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키운 트잉여 하나 열 공보관 안 부럽고 잘생긴 아들 하나 백 트잉여 안 부럽다.” 7·30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회자되는 ‘명언’이다. 트위터와 잉여의 합성어인 ‘트잉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트위터에 하루에 수십 차례 드나들면서 글 쓰고 읽고 킥킥대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을 말한다. 선거를 2주 앞둔 7월16일 독보적인 트잉여 한 명이 존재를 알렸다.
“머리가 크고 못생겨서 유명해지지 못한 …”
시작은 평범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7·30 보궐선거 수원정에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출마한 박광온 후보의 딸입니다. 트위터에다 가족 실명을 쓰다니… 요 근래 들어 이렇게 심박수가 높아져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계정 아이디는 ‘SNS로 효도하겠다’는 의미로 @snsrohyodo라고 지었다. 사람들은 그를 ‘랜선효녀’라고 불렀다.
랜선효녀는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돌연 나타나 아버지 고승덕 서울교육감 후보자에 대한 양심선언을 했던 캔디 고와는 같으면서 다르다. 후보자 본인이 예측하지 못한 변수였다는 점에서는 같고 아버지의 인지도를 높이고자 한다는 점에서는 다르다. 랜선효녀의 등장은 목적 면에서는 아버지의 미미한 인지도가 안타까워 선거 전면에 나섰던 조희연 서울교육감의 두 아들과 비슷하다.
랜선효녀의 트위트는 아버지 자랑인 듯 자랑 아닌 자랑같이 미묘하다.
“박광온씨는 마치 살아 움직이는 도덕 교과서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재미없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도덕과 재미가 함께 갈 수는 없으니까요… 대신 제가 웃기니 된 것 같음.”
“이 계정은 오로지 머리가 크고 못생겨서 유명해지지 못한 박광온씨가 트위터에서나마 유명해지길 바라며 트잉여인 딸이 드립을 쳐드리기 위해 만들어진 계정일 뿐입니다.”
MBC 9시 뉴스 앵커에 사회자까지 맡았음에도 낮은 인지도를 가진 아버지에 대한 딸의 ‘허심탄회한’ 논평과 “압도적인 머리 크기”에 대한 외모 비평은 사람들의 주목도를 높였다. “난 권선구민인데 영통으로 이사가서 뽑고 싶게 만드는 효녀!”(@*****ppangppare) “저 영통 사는 유권자입니다. 내가 유권자라는 걸 오늘 알았네요.”(@*****ikjeong)
계정을 만든 지 사흘 만에 팔로어 수는 1만 명을 넘었다. 박광온 후보 이름은 포털 사이트 ‘실검’에 등장했다. 안상범 박광온 후보 선거 공보담당자는 “유세 현장에서도 후보자에게 딸을 언급하거나 딸에 대해 묻는 일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보좌관의 ‘트위트 자제 요청’마저 트위트
다만 공식에 입각해 선거를 치르는 선거캠프 입장에서 딸의 트위트는 난감하고 당혹스러운 돌발 사태였다. 박광온 선거캠프에서는 7월16일 트위터에 올라온 후보자 관련 멘션을 보고 정체 파악에 나섰다. 설마 했으나 진짜 후보자 딸임을 알고는 화들짝 놀라 트위트 자제 및 중단을 전화로 여러 차례 요청했다. 그러나 곧장 다음과 같은 멘션이 떴다. “방금 전에 보좌관한테 트위터 하지 말라고 전화받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보좌관님 고작 전화로는 저의 온라인 효도를 막을 수 없습니다.” 트위트 자제 요청마저 트위트가 될 줄이야. 이 일련의 상황을 박광온 후보의 딸은 “이건 아마도 전쟁 같은 사랑”이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말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후보 딸이 통제 불가능한 드립을 치는 걸 이해하기 어려우시겠지요. 거기에 바로 트위터리안의 큰 뜻이 있는 겁니다. 너희는 트잉여의 직업을 오픈해버린 보좌관들이다. 너희에겐 시련이 필요하다.”
