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12일 저녁 7시44분, 경북 경주에 엄청난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 경주 아파트 9층에 사는 나는 ‘콰르르∼’ 하는 굉음과 함께 거실의 큰 유리창이 앞뒤로 크게 흔들리는 모습에 깜짝 놀랐고 건물 전체가 떨리는 것을 느꼈다. 진동은 약 10여 초 지속됐다. 진동 뒤에도 10초 정도 ‘쿠르르르∼’ 하는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왔다. 멍하게 앉아 있다가 조금 지나서야 ‘이것이 지진이구나, 내가 제대로 된 지진을 경험해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옷을 챙겨입고 나갔다곧장 TV를 켰다. 관련 뉴스가 나오나 봤더니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채널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지진이 왔는데 재난을 알리는 문자메시지도 없었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조용했다.
약 10분이 지난 뒤에야 국민안전처로부터 지진이 발생했다는 문자메시지가 왔고, TV에도 지진이 발생했다는 속보가 나오기 시작했다. 규모 5.1 지진이 경주 남남서쪽 11km 지점에서 발생했다는 것이다. 휴대전화를 켜서 위치를 추정해보니 경주 남산 근처 내남면일 것으로 보였다.
나는 상당히 놀라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여 멍한 상태로 거실에 앉아 있었다. 이후에도 여진이 몇 차례 느껴졌다. 집 안을 살펴봤더니 안방 장식대 위에 세워둔 시계가 밑으로 떨어져 있었다. 여기저기서 지진을 확인하는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월성 원자력발전소(원전)의 상태가 궁금했다. 그러던 차에 갑작스럽게 두 번째 지진이 왔다. 이전 지진보다 훨씬 강도가 컸다. 소리도 컸고 유리창의 흔들림도 훨씬 컸다. 첫 번째 지진 때는 놀랍고 당황스러운 느낌이었으나, 두 번째 지진 때는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실의 큰 유리창이 앞뒤로 크게 흔들렸다. ‘내 쪽으로 넘어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 10여 초의 진동과 이후 10초 정도의 굉음이 지나간 직후에도 아파트 건물 바닥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차멀미를 하는 듯 어지러웠다. 나도 모르게 후다닥 옷을 챙겨입고 있었다. 계단을 통해 아파트 밖으로 나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지진에 대한 공포감이었다.
밖으로 나와보니 아파트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지진에 대해 이야기하고 가족에게 전화하고 있었다. 전화, 문자메시지, 카카오톡이 불통이라는 사실을 그때 인지했다. 전화와 문자메시지는 곧 재개됐으나 카카오톡은 한동안 불통이었다. 그러나 텔레그램은 끊기지 않고 사용이 가능했다.
밖으로 나온 뒤 동네를 걸어다니면서 이웃들의 경험담을 들었다. 선반 위 물건이 떨어진 정도는 거의 모든 집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밖에는 나왔으나 언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마을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1시간이 지났는데도 마을방송에선 아직 집에 들어가지 말고 넓은 장소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한참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TV 방송을 확인해야겠다 싶어 집에 돌아왔다. 지진을 느끼고 집 밖으로 뛰쳐나간 지 2시간이 지난 뒤였다.
활성단층 vs 활동성단층집에 돌아와보니 첫 번째 지진 때 떨어졌던 시계뿐 아니라 침실 스탠드도 넘어져 있었고, 목욕탕 바닥에 세워놓은 샴푸통도 넘어져 있었다. 장식장 내부의 물건들은 대부분 쓰러져 있었다. 두 번째 지진은 규모 5.8에 경주로부터 남남서 방향 8km 지점에서 발생했다. 지진 관측이 시작된 1978년 이후 가장 강력한 규모다.
지난 7월5일 울산 앞바다에서 발생한 지진이 규모 5.0이었다. 그리고 두 달 정도 지나 9월12일 각각 규모 5.1, 5.8의 지진이 경주에서 발생했다. 이번 경주 지진의 진앙지는 둘 다 양산단층이 지나가는 곳이다. 양산단층은 길이가 170km에 달하는데 현재까지 발견된 남한의 단층 중 가장 길다. 그동안 국내 지질학자들은 원전 가까운 곳에 위치한 양산단층이 활성단층인지를 두고 치열하게 논쟁했다. 원자력계는 지질학계와 달리 ‘활동성단층’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원자력의 안전성을 평가하고 있었다.
