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후드득 소리와 함께 머리맡에 무언가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쥐인가? 벌떡 일어나 두리번거렸지만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잠들기는 포기했다. 하루 종일 흘린 땀을 씻어내지 못해 끈적임이 온몸에 배어 있었다. 세수는커녕 칫솔질도 못하고 겨우 구강청결제로 가글만 하고 잠자리에 든 터였다. 시멘트도 나무도 아닌 흙바닥에 얇은 고무매트를 깔고 침낭을 덮고 누워 있으려니 ‘여긴 어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인도네시아 욕야카르타 지역의 산골마을이었지. 4시쯤 되었을까. 밖에서 기도 소리가 들렸다. 기도 소리를 자장가 삼아 설핏 잠이 들었는데 알람이 울렸다. 5시30분. 사르얀티가 곧 등교할 시간이다.
수도시설도 없고 전기도 부족한 산골마을열다섯 꽃다운 나이의 사르얀티는 중학교 3학년이다. 등교를 위해 새벽 6시에 집을 나서야 한다. 학교는 걸어서 45분 거리에 있다. 사르얀티네 집은 자동차도 오토바이도 없다.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부모님의 월수입은 68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약 8만원이다. 이 돈으로는 초등학생인 남동생을 포함한 네 식구가 버티기 어렵다. 사르얀티네 집에는 수도시설도 없다. 전기도 부족해 작은 텔레비전 외에 다른 가전제품도 없었다. 아궁이에 불을 때 밥을 짓는 형편이다. 다행히 사르얀티에게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인 ‘굿네이버스’가 후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사르얀티는 이 후원금으로 수업료를 내고 학용품을 산다.
지난 8월19일 한국에서 온 굿네이버스 회원들이 사르얀티의 집에서 하루 동안 묵겠다며 식료품과 선물 꾸러미를 들고 찾아갔을 때 사르얀티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한국 언니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고 가방에 그림을 그려넣고 벽에 야광별을 붙이며 노는 동안 얼굴엔 미소가 피어났다. 사르얀티는 “집이 너무 멀어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기 힘든데 언니들과 함께 놀 수 있어서 정말 즐겁다”고 했다. 다음날 우리보다 먼저 일어난 사르얀티는 “슬라맛 파기!”(아침 인사)를 외치며 밝은 모습으로 방 안에 들어왔다. 벌써 교복을 입고 학교 갈 채비를 마친 상태였다. 아쉬운 작별 인사를 끝내고 사르얀티는 옆집 아저씨의 오토바이를 얻어타고 학교에 갔다.
집에는 사르얀티의 부모님과 한국에서 온 이방인들만 남겨졌다. 어색함도 잠시. 간단한 인도네시아어와 몸짓을 섞어 사르얀티의 아버지와 아침 산책에 나섰다. 그는 말없이 뒷산 정상으로 안내했고 우리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안개 낀 욕야카르타의 새벽을 감상했다. 어려운 형편을 고려해 아침 식사는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고 미리 얘기했지만 산책에서 돌아오자 사르얀티의 어머니는 이미 아침상을 차려놓고 있었다. 메뉴는 전날 저녁과 똑같았다. 쌀밥과 인도네시아식 커리 두 가지다. 아침 식사를 마치니 이제 떠날 시간이다. 유난히 말수가 적었던 사르얀티의 아버지가 마지막 인사를 했다. “우리 집에 묵는 동안 부족한 게 많았을 텐데 정말 미안하다.” 그제야 그들이 하루 동안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친절을 베풀어주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편한 잠자리를 견디기 힘들어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다른 여행에서는 느낄 수 없었을 따뜻한 감정을 안고 그 집을 떠났다.
색다른 여행이었다. 비교적 깨끗한 시설에 묵으며 그 나라의 유명한 관광지를 돌아보는 여행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도시는 어느 호텔이 좋더라, 어느 해변이 멋지더라, 무슨 음식이 맛있더라고 읊어댈 수 있는 여행이 아니다. 화려한 볼거리로 덧칠된 여행이 아닌, 한 나라의 수수한 민낯과 적나라함을 느낄 수 있는 여행. 굿네이버스 회원 23명과 함께한 5박7일간의 인도네시아 여행은 이 나라의 ‘진짜’ 사람들과 생활을 공유한 특별한 여행이었다. 이 여행을 기획한 박동철 굿네이버스 인도네시아 지부장은 여행 첫날 “인도네시아는 주요 20개국(G20) 안에 드는 국가다. 우리나라가 14위, 인도네시아가 16위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의 국민 80%가 어려운 생활을 한다. 특히 욕야카르타 지역 산골마을은 전기도 수도도 없는 경우가 많다. 잘사는 나라의 국민이 왜 이런 생활을 하는지 헷갈릴 수 있을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화려한 모습이 아닌 진짜 모습을 잘 보고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행의 80%가 봉사활동으로이름은 여행이지만 내용은 봉사에 가깝다. 여행의 80%가 봉사활동으로 채워져 있다. 어려운 가정을 찾아가 식료품을 전달하고 아이들과 놀아준다.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교육봉사를 하고 학교 도서관과 산꼭대기의 삭막한 식수탱크를 페인트로 아름답게 꾸미는 미션도 있다. 그럼 무료 봉사여행이냐고? 천만에. 1인당 250만원의 여행비를 지불해야 한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 돈을 주고 사서 고생을 할까?
