각종 전기시설물이 늘어서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그것은 분명 ‘인재’(人災)였다.

2001년 7월15일 새벽, 서울·경기 지역에는 하늘이 뚫린 것처럼 비가 쏟아졌다. 서울에서는 37년 만에 시간당 최고 강수량 기록을 갈아치울 정도였다. 최고 300mm까지 쏟아진 이날 폭우로 지하철 역사가 물에 잠기고, 2만1천여 가구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한강의 빗물펌프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인명 피해도 컸다. 비 때문에 목숨을 잃은 이들만 49명이었다.

집중호우 뒤 이어지는 감전사고

이날 집중호우에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사망자의 절반에 가까운 21명이 감전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물난리로 떠내려간 게 아니라, 물에 잠긴 거리를 걷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이아무개씨도 폭우가 내린 새벽 경기도 광명시 광명4동 지하철 7호선 광명사거리역 9번 출구 가로등 옆에 서 있다가 감전으로 목숨을 잃었다. 광명2동에서는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길에 서 있던 오아무개씨가 변을 당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날 새벽 광명2·4동 도로변뿐만 아니라 서울 서초동 진흥아파트 앞 인도와 신림8동 강남아파트 앞 도로 등 서울 시내 4곳과 인천 작전1동 작전체육공원 주변 등에서 모두 19명이 감전으로 목숨을 잃었다. 일부 피해자들은 가로등에 몸이 달라붙어 숨진 채 발견돼 충격을 주기도 했다. 당시 감전사고의 원인으로 오래되고 누전 차단 시설이 미비한 가로등이 지목됐다. 지하에 묻힌 전선으로 전기가 계속 흐르고 있는 가로등에 빗물이 유입되면서 감전사고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처럼 도시에서 대규모 감전사고가 벌어진 지 13년이 지났지만 거리의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김제남 정의당 의원실이 지난 9월11일 한국전기안전공사로부터 2011년부터 2013년까지의 ‘일반용 전기설비 점검 현황’ 자료를 제출받아 분석한 내용을 보면 그렇다. 그 내용을 보면, 한국전기안전공사가 1년 또는 3년 주기로 점검하고 있는 가로등·신호등·보안등·공원등, 그리고 가로등·신호등에 쓰이는 분전함 등 전국적으로 약 270만 개의 전기시설물 가운데 약 3.9%에 해당하는 10만 개가 감전사고 위험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휴대전화 중계기, 폐회로텔레비전(CCTV) 등 점점 늘어나는 거리 전기시설물의 상당 부분도 제대로 점검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도심 거리에서 전기 공급을 받고 있는 각종 시설물 가운데 대부분은 ‘일반용 전기시설물’로 분류된다. 한국전기안전공사의 점검을 받고 지방자치단체에 관리 책임이 있는 이런 시설물은 “전압 600V 이하로 용량 75kW(심야전력을 이용할 경우 100kW) 미만의 전력을 사용하는 전기설비”라는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김 의원실의 자료를 보면, 이러한 일반용 전기시설물 가운데 가장 안전 상태가 부실한 것은 보안등과 가로등이었다. 2011년부터 2014년 7월까지 이뤄진 ‘가로·신호·조명등 전기안전 점검 결과’를 보면, 3년마다 정기점검을 받는 보안등은 3.8%가 부적합 판정을 받았고, 매년 점검하는 가로등은 3.6%가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전국적으로 8만6천 개에 해당한다. 문제는 부적합 판정 이후 제대로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재점검 대상에 오른 시설물 가운데 보안등은 43%, 가로등은 36.5%가 개선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었다. 그 밖에 전국적으로 6만1천여 개가 있는 가로등 분전함은 11.5%(7059개)가 감전 위험에 노출돼 있었고, 신호등 분전함 시설도 매년 평균 2300개가량이 안전사고 위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수통신시설 9400개 안전 부적합 판정

‘정보기술(IT) 인프라’의 발달로 새로 등장하는 각종 첨단 시설에 대한 관리도 미흡한 건 마찬가지였다. ‘특수통신시설’로 분류된 CCTV와 공중전화, 이동통신사의 중계기, 단속카메라, 정류장 가판점 등 29만4천여 개의 전기점검 결과에서도 사고 위험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약 9400개(3.2%)의 특수통신시설이 부적합 판정을 받았고, 이 가운데 1440개(17.2%)가 재점검 뒤 수리되지 않고 있었다. 항목별로 CCTV는 전체 2만4천 개 가운데 1200개(4.7%)가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최근 전광판 시설 등이 보강되고 있는 정류장은 100개 중 3개, 가판점은 100개 중 5개의 전기시설에서 감전 위험이 나타났다. 특히 불량인 정류장 51개와 가판점 47개는 위험이 나타났음에도 제대로 수리되지 않았다. 활용도가 떨어져 존폐 논란이 벌어지는 공중전화 관리에서도 문제점이 나타났다. 전국적으로 2만여 대가 남은 공중전화 시설의 10.8%(2182개)가 전기점검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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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전기시설물의 전기 안전성 실태는 그동안 알려진 것보다 더 심각했다. 전체적으로 평균 6만여 개의 시설물이 수리받고 있고, 나머지 4만 개의 시설물은 감전사고 등의 위험을 알면서도 방치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감전사고 방지에 앞장서야 하는 공공시설물의 관리 실태도 그리 낫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전기안전공사의 ‘행정·공공·문화재 시설 점검 결과’를 보면, 군부대 전기시설 가운데 부적합으로 드러난 89곳 가운데 65%(63곳)를 방치하고 있었다. 공공기관(42곳), 지자체(22곳), 경찰서(11곳), 중앙행정기관(6곳)도 위험이 있는데도 전기시설을 개수하지 않았다.

전기시설물의 관리 상태는 지역별로도 차이를 보였다. 지자체의 재정 상황에 따라 편차가 있는 것이다. 한국전기안전공사가 파악한 ‘16개 시도별 최종 미개수시설 현황’을 보면, 부적합 시설 방치가 많은 지자체는 충남·인천·경기·대전 순으로 나타났다. 방치 시설이 가장 적은 곳은 울산이고 그 뒤를 제주와 강원이 이었다. 서울은 10번째를 차지했다.

‘인재’ 반복하지 않도록 ‘선제적 조치’를

거리의 부실한 전기시설물 관리를 개선하려면 지자체마다 적정한 예산 배정으로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의원은 “2014년도 예산안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 줄다리기로 방치해온 조명·신호등 개선 방안이 반영됐는지 세심히 살펴보려 한다. 또 재벌 통신사들이 자비를 들여 철저히 관리해야 하는 시설을 방치하고 있다는 점도 개선이 시급하고, 부적합한 통신시설이 발견되면 한국전기안전공사에 점검비용을 부담시키고 과태료를 올리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선제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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