7·30 재·보궐 선거에서는 6·4 지방선거에 이어 후보자의 자식들이 아버지 홍보 활동을 벌이고 있다. 경기도 수원정의 박광온 새정치민주연합 후보 딸의 트위터, 단일화 뒤 사퇴한 천호선 정의당 후보 아들의 트위터, 부산 해운대기장갑의 윤준호 새정치민주연합 후보 아들의 트위터(왼쪽부터).
사람들은 배꼽을 잡았다. 트위터에는 “요즘 사는 낙이 별로 없는 와중에 수원 영통 기호 2번 박광온 후보 따님이 즐거움의 원천임” 등의 글이 올라왔다. 사회학자 임승수씨는 “7·30 재·보궐 선거에 관심이 안 갔는데, 랜선효녀 계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다. 적어도 트위터를 이용하는 젊은 세대에게는 후보자에 대한 호감도가 수직상승했을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광온 후보 딸의 트위터가 화제를 모은 다음날, 같은 지역구 경쟁자인 천호선 정의당 후보 아들도 “나도 효도란 걸 해보렵니다”라며 트위터를 시작했다. 천 후보 아들은 사람들로부터 질문을 받고 성실하게 답하는 질의응답형 트위터를 운영했다. 7월24일 후보단일화가 이뤄지면서 천 후보가 사퇴하자 아들은 “그동안 트윗을 통해 여러분께 노잼과 치기 어린 트윗을 드린 점 사과드리며, 그동안의 모든 것들에 대해 여러분 모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상 효도를 위한 트윗을 마칩니다”라는 트위트와 함께 2번과 4번이 새겨진 손이 악수하는 그림으로 ‘단일화’에 힘을 보탰다. 부산 해운대 기장갑의 윤준호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의 아들도 ‘윤준호 후보 장남의 뒷북 SNS 효도 계정’이라며 트위터 계정을 만들고 아버지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윤준호 후보의 아들은 ‘고리 원전 즉각 폐쇄’ ‘탈핵 후보’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내세우며 홍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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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자식’은 모두 효도를 콘셉트로 한다. 이 ‘자식 변수’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칼럼니스트 박권일씨는 “지난 서울교육감 선거에서 고승덕 후보의 경우 자식을 팽개친 아버지라는 점이 폭로되면서 이미지에 타격을 받았고, 조희연 후보는 자식들이 나와서 ‘존경할 만한 아버지’라는 점을 이야기하면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박광온 후보 딸의 트위터 활동이 당락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더라도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주고 있다”며 “군림하고 과시하는 권력 모델에 대조되는 보살피고 다독이는 권력 모델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이 과거에 비해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아버지 모델보다는 어머니 같은 돌봄 권력에 대한 소구가 커졌다는 해석이다.
캔디 고와 다르지만 비슷한 가족 스캔들박광온 후보 딸의 등장은 캔디 고와는 다르지만 비슷한 가족 스캔들이다. 박 후보의 딸은 트위트를 시작하면서 “저는 부모님의 기대라는 것을 무참하게 깨부수며 살고 있는 슈퍼 불효녀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어디 다리에서 주워왔대도 믿을 만큼 성격과 가치관이 완전히 다른 사이인지라 제법 많은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지금 저의 삶을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지금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이유에 부모님의 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믿고 있”다는 박 후보 딸의 트위트는 ‘불효녀의 온라인 효도’ 내막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하지만 그는 30대의 인디밴드 공연기획자라는 점 외에는 아무것도 공개하지 않아 대중적 호기심을 좀더 자극한다. 문학평론가 조영일씨는 “캔디 고의 아버지 고발이 파문을 빚은 것은 딸과 아버지의 갈등이라는 점에서다. 아버지와 딸의 갈등은 인간사에서 가장 점화력이 큰 소재다”라고 말했다.
자식이 접근성과 확장성이 높은 소셜 매체를 만나면서 이제 선거에는 돌발 변수가 하나 늘었다. 그리고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다음 선거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우리 아버지 좋아요’를 그저 얘기한다면, 자식 변수는 후보들의 재래시장 방문 같은 또 하나의 선거운동 클리셰가 되지 않을까.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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