“10년 전쯤인가. 우연히 지인의 부탁으로 장애인들이 탄 버스를 운전해준 적이 있었다. 그날 굉장히 짜증스러웠다. 몸이 불편한 이들을 일일이 업어서 버스에서 내려줘야 했기 때문이다. 속으로 ‘내가 미쳤지. 나도 사장인데. 그냥 가만히 있으면 편할 건데 왜 이 사람들을 업어주고 있어야 하나’ 하고 생각했다. 일주일 뒤 업혔던 사람 중 한 명이 휠체어에 탄 채 인사를 해왔다. 순간적으로 모른 척했다. 얼마 뒤 아이들과 마트에 갔는데 또 다른 장애인이 나를 알아봤다. 또 도와달라고 하는가 싶어서 애들한테 그만 가자고 하며 황급히 돌아섰다. 그날 저녁 아이들 앞에서 떳떳하지 못했던 행동에 대해 후회가 몰려왔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그 장애인들이 있는 복지관을 찾아가 너무 부끄럽다고 말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시켜달라고 했다.”
강병수(50)씨의 봉사활동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그는 주유소 3곳을 운영하면서 수익금의 일부를 고정적으로 굿네이버스에 기부한다. 그는 이미 9번이나 해외 봉사활동을 나갔다. 강씨는 “봉사는 중독성이 있다. 한번 해보면 그 매력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각 나라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하고 아이들이 어떤 교육을 받는지 알고 싶어진다. 여러 군데를 다녀보니 재미도 있고 성취감도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쉰의 나이에 인도네시아 아이들에게 태권체조를 보여주기 위해 틈만 나면 몸을 흔들며 연습에 몰두했다. “내가 우리 애들 앞에서도 이런 건 안 했는데 참…”이라면서도 표정은 즐거워 보였다.
자신이 어릴 적에 받았던 도움을 이후 경제적 독립을 이루면서 되갚기 위해 후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윤경환(31·회사원)씨는 “편모 가정에서 자라면서 중·고등학교 때부터 사회적 혜택을 받았다. 대학생 때도 여기저기서 적극적으로 장학금을 알아보면서 학자금을 충당했다. 취직한 뒤 내가 받은 것을 어떻게 사회에 환원할까 고민하다가 굿네이버스 회원이 됐다”고 말했다. 그래도 1년에 한 번뿐인 여름휴가 기간에 250만원을 투자해 봉사활동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망설임은 없었느냐고 물으니 “사실 이 돈을 여행 자금으로 쓰지 않고 그대로 아이들에게 후원하면 더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온 이유는 특별한 여행을 통해 겪은 경험을 토대로 봉사활동을 더 오랫동안 하기 위해서다. 이번 경험을 토대로 지인들도 설득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진도체육관에서 만났을 사람들고1·고2 학생을 포함한 이종사촌 5남매도 이번 여행에 함께 참여했다. 이가인(18) 학생은 “나중에 봉사단체에서 일하는 게 꿈이다. 굿네이버스 후원을 하다가 우연히 홈페이지에서 이번 여행 광고를 보게 됐다. 엄마에게 가게 해달라고 부탁해 자주 어울려다니는 사촌들과 함께 오게 됐다”고 했다.
자기 발로 고생길을 찾는 이들은 서로 통한다. 강병수씨와 정경자(59·유치원 교사)씨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뒤 전남 진도체육관을 찾아가 배식·설거지 봉사 등을 했다고 한다. 당시엔 서로 몰랐다가 이번 여행을 함께하면서 처음 만나 알게 된 사실이다. 비행기에서 옆자리에 앉은 윤경환씨와 송성현(28·대학생)씨는 둘이 똑같은 팔찌를 차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활동과 위안부 역사관 건립 기금을 모으는 데 사용되는 ‘희움 팔찌’다. 참가 이유도 제각각이고 나이도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지만 이들은 결국 같은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방문한 욕야카르타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개발이 덜 된 마을로 분류할 정도로 환경이 열악한 지역으로 꼽힌다. 대부분의 주민은 농업으로 수입을 올리는데 월평균 소득은 34.5달러이고,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인구도 33%나 된다. 아이들 가운데 절반만이 기초교육과 중등교육을 받고 있다. 특히 일행이 방문한 마을은 욕야카르타 시내에서도 차로 1시간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산악지역으로 도로 사정이 나빠 주민들이 고립된 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굿네이버스의 후원을 받는 아이들의 집을 찾아가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차를 타고 가다가 오토바이로 갈아타고 이마저 쉽지 않으면 다시 내려서 걸어야 했다.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기 위해 매일 한두 시간씩 험준한 산길을 걷는다.