활성단층과 활동성단층은 말은 비슷하지만 정의가 서로 다르다. 지질학계에서 말하는 활성단층은 ‘180만 년 이내에 한 번 이상 움직인 단층’을 의미한다. 지질학계는 활성단층에서 지진이 재차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원자력계가 말하는 활동성단층은 그 정의가 ‘50만 년 이내에 두 번 이상 움직였거나 3만5천 년 내에 한 번 이상 움직인 단층’이라고 정의된다. 활성단층보다 더 좁은 의미인 것이다.
원자력계는 그동안 양산단층이 활동성단층이 아니므로 이 단층 근처에 원전이 있어도 문제없다는 입장이었다. 나는 이번 지진이 일어난 곳이 양산단층이 지나가는 장소라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만일 이번 지진이 양산단층에서 발생했다고 인정된다면 원자력계로서는 여태까지의 주장, 즉 ‘양산단층은 활동성단층이 아니라서 주변 원전의 안전성에 문제없다’는 주장이 힘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이번 지진의 진앙지가 양산단층이냐 아니냐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진행될 것이라는 생각도 스쳤다.
월성원전 돔 보이는 땅은 안 팔려지질학계와 원자력계의 논쟁은 그렇다 치고, 나는 두 가지 질문과 마주했다. 우리나라에서 앞으로 얼마나 강한 지진이 올지, 우리나라 원전들이 얼마나 강한 지진에 견딜 수 있을지. 결국 이번 지진을 계기로 우리는 두 질문에 대한 답을 얻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넘어진 물건들을 바로 세우고 있는데 더불어민주당 쪽에서 ‘내일 월성과 고리 원전을 방문할 예정이니 시간 좀 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다행히 강의가 없는 날이어서 동행하겠다고 약속했고, 그날 밤은 이런저런 생각으로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날, 나는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과 함께 월성원전으로 갔다. 원전을 방문하기 전 월성원전 앞에서 천막을 치고 2년 넘게 농성 중인 주민들을 찾았다. ‘월성원전 이주대책위’라고 스스로를 명명한 주민들은 월성원전 인근에 살고 있으면서 암 발생 등 건강 문제와 재산권 침해로 인해 월성원전 쪽에 자신들의 이주를 요구하고 있었다.
이분들의 말에 의하면 원전의 돔 건물이 보이는 장소는 땅이나 건물이 거래되지 않으니 큰 재산권 침해를 당하고 있단다. 또 원전 주변에는 다른 지역보다 갑상샘암 등 건강 문제가 많이 발생하고 있으니 이주비용을 원전 쪽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민주 의원들은 이주대책위 주민들에게 도울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위로의 말을 남기고 월성원전으로 향했다.
우리는 월성원전에서 원자력발전소 운영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쪽 브리핑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월성원자력 본부는 지진으로 인하여 A급 비상상태를 선언했고 이에 따라 전 직원이 밤새 비상근무를 했다. 점검 결과 냉각수 누출 등 원전의 안전에 문제점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원전마다 설치된 지진계는 수동정지 요건인 0.1g 이하로 기록됐으나 안전을 위해 월성 1·2·3·4호기를 수동정지 시키고 정밀진단을 진행하는 중이다.”
한수원 직원들, 사라진 미소이 브리핑에 대해 더민주 의원들의 질의와 한수원 쪽 대답은 다음과 같다.
질의 원전마다 측정되는 지진값, 즉 최대 지반 가속도가 큰 차이를 보이는데, 그 이유는 뭔가?
답 원전이 위치하는 지반에 따라 측정값이 달라진다. 지반이 튼튼하면 측정값이 낮아진다.
질의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측정한 지진값과 한수원이 측정한 지진값이 서로 다른 이유는 뭔가? 왜 원안위 측정 결과는 수동정지 기준인 0.1g을 상회하는데 한수원의 측정값은 이 기준을 하회하는가?
답 원안위 측정기기와 한수원의 측정기기의 위치가 다르다. 조금씩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질의 같은 부지에 6개 원전이 존재하는데 왜 신월성 1·2호기는 정지시키지 않고 월성 1·2·3·4호기만 정지시켰는가? 혹시 중수로 원전이라서, 또는 노후 원전이라서 그렇게 조치한 것인가?