교육 환경도 그리 좋지 않다. 기본적인 위생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교육 재료가 부족해 미술 수업 등도 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이 때문에 이번 봉사여행 가운데 상당 시간이 ‘교육봉사’에 집중됐다. 회원들은 욕야카르타 지역의 제티스초등학교를 방문해 양치질 올바르게 하는 법, 비누 만들기 등의 위생 교육과 그림퍼즐, 크레파스 스크래치 편지 만들기 등 미술교육에 참여하고 학용품을 전달했다.
특히 한국인을 처음 보는 아이들에게 외국인의 특별교육 활동은 신선한 자극이 됐다. 제티스초등학교 근처에 굿네이버스 욕야카르타 지역개발사업장이 있지만 이곳 직원은 모두 인도네시아 현지인으로 구성돼 있어 주민들이 한국인을 만나는 것은 낯선 경험이었다. 제티스초등학교 교장은 “정부 지원도 받고 있지만 이것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제티스초등학교는 열악한 자금 사정으로 학교 간판도 만들어 붙이지 못하고 있다. 굿네이버스가 컴퓨터 등 학교 물품을 지원해주는 것에 정말 감사하다. 외국인과 교류하고 소통하는 것도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낯설고 수줍어하던 아이들은 하루이틀 봉사자들과 만나 얼굴을 익히면서 점점 친근함을 표해왔다. 아이들과 손잡고 얼굴을 마주 대는 것이 회원들에게는 덥고 지치는 봉사활동을 즐겁게 할 수 있는 동력이 됐다. 송성현씨는 교육봉사를 마친 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다. 아이들과 운동회를 끝내고 마지막 인사를 하고 차에 타려는데 한 아이가 어디서 배웠는지 ‘오빠’라고 부르며 달려와 과자를 주고 갔다. 가끔 봉사에 참여하는 연예인들이 방송에서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고 말할 때 솔직히 ‘얼마나 그럴까’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경험해보니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동이 있었다. 그 아이가 전해준 과자 한 개가 정말 소중하게 여겨졌다”고 말했다.
“일상에 복귀해서도 이 배려를 잊지 않겠다”교육봉사가 아이들과의 소통이었다면 산골마을의 식수탱크에 페인트칠을 하는 작업은 주민들과의 소통 현장이었다. 식수탱크에 그림을 그리는 것을 지켜보던 주민들은 회원들에게 다른 마을 시설에도 페인트칠을 해줄 것을 부탁해왔다. 회원들은 제한된 시간을 쪼개 주민들과 함께 페인트칠 작업에 나섰다. 말은 제대로 통하지 않았지만 페인트 작업을 함께하며 따뜻한 감정을 공유했다. 식수탱크가 완성된 뒤 한 주민은 “굿네이버스에서 설치해준 식수탱크 덕분에 이 지역 11가구가 큰 도움을 받았다.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전했다. 식수탱크가 설치되기 전 이 지역 주민들은 물을 얻기 위해 1시간 거리를 걸어야 했다.
낯선 곳, 낯선 사람들을 일주일 만에 익숙한 곳, 따뜻한 사람들로 만들게 한 여행. 이 여행에서 이들은 무엇을 얻었을까.
배현준(36·사업) “최근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이 많이 있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상황에서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이번 여행을 계획했는데 예상보다 더 많은 것을 얻었다. 어릴 적 사촌형에게 선물받은 축구공이 떠올라 홈스테이 어린이를 위해 축구공을 준비했는데 정말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더 감동했다.”
이예슬(26·사회복지사) “한국에 있을 때는 매월 자동이체가 되니까 내가 후원한 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잘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직접 와서 지역 사업장에서 후원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볼 수 있어 더 의미 있었다. 앞으로 주변인들에게도 후원하도록 설득할 수 있을 것 같다.”
조수현(35·회사원) “오기 전에는 긴장해서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스스로 신청하고도 ‘대체 내가 왜 그랬지’ 하고 후회했다. 그러나 직접 와서 여러 가지를 경험할 때마다 스스로가 대견해졌다. 나도 조금만 노력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경자 “살면서 더 많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탐욕을 버려야겠다면서도 아직 많은 게 남아 있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이제 또다시 새롭게 시작해야겠다.”
윤경환 “내가 왜 이들을 후원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찾으러 왔다. 이번 여행이 끝나고 나서 후원이나 봉사하는 마음의 본질은 상대방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일상에 복귀해서도 이 배려를 잊지 않고 살아가야겠다. 내 인생 최고의 여행이었다.”
어디선가 후원을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당신도 특별한 여행을 하고 싶다면? 먼저 후원을 시작하자. 그리고 내년 휴가에는 삭막한 도시를 떠나 세계 속의 ‘진짜 사람들’을 찾아가보는 건 어떨까. 그것이 당신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굿네이버스 후원 문의(☎1599-0300)
욕야카르타(인도네시아)=글·사진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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