답 6기의 원전에 대한 측정값 중 정밀조사 결과 0.1g을 상회하는 것은 월성1호기뿐이었다. 그러나 보수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근처의 2·3·4호기도 수동정지하고 정밀검사를 하는 것이다. 노후 원전이라서, 혹은 중수로라서가 아니다.
질의 두 번째 강진이 발생한 뒤 3시간이 지나서야 4개 원전의 수동정지를 결정한 이유는 뭔가?
답 지반 가속도 측정값은 거의 동시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측정값이 0.1g에 매우 가까웠고, 원안위 측정값이 0.1g을 상회해 지진 파동에 대한 정밀분석을 했는데, 이 분석 시간이 걸린 것이다.
질의 지진의 진앙지가 양산단층인데, 이번 지진으로 인해 이 단층이 활성단층임이 입증된 것 아닌가?
답 이 질문에 답하는 데는 전문적 분석이 필요하다.
이런 내용의 질의와 응답을 한 뒤 일행은 고리원전으로 향했다. 부산 기장군에 위치한 고리원자력본부 앞에서 우리는 현수막을 펼치고 기자회견을 했다. 현수막에는 “역대 최대 5.8 강진에 따른 고리원전 긴급 현장점검, 국민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즉각 중단!”이라고 쓰여 있었다. 야당 의원들은 지진의 우려와 함께 원전 개수를 줄이고 에너지 전환을 해야 하며, 이를 위해 먼저 노후 원전을 폐쇄하고 신고리 5·6호기 등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자회견 뒤 고리원전을 방문해 월성원전 때와 비슷한 브리핑에 이은 질의응답을 실시했고, 지진계를 실사했다. 지진계는 원전 건물 내부에 있었고 이곳에서도 관련한 질의응답이 있었다.
월성원전과 고리원전을 방문하면서 내가 평소와 다르다고 느낀 점은 한수원 직원들의 긴장감이었다. 나는 이분들이 이렇게 진지하고 긴장한 것을 본 적이 별로 없다. 특히 과거에는 지진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한수원 쪽은 미소를 띠면서 여유 있는 자세로 답해왔다. 그날은 완전히 태도가 달랐다. 아마 그동안 5.0 이상의 지진은 오지 않는다는 경험에 의존한 막연한 믿음이 무너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됐다. 물론 이번 지진을 경험한 우리 국민 모두가 공유하는 느낌이겠지만 원전 근무자들의 충격은 더욱 컸던 게 아닐까 생각된다.
모든 원전에 ‘스트레스 테스트’ 해야월성원전과 고리원전의 방문을 마친 뒤 앞으로 남은 과제를 생각해보았다. 확실한 사실들을 먼저 나열해보자.
첫째,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이 원전 근처에서 발생했다. 한수원은 그동안 공식 블로그 등을 통해 진도 5.0 정도가 한반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대 지진이라고 홍보해왔는데, 그보다 훨씬 큰 규모의 지진이 원전 인근에서 발생한 것이다.
둘째, 만일 이 지진이 양산단층에서 발생했다면 그동안 발견된 국내 단층 중 가장 길고 큰 규모의 단층이 원자력계가 정의하는 ‘활동성단층’에 해당하게 된다. 단층 길이가 길수록 큰 지진의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된다.
셋째, 국내 원전들이 얼마나 큰 지진에 버틸 수 있는지 평가할 필요가 있다. 일본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많은 유럽 국가들은 자국 내 모든 원전을 대상으로 지진 등 강한 충격에 원전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이른바 ‘스트레스 테스트’를 진행했다. 한국 역시 모든 원전에 대해 스트레스 테스트를 하겠다고 약속하기는 했으나 현재까지는 수명 연장을 실시한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만 했을 뿐이다. 스트레스 테스트를 한 월성1호기의 경우 민간검증단과 한수원 쪽 전문가들 사이에 지진 평가 방법, 결과 등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이 논란이 해결되지 않은 채 월성1호기의 수명 연장이 결정되고 말았다. 이제는 모든 원전에 스트레스 테스트를 ‘제대로’ 할 필요가 생겼다.
사상 초유의 강진을 맞이한 상황에서 앞으로 정부와 원자력계는 다음 두 가지 질문에 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첫째, 한국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대 지진은 얼마인가. 둘째, 국내 원전은 어느 강도의 지진까지 견딜 수 있는가. 두 질문에 대한 답 없이 원자력의 안전을 말할 수 없게 되었다.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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